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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립오페라단X서울시향, 한국 초연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화미디어 2025. 12. 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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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장면. 배경을 우주선으로 설정하여 별빛이 가득하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독일의 대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는 난이도가 높고 규모나 길이 면에서 대곡이라 해외에서도 연주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국내에서는 2005년 2막 부분 연주, 2012년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진행된 적은 있지만 전막 공연으로는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지난 12월 4일부터 7일까지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당초 인터미션 포함 6시간으로 공지되었지만 1막의 나선형 회전무대를 무대하중으로 사용하지 못해 러닝타임이 5시간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연주를 맡은 서울시향은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한 공연에서 세 시간 이상 연주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기자는 4일 공연을 관람했는데, 서곡에서 트리스탄 화음(Tristan Chord)으로 주제를 각인시키고 1막 초반은 서울시향 공연이라 생각될 만큼 오케스트라가 성악과 연출보다 우세하게 느껴졌다. 서울시향 감독 얍 판 츠베덴 지휘자의 조련과 오케스트라의 실력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비추이는 반원형 장막으로 무대를 구성했고 상부에는 금색반지모양 샹들리에가 있었다. 슈테판 메르키 연출은 원작의 배를 우주선으로 바꾸면서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우주를 무대와 영상으로 표현했다. 극의 컨셉대로 의상도 흰색 우주복이었는데, 체구가 큰 두 주역 테너 스튜어트 스켈톤(트리스탄 역)과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이졸데 역)는 흰색 의상에 조명을 가득 받아 키 큰 스머프 같기도 했다. 연적이었던 두 주인공이 서로 사귀기로 한 1막 장면에서는 멀리서 서로 쳐다보며 마임처럼 춤을 추고 가까이 와서 손을 마주잡는데 참으로 애틋하고 우아했다.

 

1막 후반 마르케 왕이 등장에서는 3층 객석에서 목관금관 팡파르를 연주하여 입체적인 연출이 되었다. 1막에서 무대 막으로 사용된 원형 돔 무대가 거울형태로 극중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동시에 합창단 인원을 더욱 많아 보이게 해주었는데, 여기서 국립오페라단 노이오페라코러스의 웅대한 합창은 이 극의 상징인 콘월에 도착하는 여정을 잘 알려주고 있었다.

 

2막에서 캐서린 포스터(왼쪽)와 스튜어트 스켈톤.

 

 

2막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케 하는 굵은 라인과 실루엣이 극대화 된 의상으로, 트리스탄은 역삼각형 모양이 스페이드 왕자 같았고, 이졸데는 가슴과 어깨를 강조했기에 거대한 하트공주 같았다. 이 모습으로 팔 동작까지 해가며 이졸데가 노래하는데 불편할까 걱정되었지만 기우였고, 캐서린 포스터는 시종일관 진행되는 노래를 완벽히 해내는 모습이었다. 이러고 보니 1막과 2막의 거대한 의상은 푸치니 <투란도트>나 베르디의 <아이다>에서처럼 이 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왕권과 전쟁, 권력이라는 배경을 의상으로 각인시키고 음악에 집중하게 하는 장치로써, 주인공들의 행위인 동작과 노래를 오히려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두 주인공의 활약이 대단했다. 캐서린 포스터는 1막과 2막에 시작 직후에는 약간 뜬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이내 극의 흐름대로 사랑에 충만한 여인으로서 변화무쌍한 선율들을 거뜬히 선사했고, 2막 높은 C음을 수시로 오가는 구간이 있는데 중음역대 내듯이 쉽게 올라갔다 내려올 때는 과연 바그너 소프라노다 싶었다. 스튜어트 스켈톤 또한 정확한 음정과 풍성한 성량, 2막에서 미르케 왕에게 이졸데를 사랑하는 이유를 고할 때의 애틋함 등 훌륭한 표현을 하고 있었다.

 

2막 2장에서 ‘사랑의 이중창’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계단에 나란히 앉기도 하고 트리스탄이 계단 하나위로 올라가 이졸데의 어깨를 잡으며 노래 부르는데, 어느 오페라에서 낮을 벗어나 밤의 세계에서 영원한 사랑을 나누자며, 각자가 자신의 감정을, 우주의 이치와 사랑을 이렇게 한참 자세히 노래하는가? 이 오페라밖에 없다. 이 날 공연을 통해서 비로소 바그너 오페라의 매력과 그가 주창한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의 의미를 비로소 이 대목으로부터 알 수 있게 되었다. 둘의 노래 사이에 트리스탄 화음으로 바순에서 오보에, 목관 전체로 선율이 이동하는 부분은 마치 사랑의 번짐처럼 황홀하였다.

 

2막 3장은 마르케 왕의 독백 'Mir-dies? Dies, Tristan, mir?(나에게? 이럴 수가, 트리스탄!)‘ 베이스 박종민의 활약으로 중후하고 심지있는 저음의 세계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계속되는 트리스탄 화음 속에 마르케 왕(베이스 박종민 분)이 연적인 트리스탄에게 “둘이 깊숙이 은밀한 이유가 뭔지” 묻고 트리스탄이 “폐하,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는데 격노나 분노의 모습들이 아니고 그 나지막한 대화가 더 와 닿았다. 마르케 왕이 무대 가운데서 노래할 때 두 연인이 그것을 바라보는 뒷모습, 그리고 셋이 함께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 등이 연출되며 감정의 이동과 사랑의 숭고함이 전해지고 있었다.

 

2막 마지막에 트리스탄은 스스로 멜롯의 칼에 찔린다. 3막에서 트리스탄은 나무기둥에 누워 몸을 추스르고 있다. 시종 쿠르베날(바리톤 레오나르도 이)이 주인을 보듬어온 것이다. 주인을 걱정하는 레오나르도 이의 훌륭한 열창이 3막 초반의 관전포인트가 되었다. 의상은 1, 2막과 대조적으로 검정색 외투에 초록색 셔츠로 두 주인공의 죽음을 통한 영원한 사랑을 오히려 인간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영상에는 소용돌이치는 별빛도 보이고 도시 건축물 문양이 커지고 작아지면서 톱니처럼 회전한다. 특히 3막에서는 압도적인 서울시향 음향의 속도감에 맞춰 별빛이 상하좌우 사선으로 소용돌이쳐 음악을 실감나게 했다.

 

올해 클래식 공연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오후3시에 시작해 다섯 시간을 달려 저녁8시에 끝났다. 40분, 30분 두 번의 인터미션에 극장 안 카 페에 관객들의 런치타임도 진풍경이었다. 1막 90분, 2막 40분, 3막 80분의 관람시간은 이 공연이후 다른공연의 관람시간을 상대적으로 짧게 느끼게 할 정도로 혁신적인 공연관람 시간이었다. 공연자만큼이나 관객들의 체력도 대단하였다. 공연계가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며 앞으로 국내에서도 바그너 오페라를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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