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명 | 사라지다 |
공연일시 | 2021. 12. 16(목) ~ 2022. 01. 02(일) 평일 오후 8시/주말 오후 4시 (월요일 쉼) |
공연장소 | 대학로 선돌극장 |
출연 | 신현종, 박선신, 이소영, 이지혜, 변신영, 박윤선, 임다은, 사현명 |
주최·주관 | 극단고래 |
후원 | ㈜구루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메세나협회 |
소요시간 | 100분 (인터미션 없음) |
입장연령 | 중학생 이상 관람가 |
가격 | 전석 3만원 (비지정석) |
예매처 | 네이버예약, 플레이티켓 |
티켓오픈 | 11월 16일(화) 예정 |
문의 | 070 - 8261 - 2117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GoraeTheatre/ |
MBTI 적 캐릭터 찾기가 매력인 작품 『사라지다』
{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사라지다'가 돌아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감염병과 그로 인한 거리두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거리의 불빛과, 사람들의 수다와, 성탄의 캐럴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바로 이 시기, 2021년 12월 맞춤형 작품으로 극단 고래의 열여덟 번째 정기공연 '사라지다'가 우리를 찾아왔다.
거리가 눈에 익다. 눈이 쏟아질듯 잔뜩 찌푸린 하늘. 어둠이 내려앉으며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초라하게 켜지고 있다. 한 해의 끝. 아련함과 설렘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어지럽다. 시작과 끝을 왜 정해 두었을까. 시간의 흔적인가. 기억하기 위해서인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면 기억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여행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
작품 속에 부재하는 듯 가장 강력하게 존재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윤주의 독백을 시작으로 관객들은 수다를 떨어대는 여자 네 명과 그들이 이모라 부르는 트랜스젠더 한 명이 앉아있는 한 아파트의 거실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상강, 청명, 동지, 신정, 그리고... 말복.
작가 이해성은 왜 인물들의 이름에 절기를 부여했을까? 그곳에 바로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이 인물들은 각자 한 해의 계절적 흐름을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이자 어느 한 명 빠지면 '사라지다'라는 작품의 우주가 완성체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암시가 들어있기도 하다.
그만큼 이 다섯 명의 인물 하나하나는 개성 있고 매력적이다. 마치 MBTI 검사처럼 ‘나는 어느 누구에 가까운 인물일까...’ 라는 관점으로 이 극을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을 터이다.
코로나 시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심리치료법, 친구들과의 수다
청명 응, 우리 다섯 명, 고등학교 때 여기 놀러오면 이모가 고구마 자주 삶아 줬잖아. 그때 생각나서 아까 시장 볼 때 많이 샀어. 상강 그래 맞다. 우리 다섯 명, 그때는 여기가 우리 아지트였다. 매일같이 몰려와서 밤새 떠들고 웃고 울고 야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청명 무슨 20년이야? 십, 팔년 정도 됐구만. 상강 이런 십팔 년 같으니. 그땐 정말 피부도 뽀얗고 팽팽했었는데. 청명 피부가 그냥 속이 비칠 정도로 투명해가지고 살에서는 단내가 났었잖아. 순진하기는 또 얼마나 순진했니? 맞어! 상강이 너 그거 기억나니? 상강 뭐? 청명 중학교 2학년 땐가 우리 다섯 명, 신정이 집에 모여서, 야동 본거. 상강 기억나지. 그때 네가 징그럽다고 토하고 울고 그랬잖아. |
'사라지다'는 남성 작가가 쓴 여성들의 이야기다. 언제 그렇게 여성들의 수다를 훔쳐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작가 이해성이 보여주는 여성의 세계는 생생하고 재미지다.
중학교 때부터 함께 자라고 살아온 여자친구들끼리 서로 듣기 좋은 말만 주고받는다면 현실감이 퍽이나 떨어질 것이다. 말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내용도 어느 새 불어버리고, 허구헌 날 아픈 사랑이나 해쌓고, 직장에서 상사에게 당하다 못해 막말 전화까지 하는 친구들이지만, 그래서 때로 비난도 하고 육탄전까지 해대며 거실 바닥을 뒹굴어도 네 명의 여자동창생들은 결국 가장 잘 서로를 보듬어 안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돌봄 노동의 중요성은 더욱 부상했다. 집 밖이 위험해지자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서 옹기종기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삼식이’ 대열에 편입되었고 이들을 책임지는 것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그런 여성들에게 여성 간의 수다, 여성 간의 연대가 없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사라지다'는 여성들이 함께 있을 때 어디까지 자기 마음을 열어보일 수 있는지, 또 그 이야기들을 통해 얼마나 치유받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알고 보면 아슬아슬한, 균열로 가득 찬 선, “경계”
이 작품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경계’다. 여자와 남자의 경계,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아닌 사람들과의 경계, 장애인과 장애인 아닌 이들과의 경계... 우리는 그간 감염자와 감염이 (아직) 안 된 이들과의 경계에 얼마나 과도한 무게를 실어왔던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극 중 인물 동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세상이 “불안한 결합”인 것만큼 사실 그 경계는 언제든 바스라져 버릴 수 있는, 이미 조금씩 균열이 나기 시작한 선이건만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하고 굳건한 담장인 냥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경계를 세우고, 또 지키려고 애를 쓴다. '사라지다'는 어쩌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라져야 마땅한 것은 편견과 경계라고.
동지 어디까지가 욕망이고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헤어진 남자친구랑 하는 섹스는 사랑일까 욕망일까? 사랑에 빠졌을 때 분명히 욕망을 뛰어넘는 순간이 있긴 한 것 같은데 말이지. 이 우주를 가득 채우는 느낌! 아냐 재미없어. 불안함. 아슬아슬하고 금이 가 있는 듯한 불안. 그래 세상은 불안한 결합이야. 욕망과 사랑도 그렇고, 남자와 여자도 그렇고, 몸과 마음도 그렇고, 삶과 죽음도 그렇고. |
트렌스젠더 말복의 쓸쓸한 내면
이 조합에 또 한 사람의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말복. 아버지에서 이모로 삶의 자리를 이동한 말복은 세상을 떠난 윤주의 이모이자 이들 네 사람의 이모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고 절실한 위로가 필요한 인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번 '사라지다'에서는 배우 신현종이 말복의 역할을 맡았는데, 그는 이해성 연출로부터 트랜스젠더 배역 제안을 받았을 때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며, “배우가 트랜스젠더 역할을 해 보는 경험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말로 이 역할에 대한 의욕을 내보였다. '사라지다'는 배우 신현종을 재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코로나로 거리두기를 해야 했던 그 시간에, 우리는 모두 그리웠다. 친구가 그립고 그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그립고, 영화도, 연극도 그리웠다. 사람 간에 물리적 거리두기를 한다는 것이 이토록 심리적 경계선을 긋게 되는 일인지 우리 모두 몰랐었다. 다행히 ‘위드코로나’로 다시 친구를, 술자리를, 공연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지금 '사라지다'를 함께 보며 2021년 힘들었던 한 해를 겪어낸 우리 모두 서로서로 토닥여주면 좋겠다.
나와 어느 한 조각쯤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상강, 청명, 동지, 신정의 대사를 떠올려 보며, 또 나와 한 뼘쯤 멀어 보이지만 경계를 풀고 바라보면 우리 현실 속 인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트랜스젠더 말복의 아픔에도 공감해 보며 말이다.
'사라지다'가 돌아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감염병과 그로 인한 거리두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거리의 불빛과, 사람들의 수다와, 성탄의 캐럴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바로 이 시기, 2021년 12월 맞춤형 작품으로 극단 고래의 열여덟 번째 정기공연 '사라지다'가 우리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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