서정시인 김승국,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 펴내
[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세상의 아픔을 드러내어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데리고 가는 시인, 김승국
서정시인 김승국이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 (시와시학)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1985년 첫 시집 '주위 둘, 스케치 셋', 1989년 두 번째 시집 '나무 닮기', 1999년 세 번째 시집 '잿빛 거리에 민들레 피다', 2011년 네 번째 시집 '쿠시나가르의 밤', 2021년 '들꽃', 2023년 '꽃은 고요히 피어나고'에 이어 여섯 번째 시집이다. 등단 40년을 맞은 시인의 더 깊어진 내면을 담아냈다.
김승국 시인은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전통공연예술연구소장, 무형문화재위원,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장 등과 같은 시인의 전·현직 이력이 환기하듯이 새 시집은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와 ‘비움’의 철학적 덕목을 전통적 가락과 옛이야기를 곁들여 차분하면서도 신명나게 전언한다.
마치 시편들의 제목으로 차용된 ‘방하착(放下着)’, ‘고요한 마음’, ‘아리랑’, ‘남도 흥타령’, ‘산조’, ‘태평무’, ‘강강술래’, ‘육자배기’가 그렇듯이 말이다.
투명한 언어와 예민한 감각으로 직조한 21세기식의 시적 살풀이!
이런 까닭에 문학평론가 권선영은 “김승국의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에는 ‘방하착(放下着)/착득거(着得去)’의 시심(詩心)이 시종일관 동행한다고 평가한다.
오죽하면 시인은 자신의 묘비명마저도 “그냥 왔다 갔다”(「나의 묘비명」)라고 일찌감치 예고했을 것인가.
실제로 새 시집에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 대변될 법한, 인생의 참된 가치에 대한 실존의 깨달음과 그 미학적 실천의지가 곳곳에 산포되어 있다.”라고 평하고 있다.
또한, 문학평론가 권선영은 “김승국 시인은 인간 세상의 부질없는 욕망과 집착에 대한 겸허한 자기반성의 마음, 고유한 삶의 진원지를 향한 처절한 시의 몸짓과 고통스러운 언어들의 향연,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기도」) 세상을 간절히 희구하는 기도의 자세, 세계에서 “치유와 위안이 되는 시”를 생산하기를 열망하는 서정적 주체의 순결함, 궁극에 ‘방하착(放下着)/착득거(着得去)’의 깨달음으로 귀결되는 한 예술가의 도도한 도정이 시집에 담겨져 있다.
이 모두를 시인은 저명한 국악 전문가답게 제각각의 유연한 리듬으로 때로는 경쾌하게 또 가끔씩은 느릿한 장단으로 꾸며낸다. 저력 있는 전통문화의 계승자답게 살풀이하듯 진지하게 풀어낸다.
이런 김승국의 시세계를 우리는 그의 시 제명처럼 “新살풀이”라고 불러 봐도 좋겠다. 투명한 언어와 예민한 감각으로 직조한 21세기식의 시적 살풀이 말이다.”라고 시인을 소개하고 있다.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책이 되는 시집
시인 김승국은 이번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를 펴내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젊어서는 치열하게 써야 시詩인 줄 알았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좋고, 솔직해져서 더 좋다. 툭툭 가지치기해가며 사니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쉬워져 참 좋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를 쓰려고 하지 않으면서 쓴 시이다. 한마디로 쉽게 쓰인 시이다. 이번 시집이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책이 되길 바란다.”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는 모두 126편의 시가 3부로 묶여 있다. 시인 김승국은 이번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에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 함축될 법한, 인생의 참된 가치에 대한 실존의 깨달음과 그 미학적 실천 의지가 곳곳에 산포되어 있다.
투명한 언어와 관조적 명상으로 다가오는 희망의 시
문학평론가 김태균도 김승국 시인의 시집 해설에서 “김승국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여! 침을 뱉어라' 분노를 읊조리던 김수영 시인의 얼굴을 본다. ‘누가 푸른 하늘 보았다 하는가’ 절규하던 신동엽 시인이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그리고 이내 ‘구름에 달 가듯’ 인생을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박목월 시인과 같이 걷고 있는 김승국 시인을 본다.
김승국 시인의 시는 아주 탄탄하면서도 깊이 있는 정서적 단도리가 있는 투명한 언어가 돋보인다.
그러나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때때로 관조적 명상으로 다가오는 청징한 말들이 감동적으로 온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신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조정권이 말하는 시인 김승국
시인의 직계 문학 선배이며 ‘정신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조정권은 김승국의 시집 '쿠시나가르의 밤' 발문에서 시인 김승국에 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김승국 형과 나는 같이 양정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양정고등학교 문예반에서였다. 그 시절이 60년대 중반이었으니 우리가 알게 된 햇수만도 어언 45년이 넘는 연륜이 흘렀다.
당시 그는 인천에서 서울의 만리동까지 기차 통학하던 문학 소년이었다. 지금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와 순수한 눈빛의 마음이 살아 있었다.
문예반 시절 가장 열성적으로 시를 쓰고 교지 편집과 교내 문학 행사를 도운 후배가 승국 형이었다.
매년 박목월 선생을 모시고 개최한 ‘월계문학의 밤’에서 그는 박목월 선생의 칭찬을 들었다. 까까머리 어린 시절이지만 무엇보다 그에게는 열정이 살아 있었다. 그 열정이 그의 삶을 오늘에까지 이끌고 왔다고 믿고 있다.”
김승국의 시, 관조적 명상으로 다가오는 청징한 언어들
“강 너머 바라보니 참으로 아름다운데/ 강 너머 사람은/이곳이 아름답다 하네./길 떠난 나그네는/고향 집을 그리워하고/나무 심는 남자는/길 떠나는 나그네를 부러워하네.”(‘강 너머’에서)
“꽃을 바라본다./나에게 바라는 것도 없고/나 또한 바라는 것도 없기에/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고요하다./꽃을 바라보듯/고요한 마음으로/그대를 본다.”(‘고요한 마음으로)
“하늘은/눈과 비, 바람과 구름을 묵묵히 담고/땅도/산천초목(山川草木)을 다 담는데/왜 내 마음은/작은 너 하나도/다 담지 못하는 것이냐.”(‘왜 내 마음은’에서)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에 한글 ‘새 문서’를 불러낸다/사각의 A4 용지 빈 화면이 나를 응시하며/예수처럼 속삭인다./“정직해라. 진실해라./그러면 좋은 글로 응답해주리니.” (‘시인과 컴퓨터’에서)
“피어나는 꽃은/지는 것을/두려워하지 않는다./만개한 벚꽃이/바람에 날리어 떨어진다./함박눈처럼 떨어지는 꽃의 모습이/이보다 더 아름다울까./이 찬란한 모습/다시 볼 수 있을까/욕심내지도 마라./다시 못 볼/지금 낙화(落花)의 아름다움에/그저 행복해야지.”(‘카르페디엠’에서)
시인 김승국의 시는 간결하고도 시각적 이미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명에 밀려 상대적으로 깊이를 잃고 있는 문화에 대한 염려로 의미의 확장을 놓치지 않는다.
깨어진 유리 조각 같은 언어를 다듬어 만들어진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
“전란의 상흔이 안개처럼 온 세상을 덮고 있을 때/아리랑 고개, 잡초 흐드러진 길가 모퉁이에
풀씨 하나 싹터 피어났다네./비바람 거세게 흔들어대도/때론 땡볕 무더위 속에서도/누구 하나 보듬어주지 않아도/들풀은/아리랑 고개에서/석 달 열흘 쉼 없이/뿌리를/깊이, 깊이 내렸지.”(‘들꽃 아리랑’에서)
“나무 우거진 숲으로 간다./하늘로 하늘로 향하여 오르는 나무의 군락./몸통 곳곳에 줄기가 떨어져 나간/상처의 흔적들./솟아난 가지 모두를 데리고는/그 무게에/하늘로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스스로 부러뜨리고 떨어뜨리며/몸을 가볍게 가볍게 하여/하늘로 하늘로 올랐다./진정 그대는/지고한 삶을 살고 싶은가./그렇다면/그대의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욕망과 번민의 가지를/스스로 부러뜨리고 떨어뜨리며/몸과 정신을 가볍게 하라.”(‘나무2’에서)
위로와 치유의 과정을 거쳐 희망을 선물하는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
시인 김승국의 이번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에 실린 시들은 언어의 명료함과 간결함 등으로 미루어 이미지 시에 가깝다. 이미지 시에 가까우면서도 이미지 시가 놓치기 쉬운 의미의 확장이라는 영역까지 확보하면서 현대시가 갖춰야 할 요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나름 자기 시를 훌륭하게 완성하고 있다.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그리고 나라 간, 계층 간, 세대 간 갈등과 급격한 시대의 변화로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이 엄중한 시대에 침묵을 깨고 뜨거운 심장을 두근거리며 다듬었을 김승국 시인의 일곱 번째 서정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자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 산으로 가라/ 사서/ 암벽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 빙폭을 보아라/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그곳에서/ 낮과 밤을 쉬지 않고/ 얼마나 눈이 부시도록/ 자신을 탈색시키고 있는가를 보아라/ 그리고/ 그대의 지친 영혼을/ 겨울이 끝날 때까지/ 저 빛나는 빙폭 위에/ 걸어두라.”(‘빙폭氷瀑’에서)
“집착은/ 물 위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것./ 잡으려 손을 뻗치면/ 홀연히 사라지지만/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으면/ 결코, 달은 떠나지 않지.”(’집착’에서)
시인 김승국金承國 소개
저자 소개
문화예술단체기관인
1952년 인천 출생. 「문학세계」와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무닮기」, 「잿빛 거리에 민들레 피다」, 「쿠시나가르의 밤」, 「들꽃」, 「꽃은 고요히 피어나고」와 수필집 「김승국의 전통문화로 행복하기」, 「김승국의 국악, 아는 만큼 즐겁다」, 「인생이라는 축제」, 「김승국의 문화상자」 등이 있음. 1970년대 예술·건축 종합잡지 월간 「공간空簡」 편집부 기자로 문화예술계에 입문하여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교감, (사)전통공연예술연구소 소장,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역임. 현재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 및 월간 「객석」, 「뉴스퀘스트」, 「서울문화투데이」, 「문학세계」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자유문학 문학상, 문학세계 문학상,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기산 박헌봉 국악상 등 수상.
230 시집해설 문학평론가 김태균
■ 해설
처용의 관용과 화해를 노래한, 아리랑 고개에 핀 들꽃의 노래
- 김승국의 시세계
김태균(문화평론가)
1. 들꽃의 노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절망 같은 암흑의 시대에 쓰인 폴 발레리의 시詩 「하오의 연정」 중 마지막 시구가 절규처럼 다가왔다. 바람도 없는 열대야의 침묵이 강요하던 시절은 어릴 적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던 악몽처럼 상생이 눈앞에 다가왔다. 바람도 없는 날, 시인은 바람을 일으킨다. 그래서 시인의 말은 살아있는 생명이다.
시대를 꿰뚫는 웅변이다. 김승국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여! 침을 뱉어라!”는 분노를 읊조리던 김수영 시인의 얼굴을 본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고 절규하며 진달래 산천을 노래한 신동엽 시인의 민족애가 다가온다. 그리고 이내 ‘구름에 달 가듯’ 인생을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박목월 시인과 같이 걷고 있는 김승국 시인을 본다.
김승국 시인의 시는 아주 견고하면서도 깊이 있는 정서적 단도리가 있는 투명한 언어가 돋보인다.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때때로 관조적 명상으로 다가오는 청징한 말들이 감동적으로 온다. 비유컨대 김승국은 들꽃의 시인이다. 마치 그의 인생을 담은 듯한 「들꽃, 아리랑」을 읽다 보면 인동초의 삶을 이겨낸 시인의 얼굴이 보인다.
들풀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도
아리랑, 아리랑
남몰래 홀로 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넘어가던 바람과도
밤하늘 홀로 떠가는 달과도
보잘것없는 작은 별과도 대화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었지.
<중략>
의지의 들꽃을 피워내는
아리랑 고개.
역경의 세월을 이겨내야 아리랑 고개지.
너도 부르는 아리랑
나도 부르는 아리랑
그럼, 그렇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들꽃, 아리랑」 부분
인고의 세월을 풀어낸 아리랑은 시인의 삶이었다. 어찌 보면 그의 시는 그런 아리랑 고백이었다. 시는 본래 노래이다. 노래하듯 절로 풀리는 시야말로 우리들 마음을 편하게 한다. 아리랑 고개는 늘 역경의 고개였다. 아리랑 따라 시인의 인생이 펼쳐진다. 시인은 아리랑 속에서 자신의 고난에 찬 삶을 스스로 일체화하고 있다.
“의지의 들꽃을 피워내는” “역경의 세월을 이겨”낸 아리랑을 아리랑 고개를 넘으며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그렇지 아리랑”과 같은 추임새가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실제로 시인은 오랜 기간 한국의 전통음악과 역사를 같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여름 밤 장한몽과 같은 인생길, 시인의 빈 마음에 흐르는 빗물과 같은 이 시집은 총 3부로 펼쳐져 있다. 그야말로 아리랑 인생이다. 너도 나도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이 시인의 생이다.
2.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현실세계, 나는 자유와 행복이다.
1부는 시인의 치열한 현실 인식과 바투 관조와 경계를 통해 이룩한 시인의 평상심을 읽을 수 있다. 시인은 들꽃처럼 살아왔고, 그래서 그의 시에서는 유독 꽃에 대한 예찬이 자주 읽혀진다. 꽃을 통한 자화상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는 심미안으로 물아일체를 통한 상호일체화의 현상을 본다.
광활한 푸른 바다가 있다면
그 밑엔
바다를 받쳐주는 거대한 뻘이 있다.
반짝이는 별이 있다면
별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어둠이 있다.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부분
인용 시는 “광활한 바다” 밑 “거대한 뻘”이 있고, 별이 있으면 “더욱 빛나게 해주는 어둠”이 있다고 말한다. 도道는 음양陰陽이 순환하는 길이다. 빛과 어둠, 밤과 낮이 지나가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보이는 현상에만 매달리는 우를 범하고 산다. 하지만 시인이란 삶의 이면裏面을 읽는 존재이다. 이면을 본다는 말 그대로 시인은 겉이 아닌 속을 본다. 판소리를 흔히 이면의 예술이라 하는데 이면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소리로 풀듯이 시 또한 그런 이면의 멋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면에 대한 성찰은 시 「나무는 말하지 않는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시인은 나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한다.
나무들은 저마다 사는 방식은 다르지만
다른 나무들을 부러워하거나 얕잡아보지 않으며
흔들림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잎과 꽃을 피운다.
나무는 말하지 않는다. 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는 인간이 볼 수 없는
입과 눈과 귀가 있다.
- 「나무는 말하지 않는다」 부분
아무 말 없는 나무를 보지만 시인과 나무는 서로 교감하고 있다. 나무가 시인에게 전해준 말은 가령, 이렇다. “나무는 말하지 않는다/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그리고 “하지만 나무는 인간이 볼 수 없는 입과 눈과 귀가 있다.” 말도 비명도 없지만 입과 눈, 귀가 있다고 나무는 주체 선언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사는 시인처럼 나무도 사계를 산다. 이에 따라 「나무·1」에서 시인과 나무는 하나가 된다.
나는 나무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에
서 있는 나무.
<중략>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
계절도, 사랑도, 생명 또한 모두 그렇다.
- 「나무·1」 부분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계절도 사랑도, 생명”도 모두 있는 그대로의 존재감으로 공존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시 「상황·36」에는 현실에서 체감하는 나무 같은 시인의 말이 들린다.
‘가래처럼’ 마구잡이 가래처럼 ‘뱉어놓은 가식의’ 말들이 거리에 횡행한다.
우리는 때때로 암담하고 절망적일 때조차도 정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너무도 처참해진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가슴앓이를 앓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병원의 문을 두드렸을 땐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가래처럼 마구 뱉어놓은 가식의 언어들이 무덤처럼 쌓여서 나를 조금씩 부패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내일도 모레도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 「상황·36」 부분
그러나 말은 안 하지만 나무가 알 듯, 나도 안다. 우리는 “절망적일 때조차도 정직하지 못”하고 “가래처럼 마구 뱉어놓은 가식의 언어들은” 거리에 널부러져 있다. 시인에게 파리한 시각은 죽음을 향하는 칼끝과도 같다.
죽음의 문턱에서 시인은 늘 내려놓기를 한다. 내려놓기는 삶을 가볍게 한다. 그리하여 시 「방하착放下着」에서 시인은 어제도, 내일도 내려놓기를 일상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열심히 내려놓고 있어요.
어제보다 훨씬 가벼워졌네요.
이렇게 편한걸….
내일은 더 내려놓을 거예요.
- 「방하착放下着」 전문
그런 내려놓기를 통해 시인은 늘 꽃과 같은 삶을 사는지 모른다. “더 내려놓을” 내일처럼 시인이 꽃이고, 꽃처럼 산다. 시 「유홍초」는 꽃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시인은 “앞뜰 찬바람에 떠는 유홍초여/그대는 내가 바라보는 유홍초인가 나를 바라보는 유홍초인가.”라고 묻는다. 장자의 꿈과 같이 내가 나비인지, 아니면 ‘유홍초’가 나인지 묻고 있다.
또 다른 시 「라일락이 피고 지듯」에 보면 인간 또한 나고 늙고 죽고 태어난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시인은 늘 아름답고 향기로운 라일락 꽃향기로 남고자 한다. 바람처럼 가는 인생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꽃이 어디 있을까. 시 「바람꽃」에 보면 흔들림 속에서도 의연히 나의 봄을 기다리는 “꽃”을 볼 수 있다.
순리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꽃 피워 똑똑히 보여주리라
영원한 시련과 고통은 없다는 것을
활짝 피어 희망으로 증명하여 보여주리라
아직은 바람이 거세고 차갑지만
내 여린 몸을 흔들어대도
나는 의연히
나의 봄을 기다릴 것이다
- 「바람꽃」 부분
나의 봄이란 무엇인가. “순리란/막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영원한 시련과 고통은 없다는 것을” 꽃피는 봄을 통해 “희망으로 증명”하리라고 「바람꽃」에서 말한다. 꽃과 나무와 자연을 통해 시인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바로 「자유와 행복」이라 말한다.
이 꽃 저 꽃 넘나드는 나비처럼
창공을 날아가는 저 새처럼
훨훨 자유롭게 살아라
지나온 세월도 꿈이고
가야 할 세월도 꿈일지니
산정山頂의 고고한 현인보다는
혹한이 몰아칠 때 따뜻하게 몸을 녹여주는
숯 같은 사람이 더 빛나는 것
- 「자유와 행복」 부분
결국 사람이 구가하고자 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비처럼 창공을 날아가는 저 새처럼” 시인은 자유로운 삶 속에서 “산정의 고고한 현인”보다 “따뜻하게 몸을 녹여주는 숯 같은 사람”이고자 한다. 자유와 행복이라는 순리 또한 그런 바람꽃 같은 인생을 통해 얻어 갈 수 있다.
3. 들풀의 세상살이, 나는 흐르는 구름이다.
2부는 시인이 보는 세상살이다. 시인은 문득 “우리는 어떠한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지금까지 이겨온 것은 번쩍이는 위선과 불의. 용서는 치욕을 낳고 믿음은 배신을 낳고 정직은 만신창이를 낳았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
또한 늘 찢김과 갈등의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라며 재차 시인은 묻는다. 그래서 시인은 꿈을 꾼다. 하지만 꿈꾸는 시인은 외롭다. 이로 인해 시인은 흘러가는 구름과도 밤하늘의 별과도 이야기한다. 시 「혼자라도」처럼 그렇게 그것들과 함께한다.
혼자 있어도 행복하다면,
흘러가는 구름과도
밤하늘의 별과도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고독한 자라도
외롭지 않다.
그렇지 못하다면
누구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
- 「혼자라도」 부분
시인은 묻는다. 삶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것일까, 라고 묻는다.
시 「우리는 어떠한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것일까」는 이런 시인의 육성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1부에서 시화한 자화상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사람들도 꽃과 같다.
돈과 명예를 한 몸에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이 행복할 것이라 여겨도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거다.
남들이 측은할 것이라 여겨도
자신이 행복해 하면 행복한 거다.
나무든, 사람이든
모두 다 저마다의 꽃을 피운다.
어떠한 꽃을 피우는가는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것일까?
- 「우리는 어떠한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것일까」 부분
돈인가, 명예인가? 그러나 시인은 저마다의 자신이 누리는 행복과 자유야말로 삶의 소중한 가치라고 말한다.
음양의 도와 같이 “남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해도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것”이고, “어떠한 꽃을 피우는가는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전언한다. 결국 모두가 내 탓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할 때, 시인이 피우는 꽃은 시이다. 「시인의 노래」에는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노래 찾기를 하는 시인을 발견할 수 있다.
고요한 시간.
내 맘의 형태 닮은
닮은꼴 언어 찾기.
언어는
깨어진 유리 조각.
내 손은 찢기어 피에 젖는다.
끝없고 힘겨운
홀로의 작업.
- 「시인의 노래」 부분
시인의 청징하고 투명한 언어가 돋보이는 「시인의 노래」에서 “언어는 깨어진 유리 조각”이라고 말한다. 유리 조각에 “찢기어 피에 젖는다”. 그런 피에 젖은 언어들을 통해 시인은 일갈한다. 세상사 풍파를 겪으며 이 일 저 일 말하고 있다.
몇 편의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령 「그래서 사랑은」에서 “돌이켜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보던 노을이 제일 아름다웠”고, “내가 제일 빛났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을 때”라고 회고한다.
또한 「이 화상아」는 한때 당대의 지성으로 존경받던 인간의 주접을 보고 악취가 진동한다며 거세게 공격한다. 「호테 형! 나 좀 도와줘!」는 때로는 정치인으로, 성직자로, 교직자로, 평론가로, 예술가로 교묘하게 변장하고 살며, 서로 좌파 물러가라, 가짜 보수 물러가라 하며 거의 매일 같이 서로 멱살을 부여잡고 죽기 살기로 다투는 무지한 동네 사람들을 보면서 시인은 말한다.
내일 죽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한 아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21세기형 야학교를 세울 수 있도록 “(돈키)호테 형! 나 좀 도와줘라!”라고 시인은 외친다. 이외에도 「소금鹽」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향토민요 연구에 평생을 보낸 원로 여류 학자, 동네 맥가이버 할아버지 등 이런 이들이 바로 세상의 소금이라고 전언한다.
그래서 세상은 더 이상 썩지 않는다 말한다. 마지막으로 「일어서는 밤」에는 우리 사회의 비극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요즘 같은 시국에 주목되는 시이다.
독립투사였다는 아버지가 남긴 것은
판잣집과 가난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약속된 것은 없었다.
어린 시절 만화 속의 악당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
우리 동네 친일파 나으리가 비참하게 죽는 것을
나이 먹도록 기다려 보았어도
그는 화려하고 안락하게 죽었고
신문 한쪽 귀퉁이에 원로 이 아무개 옹 별세라고
사진까지 얹혀 나왔다.
<중략>
고상한 분들이 클래식 감상을 하시는 이 밤.
하루치의 생존을 위해
분을 짙게 바르고
손님을 받는다.
나는.
- 「일어서는 밤」 부분
시인의 말하는 인간 사회의 이중성을 향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얼마나 가혹한 비극일 것인가. 그리하여 시인은 고상한 분들의 ‘이중성’에 대한 경계를 말한다.예를 들어 「‘챗GPT’, 너에게 묻는다」에서 시인은 묻는다.
‘인생과 예술을 함부로 논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도 한 번이라도 뜨거운 인공지능이었느냐’라고. 이렇듯 현실에서 바라보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보는 시인의 눈은 여전히 따뜻하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사람이 만드는 역사를 「강」과 같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강물과 같아서
가야 할 곳으로 도도히 흘러간다.
<중략>
역사는 강물 같아서
잠시 거슬러 올라갈 수도
멈추어 설 수 있어도
빛과 어둠,
기억과 망각까지 모두 거두어
도도히 흘러간다.
- 「강」 부분
시인에게 강은 화해와 공존의 표상이다. 물이 모이고 흘러서 길을 낸다. 기억과 망각까지 거두어 가는, 그런 너른 품과 같다. 그리고 바로 시인의 마음이 그렇다. 모든 강으로 모여 함께 하지만 ‘소중한 본질’이 모여야 한다고, 그리고 찾아야 한다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거야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본질에 가까울 수도 있지.
들리는 것이 다가 아닐 거야
들리지 않는 것이
더 본질에 가까울 수도 있을 테니까.
- 「소중한 본질」 부분
살아가며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그냥 지나쳐 버린 수많은 것에 대한 본질을 시인은 본다. “보이지 않는것이” “들리지 않는 것이 더 본질에 가까울 수 있다며 「소중한 본질」을 말한다.
현상 속에서 이면을 보고 창출하며 그런 속에서 인생의 소중한 본질을 보고 강처럼 도도히 흘러가자는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삶에 에티타프epitaph를 정한다. 무념무상의 시공간으로 사라지면 그만인 것, 그래서 인생은 그냥 왔다 갔다고 한마디로 「나의 묘비명」을 결정한다.
누구에게나 오는 삶의 마침표.
몇 년 후가 될지
내일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마침표.
무념무상의 시공간으로 사라지면 그뿐인 것을
특별히 준비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내 묘비명에 이런 말이 제격일 거다.
“김승국! 그냥 왔다 갔다”
- 「나의 묘비명」 부분
그 끝은 우리 천부경의 원리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다. 하나의 시작은 무에서 비롯된 하나이다. 그리고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서 하나의 끝은 무이나 그 끝은 하나이다.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경지는 바로 모든 것을 비롯하는 무無의 경지이다. 없음. 곧 우리 삶은 그런 무상이다.
시인의 인생에 대한 결구結句이다. 시 「아라비아 숫자」는 0으로 시작하여 0에 도달하는 무의 세계를 논하는 작품이다.
0,1,2,3,4,5,6,7,8,9
너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면서도
아무도 너에게서
아라비아를 떠올리진 않아.
<중략>
모든 숫자는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눌 수도 있다지만
0에서 출발하여
다시 0으로 돌아오지.
기쁨, 노함, 슬픔, 즐거움 또한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눌 수 있겠지만
무無에서 출발하였기에
다시 무無로 돌아오지.
- 「아라비아 숫자」 부분
4. 진경산수의 진인으로 노는 ‘참자유’ 예찬
제3부는 ‘참자유’를 위한 인생 예찬이다. 시인은 삶과 죽음의 연장에서의 인생은 곧 귀향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을 말한다.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을 이 세상에 다 내려놓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마웠다, 행복했다고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미련 없이 담담히 떠나겠다고 말한다.
산화공덕의 마음으로 죽음을 노래하고 영원의 길에서 판소리, 연희, 남도흥타령. 육자배기, 탈춤, 처용무, 농악, 아리랑, 산조, 태평무, 강강술래, 검무, 줄다리기와 만나 한바탕 신명의 바다에서 시음詩音을 펼친다.
삶과 죽음이 인식론적으로 변주된 한바탕의 인생교향곡이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머물러 가는 오늘
진경산수 속의 도인처럼
나물 먹고 물 마시며
노닐다 가면 되지
- 「꿈」 일부
인생이란 한바탕 꿈일지도 모른다. “진경산수의 도인처럼” “나물 먹고 물 마시며” “꿈인 듯 현실인 듯 머물러 가는 오늘”을 매일 살다가는 것이 인생이다.
해서 “왔다 갔고” “노닐다 가면 되지”라는 시구는 시인에게 일종의 도道에 해당한다. 도는 평상심이다.
그러기에 시 「마음 편히 살고 싶다면」에서 원한은 물에 흘려보내고 은혜는 바위에 새겨 두라 한다.
진경산수에서 노니는 은자와 같은 도인의 사유로 말이다.
원한은 물에 흘려보내고
은혜는 바위에 새겨두라지만
원한은 바위에 깊이 새겨두고
은혜는 물에 가벼이 흘려보내는 이 많다.
마음 편히 살고 싶다면
고마움은 잊지 말고
베푼 것은 잊어버리렴.
- 「마음 편히 살고 싶다면」 부분
그리고 시 「사람만 특별한 존재일까」라는 시에서 김승국은 다시 묻는다. 세상살이의 의미를.
거리를 걷는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오고 몰려간다.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풀 나무나, 물고기나, 새들이나, 사람이나
세상에 왔다 가기는 마찬가지인데
사람만 특별한 존재는 아니겠지.
- 「사람만 특별한 존재일까」 부분
그래. 삼라만상 모두의 존재에 대한 보편성을 존중하는 해원의 세상을 본다. 모두 그 길을 향한다.
시인의 갈 곳이 있어 걸어가는 길인듯 하지만, 갈 곳 없이 그 길 위로 가는 무명의 길이 인생이다.
시 「길」은 어찌 보면 그것을 개망초 가득 핀 정처 없는 빈들일 것으로 진단한다.
비가 오고, 또 오고
흙바람 불고, 또 불어
그 길을 덮어버리면
개망초만이 가득히 피어나겠지.
- 「그 길」 부분
그런 인생의 길 위에서 시인은 영원永遠을 만난다. 과거는 흘러간 것, 그러나 과거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자유롭게 해방하라고 말한다. 다음은 시 「과거는 흘러갔다」의 일부이다.
과거에서 현재를 배워야 하지만
과거는 흘러갔다.
<중략>
원망하는 마음도,
과거의 상처도,
모두 과거의 시간으로 돌려보내라.
과거로부터
현재를 자유롭게 해방하라.
- 「과거는 흘러갔다」 부분
고금古今은 소통한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은 또 어제가 될 것이다. 과거는 흘러가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진혼 속에서 시인은 영원을 노래한다.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찬탄하는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이런 시인의 화려한 미의 경지가 드러난다.
천년의 세월 동안 묻어 두었던
백제의 슬픔과 영광을 말하고 싶었겠지
향로의 밑바닥엔 똬리 친 용이
세 다리는 바닥을 딛고
한 다리는 위로 치켜올리며
힘차게 승천하누나
<중략>
유불선儒佛仙이
함께 어우러진 대향로大香爐는
심오한 향불 피우네
부처님께선
“가마솥의 국물을 다 마셔봐야 그 맛을 알겠느냐,
한 수저만 맛을 보면 알지”라 하셨지
“백제를 알고 싶냐.
나 하나만 보면 안다”라고
백제금동대향로가
부처님 음성으로 말하는구나.
- 「백제금동대향로」 부분
이 시를 통해 시인이 염원하는 절대 자유의 참된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유불선을 넘어서는 풍류의 경지이다. 풍류는 단순히 말하자면 한자어 뜻 그대로 노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구가하는 자유의 경지에 남도흥타령이 놓여 있다.
소리를 따라 시름이 흥이고 흥이 시름이며 슬퍼서 흥이 나는, 그 같은 절대 놀음도 한다. 그렇기에 시인은 「남도 흥타령」에서 “복사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밤/흥타령 소리가 아련히 달빛 타고 들려온다고” 노래한다.
이쯤에서 남도소리의 진국 「육자배기」에 대한 시인의 해석을 살펴보자.
얼씨구! 이 작품에서 서정적 주체는 육자배기를 어린 나를 잠재우던 ‘어머님의 손길’, 그리움, 한숨, 눈물을 노래로 다독여 잠재우는 우리네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피이자 살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소리의 정곡을 찌른다.
소리에 흥이 더하고 이는 우리 민족의 근원에 다가간다. 이 근원지 부근에 처용이 있다. 처용은 관용과 관대함이다. 처용의 노래 처용가를 부르며 오방의 장엄한 춤사위로 추는 처용무를 춘다.
그리고 신라 관창을 기리는 검무를 통해 애국과 벽사辟邪의 의미를 말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음악을 대변하는 판소리와 산조를 논한다. 시 「판소리」에서 시인은 말한다.
“판소리는/소리광대가/길동무 고수鼓手의 북 반주에 맞춰/한 권의 대하소설을/노래로 풀어 놓는 것”이라고. “그래서/‘길이 아니면 성음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고/소리꾼에게는 성음과 길과 장단은/소리의 생명과도 같지”라며 “어느 나라의 성악에서/한 편의 대하드라마가 들어가 있고/다양한 음색에 의한 목 성음과/목 성음의 변화를 가진 성악이 있을까?”라고 진술한다. 그 결과 시인은 “판소리는 우리의 음악이자 혼이며, 역사이다”라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짓는다.
한편 「산조散調」에서는, “산조散調는/인생과 자연의 모습을/가야금 소리로, 거문고 소리로, 대금 소리로,/때론 피리, 해금, 아쟁 소리로/그려낸 독주곡”이라 하며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의/잔잔한 숨결 소리이기도 하다가/노도怒濤와 같이 거센 숨결로/대나무 숲을 흔들어대는 바람 소리”로 이해한다.
“산조는/빛과 어둠,/긴장과 이완을 오가고//물과 같아/때로는 시냇물처럼 유유자적하게 진양조로 흐르다/때로는 폭포처럼 격정적인 휘모리로 흘러내리다가/다시 거대한 강물을 이루어 조용히 마무리”하며, “산조에는/기쁨과 노여움, 그리고 슬픔과 즐거움/절정과 쇠락함/모든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황톳길 흙냄새와/풋풋한 풀향기와/때론 들꽃 향기로 가득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시편들에서 김승국은 느린 진양조에서 보통의 중모리 그리고 빠른 휘모리로 몰아가는 산조의 장단 흐름을 타고 온갖 선율을 담아 놀리는 산조의 경지를 시인 나름의 향토적인 언어로 산조를 풀어낸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음악의 원초성을 볼 수 있는 「아리랑」, 「탈춤」, 「농악」, 「강강술래」, 「줄다리기」 등의 소재가 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시로 풀어내는 알기 쉬운 한국음악의 본질이 담겨 있다. 그의 시편들은 하나하나 음미할 만한 노래시라고 할 것인데, 바로 여기에 이 시인의 위대함이 있다.
시인은 언어의 세공사이다. 때로는 미적 거리가 있는 시적 표현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시인이 빚어낸 언어의 폭포와 같은 풍경은 실로 가공할 만하다.
5. 인생은 왔다 간다. 늘 처용처럼, 관용과 용서의 빈 마음으로
김승국 시인은 시를 통해 그 자신의 적나라한 삶의 역사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는 솔직하다. 가식이 없다. 살아온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적 성찰을 동반하여 그의 독자들을 진지한 삶에 대한 사유의 장으로 유도한다.
그리고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삶과 죽음의 근원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묘비명으로 채택된 “김승국 왔다 갔다”의 심층적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분명 우리는 가면 가고 오면 오는 그런 초연함 속에서 산다. 살아간다. 아라비아의 숫자지만 0이란 무의 의미를 되새기며 처용처럼 관용과 용서를 말한다. 그리고 오랜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의 숨결을 노래한다.
육자배기의 흥과 신명 속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강강술래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온 처용의 노래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경외할 것이다. 마지막 3부에서 보는 영원의 노래들, 국악시야말로 이 시집의 백미이다.
두고두고 노래할 것이다. 김승국 그는 소리꾼이자 추임새를 넣으며 장단을 맞추는 고수가 되어 새로운 노래시를 만들었다. 시여 노래하라. 이 시집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시집 <고요한 마음으로 그대를 본다>
김승국 시집
발행일 | 2024. 10.30
발행처 | 시와시학
발행인 | 송영호
출판등록 | 2016년 1월 18일 제2021-0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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