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안은미 컴퍼니(안무, 감독 안은미)가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를 3월 1일부터 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는 그동안 안은미 컴퍼니가 일반인을 주제로 해왔던 2011년 작 할머니들의 몸짓을 소재로 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청소년들과 함께한 2012년작 ‘사심없는 땐쓰’에 이은 종결편으로 대한민국의 40-60대 아저씨들이 짊어졌던 가정에서 사회에서의 책임을 벗어던지고 신명나는 한판 춤을 벌이는 무대다.
2월 28일 저녁 8시, 프레스 리허설에서 본 공연무대에는 시종일관 물소리와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무용수들은 물을 한모금씩 마시고 뿜기를 반복하고, 비가 내리고 공연장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다. 갑갑한 공간에 닫혀있는 듯한 안은미의 독무에 이어 야릇한 음악 속에 주술에 걸린 듯한 무용수들의 독무와 4인무가 이어지고,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이어지는 영상 장면에서는 6개월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아저씨들이 춤추는 모습을 촬영하였다. 공원, 집 앞, 철길, 운동장 등 장소는 다양하다. 흥겨운 춤에 음악 없는 영상인 것이 특이하다.
안은미(51) 감독은 “아저씨들의 춤을 촬영해봤을 때 그 동작들이 무척 무거웠어요. 골프, 스포츠가 노는 정도지 그들에게 어떤 정서적으로 ‘논다’는 것이 없더군요. 항상 책임을 떠안고 사는 아저씨들의 모습에서 오늘 하루만큼은 책임을 벗어던졌으면, ‘무책임’한 시간, 공간을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라며 공연취지를 설명했다.
왜 물이 주요 소재로 쓰였을까. 안은미는 “아저씨들하면 그 수고스런 땀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아저씨들의 눈물.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소주’. 비라는 것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잖아요. 그게 이 사회의 상하수직 구조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양동이는 자신을 담는 집이나 또한 버려야 하는 것들을 상징합니다. 아저씨들이 양동이로 너무 퍼포먼스를 잘 하시던데요(웃음)”
▲ '무책임한 땐쓰' 중 동영상장면. 무려 6개월 동안 전국각지에서
촬영한 아저씨들의 다양한 춤을 15분 동안 소리 없이 보여준다.
전국 각지의 아저씨 춤 영상장면이 끝나고, 무대에는 이 공연을 위해 오디션에 응시해 뽑힌 아저씨 20여명이 무대에 모두 등장한다. 무대를 서성이며 고민을 표현하는 듯 하더니 이내 한명씩 자신의 이야기를 배경영상과 함께 표현한다. 어디서 춤을 저렇게 배웠을까. 막춤을 비롯해, 마임, 국악 춤, 왈츠 등의 다양한 장르가 등장한다.
흰색 나비넥타이가 멋있는 성성열씨는 신사답게 점잖은 걸음으로 왈츠처럼 인생을 표현하고, 정연우씨는 양동이로 힘든 인생을 퍼나르듯 물을 이곳 저곳으로 퍼붓는다. 국악인 장귀복씨는 하얀 한복에 엿가락 가위를 양손에 들고 기체조를 하듯 절도 있는 리듬을 만들어내고, 썬글라스를 낀 최진호씨는 양동이를 엎어놓고 앉아 비눗방울에 꿈을 담아 불어본다.
문성식씨는 스코틀랜드 전통의상 킬트를 입고 육중한 몸매를 던지며 사방팔방 신나게 공간을 휘젓고, 윤중강씨는 강렬한 파란 바지에 빨강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채 사회에 반항하듯 옷과 넥타이를 벗어던진다. 박병건씨는 넥타이 없이 단추 하나를 풀고 바지단은 걷어 올린 채 잠시 걷다가 피아노를 치는 마임을 한다. 표현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야기하는 것은 한가지, “나는 대한민국의 아저씨”라는 것이다.
어떻게 일반인 댄스 시리즈의 종결판이 아저씨가 되었을까. “일반인 시리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저씨가 주제가 될 줄 몰랐죠. 처음 할머니들을 촬영하는데 너무 잘하시니까 ‘아, 이거 하나로 끝낼게 아니라 시리즈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그 다음 세대는 청소년 고등학생, 그중에서도 공부만 하는 특목고 애들, 그래서 국제고 학생들이 되었구요. 그러고 나서 우리 사회에서 정말 반론이 되지 않는 남자, 아저씨들을 해 보자. 그렇게 된 거죠. ”
안은미 컴퍼니 단원인 변상아씨(한예종 무용원 재학)는 “아저씨들을 대변하는 마음, 아저씨들의 그런 힘든 것들을 안은미 컴퍼니 단원들이 안무 앞부분에서 대신 보여드리고, 다음 부분에서 아저씨들이 진실된 에너지를 보여주시는 거죠” 라며, “안은미 선생님은 무용수들이 단지 감정이나 특이한 움직임 뿐 아니라, 무용수가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해서 얻어지는 진실한 움직임을 추구하시기 때문에 실제로 많이 다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멋진 무대가 나오는 것 같다”라고 처음 안은미 컴퍼니에 참여하며 이번 공연에 선 소감을 밝혔다.
공연에 참가한 이승엽씨(43, 회사원)는 “막상 어떤 공연이 될지 궁금했는데, 최종 리허설을 끝내니 속이 후련한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성식씨(44, 언론인)는 “그냥 즉흥적으로 가는 거죠. 오늘은 이 퍼포먼스, 내일은 저 퍼포먼스 매일매일 달라지는 퍼포먼스가 재미있을 거예요”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최진호씨(47, 영화감독)는 “무책임한 땐쓰니까 그냥 책임 없이 가는 거죠. 하다가 지치면 그냥 가만히 있고 그냥 그렇게 하려고요”라며 웃음지었다.
▲ 20여명의 아저씨 독무 부분. 각자를 표현하는 영상을 배경으로
다양한 동작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공연의 마지막 부분은 무용수와 아저씨들 모두 무대에 나와 현란한 조명아래 신나게 춤을 춘다. 온몸과 옷이 비에 흠뻑 젖은 채, 누구는 비옷을 입은 채로 무대 위를 구르고, 뛰고, 서로 물을 뿌리고 갖가지 막춤판이 벌어진다. 시원한 빗줄기 속에서 흐르는 트롯트 “뿐이고”의 마지막 “당신뿐이야“라는 가사가 계속 귓가에 맴돌며 왠지 의미심장하다.
“첫날과 마지막에 달라진 아저씨들의 모습이 나를 감동시킬 겁니다. 아직은 서먹서먹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우린 정말 가족이 될 거예요. 친구가 되는 것이죠. 춤을 통해서 이 공연을 통해서 이 아저씨들이 정말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요. 좋은 추억 가지고 가시구요. 할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무대를 선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안은미는 두손 모아 공연에의 기대와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니 “예쁜 할머니로 늙고 싶다”며 답하는 모습이 정말 열정적인 무용가, 안무가이자 아름다운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은미는 4월 17일과 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도 일반인을 무용수로 한 공연 ‘피나 안 인 서울’을 준비중이다. 전설적인 현대무용수 피나 바우쉬(1940-2009)의 예술세계를 3D로 담은 영화 ‘피나’를 함께 본 일반관객들과 토론과 워크숍을 거쳐 느낀 것을 90명의 참가자 각자가 2분 정도의 춤으로 안무하는 획기적인 공연이다. 안은미가 피나 바우쉬 생전 그녀와 10년 동안 친구로 지냈던 인연을 기억하며 마련한 ‘피나 안 인 서울’에서도 일반인을 위한 댄스 시리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동과 열정을 선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공연 마지막에는 무용수와 아저씨, 그리고 원하는 관객 모두가
비에 젖어 흥겨운 한판 막춤판을 벌인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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