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지난 8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종로구 세종체임버홀에서 ‘제47회 신음악회 정기작품발표회 -소리, 한국 추상화의 미학’이 공연되었다.
이번 공연은 신음악회(회장 이남림)가 지난 2021년부터 기획한 이ㅅ음 시리즈의 네 번째로, 한국 1세대 추상화가인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의 그림이 이 날 일곱 명 작곡가들의 개성만큼이나 색다른 소리접근법으로 2024년 작곡되어 세계 초연되었다.
또한 이윤경 작곡가가 해설을 맡아 차분한 음성으로 각 작품의 그림과 작곡과정을 설명해주어 감상을 도왔다.
첫 순서는 오세린 작곡의 '어느 온화한 날'(2024)이었다.
장욱진 화백(1917-1990)의 ‘가로수’(1978)에서 영감을 받았다. 무대 벽에는 네 개의 초록 가로수 사이로 가족과 동물이 걷고, 가로수 위에 정자가 올라가 있고, 붉은 해가 아주 작게 정중앙에 있는 그림이 보였다.
첼로 독주곡이었는데, 윤석우 첼리스트는 트릴과 트레몰로 하모닉스가 다채롭게 결합된 이 기교의 곡을 열정적으로 풍성하게 연주해주었다.
첼로 저음이 그림의 초록 나무들의 느낌으로 와 닿았으며, 엷은 하모닉스는 나무와 대비되는 그림의 하얀 배경처럼 느껴졌다. 32분음표 정도로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아르페지오는 이 나무 사이를 걷는 가족의 희망일 것이다.
양진경의 '여름밤의 소리'(2024)는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여름밤의 소리’(1970)를 소재로 했다. 세로로 긴 캔버스가 온통 파랑색이고, 맨 위쪽과 아래쪽에 빨강, 초록, 노랑색 작은 점들이 별인 듯, 풀인 듯 생명력을 더한다.
오보에와 바순의 이 3악장 곡을 오보에의 이현옥과 바순의 남윤지는 심혈을 기울여 화면의 파란색이 느껴지게 연주해 주었다. 전체적으로 온음음계에서 파생된 증음정의 느낌이 익살스러움과 신비로웠으며 오보에와 바순의 음색과 어울렸다.
1악장은 주욱 뻗는 선율과 바순의 대선율과 리듬이 재미있었다. 2악장은 바순의 넓은폭의 반주에 오보에의 선율이 평화로우며, 3악장은 변박과 빠른 무궁동으로 생동감 넘치는 여름밤을 표현했다.
최은진의 '나무와 달'(2024)은 김환기 作 ‘나무와 달’(1948)에서 영감을 받았다. 화면 왼편에 둥근 나무가, 대각선 위로는 작은 둥근 달이 있는데 둘 다 청색이다.
바이올린에 김유경, 피아노 이은지, 첼로 윤석우는 이 곡의 푸르고, 한국 전통적인 서정성을 충만감을 담아 잘 표현해 주었다. 중간부에는 피아노의 울림과 바이올린 높은 선율에서 영화음악 느낌도 나고, 바이올린의 쇳소리같은 하모닉스가 푸른 외로움을 극대화시킨다.
2악장은 장중하고 무겁게 시작하여 나무와 달 사이의 대화인 듯 하모닉스구를 지나 점차 경쾌한 리듬의 변주로 진행된다.
전반부 마지막은 신숙경의 '달무리'(2024)였다.
장욱진 화백 생의 마지막 작품 ‘밤과 노인’(1990)을 소재로 했다. 칠흙같이 어두운 산 속에 길 잃은 꼬마가 헤매고 있고, 나무 위엔 까치가, 하늘 오른편엔 반달이, 왼편에는 화가 본인인 것 같은 하얀 도복의 노인이 떠 있다.
달무리진 느낌이 특히 하모닉스와 술 폰티첼로의 트레몰로로 표현되고, 어둠 속 산 이야기가 플러터 텅잉, 트릴, 증음정, 하모닉스와 도약음 등으로 나타났다.
플루트의 승경훈, 클라리넷 정성윤, 바이올린 김유경, 첼로에 윤석우는 이 힘 있고 끈질긴 작품의 추진력을 잘 연주해주었다.
인터미션 후 첫 순서로 도하나의 '그의 얼굴을 마주하며'는 장욱진 作 ‘얼굴’(1957)에서 영감을 받았다. 붉은 배경에 둥근 얼굴이 가득한 그림 앞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유경이 연주하니 그림의 자아를 대변하는 듯 했다.
바이올린의 고음과 5도 연결음, 하행 글리산도와 트레몰로 후의 피치카토가 다부진 인상을 주며, 크로탈리스와 차임벨의 신비로운 소리가 평온한 소망을 표현한 듯 하다.
김유경은 야무진 바이올린 연주에 더불어 직접 타악기 연주와 허밍까지 선보이며 그림의 정취를 완벽하게 확산시켜주고 있었다.
다음은 이의진 작곡의 '항아리와 나'(2024)였다.
김환기 作 ‘백자와 꽃’(1949)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플루트의 승경훈과 피아노의 이은지는 곡 전체에 피아노의 아르페지오와 플루트의 플러터 텅잉과 선율로 백자의 느낌을 풍성하게 표현했다.
첫 부분에 피아노 상행의 아르페지오와 플루트의 느린 선율이 백자의 투명함을 고즈넉하게 나타낸다. 중간부에 피아노 고음의 아르페지오에서 깨질 듯한 항아리의 순수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것이 후반부에서는 리듬적인 피아노 저음, 플루트 고음의 자유로운 꾸밈음과 상행진행 되며 역경 속에서도 강인하게 꽃이 피어나는 것을 표현해주었다.
이 날 대미를 장식한 박순영의 'Power, Overpower'(2024)는 유영국 화백(1916-2002)의 마지막 작품 ‘Work'(1999)를 소재로 했다.
플루트의 승경훈, 바순 남윤지, 비올라 정승원과 피아노 이은지는, 뾰족한 삼각구도로 ‘산’을 표현한 이 그림으로부터 파생된 5음 주제를 정확성과 파워를 겸비해 잘 선사해 주었다.
1악장 ‘점’ 은 하모닉스와 피치카토, 트릴로 점묘적인 움직임을, 2악장 ‘선’ 은 당김음 선율과 피아노 화음으로 경쾌하게 뻗어가는 선을 표현했다.
3악장 ‘물결’ 은 5음주제가 물결치듯 낭만적으로 전개되었고, 가장 먼저 작곡되었다는 4악장 ‘추억’ 은 바로크풍의 모방기법이 시원함을 주었다.
5악장 ‘피날레-산’ 은 빠른 5음주제의 유니즌으로 시작하여 험준한 산맥의 느낌과 메아리, 등산의 활기참 등이 빠른 템포로 페스티벌처럼 펼쳐졌다.
2022년부터 진행된 신음악회의 '이ㅅ음' 시리즈는 이음(잇다)+ 있다(존재하다), 즉 이어서 존재케함이라는 뜻으로, 음악과 타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창작 현대음악의 활성화를 도모해 왔다.
2022년 첫번째 시리즈인 '이ㅅ음 I'은 근대소설 김유정의 봄봄 을 조명하여 실내악과 판소리로 꾸몄으며, 2022년 '이ㅅ음 II'는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등 청록파 시인의 시를 소재로 한국전통 정가와의 작업이었다.
2023년 '이ㅅ음 III - 전쟁과 평화'는 세계정세를 반영하고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무용과 결합하는 작품을 펼쳤다.
이번 ' 이ㅅ음 IV - 소리, 한국 추상화의 미학'에서는 현대음악의 표현을 위해 한국 현대미술과의 결합으로 착상을 얻고, 시각의 청각화 작업으로써 추상미술의 점, 선, 면 각 요소를 소리와 각 악기의 주법과 리듬, 선율로 변환하며 각 작곡가들의 작곡어법이 이번 기회를 만나 한 단계 성숙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훌륭한 작품을 선사한 신음악회 작곡가들과 앙상블 위로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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