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오페라단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화려한 국내 초연!!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국립오페라단이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프로코피예프 작곡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국내 초연했다.
의상디자이너 카타리나 골트의 실감나는 의상과 무대미술가 파울 졸러의 장면마다 변하는 화려한 무대미술이 프로코피예프의 변화무쌍한 색채의 음악을 돋보이게 했다.
또한 25일 초연에서 왕자 역 테너 김영우, 클루브스의 왕 역 베이스 최웅조, 클라리스 공주 역 메조 소프라노 카리스 터커, 트루팔티노 역 테너 강도호 등 주조역 성악가들과 국립오페라단 노이오페라코러스, 펠릭스 크리거 지휘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노래는 백퍼센트 그 이상이었다.
로렌조 피오로니 연출은 기자간담회에서 슬플 때 웃을 수 있고, 슬플 때 웃을 수 있는 “의외성”에 초점을 두었다고 했다.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L'amour des trois Oranges)>기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1920년에 쓴 프랑스어 오페라라는 것 자체부터 의외성을 띈다.
이질적인 것의 결합으로부터 오는 그의 정체성은 그의 다른 음악들과 마찬가지로 이 오페라에서 변화무쌍한 리듬, 불협화음과 반음계, 수많은 음표들과 신비롭고도 기괴한 스토리에 적용된다.
표현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흥행오페라에 비해서는 자주 공연되는 레파토리가 아닌데, 이것을 국립오페라단이 이번에 야심차게 선보여 한국 관객을 새로운 차원의 오페라세계로 인도했다.
정통오페라와 달리 잔잔하거나 웅장한 서곡이 없이 짧은 팡파레 후 파이팅이 넘치는 합창으로 시작한다. 명망 높은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고치(Carlo Gozzi, 1720-1806)는 초자연적, 신화적 요소를 사용한 동화 같은 희곡을 써서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를 부흥시켰다.
이 극은 즉흥가면극이며, 카니발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풍자적 성격을 지닌다. 이 오페라의 처음 장면은 극중극 형식으로 “(이 공연을) 희극으로 할지, 비극으로 할지” 관객들이 설전을 벌이는 합창으로 시작한다.
이것을 로렌조 피오로니 연출은 성악가들이 관객석 A석과 C석 쪽에서 관객인 척 앉아 있다가 일어나 무대로 걸어 들어가며 희극파와 비극파의 대결 대목을 부르도록 하여, 진짜 관객들은 무대멀리서나 보고 듣던 성악가의 노래를 자신의 코 앞에서 우렁차게 들을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극은 웃음을 잃은 왕자의 여정을 코믹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했다. 배가 너무 불룩 튀어나와 다리 아래까지 심하게 처진 클루브스 국왕 모습이 코믹한데 이 역할을 맡은 베이스 최웅조는 반대로 더욱 웅장하고 근엄하게 노래불러 재미를 준다.
왕위를 차지하고픈 총리 레앙드르와 그와 커플을 이루는 왕자의 사촌 클라리스 공주는 악역인데, 레앙드르 역의 바리톤 김원은 민머리에 다리를 훤히 드러낸 분장도 소화하며 대목마다 멋진 노래와 때로의 농염한 연기를 선보이며 극을 살려주었다.
트루팔티노 역의 테너 강도호는 익살스러운 쥐를 닮은 분장 속에서 왕자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무도회를 열고, 저주를 풀기 위해 왕자와 함께 오렌지를 찾는 대여정을 함께하는 충성스러움을 특유의 청명한 고음으로 노래하며 극에 활력을 주었다.
테너 김영우는 곱슬 단발머리 분장이 잘 어울리며 팽팽하고 힘 있는 노래와 까칠하면서도 순수한 연기로 오렌지를 찾아 공주와 사랑에 골인하는 극을 잘 이끌어갔다. 그가 마지막에 “하~하~하~!!”하고 과장되게 웃음을 찾는 부분이 통쾌했다.
무대가 이번 오페라처럼 매 장면마다 바뀌기도 쉽지 않다. 오페라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이토록 휘황찬란한 무대의 변화와 의상, 극의 내용을 과장되게 표현한 오케스트라와 성악을 보고 듣는 것만 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이번 공연의 무대미술가 파울 졸러는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himboldo)가 ‘루돌프 2세’ 왕을 과일과 채소로 그리며 풍자한 1591년 작품의 그로테스크한 면에서 무대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무대는 모든 막에서 극장 전면을 가로 세로 꽉 채워 사용했으며, 1층과 2층이 분할되기도 하고, 아르침볼도의 그림이 무대 벽 가득 배경으로 보이기도 하고, 3막 2장 ‘크레옹트의 성’ 장면 주인공들이 오렌지를 찾으러 가며 난쟁이가 되었을 때는 요리사를 표현한 커다란 손 모형이 무대 천장에서 내려오고 손가락 관절을 꺾으며 신과 같은 전능한 모습처럼 표현되어 실재감을 주었다.
3막 1장 ‘사막’ 장면의 표현을 위해 아무 무대장치 없이 파르파렐로와 극장의 마법사 첼리오 두 명과 그들이 운전하는 자동차 모형으로만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무대벽 가득 파울 졸러가 한국에 와서 직접 촬영한 한국의 거리 모습이 음악속도에 맞춰 스피드 있게 상영되면서 박진감을 준다.
“어서오세요 서초구”라고 씌여진 표지판, 고속도로의 모습이 정겨워 웃음을 주었다. 게다가 자동차의 곡선 주행시 방향감을 자동차모형 뒤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차체를 움직여주고 핸들을 딱 맞는 각도로 회전시키는 모습이 재미있다.
간막 커튼에도 ‘휴식’이라고 우리말로 씌여져 특별함을 주었다. 첼리오 역 베이스 최공석은 웅장한 저음을 내면서 마법을 잃은 마법사에 어울리는 자신감 잃은 표정과 연기를 잘 펼쳐보였다.
3막 2장에서 3개 층의 무대에 커다란 오렌지가 놓여져 있는 모습이 환상적인데 여기에서 어여쁜 세 명의 공주들이 차례로 나오고 그들이 AI로봇처럼 관절을 꺾는 장면도 의미 있었다.
이 장면에서 호프만의 이야기에 ‘오필리아’ 모습처럼 등 뒤의 태엽을 감아서 다시 움직이게 하는 장면은 전통 오페라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AI를 예견하게 했기 때문이다.
관절을 꺾는 로봇 연기와 동시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잘 구사했던 리네트 공주 역의 소프라노 김세린, 니콜레트 공주 역의 소프라노 최혜경, 니네트 공주 역의 소프라노 김수정 , 커다란 얼굴모형을 쓰고 연기했던 스메랄딘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가영 모두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로서 젊은 한국의 여성 성악가들의 풍성하고 고운 성량과 표현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별한 아리아가 귀에 남지 않아 보통이었다는 관객, 오페라라기 보다는 음악극으로 느껴졌다는 블로그 글, 이제는 아리아 없이도 오페라가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번 작품으로 다시금 느꼈다는 평 등 이번 초연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다.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해 국내 성악계의 역량이 확연히 늘어난 만큼 새로운 오페라 레파토리에 대한 관심과 소개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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