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적 모더니즘을 기억하는 음악 - 제47회 신음악회 정기작품발표회, ‘소리, 한국 추상화의 미학’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한국적 모더니즘을 기억하는 음악
제47회 신음악회 정기작품발표회, ‘소리, 한국 추상화의 미학’
원유선(음악학자)
1920년 무렵, 한국에서는 모더니즘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후기 인상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 등 이미 유럽에서는 19세기 말부터 몇십 년에 걸쳐 일어난 모더니즘의 표현 양식이 한꺼번에 국내로 이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김환기, 이우환, 심문섭 등으로 대표되는 추상 화가들은 서구의 표현 양식을 충실히 답습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 및 각자만의 개성을 가미하여 한국적인 모더니즘을 구축해갔다.
신음악회 제47회 정기작품발표회 ‘소리, 한국 추상화의 미학’은 이처럼 100년 전부터 서양으로부터 이식되어 꾸준히 발전해온 한국적 모더니즘을 소리로 성찰할 수 있는 자리였다.
2024년 11월 8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이 날 공연은 ‘앙상블 위로’의 전문적인 연주로 총 일곱 작곡가의 작품이 안정적으로 초연되었다.
이 날 발표된 작품들은 총 일곱 개의 한국 추상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이른바 ‘그림을 음향으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시도되었다. 무대 뒤로는 연주 되는 동안 작품에 영감을 준 그림들이 큼직하게 투사되어 이해를 도왔다.
뿐만 아니라 작곡가 이윤경이 해설을 맡아 원작의 의도와 작품의 성격을 섬세하게 설명하면서, 작품의 친절한 이해를 도모하였다.
첫 시작은 오세린의 첼로 독주를 위한 '어느 온화한 날'(2024)이었다.
이 작품은 서양화가 장욱진의 대표작 '가로수'(1978)에 담긴 풍경을 음악적 아이디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에서는 그림을 가득 채운 네 그루의 가로수, 그 사이를 걸어가는 가족과 동물, 아기자기한 가옥들이 한가로운 정경을 표현하였다. 음악은 시시각각 변모되는 첼로의 음색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첼로가 유사한 음을 중심으로 맴돌고, 때로는 활로 길다란 호흡을 뱉어내면서 다양한 밀도의 음색이 만들어졌다. 때로는 짙게, 또 때로는 옅게 변하는 음색이 짙은 나무와 옅은 흰색의 배경을 오가는 듯했으며, 중간중간 하모닉스, 피치카토, 트릴 등이 곡의 생동감을 더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마지막 부분이었다. 연주자가 첼로의 몸통 여기 저기를 타악기적으로 두들기면서, 한낮의 뜨거운 생명력을 발산해냈기 때문이다.
양진경의 '여름밤의 소리'(2024)는 김환기의 동명의 회화에 바탕을 둔 작품으로, 원작을 뒤덮은 강렬한 파랑을 모티브로 삼았다.
김환기의 '여름밤의 소리'(1970)에서 여러 색을 중첩시켜 청량하고 깊은 파랑을 만들어냈듯이, 오보에와 바순은 각기 다른 음색으로 밝은 색채감을 형상화했다.
마치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작품처럼 경쾌하고, 재기넘치며, 안정된 형식이 눈에 띄었다. 1악장에서 생동감 넘치는 여름밤을 리드미컬한 음악으로 표현했다면, 2악장에서는 고요하고 편안한 여름밤 풍경이 재현되었다.
오보에가 선율을, 바순이 반주를 도맡아 연주하면서 오보에의 아름다운 선율이 도드라졌다. 3악장에서는 다시 리듬이 강조되었으나, 두 악기간의 더블링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말미에는 좁은 음역의 선율이 번복되어 연주되는 가운데, 한국적인 색채가 슬며시 배어나오며 마무리 되었다.
최은진의 '나무와 달'(2024)은 원작의 특징이 소리로 몹시 훌륭하게 재창조된 음악이었다. 최은진의 해석에 따르면, 김환기의 '나무와 달'(1948)은 얼핏 단순해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기 다른 색감과 패턴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마찬가지로 최은진의 작품에서도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양가적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고요한 강(江)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물결이 굽이치며 흘러가듯이,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가 엇갈렸다가 만나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하면서 입체적인 음향이 만들어졌다.
다르지만 대립되지 않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음악과 더불어, 전통적인 선율이 푸른 청색의 우아하고 오묘한 색감을 드러내는 듯했다.
신숙경의 '달무리'(2024)는 장욱진 화가가 타계하기 직전에 그린 '밤과 노인'(1990)을 음악화한 작품이다.
원작에서는 달무리 진 깊은 산속 밤에 달처럼 홀연히 공중에 떠 있는 노인과, 땅 위를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모습을 보여준다.
신숙경의 작품 역시 생의 허망함을 승화시키는 작품의 정취를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의 다채로운 음색으로 표현해냈다. 구체적인 내러티브의 전달이나 풍경의 재현보다는 작품에서 풍기는 허무한 정취의 표현이 눈에 띄었다.
곡은 초반에 술 폰티첼로, 하모닉스, 플러터 텅잉 등의 현대적 기법을 비롯하여 각기 다른 음색들을 중첩시키며 모호하고 홀연한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인터미션 후에는 총 세 곡이 연주되었다. 도하나의 '그의 얼굴을 마주하며'(2024)는 원작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모티브가 된 장욱진의 '얼굴'(1957)은 한국의 근현대 자화상의 역사에서 빠짐 없이 거론되는 작품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서양의 추상화와 달리, 장욱진의 자화상에서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성찰이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장욱진의 '얼굴'에서도 기하학적이면서도 순수함과 따뜻함이 공존하고 있다.
도하나의 '그의 얼굴을 마주하며'는 얼굴 같으면서도 둥근 나무 판자 같고, 모자인 것 같으면서도 집과 같은 그림 속 자화상의 이중적 속성을 독주 악기의 다중적 사용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무대에는 솔로 바이올린 주자만 등장하지만 연주하는 것은 바이올린만이 아니었다. 연주자의 양 옆에 위치한 퍼쿠션을 오가며 연주하였다.
바이올린의 초고음에서 심벌즈로, 차임벨에서 다시 바이올린으로, 현악기에서 타악기로의 전환이 수시로 일어났고, 이따금 연주자가 허밍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매체적인 전환에도 듣기에 위화감이 없었으며, 원작의 기하학적 문양처럼 입체적인 음향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이의진의 '항아리와 나'(2024)는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김환기의 '백자와 꽃'(1949)을 주제로 작곡되었다. 원작인 '백자와 꽃'은 조선 시대의 백자 항아리를 밝은 달에 견주어 표현한 작품이다.
'항아리와 나'에서는 그림에서 나타나는 색채감을 인상주의적인 감각으로 다채롭게 표현하였다. 또한 그림에 나타나는 점, 선, 면의 대조를 충실하게 음악적으로 형상화해냈다.
구체적으로 음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전반부에는 느리고 공허한 플루트의 음색과 함께, 하행하는 고음의 아르페지오가 부서지는 듯이 반짝거리는 항아리의 색채감을 형상화하는 듯했다.
후반부에는 리드미컬한 저음의 피아노와 플루트의 플러터 텅잉, 뚜렷한 리듬, 증음정 등을 통해 당시 작가가 전쟁의 참상을 이겨낸 작가의 예술적 의지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박순영의 'Power, Overpower'(2024)는 추상화가 유영국의 마지막 그림 'Work'(1999)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이 곡은 원작 곳곳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내면적 의지에 착안하여 만들어졌다.
‘점’, ‘선’, ‘물결’, ‘추억’, ‘피날레-산’이라는 제목을 지닌 다섯 악장의 작품에서는 5음에 바탕을 둔 주제들이 플루트, 바순, 비올라, 피아노의 강렬한 음색으로 표현되었다.
많은 음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두터운 텍스처와, 강한 다이내믹이 그림 속 응축된 힘과 치열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그런가 하면 다채로운 현대 주법들로 점묘적 움직임부터 호쾌하게 뻗어나가는 선 등 다양한 움직임들이 표현되며 귀를 사로잡았다.
이 날 공연이 의미 있었던 것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미를 성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음악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익히 잘 알려진 바 한국은 100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2000년 동안 발전해 온 서양의 음악 양식과 사조를 한꺼번에 받아들였다.
단 시간 내에 빠르고 압축적인 수용이 있어왔으나, 과연 우리만의 고유한 모더니즘적 양식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계속 논란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연주회는 한국의 모더니즘을 형성한 추상 회화의 음악적 해석으로 한국적 감성의 근원을 되짚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속도와 빠름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소리를 매개로 한국의 추상화에 나타난 따뜻한 선, 색채, 여백의 미를 곱씹을 수 있었다.
추상 회화에 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적 관점과 해석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 감상의 큰 묘미였다. 다만 2024년을 살아가는 작곡가들에게 20세기의 추상 회화가 어떠한 현대적 의미로 다가오는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했다.
향후에도 근대와 현대, 소리와 타 예술을 잇는 신음악회의 거침없는 시도를 통해 동시대의 한국미(美)를 성찰하고 미래로 뻗어나갈 음악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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