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7월부터 공연소식이 많다. 올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5개월의 터널을 지나, 7월 1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솔오페라단의 <힘내라 대한민국 - 한국가곡과 아리아의 밤> 공연이 열렸다. 모처럼의 오페라극장 공연에 들뜬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날 공연은 두 시간동안 앵콜까지 총 21곡으로 주옥같은 오페라 각 장면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앵콜 <오! 솔레미오>는 기나긴 코로나를 극복하고픈 의지와 함께 빛나게 타오르며 지금까지도 귓가에 생생하다. 서희태 지휘의 모스틀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하면서, 삶의 긴박감과 애수가 공존하는 오페라라는 웅장한 서사로 관객을 순식간에 인도했다.  

다음으로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능선수’를 바리톤 우주호와 한명원이 우렁차고 호쾌하게 선사했으며, 이어진 <잔니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소프라노 강혜정의 우아한 자체공명의 목소리와 바리톤 강형규의 품격 있고 중후한 음성과의 조화가 좋았다. 소프라노 김유진, 김신혜와 메조 소프라노 백재은이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산들바람은 부드럽게’를 붉은색, 초록색, 보라색 드레스의 배합에 아름다운 3화음 중창으로 선사했다.


바리톤 한명원이 부르는 <뱃노래>(조두남 곡)를 들을 땐 갑자기 코끝이 시큰했다. 앞 세 곡의 서양오페라 아리아와 대비되는 우리 가곡이라 그런지, 첼로, 베이스의 경쾌한 붓점 저음이 한국 전통음악의 북과 같은 고동으로 느껴졌다. 테너 한명원의 노래는 미성과는 다른, 테너로서의 팽팽함이 한국 판소리의 시원하게 지르는 가창과 겹쳐져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D minor화음이 G major 화음으로 펼쳐지는 순간의 미묘한 진행에, 
눈물이 핑도는 느낌이 들었다. 배경 영상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배처럼 서양 점묘법 화풍이었는데, 우리 노래니까 우리전통 수묵화의 배그림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프라노 김신혜의 <동심초>(김성태 곡)도 가사가 잘 들리고 오케스트라 반주가 아름다웠는데, 구슬픈 노래에서 
지금의 이 코로나와 발목잡힌 공연계의 한스러운 상황이 맞물려 느껴졌다. 언제 들어도 푸른 기상이 느껴지는 바리톤 우주호가 부른 <선구자>(조두남 곡)는 힘 있는 연주로 앞 순서에 비해 브라보를 가장 많이 받았다. 소프라노 김유진이 부른 <못잊어>(김동진 곡) 또한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만’이라는 가사가 절절히 와 닿았다.

바리톤 강형규의 <그리움의 아리랑>(최영민 곡)은 담백하고 우정어린 아리랑 선율진행과 가사 전달력에 클라이막스의 ‘아리랑’이라고 외치는 느낌의 벅참이 좋았다. 1부의 마지막은 <그리운 금강산>(최영섭 곡)이었다. 전주의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듯한 바이올린 선율로부터 벌써 북녘땅이 그려지며, 이날 공연이 7월 초반이라 6.25기념일이 지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테너 강무림의 청명한 음색과 소프라노 박정원의 비장한 표정과 부드럽고도 포용력 있는 음색과 프레이징이 좋았으며 '이 노래가 참 좋구나'라고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2부에도 더욱 오페라 다운 레파토리들로 가득찼다. 오페라 <카르멘> 서곡의 경쾌함이 분위기를 이끌었으며, 이어진 ‘하바네라’는 메조 소프라노 백재은이 영상 속 카르멘이 붉은옷이기 때문에 대비되도록 에매랄드색 옷을 입었다. 이날 무대가 카펫재질인데도 강렬한 춤 스탭을 보여주고 무대위를 좌우로 오가며 분위기를 살렸으며, 퇴장 때에도 지휘자에게 인사 안하는 화려하고 앙칼진 카르멘을 연출했다. 
소프라노 박정원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검정색 나비모양 자수 드레스가 곡과 잘 어울렸으며, 애틋한 선율선을 잘 살린 감정선과 호흡선이 일품인 연주였다. 


이날 모두를 공감시킨 노래는 단연 루디 박의 것이었다.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을 불렀는데, 곡 초반 무대 옆쪽을 보며 분위기를 잡았고 곡이 끝날 때는 흐느낌을 담아 관객의 감정몰입을 이끌어 냈다. 또한 ‘넬순 도르마’를 부를 때도 넓고 강한 스펙트럼으로 저음부터 초고음까지 울리는 그 장쾌한 여정에, 대단원의 팡파르를 목소리 하나로 만들어 내는 것에 두 곡 모두 관객들은 열렬히 브라보 환호성을 터뜨렸다.

테너 강무림의 ‘그녀에게 내 말 전해주오’는 테너 강무림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선곡이었으며, 진지한 표정과 청명하면서도 힘 있는 열창에 관객들도 브라보로 화답했다. 테너 신상근은 라라의 ‘그라나다’를 부르며 정열의 스페인 리듬과 에너지를 표현하며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두 곡은 출연진들의 합창이었다.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웅장함 속에 인간애가 참으로 느껴졌으며,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로 성악 출연진 11명이 한 대목씩 번갈아 화목하게 부르며 성대한 팡파르를 마무리했다. 관객의 박수세례와 앵콜에 출연진 수처럼
11명 사람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뛰어오르는 뒷모습이 그려진 무대영상이 보여지고, 전출연진은 '오솔레미오'의 클라이막스까지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며 이날 공연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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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 134-1 |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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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쉰살의 남자'역 바리톤 김진추(왼쪽), 힐라리에 역 소프라노 배보람. 오페라 <쉰살의 남자>는
50살 남자에게 찾아온 사랑을 현대음악어법으로 소극장에 맞게 표현했다.ⓒ 자인오페라앙상블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내 남편이 바람이 났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인생의 중반길에 선 50, 그간의 확고하던 그의 인생관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불꽃같은 사랑이 지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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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부터 15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오페라 쉰 살의 남자는 어쩌면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올 설레임과 사랑의 물음표를 오페라로 소극장 무대 눈앞에서 올리며 짧은 시간, 한편의 휴식, 문화 산책이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가져다 준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은 작곡가 성세인이 오페라
쉰 살의 남자를 위해 창단한 자인오페라앙상블(단장,예술감독 성세인)의 올해 제7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이다. 2012년 국립오페라단 창작산실 지원 사업 선정, 2013년 부평아트센터와 공동기획 초연, 2014년 창작오페라 우수작품 선정으로 20151월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재공연되며 현대적 감각과 서정적 아리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괴테의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한 내용은 이번 소극장에 맞게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무대세트와 네 명의 성악배우만으로 집중감 있게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현대음악어법이 다소의 효과음처럼 역할하고, 아리아보다는 징슈필처럼 연극대사체로 기존의 음악극과 무엇이 다를까 궁금해지게 했다

▲ 오페라 '쉰살의 남자'는 영상과 자인챔버앙상블, 네명의 배우만으로도
극의 흐름을 집중도 있게 끌어갔다. ⓒ 자인오페라앙상블


하지만, 쉰 살의 남자가 자신의 아들의 여자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소재 자체가 관객에게는 흥미롭다. 중년남성인 주인공이 아들의 여자 친구를 사랑하게 되고, 친구의 권유로 화장을 하게 되는 등 일상 일탈의 대리만족을 준다.

그리고 두껍지 않으면서도 선명한 뉘앙스로 반주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은 극의 줄거리와 성악선율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하게도 독자적인 한 파트였다. 그러면서도 이질감을 주지 않게 진행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또한 타악기가 아니더라도 현악기와 관악기의 다양한 리듬분배, 그리고 오케스트라 부스 옆 두 명의 소프라노 앙상블로 장면의 분위기와 상황을 효과적으로 연출해내고 있었다.
 

주말 오후 자유소극장에 앉은 관객들은 주인공이 아들의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고, 화장을 하거나 염색을 하고, 또 아들은 막상 나이 많은 소프라노 가수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본다. 일종의 '막장 드라마'이지만 군데군데 배치된 코믹요소에 순수한 웃음으로 공감했다. 어려운 오페라를 본다는 느낌이 아니라, 집에서 TV드라마를 보듯 오페라 선율로도 자연스러운 감정이입과 현실감을 부여했다.


▲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사랑에 빠진 쉰살의 남자(바리톤 김진추, 가운데)는
친구(테너 정동효)의 권유로 화장과 염색을 하게 된다. ⓒ 자인오페라앙상블


혼란스러운 중년의 흔들리는 감정이 탄탄하고 안정된 바리톤 김진추의 목소리와 만나 역설적으로 더욱 잘 어울렸다. 모든 것이 확고했던 50살에 자신도 모르는 사랑에 빠지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김진추의 윤기있는 저음 목소리와 갈등하는 표정으로 잘 어울리며 '중년 남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또 한 명, 여주인공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의 활약도 눈부셨다. <쉰 살의 남자> 초기부터 함께해서인지, 연기와 노래가 자연스럽고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1인 2역을 맡았다. 주인공의 아내 역할에서는 안경을 끼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것만으로도 여느집 중년어머니 같았고, 당찬 매력을 가진 여가수 역할을 연기할 땐 쉰 살의 남자와 관객까지도 유혹했다.
 

주인공의 아들 플라비오 역의 테너 이상규와 그의 여자친구면서 쉰 살의 남자를 사랑하는 힐라리에 역의 소프라노 배보람. 그리고 쉰살의 남자친구부터 극을 서술하는 '배우' 역할의 정동효까지, 모두 충실한 가창력과 연기력을 선보였다.


▲ 아들 플라비오(테너 이상규)는 연상의 여가수에게 사랑을 느껴 힐라리에
(소프라노 배보람)를 저버리지만 다시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자인오페라앙상블


보통 기존의 오페라나 창작 오페라는, 음악선율과 그 연주가 극의 흐름을 압도할 수 있다. 하지만, '쉰 살의 남자'의 잘 짜여진 음악은 오페라 '듣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음악인지 말인지, 효과음인지를 구분하는 것보다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그리 힘들지 않게, 한마디로 눈치 빠르게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음악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위해 작곡가는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즉, 오페라에 대한 기존의 '무겁고 울려퍼져야 한다, 민족소재여야 한다, 신화주제여야 한다' 의 고정관념을 깨고, 일상의 '일탈'이라는 소재를 썼다. 또한 오페라 성악의 목소리로 전달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난해한 현대음악'이 아니라 극의 내용전달에 충실한 전령사로서 현대음악 어법을 사용한 점이 훌륭했다.

오페라는 대규모 형식과 다양한 매체를 필요로 한다는 특성 때문에 작품이 많지 않다. 주요 레파토리로 흔하게 공연되고 있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창작오페라는 더 심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 창작오페라 육성사업으로 등단한 하나의 작품이, 계속 공연되는 주요 레파토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재단의 지원과 함께 다양한 방법의 강구, 창작계의 고심, 그리고 작곡가와 오페라단의 자구책 모두가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꼭 오페라여야만 하는지, 우리는 왜 오페라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지, 중요한 시점에서 꼭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 규모와 형식에 대한 타진과 음악어법 등을 다시 한번 돌이켜봐야한다. 재미있는 공연은 소규모라도 지속적으로 편하게 공연될 방법이 있지 않을까.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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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 1막에서는 주인공들 외의 인물들은
정지한 동작으로 주인공의 움직임에 집중하도록 연출했다. ⓒ 문성식기자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국립오페라단이 2014시즌 두번째 공연으로 <라트라비아타>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공연중이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베르디의 오페라 중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로, 19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린 역작이다. ‘축배의 노래’,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 등 익숙한 선율이 극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는 현대적 무대와 성악가들의 열연으로 좋은 무대를 보여줬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무대였다. 흔히 오페라무대의 화려함과는 달리 강조와 생략으로 모던한 무대를 만들었다. 연출의 아흐노 베르나르는 작품의 배경을 19세기 파리에서 1950년대로 옮기고, 특히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가 바라본 세계와 남녀관계로 극을 표현해냈다.

▲ 2막은 붉은 장미꽃잎이 가득깔린 바닥이 비올레타의 사랑을 표현한다.
비올레타(조이스 엘 코리)와 제르몽(한명원). ⓒ 문성식기자


무대디자이너 알렉산드로 카메라는 세계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던 1950년대에 창녀라는 직업을 가졌던 한 여성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적합하도록 극중 내내 검정배경으로 하고, 별다른 장식 없이 2막 전원장면은 장미꽃잎이 가득한 바닥, 2막 피날레는 천장에 아주 큰 샹젤리제, 3막은 병든 비올레타의 상태처럼 그녀의 방도 흰 가구들이 서로 겹쳐있거나 정돈 안 된 상태로 놓여져 있게 배치해 극한상황을 잘 드러냈다.

무대가 시작되면 1막엔 연회장이다. 일반적인 금색 은색의 화려한 치장이 가득한 연회장이 아니라, 검정색 배경에 사선으로 흰 테이블이 길게 놓인 곳을 파티에 모인 사람들(그란데오페라합창단)로 가득하다. 그 사람들은 정지한 동작이다. 3분여간을 정지동작으로 채우는 가운데, 주역가수들이 노래를 시작한다.

1막 내내 이처럼, 주인공들끼리의 대화와 내면상태를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주변배경인물들은 멈춘 채 주역들만 노래하고 움직이는 방법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상황에 몰입하도록 했다. 움직이기는 쉬워도 오히려 한번에 3분 정도씩 때마다 정지한 채 있는 것이 꽤 힘들 텐데, 주역가수들과 그란데오페라합창단 단원들 모두 움직이던 채 특정 지점이 되면, 하던 동작 그대로 미동도 없이 구두끈을 묶는 사람, 바텐더는 술을 붓고 있는 동작 등 여러 사람이 저마다 다 다른 동작으로 정지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2막 피날레의 무도회장면은 커다란샹들리에와 커다란 술병의 바텐더 등
세기말의 쾌락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 문성식기자


두드러진 모던한 무대와 연출로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더욱 세밀해졌다. 주역배우들은 뛰어난 성악 성량과 함께 표정과 몸짓에서 자연스럽고 몰입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24일 공연에서 주인공 알프레도 역의 이반 마그리는 긴 머리의 미소년 같은 외모가 우선 눈에 띄지만 그에 걸맞게 힘차면서도 감미로운 음색으로, 특히 1막 ‘축배의 노래’ 등에서 사랑에 목숨을 건 청년 알프레도를 잘 소화해냈다.

비올레타 역의 리우바 페트로바의 연기와 성악 역시 훌륭했다. 1막의 방탕한 생활, 2막의 사랑에의 갈등과 포기, 3막의 병중에 다시 알프레도를 만나게 된 기쁨도 잠시 결국 피를 한 움큼 토하고 죽게되는 장면까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열정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제르몽 역의 유동직은 아버지다운 중후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근엄한 연기로 부성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특히 2막에서는 붉은 장미꽃잎이 가득바닥에 깔려 있고, 무대 오른편에서 비추는 조명에 의해 표정의 명암이 극명히 표현되며 비올레타와 제르몽의 연기가 돋보인다. 나풀거리는 장미꽃잎을 맞으며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제르몽은 아들을 위해 비올레타에게 알프레도를 포기하게 하고 그녀는 아픈 사랑을 접는다. 이 대목에서 제르몽과 비올레타가 격렬히 대립하기보다는 시대와 사랑에 대해 체념한 채 받아들이는 것이 연출의 의도가 엿보인다.

2막 피날레는 다시 연회장이다. 무용수들의 과감한 노출의상, 2m이상의 막대구두를 신어 키가 커진 바텐더까지 더욱 화려해진 2장에서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의 배신에 분노하며 카드게임에서 승승장구한다. 때마침 초대된 비올레타는 새 애인 듀폴 남작과 함께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게임에서 번 돈을 비올레타에게 거칠게 뿌리며 자신이 받은 모욕을 앙갚음하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더욱 비판을 받게 된다. 2막에서는 세 주역 외에 파티를 주선한 플로라 역의 백재은도 부드러운 목소리와 세련된 매너의 플로라 역을 잘 연기했다. 

▲ 3막에서 비올레타는 폐결핵에 걸린 비올레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비올레타(조이스 엘 코리, 왼쪽)와 알프레도(강요셉). ⓒ 문성식기자


3막은 지금까지의 화려함은 온데간데없이 잿빛의 무대와 아무렇게나 쌓여있고 방치된 흰색 가구들, 머리는 풀어헤친 해 남루한 의상으로 초췌한 모습의 비올레타의 모습에서 세기말적인 음울함이 표현된다. 제르몽도 그녀를 용서하고, 곧 알프레도가 올 것이라는 편지에 비올레타는 무대 왼쪽 끝에서 기둥을 부여잡고 “너무 늦었어”라며 결핵에 걸려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을 연기할 때는 정말로 병색이 짙고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두 부자가 도착하고 비올레타는 왼쪽 창문을 열고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던 그 기쁨도 잠시, 피를 한움큼 토하고 죽는다. 순식간에 맞이하는 죽음에 보는 이도 아쉽고 안타깝지만 작품에서 비극의 미는 짧고 강렬할수록 인상적이다.

이날 무대는 한마디로, 복잡하고 화려함보다는 주인공들의 갈등과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노톤으로 일관된 무대와 표정과 몸짓이 극대화된 연기, 안정된 성악성량과 파트릭 랑에 지휘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안정된 반주까지 훌륭했던 공연이었다.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공연된다. 또 한 그룹의 주역군단인 알프레도에 강요셉, 비올레타에 조이스 엘 코리, 제르몽에 한명원의 공연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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