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53회 범음악제, 20세기 피에르 불레즈로부터 21세기 한국까지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제53회 범음악제가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플랫폼엘과 일신홀,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이번 음악제에서는 엿새간 여섯 번의 콘서트와 2회의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개막일인 27일에는 피에르 불레즈 탄생 100주년 기념콘서트, 28일과 30일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기반의 Fabrik Quartet 초청연주회 1,2가 진행되었다.
29일에는 한일국교 정상화60주년 기념으로 일본의 현대음악앙상블 Next mushroom promotion 초청연주회, 30일과 11월 1일에는 Les Percussions de Strasbourg 초청연주회 1,2가 진행되었다.
프랑스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는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1977년 전자음향연구소인 IRCAM(Institute for Research and Coordination in Acoustics/Music)을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이후 많은 창작음과 전자음악 IRCAM을 중심으로 생산되었으며, IRCAM은 전세계 많은 창작가들에게 기술과 영감의 원천이 되며 신기술개발, 워크숍 등으로 교류해오고 있다.
개막음악회에서는 불레즈의 중요한 세 개의 작품과 피에르불레즈 기념영상이 상영되었다. 영상에서는 불레즈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IRCAM스튜디오에서 완성한 독주자와 앙상블, 전자음향을 위한 <Repons>의 탄생과정에 대해 인터뷰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또한 앙상블 앵텡콩탱포랭, 그의 음악조수인 앤드루 거조, 그리고 IRCAM팀과 함께 IRCAM의 콘서트홀인 ‘에스파스 드 프로젝시옹(Espace de projection)'에서 리허설을 진행하는 모습이 보여졌다.
불레즈는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앙상블 앵텡콩탱포랭과 컴퓨터음악 연구소인 IRCAM 이 두 기관의 설립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고난도의 현대음악 주법과 소리의 속성을 면밀히 탐구한 수준 높은 전자음향기법을 특징으로 한다.
거장 불레즈의 곡만을 기리는 연주회가 많지 않기에 이번 개막공연은 특별했다. 세 작품 모두 하나의 주제음형이 제 모습을 지키면서도 다양하게 변주되어 음이 제 본분을 끝까지 다하며 모든 걸 뽑아내는 그런 느낌을 주었다. <이중 그림자의 대화(Dialogue de l'Ombre Double)>(1985)는 긴음표와 빠른 트레몰로, 멀티포닉스 등으로 구성되는데, 전자음향이 과하거나 반대로 악기의 배경이 아니라, 클라리넷과 서로 동등하게 프레이즈를 구성하고 새로운 섹션으로 이끄는 방식에서,·마치 두 사람의 빠른 프랑스어 대화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피아노를 위한 <새겨진(Incises)>(1994/2001)은 전자음향 없는 곡이었지만 감상의 느낌은 앞 곡과 동일하였다. 또한 동음의 반복과 클러스터, 꾸밈음 같은 빠른 반음계 음형 등이 피아노 전체음역에서 끝없이 반복되며 이 빠른 패시지들이 훅훅 지나가는데 피아니스트 문종인은 거뜬히 그리고 깔끔하게 해냈다.
바이올린 곡인 <찬가 2(Anthemes 2)>(1997) 바이올린 고음의 날카로움이 트릴, 피치카토, 더블스탑 등으로 빠르게 추진되다가 또 회상하듯 하모닉스 등의 느린 구간이 나오며 긴장을 풀어준다. 전자음향이 컴퓨터 프로그램인 Max/MSP에서의 "악보 팔로워(Score follower)" 방식으로 악기연주의 음정, 음색, 리듬 등을 파악해 해당 순간에 전자음향을 발생하는데 이것이 다층적이고 풍성하게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11월 1일의 폐막음악회는 프랑스 Les Percussions de Strasbourg 초청연주회 두번째로 ISCM한국지부 공모작 및 동시대 최신 창작품 연주회로 진행되었다. 비브라폰 두 대, 마림바 두 대, 베이스 드럼과 각종 타악기들이 무대 가득 위용있게 놓인 모습 자체만 해도 압도적이었다. 첫 곡 차이 웬치의 <에어 매스>(2018)는 온도와 습도에 대한 주제인데, 네 명 타악주자가 옹기종기 모여서 작은 타악기들을 즉흥으로 연주하며 소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다음으로 마이클 시드니 팀슨의 <스킨스 앤 쉘:그루브/인터랙션>(2025)은 민속타악기 젬베와 콩고를 각기 두 연주자가 연주하는데 한지를 대기도 하고 알루미늄 호일을 덧대어서 마치 스네어드럼 체인처럼 지글거리는 효과도 내었다. 그 큰 악기를 위로 치켜들고 입으로 부는 장면에서는 마치 술을 병째 마시는 것 같은 재밌는 느낌도 주었다. 가죽면을 손으로 두드리지 않고 긁개로 긁어 꺼끌거리는 소리를 만들기도 하고, 타악기 공간 안 쪽에 작은 구슬을 넣어 마라카스같은 효과로 음색을 만들기도 했다. 5개 악장에 재즈스윙, 총렬기법(total serialism) 등 다양한 기법을 구사했는데, 타악기의 속성인 울림통몸체와 가죽을 활용한 소리탐험이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최지연의 <코르푸르퀼르(Corpuscules)>(2002)는 타악기 비브라폰과 전자음향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탁월한 작품이었다. 비브라폰 음향에서 전자음향으로 소리가 바톤터치 되는 교차가 명확하여 인상적이고, 비브라폰의 진동이 Additive synthesis되어 소리가 점층되며 전자음향에 사용된 가죽악기들과 카우벨의 cross synthesis 된 소리가 다채로운 음향과 운동성을 준다. 이 작품은 원래 2002년 Jean Geoffroy에 의해 초연될 때는 실시간 전자음향 작품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몇 년후 그가 Tape 전자음향으로 요청하여 그의 제자인 Thibaut Weber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 날도 그가 멋지게 연주해주었다.
스티브 라이히의 <말렛 콰르텟>(2011)은 익히 아는 반복성인데도 네 명 주자가 하나씩 가세되며 미묘하게 변화되는 음감이 색채적이고 역동성이 있었다. 반주부의 반복 위에 선율 또한 단순한 리듬의 반복으로 화음이 신비롭게 변화되는 것이 스티브 라이히 곡의 특징인데 전체 3악장의 곡으로 중간 느린 악장에서는 비브라폰의 잔향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빠른악장까지 두 개의 비브라폰과 두 개의 5옥타브 마림바를 위한 작품으로 무대모습만 봐도 인상적인데, 플랫폼엘 공연장의 화이트톤에 스트라스부르크 타악앙상블이 모두 하얀색 의상을 입어 이 미니멀한 곡과 함께 미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마지막 황이주의 <본향-존재의 반향>(2015)은 이번에 가운데 솔리스트의 한 명과 둘레로 다섯 명 타악주자의 총 여섯명 타악주자의 곡으로 편성되어 연주되었다. 처음에는 다섯 타악주자가 한 음씩 간헐적으로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점차로 여명이 밀려오듯 서서히 악기들이 가담된다. 구조적이고 질서있는 곡으로 느껴졌으며, 타악기들이 점차 리듬분할이 되고 자주 소리내며 섞이는데 베이스 드럼 등 큰 소리의 타악기까지 가세해 마지막엔 모든 악기가 Roll주법으로 두드려대는데도 이상하게 시끄럽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을 주는 묘미가 있어서 통쾌했다.
폐막연주회의 최지연, 황이주, 차이 웬치 모두 파리에서 활동한 현시대 작곡가이기에 개막 폐막 연주회가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연결되는 지점이었으며, 이들 작품들을 통해 뿌리가 된 20세기 음악을 돌이켜보고 21세기 음악의 미래를 예견하는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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