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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극 '부부 이야기', 일상 속 관계의 심연을 노래하다

오페라

by 이화미디어 2025. 8. 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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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극 '부부 이야기'의 한 장면. (사진 = 오푸스 제공)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지난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펼쳐진 가극 <부부 이야기>는 작곡가 류재준의 작품답게 분투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두 남녀의 풍경을 품격 있고 위트 있게 음악으로 풀어낸 무대였다.

 

2021년 작 류재준의 가극 <아파트>가 바리톤과 피아노로 힘겹고도 정겨운 아파트살이를 표현했다면, 이번 가극 <부부이야기>는 소프라노와 베이스, 피아노로 더욱 업그레이드되어 두 남녀가 애증으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가곡(歌曲)이 아니라 가극(歌劇)이기 때문에 소품과 작은 구조물 등 무대 연출(장서문 연출)로 음악의 분위기를 잘 돋우고 있었다. 2막 첫 장면 준비를 위해 인터미션 때 옷가지를 무대바닥 가득 늘어놓는데 흡사 우리 집 거실바닥을 보는 것 같아 실감이 났다.

 

연극이면 구체적 대사로 상대를 향해 말하거나 독백, 혹은 상대를 향해 말하는데, 이 가극은 봉준수 작사의 군더더기 없는 시로 한층 위에서 이 세 가지 방향을 다 노래로 말하는 점이 신기했다.

 

게다가 전체 여덟 장면의 시작을 Prelude, Invention, Etude, Valse 등의 한 페이지로 분위기를 잡은 다음에 노래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서, 피아노의 역할을 슈만이나 슈베르트 가곡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현해냈다.

 

덕분에 삶의 단면을 다룬 음악극이 빠지기 쉬운 지루함에서 벗어나, 공감과 사색을 오가는 리듬을 만들어냈다. 장면이 ‘구름’, ‘만남1’,‘ 기억의 무게’로 진행되면서 설렘부터 실제적인 만남과 견줌이 가사와 음악으로 드러난다.

 

그 다음 ‘계속 만날 수 있을까’에서는 결혼을 하면 맞딱드릴 현실에 대한 걱정을 오히려 박력 있는 팡파르 같은 노래와 피아노 간주, 인벤션풍의 속주하는 반주로 하여 현실에 대한 기대와 의심을 잘 느끼게 해주었다.

 

'Etude I'은 익살스럽기도 하고 빠르게 질주하며 이후의 사건을 예감한다. 이어지는 ‘머리 올리고’ 장면이 인상적인데, 소프라노 이상은이 하이힐을 신고 얼굴 눈 쪽에 금색 마스크를 쓰고 야릇한 분위기를 낸다.

 

음악도 단조와 반음계로 신비로운 분위기다. 여자가 비키니 라인에 무당벌레 문신한 것을 우정의 맹세로 여자친구 삼총사와 같이 한 거라며 “(당신도) 같이 문신 어때?”라고 말하자, 남자는 “넷이서 하나가 되나?”라고 비꼰다. 이런 가사는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 ‘더 큰 달과 너른 바다‘ 장면을 이끄는 'Prelude II'는 곡 길이도 꽤 길고 매우 집중어린 피아니즘으로 돋보이는 곡이다. 중음역에서 시작해 싱코페이션이 물길질하여 점차로 전음역으로 파도치는 장대한 곡인데, 피아니스트 임효선의 연주를 통하여 결혼을 하려는 마음이 이토록 대양을 건너는, 우주를 건너는 마음이었을지 새삼 느껴졌다.

 

그에 이어지는 ’더 큰 달과 너른 바다‘의 6/8박자 너울대는 리듬이 흘러가는 구름과 일렁이는 물결처럼 투명한 피아노와 함께 소프라노 이상은의 노래로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의 심리를 잘 감싸주고 있었다.

 

‘전셋집’은 베이스 한혜열의 노래다. 집은 남자가 책임지는 한국의 전통에서 반반하자가 아직도 눈치 보이고, 전세대출도 겨우 심사받아 통과되어도 미국금리에 영향 받는다.

 

그래서 일 프로 이자로 아버지께 차용증을 쓰거나, 청약 대출을 잘 받으려면 혼인신고를 미루는 현 세태를 심장고동처럼 묵직하고 강렬한 피아노의 스타카토 반주와 함께 베이스는 강렬한 읊조림으로 노래한다.

 

그 다음 ‘결혼’은 결혼 행진곡이 아니라 오히려 비장하기가 장송곡 저리가라다. 유명한 바그너 축혼행진곡 첫 음이 셋잇단음표의 C(도)음인데 여기서는 그 C음이 ‘전셋집’의 반주처럼 낮은 음의 어둠속에서 고동친다.

 

예식장 예약과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등 현실적인 가사를 베이스가 조소하듯 노래 부르니 이게 남자들의 속마음인가 싶다.

 

여기에 소프라노가 가세해 증화음이 되어 “즐거운 결혼이다. 새로운 출발이다. 인생에 한 번이길 간절히 기대한다.”라고 함께 외치니 왠지 소름끼친다. 그래, 한 번이길. 한 번이 아니면?

 

이후 2부에서는 널부러진 빨래를 개면서 던지고 싸우다가 또 잠시 까르르 웃는 신혼부부의 모습부터 출산율, 부모님 용돈, 권고사직, 맞벌이와 육아, 영어유치원과 학원을 돌고도는 초등생의 바쁜 모습까지 그려진다.

 

1부에서 요염한 아가씨였던 소프라노 이상은의 모습이 어느새 후드티에 후줄근한 바지의 여인이 되어있어 현실성을 잘 부여했다.

 

전체 17개 성악곡에 8개 피아노곡으로 전체 25곡 한 시간 반의 마지막에 두 남녀가 부르는 ‘동행’의 마지막 가사 “그 바람 가슴에 담고 가만가만 둘러보네”는 여자가 한 옥타브를 무겁게 하행할 때 남자는 끝없이 상행하고, 또 그다음은 그 반대로 표현하며 의미심장한 끝을 맺는다.

 

두 남녀는 이렇게 교차하며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마지막 여자의 흐느낌이 마음을 적신다. 하지만 음악은 초심을 돌아보듯 처음의 피아노 곡 Prelude I으로 마무리 된다.

 

우리말을 성악으로 노래한다는 것,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서 류재준의 신작 <부부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감추지 않고 우리 시대의 눈으로 새로움을 개척했다. 어둑하고 철학적인 사색이 음악을 통하여 가능했으며,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에 무대의 음악이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mazlae@daum.net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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