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영자 작품발표회 "DMZ는 이렇게 말한다 - 전장의 애가"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한국음악계의 대모 작곡가 이영자 교수의 올해 나이는 95세이다. 그가 지난 1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일신홀에서 <이영자 작품발표회 "DMZ는 이렇게 말한다 - 전장의 애가">를 펼쳤다.
음악회에는 이만방, 진규영, 정태봉, 김광희 등 작곡계 원로 명예교수들과 이영자 교수의 제자 음악인들이 대거 참석해 백세를 바라보는 한국역사와 특히 음악사의 산 증인께서도 샘솟는 열정으로 작곡한 신곡을 선사하는 역사적 현장을 함께했다. 이영자 교수는 연주회 시작 전후에 마이크를 꼭 잡고 청중에 대한 감사인사와 이날 인터미션 없이 음악회가 진행될 것 등을 상세히 안내했다.
이영자는 1950년 5월 10일 전쟁통에 "여성은 많이 가르치는 게 아니다" 하던 그 시절에 그것도 음악으로 대학공부를 시작했으나 곧 6.25 전쟁이 터져 꿈은 산산히 깨졌다고 한다. 강원도 DMZ의 감자바위에서의 열아홉 산골소녀의 눈물과 기원이 이번 음악회였다.
주제가 DMZ 여서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요근래 NMK가 진행한 ON & ONE KOREA 음악회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으로 오랜만에 들었고, 또 통일부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연극 ‘어느 골목 모퉁이의 단단씨’를 보았던 터라, 이번 공연의 첫 곡 ‘지상낙토’가 테너 조사무엘의 구슬프고도 힘 있는 목소리로 펼쳐질 때부터 코끝이 시큰하였다.
일신홀 무대벽면에 가사도 보였기 때문에 첫 곡 ‘지상낙토’의 가사에서 “사람의 흔적이 지워지니 도처가 낙원일세”, “총성의 잔향이 가셔지니...” 이런 부분들은 글자로만 읽어도 DMZ 한복판에 와 있는 것 같았다.
12곡 연가곡 전체적으로 고음에서 시작하해 단2도 관계로 하강하는 반음계의 피아노 전주와 반주가 장중하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테너는 가곡이면서도 정가를 닮은 듯 애절하고도 우수에 차서 벌어진 붘녁땅을 그리며 노래했다.
테너 조사무엘은 맑고 영롱하게 사무친 목소리로 가사를 하나하나 입으로 곱씹고 눈으로 음미하며 관객에게 뜻을 전했고, 피아노 반주의 홍청의는 피아노 반음계와 아르페지오 반주를 비장하고도 유려하게 선사했다.
이 날 음악회는 가곡 ‘비목’의 작사가 한명희의 시에 이영자 교수가 12편 가곡을 지은 것이다. 여섯 곡은 2021년에, 여섯 곡은 2025년 올해 지었다. 음악회 구성은 총 열 두 곡이 3곡씩 연주되는 사이에 이영자 교수의 작곡제자이시며 현재 목회자로 활동하는 허철 작곡가의 아리랑 주제에 의한 5개의 피아노 변주곡(1986), 이영자 교수의 스승인 고 나운영(1922-1993) 작곡가의 ‘12개의 전주곡 제1권’(1973), 제2권(1989)가 각각 연주되어, 성악과 기악을 번갈아 들을 수 있는 다채로움이 있었다.
아리랑 주제의 변주곡은 1987년 당시 이영자 교수의 지도하에 한양대 졸업작품으로 쓴 것이라는데 학생작품으로서는 대단히 성숙하고 탄탄한 느낌이었다. 이미 한쪽에 통달하였기에 목회로 가신 것인가 싶었다.
프렐루드 1은 단 하루동안 작곡되었다는데 12개 각곡마다 Chime Chord, Tritone, 캐논, 12음기법 등 현대음악적 주제가 있어 도전적이었고, 10곡 ‘Nursery Song'은 새야새야 파랑새야의 멜로디에 5도와 4도 화성으로 짙은 색채감을 주었다. 피아노의 송윤원은 세 곡에서 화려하고 강렬한 현대음악 주법에서도 사유가 느껴지는 연주를 선사했으며, 에메랄드빛 드레스에 팔에 드리워진 레이스도 인상적이었다.
2011년 11월 15일자 가톨릭신문 기사의 맨 마지막 문단을 인용한다. 당시 이영자 교수는 “이번 음악회까지만 하고 쉬자 생각했어요. 아직까지는 정신이 맑으니깐 작품을 발표하고 그 다음부터는 즐겁게 살고 싶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제자들은 두고 보라며 또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라고 말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98일 동안 전장 DMZ에서의 고통은 창작의 고통을 통해 음악으로 승화되었고, 많은 후학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각자의 미래를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