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플레이 형식과 무대미술 돋보인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오페라 '파우스트'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23세에 쓰기 시작해서 82세에 완성한 <파우스트>다. 그리고 유명한 ‘아베 마리아’를 작곡한 프랑스 샤를 프랑수아 구노(1818-1893), 26세에 영예의 로마대상을 받은 후 사제가 되려한 만큼 신앙심이 가득했던 구노가 5막으로 만든 오페라 <파우스트>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는 원작 중 1부의 사랑이야기만을 다뤄 일부에게 지탄도 받았지만 구노 생전 1000회 공연될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 4월 10일부터 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오페라단이 창단40주년 공연으로 10년 만에 올린 오페라 <파우스트>는 연극적 요소, LED를 사용한 화려한 무대미술, 성악과 합창, 오케스트라의 호연으로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를 잘 선보인 공연이 되었다.
오플레이(Opera+Play, 오페라와 연극의 결합) 형식을 취했다. 이는 서울시오페라단이 2022년 세종 SYNC NEXT 일환으로 소극장 S씨어터에 상연하면서, MZ세대도 볼 수 있도록 연극과 결합한 오플레이 형식으로 처음 선보였던 것을 이번에 대극장 용으로 확대해 펼친 것이다.
2014년 연극 <파우스트>와 2022년 1인극 <대사제와 파우스트>에서 열연했던 원로배우 정동환이 첫 부분과 마지막에 노년의 파우스트를 연기한 것이 이번 극의 큰 특징이 되었다. 기자간담회에도 소개한 바, 프랑스어 오페라의 도입부에 우리말 연극을 결합시키는 부분에서 엄숙정 연출과 이든 지휘자의 노고가 컸던 만큼 빛을 발했다. 프랑스 낭만 오페라인 <파우스트>의 도입 아리아가 우리말 대사가 되면서 생길 혼선을 최대한 없애면서 노이오페라코러스가 부르는 소녀들의 합창, 농부들의 합창,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정동환 배우가 “Rien! Rien! 다 소용없어!”라고 폐부를 찌르는 탄식을 토해내고, 이것에 악마 메피스토펠레 역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우리말 대사와 프랑스어 노래가 연결되며, 젊은 파우스트, 즉 자아 역의 테너 김효종의 힘찬 고음이 불현듯 등장해 파우스트의 탐험이 시작되는 방식은 극 전체에 좋은 구동점이 되었다. 이로써 젊음과 영혼을 맞바꾼 악마와의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다.
1막에서 파우스트 박사 평생의 업적을 상징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에는 가득한 독일어 활자들로 방대한 지식을 보여주었고, 2막에서는 피라미드 위로 작은 역피라미드가 더해져 그 지식의 덧없음을 모래시계 형태로 보여주었다. 주역 성악가들의 호연도 정통오페라를 입체적으로 탄탄하게 해주었다. 서곡과 작품 전체의 주요 테마가 되는 발랭탱의 아리아 ‘고향을 떠나며(Avant de quitter ces lieux)’를 바리톤 이승왕은 윤택하고 감동적으로 불러주었으며, 이 장면에 시에벨 역 카운트 테너 이동규의 고음도 주목되었다.
1막 등장부터 쾌청한 고음으로 관객을 오페라로 인도했으며 4막의 삼중창 사중창에서도 열띤 노래를 선보인 테너 김효종은 3막 ‘안녕! 정결한 집이여’(Salut! demeure chaste et pure)에서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노래와 높은 C음에서도 안정적이고 힘찬 톤을 선보여 브라보를 받았다. 이번이 열 번째 메피스토펠레 역인 사무엘 윤은 2막 ‘금송아지의 노래’(Le veau d'or)에서 일종의 유쾌함을 더한 악마의 모습을 담아 중후한 베이스바리톤의 매력을 선보이며 극을 잘 이끌어갔다.
3막 마르그리트의 정원 무대는 가운데 큰 새집처럼 생긴 정원이 한편 감옥처럼 보여 5막의 운명을 예견한다. 마르그리트 역 소프라노 손지혜는 3막 ‘보석의 노래’(Oh dieu! Que de bijoux)에서 힘차고 풍성한 노래로 브라보를 받았으며, 4막 파우스트와의 이중창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Oui, c'est toi! je t'aim), 메피스토펠레와의 삼중창 등 남성성악과 함께할 때도 힘찬 고음과 정확함으로 뚫고 나오며 충족감을 주었다. 4막 ‘병사들의 합창’(Soldier's Chorus)이 경쾌하고 웅장하게 분위기를 띄우고, 군인 발랑탱과 마르그리트,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의 4중창이 박진감 넘친다. 악마의 도움을 받은 파우스트는 발랑탱을 순식간에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은 다소 빠르게 지나갔다.
4막 2장 부서지고 불에 탄 십자가 앞 무용수들의 춤과 5막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은 초록 조명과 초승달, 환락을 표현하는 무용수들의 춤이 신비로운 인상을 주었다. 악마의 저주를 받은 마르그리트는 미쳐서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그 일로 감옥에 갇힌다. 마르그리트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파우스트가 제안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부활한다. C조의 화려한 마무리 속에 마지막 마르그리트,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의 3중창이 천상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이번 <파우스트>는 오플레이가 참신했으며 무대는 스펙터클했고, 음악은 웅장하고 훌륭했다. 해외 제작진과 출연진 없이 서울시오페라단이 40주년을 맞이하여 대문호 괴테의 대작,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많은 이에게 인상을 준 것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러함에도 맛깔스러움보다는 무대미술의 상징으로 인도된 음악의 정통미를 추구하는 엄숙정 연출의 방식에서 ‘무난했다’ 그 이상의 ‘황홀했다’라거나 ‘새로웠다’는 느낌이 부족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노년의 파우스트를 성악진보다 워낙 대배우가 맡아서 그럴까.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없이 모든 위치에 들어맞게 배치하는 그것만이 연출의 묘미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그 공연이 잘 되었다”라는 확인보다는 공연을 통한 감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일 것이다. 특히나 인간의 욕망과 사랑, 구원을 다룬 <파우스트>였다면 말이다.
아마도 이번 작품의 방식에서 블록 하나를 차라리 빼거나 아니면 엉뚱한 곳에 올려놓는다면 그 감화와 성찰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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