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작오페라 '도산', 음악으로 다시 만나는 민족의 스승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지난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창작오페라 '도산'은 제16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은 각 장면이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오늘날에 되새기게 한 값진 무대가 되었다.
코리아아르츠그룹(총감독 하만택)이 제작한 이번 작품은 무대에서는 자주 조명되지 않았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일대기를 공연화하고, 그것도 창작오페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추정화 작가의 대본은 도산의 이름이 지어지는 과정, 교육자로서의 이상과 가족애, 도산이 민족통합의 비전을 제시했던 방대한 근대사를 압축적으로 다뤄냈다.
특히 서정과 현대음악적 긴장감이 공존하며 장면별로 잘 대비되고 빠르게 전환되었던 김은혜 작곡가의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도산의 신념과 고뇌, 아내 혜련과의 장면, 자식들의 노래 등에서는 목관악기와 현악기의 서정적 선율이, 민족통합에의 다짐이나 의기를 다지는 진취적 장면에서는 금관 위주의 웅장한 선율이 돋보였다.
일제 권력자 이토 히로부미의 등장에는 음산한 불협화음이 사용되고, 인삼을 파는 조선 상인들의 다툼 장면에는 글로켄슈필, 타악기 등의 익살스런 소리와 온음음계로 민족임에도 분열되는 아이러니를 음악으로 효과적으로 풍자했다.
김은혜 작곡가는 이번 작품에서 대중성을 위해 오페레타 형식을 빌리며 서곡을 포함해 1막 15곡, 2막 15곡으로 총 31곡을 지었다. 오페레타 형식은 19세기 유럽에서 오페라의 무거움과 지루함을 보완하며 인기를 끌었던 장르이며 훗날 뮤지컬의 탄생에도 영향을 준 형식이다.
따라서 오페라 '도산'은 뮤지컬 같은 색채감에 오페라 같은 웅장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또한 김은혜 작곡가는 몰토뉴 보이스 앙상블을 창단해 수년간 1인 음악극 '시작은 마흔이었다', 그림책 음악극 '파닥파닥 해바라기'등을 작업해 온 노하우를 살려 이번 극에서도 우리말 발음과 뜻에 어울리는 리듬과 선율선을 잘 찾아내고 있었다.
이로써 관객이 음악의 분위기와 줄거리로 극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무대와 영상을 결합한 이효석의 연출은 제한된 제작 여건에도 시대적 배경을 효과적으로 부각했다. 1막에서 안창호가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하와이섬을 바라보며 “그래, 우뚝 솟은 저 섬처럼 이제부터 내 호는 도산(島山)이야! 도산!”이라고 노래할 때는 영상에 배 모습과 드넓은 바다, 무대에는 배의 갑판처럼 2층높이를 세워 실재감을 주었다.
1막에 인삼상인들의 저자거리, 이토 히로부미의 등장과 하얼빈 역에서의 총성장면, 을사늑약, 하와이 오렌지농장에서 함께 일하며 이민노동자들에게 교육을 강조하는 장면, 2막 유관순과 학생들의 대한독립선언문 낭독, 1층에는 죽은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이 보이고, 2층에는 도산이 체포되어 고문받는 장면 등이 무대구조물과 소품, 색조명과 안개 등으로 효과 있게 연출되었다.
이날 관객 중에는 해군 잠수정인 ‘도산안창호함’의 선원들도 제복차림으로 진지하고 흥미롭게 극을 관람하고 있었다.
극의 전개를 음악을 통해 보면서는 참으로 웅장하고 충만감을 주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정보량이 많다는 생각은 들었다.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의 방대한 업적을 하나의 공연으로 압축하자니 그랬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미국에서는 공립협회를 조직해 향후 시베리아, 만주, 하와이, 북미까지 4개 총회를 가진 대한인국민회로 발전시키고, 국내에서는 신민회와 대성학교를 조직했다.
41세였던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내무총장으로 실질적 책임자가 되고, 후일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대한국민의회, 국내에는 한성정부 등으로 정부가 하나로 통합되지 않자, 상하이에서 통합 임시정부를 수립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국무총리를 대한국민의회 이동휘로 하여 자신은 말단 관직을 맡았다.
빼곡한 대장정을 유기적인 드라마로 살려내며 감동을 준 것은 단연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 합창단이었다.
로즈송이 이끈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에스토 오페라 합창단, 브릴란떼어린이합창단은 음악적 섬세함과 화려함의 양면성을 모두 갖춘 기량으로 오페라의 극적서사를 잘 살려주었다.
12일 공연에서 테너 강명보는 호소력 있고 감성적인 노래를 펼치며 도산 선생의 민족정기를 되살려내었다. 소프라노 김유진 또한 윤택하고 풍성한 음성으로 아내 혜련의 애틋한 감성을 표현해냈다.
이 남녀 주역의 아리아는 다짐하는 높은 A음으로 장대하게 마무리되는데 두 성악가는 모두 힘든 티 없이 활짝 편 A음을 내어주어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1막에서 을사늑약 후 서재필 역 바리톤 곽상훈과 독립지사들 5인의 노래도 위풍당당했으며, 이 때 붉은 세로조명 사이로 군인들이 번갈아 서고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가 서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바리톤 정경은 안개 속에 혼자 등장해도 존재감을 내뿜으며 힘 있는 저음과 지속음, 리듬감으로 민족의 적 이토 히로부미의 아우라를 실감나게 해주었다.
2막에서 검정치마에 흰색 저고리를 입은 유관순 역 소프라노 최은애와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어 만세를 외치고 고문받는 한 사람씩 핀 조명이 켜졌다 꺼지며 강조되었다.
탁상을 사이에 두고 이승만 역 테너 김현욱과 이동휘 역 바리톤 김병희가 민족의 미래를 논의하며 대립하는 노래, 여기에 윤봉길 역 테너 하세훈, 김구 역 테너 김보현까지 네 명의 애국지사가 함께 독립의 뜻을 절절하게 노래한다.
젊은 윤봉길이 자신의 새 시계를 나이 많은 김구에게 주고 그의 헌 시계와 바꿔서 독립운동을 떠난다.
김구가 부르는 “낡은 시계를 들고 새 시대를 간 청년이여”하는 노래가 묵직하다. 훙커우 공원에 많은 인파가 일장기를 흔든다.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가는 우리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관객들이 눈물을 훔친 장면도 있었다. 1막 피날레에 ‘아리랑’은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어느 곳에 가 있던지 너의 생각할 터이니, 너도 나를 생각하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라는 가사가 무반주로 시작해 첼로와 남성합창으로 이어지며 영가(靈歌)처럼 맑은 기운인데, 여성과 아이들까지 등장하는 전체합창이 되어 점층적으로 애절함 속에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2막 후반부에 피아노 반주만으로 도산의 아이들인 필립, 수산, 수라가 노래부르는 장면은 애틋하다. 필립(必立)이 “나의 아버지, 반드시 독립을 위해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라 노래하고 수산이 “아버지, 고마운 아버지, 너무나 닯고 싶은 아버지”라고 노래하는데, 아이들의 맑고 곧은 소리에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독립에의 의지가 오버랩되어 느껴져 뭉클하며 눈물이 흘렀다.
1막 중간에 혜련과 도산의 듀엣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순간의 비장함과 애틋함을 담아 무대를 서정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조명이 두 사람의 시선에 따라 일직선으로 이어지고 벌어지는 연출은 시각적으로 인상 깊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출연진이 태극기를 품고 커다란 태극기가 무대 위로 내려올 때 관객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오페라 '도산'은 단순한 인물 재현을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리더십과 공동체 정신을 질문한다. 인터미션 포함 세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르게 관객들은 그 질문에의 답을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되었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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