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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 해피엔딩 상징과 시각적 완성이 향한 곳은?!

이화미디어 2026. 4. 3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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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

 

[플레이뉴스 박순영 기자] 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혜진)의 <베르테르> 리뷰 때문에 글을 여러 가지로 끄적여도 보고, AI도 돌려보고 멍 때려도 보고, 다른 리뷰도 검색하며 일주일을 찜찜하게 보내고 있다. 보통 공연 리뷰 쓸 때 그런 상태지만, 이번에는 도대체 왜?!

 

금지된 사랑에 동의가 안 되어서? 베르테르가 자살해서? 아니면 죽어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해피엔딩의 무용으로 상징했기 때문에? 아니면, 시각정보가 너무 많았는지? 여튼 간에 포털에 리뷰가 처음엔 몇 없더니 하루에 하나씩 꾸준히 그것도 서로 다른 방향의 시각으로 리뷰 글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오페라공연은 분명 다양한 정보를 담았고 해석의 여지가 많다.

 

블로그 글들도 많았는데 이런 것도 있었다. “박종원 감독님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영화감독님이 오페라에 진출하셨으니 나도 나중에 그런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 아마 이런 부분 때문에 내가 일주일을 내 온 몸의 레이더를 곤두세우며 뭔가의 느낌을 포착하려 일주일동안 용 썼는지도 모른다.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의 첫날 A팀 공연을 보았고 나름껏 글 써보려 열심히 생각하며 “분명 나는 다 이해하며 재미있게 보았는데?!” 장면으로 글을 나열하니 공연만큼으로 와닿지 않으며, 무대의 시각정보가 음악의 청각정보에 도움을 주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좀 더 정확히 설명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필요 외의 관련정보를 모으기보다는 설거지하고 식구들 밥 주며 생각하고, 샤워하며 생각하고, 창밖의 꽃들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월말인데 이제는 글을 못 쓰겠지라고 생각하며 공연을 본지 일주일째 불현듯 든 생각은 이렇다. “오페라는 영화가 아니잖아”

 

내가 절반쯤 작성한 이번 오페라에 대한 앞전 글의 방향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원한 제국> 등 굵직한 영화를 연출한 박종원 영화감독이 이번 연출을 맡아 적용한 무용수 아바타와 이중영상기법을 장면대로 설명하고 그것이 오페라음악을 입체적으로 살리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예민한 촉인지 뭔지는 이상하게 글을 마무리하려 들지 않고 “분명히 뭔가가 있는데”라며 아직도 뭔가를 더 찾아내려 하기에 포기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서곡부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혼신과 열정의 지휘를 했던 홍석원 지휘자도 그런 측면에서 음악이 시각보다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역할을 최대한으로 발휘되게 한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본다. 아니 그런 생각이 지금 떠올랐다. 글을 쓰며 그런 논리들이 짚어지는데, 오페라도 물론 막과 장으로 이루어진 장면의 음악이지만, 영화 필름과 TV 브라운관보다 적어도 100년 앞선 장르이고 카메라의 컷과 프레임과는 달리, 음악의 특성과 필요 때문에 탄생된 장르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 3막 장면. (사진=국립오페라단)

 

우리가 테크닉을 보려고 오페라를 보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서사구조와 주인공들의 감정의 결을 따라가면서 함께 흐느끼고 공감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지에 연출가의 글대로 보자면 ‘알베르의 딱딱하고 굳건한 연기를 통해 극의 중심을 잡는다’는 부분은 잘 통했다. 23일 공연에서 바리톤 노동용은 저음의 중후함과 품위 있는 제스처가 좋았고, 권총을 샤를로트의 손에 쥐어줘 함께 잡고 베르테르에게 전해주는 장면을 의미 있게 만들어냈다.

 

또한 1막 시작에 홀아비 대법관 역 베이스 최공석의 안정된 저음과 제스처, 이 집 아이들(CBS소년소녀합창단)의 ‘노엘 노엘’하며 부르는 맑은 노래, 친구 요한 역 바리톤 김원과 슈미트 역 테너 이재명의 선명한 노래와 재치 있는 모습, 샤를로트의 여동생 소피 역 소프라노 문현주의 밝은 음성과 표정은 투명하고 걸릴 것 없는 일상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틀에 짜여진 밝은 일상과 대비되는 두 주인공의 마음의 결을 관객이 충분히 노래로 전달받을 수 있었느냐는 문제였다. 연출가는 프로그램지에 보리수나무, 분열된 자아의 신체언어 아바타시스템, 이중영상구조와 화이트아웃으로 구현한 시네마틱 구조, 치밀한 사전설계: 영화적 콘티뉴이티와 블로킹이라고 적고 있다. 프로그램지 설명이 아니더라도 관객들은 무대가 영화 같았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인정한다.

 

1막과 2막 사이 무대 장막에 영상으로 주인공 둘이 오시앙의 시를 함께 읽는 장면과 책표지, 4막에 베르테르의 아리아가 되는 “왜 나를 깨우나, 봄의 숨결이여?” 시의 내용 등을 인상파 화폭을 보는 듯한 그림체로 보여주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영상은 4막 시작에 권총을 든 베르테르의 집으로 샤를로트가 망토를 입고 찾아나서는 눈보라 날리는 크리스마스 밤 장면으로도 운치를 더했다. 여기에 삼각형 지붕모양의 베르테르 서재는 공연무대 멀리서부터 서서히 앞쪽장막까지 이동해서 영화의 줌인(Zoom In) 효과로 관객을 이제부터 둘이 펼칠 내면의 대화로 안내한다.

 

1막 2막에서부터 두 주인공은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2막에서 베르테르는 “딴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라니!”라고 하며 “둘이서 아주 긴 시간을 보낸 날 하늘에서 최상의 축복이 내려온 듯한 그날이 떠올라요!”라고 노래하고 샤를로트는 “알베르는 나를 사랑하고, 난 그의 아내예요!”라고 노래한다. 테너 이범주의 미성에 팽팽한 목소리, 소프라노 정주연의 탄탄한 중저음의 매력은 각각 베르테르와 샤를로트가 되어 아리아와 듀엣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3막 1장 샤를로트의 아리아 '베르테르가 내 마음 속에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Werther! Qui m'aurait dit)/나는 당신께 작은 내 방에서 편지를 씁니다(Je vous ecris de ma petite chambre)'에서도 정주연은 훌륭한 성량과 노래로 집중어린 내면연기를 펼쳤다. 3장 ‘버틸 수가 없구나!(Mon cœur s’abandonne)‘에서는 더욱 혼란스런 내면으로 주께 간구하는 설득력 있는 노래로 박수를 받았다.

 

둘의 대화가 이어지며 테너 이범주는 베르테르의 '왜 나를 깨우는가(Pourquoi me reveiller?)'에서 오시안의 시구를 절절하고도 힘차게 불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갈팡질팡하고 떨어질 것 같지만 결국 도약하는 그 선율의 슬픔과 충만함을 잘 표현해내어 오페라 <베르테르>의 중심이 되는 이 아리아를 벅차오르게 관객에게 잘 전달해주어 관객들로부터 노래 후주가 끝나기도 전에 큰 박수와 브라보를 받는 장면이었다.

 

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 4막 장면. (사진=국립오페라단)

 

하지만 다시 4막 도입부로 돌아가보자. 1막에도 사용된 영상과 삼각형 모양 집 모양의 줌인이 꼭 필요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무대에서 무용이나 무대셋트, 영상 등 기능적으로 의도한 시각정보의 양이 줄여질 필요가 있었다. 종합예술 오페라지만 노래를 제외한 요소들이 노래를 도와주는 배경이 되기보다, 특출난 상징이 되어 관객에게 노래보다 먼저 주제에 대해 각인을 시켜버리면 제 아무리 뛰어난 노래인들 그 기능면에서 비율적으로 역할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내면을 상징하는 아바타 무용은 의미 있었다. 샤를로트의 자아까지 3막 무용에 나올 때 다소 의아했는데 여자무용수 이후에 샤를로트의 등장으로 연결되니 흔들리는 샤를로트의 내면을 드러낸 것으로 잘 이해가 되었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4막 도입 영상정도는 빠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니면 무용을 아예 빼던지 말이다. 무대도 삼각형으로 줌인되는 마당에 앞 영상부터 이어져서 3막에서 날선 주인공들의 감정이 4막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꼭 시각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오페라니까 말이다.

 

요새는 이런 말 함부로 쓰면 안 되지만, 아름다운 여인이 있고 그녀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무슨 말을 할 건지 궁금한데, 값비싼 장신구나 비싼 물건들로 그녀를 해석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오페라의 성악 가수들이 충분히 숨 쉬고 노래하며 만들어갈 여지도 있어야 될 텐데 프로그램지에 적혀있는 “정교하게 제작된 전막의 동선과 감정선을 담은 연기콘티와 블로킹 맵”이라는 말도 다소 걸린다.

 

그리고 베르테르가 죽고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를 받쳐 수직으로 만든 마지막 보리수나무!! 2중 영상기법으로 빨갛게 열매까지 익어서 둘의 사랑이 천국에서 이루어짐을 상징했는데 너무 다 설명해버린 느낌이다. 사랑 때문에 괴로워 자살을 한 것도 나 같은 보통사람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거기에 그게 사랑을 이루는 방법으로 떡하니 세워지다니.

 

감히, 베르테르도 샤를로트도 아닌 내가, 그래도 작곡을 조금 할 줄 안다고, 쥘 마스네(1842-1912)가 작곡한 오페라 베르테르를 좀 더 잘 감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따져보며 글을 써보았다. 출연진, 제작진의 훌륭한 기량과 노고를 알기에 급진적인 이 글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모든 요소가 훌륭했던 만큼 무엇에 주목했으면 좋았을지 오페라 관객의 입장도 부디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mazlae@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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