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맛집선언의 '냉전 가고 냉면 오라' 공연모습. ⓒ 전형근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이것은 통일 기사이다. 2020년 6월 25일 새벽,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새벽잠이 깨어 이 글을 쓴다.

어제부터 불현듯 이 글을 위하여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터져나온다. “얼른 통일 기사 써야 하는데...”라고. 열흘 전 바로 6월 15일 서울 마포 공덕동 경의선 공유지(이북으로 가는 옛 철길 흔적)에서 무관중 온라인 야외 공연된 <냉전 가고 냉면 오라>의 리뷰기사를 아직도 다 못썼기 때문이다.

왜 하필, 냉면기사도 아니고, 공연기사도 아니고, 불현듯 무엇인가를 열망하기라도 하듯, ‘통일 기사‘라고 표현했을까.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이 전쟁으로 시작되었으며, 한반도는 아직도 70년동안 위아래로 분리되어 있다. 각자의 발전 속에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위원장은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며 서로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길을 모색하기로 약속했다.

최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남한의 대북전단 관련하여 경고 후 며칠 안 되어 실제로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킨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을 단순히 북한의 응석이라든지, 어이없는 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통일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그리고 미국과 주변국과의 관계 등 한반도는 항상 이슈의 중점에 놓여있다. 아이쿠, 이놈의 인기...좋게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 인기있는 자가 주변의 모든 것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놈 잘못...맞다.

공연 ‘냉전 가고 냉면 오라’는 코로나라는 희대의 유행병이 지구를 뒤바꾸는 극한의 상황 속에 통일을 염원하며 냉면을 먹고자 하는 평화의 공연이었다. 서로를 숙주로 전파되는 전염병 덕분에 우리는 그간의 흥청망청한 생활을 다소간 조심할 수 있었으며 대학교육, 환경오염 등 사회 여러 면에서 그간 스스로는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을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 그리고 그와 동반자이면서 키다리아저씨처럼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대변하는 중견마임이스트 이정훈과 흥겨운 디제잉 속에 저버릴 수 없는 진실을 일깨워주는 음악가 한받이 함께 공연한 <냉전 가고 냉면 오라>는 2년 전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냉면을 먹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온 공연이다.

▲ '냉전 가고 냉면 가라' 마지막 장면. 서로의 붉고 푸른 냉면을 노란 겨자를 뿌려
뒤집어 쓴 채, 함께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 장권호



2년 전부터 공연을 위하여 이들의 팀명을 ‘남북맛집선언’으로 한 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공연명으로 의정부음악극축제,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 등에서 공연했으며 이 덥고 습한 코로나 시기의 답답한 마음을 더하여 지긋지긋한 냉전에서 벗어나고 시원한 냉면 한그릇 평양이나 어디에서든 함께 먹고픈 마음을 담아 <냉전 가고 냉면 오라>라는 이번 공연명을 다시 지었다.

북을 상징하는 유진규, 남을 상징하는 이정훈이 정상회담을 마임으로 표현한다. 남북 각측의 조건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음을 손짓발짓으로 나타낸다. 문재인 대통령 목소리, 김정은 위원장 목소리, 트럼프 대통령 목소리가 들린다. 폐기물을 멀리 버린다. 마지막에 DJ 한받이 처절하게 ‘상호방위조약’을 외친다.

신나는 ‘냉~면’ 음악에 맞추어 냉면을 먹는다. 붉음은 붉음으로, 푸름은 푸름으로 자신의 손을 얼굴을 물들이며 자신의 냉면을 먹는다. 하지만 결국 발정난 고양이마냥 자신의 냉면을 상대에게 먹이며 물들인다. DJ 한받이 싸이키한 음악을 틀며 “시민 여러분!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민족의 피와 땀과 눈물의 냉전의 시대는 가고, 냉면의 시대가 왔습니다“라며 훌륭한 냉면을 위한 노란색 겨자소스를 이미 서로의 파란색 빨간색으로 뒤범벅 된 유진규와 이정훈에게 건넨다. 의미심장하다.

공연 중반부에 나오는 ‘잘했군 잘했어‘라는 흥겨운 노랫가락 속의 노랫말을 음미해보자. “영감~”하고 아내가 먼저 부르니 영감이 “왜 불러”하고 응답한다.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하고 물으니 “보았소”라고 시인한다. 그래서 아내가 “어쨌소?”라고 자초지종을 묻는다. 그러니 이어진 남편의 실토가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하려고 먹었지”란다. 이거 어찌할까? 그런데 아내의 응답과 남편의 합창은 어째 “잘했군, 잘했어”로 이어지고 이후 아내가 “그러게 내 영감 이라지”라고 감싼다.

이후 가사에는 마누라가 황소를 친정집 오라비 밑천으로 주는, 어찌보면 남편보다 더한 짓을 했는데도 이제 남편은 다 이해한다. “잘했군, 잘했어. 그러니 내 마누라지”

응답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제 때 응답했는가, 그리고 제대로 응답했는가. 우리는 서로의 행동에 대해 노래처럼 ‘잘했군, 잘했어’라며 응원해줄 수 있나. 각자의 쓰임대로 사용한 일에 대해 인정해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원전봉쇄, 폐기 등은 요구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주었나. 돈 그런 거 말고.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영감마누라, 하나가 될 수 있는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뼈저린 후회 없이는 우리가 열망하는 그 무엇은 오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원리와 원칙을 준수하고 약속을 이행하고 실천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겨자소스는 과연 무엇일까. 꼭 이북식 삼삼한 평양냉면만이 아니다. 해답으로 내게 떠오르는 것은 이번 6월 사이 나는 단골 냉면집에서 하도 냉면을 먹어서, 대신에 저번주부터는 시원한 냉면육수로 목을 축이며 비빔밥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그렇다고. 끝. 그래도 어제 북한이 대남 확성기를 철거했다니 다행이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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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의 ‘Three'. 세 개의 감각, 몸, 감정이 만나 펼쳐내는 자유분방한 
몸짓과 다채로운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 국립현대무용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국립현대무용단 2013 국내안무가초청공연 ‘홍승엽의 댄스살롱’이 3월 29일부터 4월 4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중이다. 

‘홍승엽의 댄스살롱’은 국립현대무용단이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3-40대 젊은 안무가들을 초청하여 한자리에서 다양한 무용스타일의 공연을 선보이고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앞으로 ‘댄스살롱’이라는 타이틀로 이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용공연은 보통 주말을 포함하여 길어야 3일 정도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례적으로 ‘댄스 살롱’은 일주일간의 ‘장기간’ 공연을 하고 있다. 롱런하는 뮤지컬 등의 공연기간과는 당연히 비교되겠지만, 무용공연을 소극장 무대에서 일주일간 배치하는 것은 그 작품의 질이나 공연내용으로의 구성면에서 자신 있다는 선택일 것이다.

왜 그 공연제목은 ‘댄스살롱’이었을까? 홍승엽 단장은 “살롱은 옛 서양에서부터 문화예술인들이 살롱 안에서 편안하게 서로간의 생각을 공유하고 교류하는 곳”이었다며 “현대무용도 좀 더 관객에게 친숙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름 정하는 것부터 로비에 간단한 다과까지 공연전후로 편하게 서로간에 이야기하고 감상을 나눌 수 있도록 꾸몄다”고 이번 기획을 설명하였다. 

소극장의 객석이 무대에 좀 더 가까운 구조가 몰입감을 배가하고 있었다. 네 명의 젊은 안무가들의 무대는 각기 서로 어느 하나도 겹치지 않는 컨셉으로 개성이 넘치며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무대전환 시간에 홍단장과 각 안무가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관객의 이해를 도우며 다음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어 좋았다. 


▲ 박근태의 ‘I wish...’.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한 수다를 라이브 피아노반주에 맞춰 
표현하였다. 무용수들이 직접 대사를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 국립현대무용단



첫 번째는 김정은의 ‘Three'였다. 김정은은 “세 명의 무용수다. 세 개의 몸과 세 개의 감정이 만난다. 그들이 시각, 청각, 촉각이라는 세 개의 감각으로 느끼고 표현한다”며 작품을 설명하였다. 좀 더 색다른 무대를 위해 회색 연두색 빛의 잔디형태의 바닥을 깔아 시각과 촉각의 자극을 주었다. 또한 청각적으로는 안무가의 남편인 작곡가 양용준의 댄스, 탱고, 전자음악 등 다양한 색채로 변화하는 감각적인 음악이 무용수들의 자유분방하고 표현적인 움직임의 배경이 된다기보다 그 움직임을 끌어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캐주얼하고 타이트한 초여름 복장 정도의 의상이 일단은 편안하다. 그러한 일상 옷차림에서 각기 다른 세 개체가 구르고, 뛰고, 만나고, 도망가고, 금세 친해졌다가 또 놀리고 도망가고, 때론 조롱하고 등등의 움직임과 감정 표현이 자유로우면서도 익숙하다. 마치 나도 저렇게 표현할 수 있어, 아마 저렇게 표현할 거야라는 ‘친숙감’을 관객에게 주면서 사실은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욕망과 감정, 기쁨, 고통, 분노를 표현하여 후련한 해소감을 안겨주는 무대였다. 특히 마지막에 천장에서 주먹크기 만한 하얀 스티로폼 공들이 무수히 쏟아내리면서 해소감은 극대화되었다. 이 하얀 공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 순간이 시각, 청각, 촉각의 ‘Three'가 총체적으로 자극되며 세 개의 감정과 몸이 바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박근태의 ‘I wish...’였다. 안무가는 “사랑, 젊은이들이 흔히 말하는 그 사랑에 대하여 표현했다”고 짤막하게 작품을 설명했다. 사랑은 누구나 바라고 꿈꾸며 또 어렵고 고통스러운, 누군가 그 해답을 주었으면 해결해 줬으면 하는 주제이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증이 생기는 가운데 공연은 시작됐다. 여섯 개의 키높이 정도의 흰색 스탠드가 무대 양쪽 둘레로 세 개씩 마주보고 놓였다. 여자 넷, 남자 하나의 다섯 무용수는 중세 귀족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검정 정장스타일 의상을 입고 사랑에 대해 표현하였다. 

특이한 것은 공연 내내 무대 오른쪽 뒤에서 피아니스트 김성희가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또한 유일하게 이날 공연 중 무용수의 구체적인 대사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무용수가 말을 한다는 것은 보통 무용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부드러운 피아노 음악을 배경으로 무용수들은 마치 젊은날의 풋풋함, 사랑에 대한 호기심 등 젊은이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장면을 무대로 옮겨오며 사랑에 대해 해답보다는 각자 사랑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 송주원의 ‘환.각(幻.刻)’. 여성의 머리카락을 주제로 그로테스크하고 
몽환적인 설정과 무대미술이 인상적이었다. ⓒ 국립현대무용단


세 번째는 송주원의 ‘환.각(幻.刻)’이었다. 미디어 아트나 설치미술과 협업 작업을 해오고 있다는 안무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전미래 작가가 무대미술을 맡아 더욱 풍성하고 표현성이 짙은 작품을 보여주었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소재로, 머리카락을 갖가지 형태로 특색 있게 만든 작품들이 인상적으로 공연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뭍으로 갓 올라온 인어같은 한 여인은 주체할 수 없이 숱이 많고 길고 무거운 머리를 한 여인은 얼굴까지 가린 채 늘 그 긴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짐승같이 포효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 살구색 봄코트를 입은 한 단정한 여인은 어여쁜 얼굴이 보이지만, 역시 그 많은 머리숱을 곱게 땋아서 위로 꼬아 가채를 틀어 풍선처럼 하늘 끝까지 닿을 것 같이 무거워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다른 두 여인들은 역시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살색 의상으로 몸매를 드러낸 채 머리카락을 커다란 널빤지처럼 서로 엮어 머리에 함께 이고 움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여성성이 물씬 풍겨나며 또한 유독 늘씬한 무용수들과 의상에 의해 여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홍단장은 앞의 두 작품이 일상적인 것들의 표현이라면 뒤의 두 작품은 비일상적인 소재의 표현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역시 이 작품에서는 ‘기억’의 환타지성을 몽환적 분위기로 표현하고 있었다. 

여성의 목소리가 배경음악으로 들리면서, 머리가 긴 나체의 여인이 짐승같이 포효하며 움직이고, 마찬가지로 다른 두 나체의 여인도 널빤지 같은 머리를 인생의 업보인 양 힘겹게 이고 느리게 움직인다. 그나마 깔끔하고 덜 힘들어 보이는 풍선머리 여인은 노래를 하고, 외계언어 같은 소리를 내며 다른 비여성적인 여성들의 움직임에 배경을 제공하고 유일하게 말을 하지만, 오히려 제일 속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게다를 신고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 같기도 하다. 항상 여성적인 목소리만 내던 풍선머리가 짐승 같은 움직임의 긴머리와 싸울 때는 어느새 울퉁불퉁 남자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재밌으면서도 꽤 인상적이다. 

마지막은 안영준의 ‘카니발(Carnival), 카니발(Cannibal)’이었다. 안무가 안영준은 “축제인 'Carnival'에서 출발하여 잔혹한 식인행위인 ‘Cannibal’로 아이디어가 옮겨간다. 축제 같은 인간 삶 속에 녹아 있는 잔혹성을 표현했다”며 작품을 설명했다. 여성적이고 정적이던 세 번째 작품과 반대로 남성적이고 무척 역동적이고 그래서 때론 위험하고 격렬한 동작들도 많았다. 네 명의 남자 무용수가 버스를 기다리듯이 줄맞춰 서있다. 다시 맞추려고 애써도 자꾸 줄이 흐트러지며 결국은 짜증과 폭력 등의 본모습으로 서로를 응징한다. 도망가고, 잡고, 때리고 무대를 뛰고 구르는 모습이 앞 무대들에 비해 훨씬 템포도 빠르고 박진감이 넘친다.

▲ 안영준의 ‘카니발(Carnival), 카니발(Cannibal)’. 축제 같은 인간 삶 속에 
녹아 있는 잔혹성을 격렬한 안무로 표현하였다.  ⓒ 국립현대무용단



N2(남상원)의 격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이 삶의 난투극장을 리얼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남자 무용수 네 명 사이에 예쁘장한 여자 무용수 김혜경이 등장한다. 작은 체구 작은 얼굴에 마른 몸매, 너무나도 가녀린 이 무용수는 ‘토끼’탈을 쓰더니 짐승같이 달려드는 남자들 사이에서 처절한 희생양이 되어 격렬한 무대를 펼치고 있었다. 네 명의 남자무용수는 정말 짐승처럼 네 발로 펄쩍 뛰고 구르며 토끼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연약한 토끼는 힘없이 이리저리 굴려지며 먹히고 있었다. 

흰 토끼는 짐승들에게 공중으로 던져지고, 바닥에서 굴려지고, 무술이나 기예에 가까운 동작을 선보이고 성적 대상이 되는 등 엄청난 잔혹행위를 당한다. 세 번째 송주원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어떤 면에서는 ‘여성’이 소재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여성으로 표현되는 희생양은 짐승들이 굴리는 커다란 ‘정글짐’ 굴레 안에서 갇혀 포효하며 삶의 극한을 보여준다. 

무용수 김혜경은 이날 리허설 때 발에 약간의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몸을 사리지 않고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연악한 토끼는 정글짐 안에서 슈퍼맨 복장을 입고 슈퍼맨이 되는데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궁금하다. 우리들의 영웅도 결국은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대체해 낸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결론인 것일까? 아니면 평범하고 잔혹한 일상 속에 희생되지만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것일까.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로비에서 따뜻한 차와 커피, 다과를 즐기며 서로간, 또한 안무가들에게 궁금한 것도 물어보며 자연스럽고 화기애애한 ‘살롱’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공연장 로비에서도 공연전후와 인터미션의 북적임과 활기참이 있지만, 이날 공연의 ‘주요’ 컨셉으로 연출된 살롱은 더더욱 공연의 한 부분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공연이 결국 작품과 관객 사이의 소통인 만큼 그 간격을 좁히는 배경을 제공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홍단장의 기획의도대로 현대무용(Contemporary Dance)의 '컨템포러리'가 무엇인지, 현대무용은 왜 어려운지 혹은 의외로 쉬운지 서로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되고 있었다. 

국립현대무용단 홍승엽의 ‘댄스살롱’은 4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어서 다음작품으로 4월 5일부터 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벽오금학도’를 공연한다. 소설가 이외수가 4년간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소설 ‘벽오금학도’가 홍승엽의 안무와 만나 만드는 한 폭의 움직이는 동양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mazlae@daum.net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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