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리뷰] 순환하는 달 같은 신과 인간의 사랑, 창작오페라 '찬드라'

이화미디어 2026. 3. 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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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아르코 창작산실 선정작으로 더뮤즈오페라단(단장·예술감독 이정은)이 선보인 창작오페라 <찬드라>의 초연 무대를 지난 1월 31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람했다. 인도 신화 ‘시바와 사티’와 한국 신화 ‘사만이’를 결합한 이 작품은 죽음의 신 강림의 딸 아라와 인간 사만이 운명을 거스르며 나누는 사랑을 중심 서사로 삼는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신화가 하나의 무대 위에서 교차하며, 인간과 신, 금기와 욕망, 선택과 책임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동시대적 언어로 환기한다.

‘찬드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달’을 뜻한다. 초승에서 보름으로 차오르고 다시 기울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달의 순환은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상징이다. 작가 이난영은 변화하는 인간의 욕망과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대비를 이 달의 이미지에 포개어 놓는다. 무대 뒤편에 현전하는 거대한 달은 장면의 전개와 함께 형상을 달리하며, 인물들의 선택을 묵묵히 비춘다. 달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운명의 질서를 암시하는 또 하나의 침묵하는 등장인물처럼 기능한다.

작곡가 김천욱은 한국 전통 5음계를 응용한 선율 어법을 바탕으로 작품 전반에 순환 구조를 설계했다. 단2도 상하로 배열된 4음 동기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장면을 가로지르고, 이는 달의 차고 기움처럼 반복과 회귀의 인상을 남긴다.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적극적인 활용은 신성의 영역과 권력의 위계를 음향적으로 드러내며, 제의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1막에서는 대위적으로 교차하는 선율선이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밀도 있게 구축하고, 성악 파트와 오케스트라가 긴밀히 맞물리며 극의 긴장을 축적한다. 1막 말미의 웅장한 클라이맥스는 이러한 축적의 결과로, 서사적 전환점을 힘 있게 각인시킨다.

지휘자 양진모는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위너 오페라 합창단과 한울 어린이합창단을 이끌며 음향의 균형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두터운 오케스트라 질감 속에서도 성악의 선율이 묻히지 않도록 조율하며 극의 흐름을 단단히 지탱했다. 합창은 제의적 장면에서 공간감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며, 신과 인간의 세계를 음향적으로 구획 짓는다. 

연출을 맡은 김숙영은 시각적 상징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회전무대는 시간의 순환과 인물의 운명적 반복을 암시하고, 무대 왼편의 대형 석상은 신화적 공간의 무게를 부여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갈등과 불안을 신체의 긴장으로 번역해 장면의 정서를 증폭시킨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다시 기울어가는 달의 변화는 작품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압축하며,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인물의 정지된 시선과 겹쳐지며 순환의 이미지를 남긴다.

공연 후 오페라 '찬드라' 출연진 제작진의 커튼콜 장면. (사진=박순영)

 

 

주역 성악가들의 활약 또한 인상적이었다. 아라 역의 소프라노 윤정난은 맑은 음색과 안정된 호흡으로 인물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구현했고, 사만 역의 테너 김동원은 비극적 운명을 짊어진 인간의 고뇌를 힘 있는 성량으로 표현했다. 강림 역의 바리톤 정승기는 무게감 있는 음색으로 신성의 권위를 부각했으며, 영매 역의 메조소프라노 신성희는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 존재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2막 도입에서 테너 원유대, 바리톤 김원, 베이스바리톤 성승민의 삼중창은 극의 긴장을 잠시 완화시키며, 무거운 서사 속에 리듬감 있는 대비를 형성했다.

2막은 1막에 비해 보다 응축된 형태로 전개된다. 제물 장면에서는 리듬과 음향이 빠르게 교차하며 박진감을 형성하고, 남자 주인공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감정을 압축적으로 밀어 올린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한국적 선율 감각은 음악적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금관 중심의 장중한 음향이 물러나고, 현악기가 식물 줄기처럼 얽히듯 선율을 쌓아 올리는 장면은 인물의 내면으로 시선을 옮기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지는 아카펠라 합창에서는 대위적 기법을 통해 선율이 서로를 주고받으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를 울림으로 확장시킨다. 이 정지된 순간은 작품 전체를 감싸는 여운으로 남는다. 

<찬드라>는 신화적 상상력과 전통적 선율 어법을 바탕으로 동시대 창작오페라의 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채운 브라보의 환호는,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사유가 무대와 조용히 맞닿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긴 노고로 훌륭한 대작을 올린 제작진과 출연진, 스태프에게 박수를 보낸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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