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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06 [리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피아노 리사이틀 '로만틱 소나타'

▲   이번 연주회에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독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 오푸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성신여대 초빙교수)의 피아노 리사이틀 '로만틱 소나타'가 2월 27일 저녁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성황리에 연주되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하마마쓰 국제콩쿠르 1위를 비롯해 롱티보 콩쿠르, 루빈스타인 콩쿠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석권하였고, 한국과는 10년 전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인 작곡가 류재준의 권유로 인연을 맺었다. 특히 작년 코로나 한해, 공연이 가능한 기간 독주자 곁에는 어김없이 안정된 반주로 풍성한 배경을 제공해 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있었다.

2017년 독주회에서도 격찬을 받은 그의 이번 4년 만의 국내 독주회는 한마디로 따뜻한 봄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날 연주한 포레와 류재준, 그리고 1810년 3월 1일 봄을 맞이하며 태어난 쇼팽의 작품까지 따스함과 진중함이 살아 있었으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독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이기에 충분했다.

첫 순서는 가브리엘 포레의 <녹턴 13번 나단조 작품번호 119>로 사색적이고도 격정적인 연주를 펼쳤다. 처음에 느린 싱코페이션으로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결국 감정의 깊은 곳까지 격렬하고도 빠르게 아르페지오로 파고드는 중간부, 첫부분으로 돌아오지만 애잔하고 성숙한 감정선의 마지막 부분까지, 프랑스 근대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곡가 포레 특유의 교회 종소리 같은 폭넓은 음의 울림을 잘 잡아내었다.

다음 순서로 류재준의 <피아노 소나타>(세계초연)는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심혈을 기울인 연주로 호연을 펼쳤다. 2021년 완성된 곡으로 투병생활로 고생하던 피아니스트 이효주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30분 길이의 대곡이었는데, 가끔 드뷔시나 스크리아빈, 바르톡 같기도 한데 주욱 들어보면 이내 “아! 류재준이구나”하게 된다. 1악장은 첫 도입의 햇살 중에 신비롭고 따스하게 흔들거리며 떠 있는 것 같은 제1주제가 반복, 변형되며 점차 격렬해지고 마지막은 갑작스럽게 끝난다.

2악장의 빠르게 움직이는 스케르초, 편안하고 우애스런 주제음의 3악장을 지나면, 1악장 주제가 경쾌한 템포로 변화되어 익살을 부리는 4악장 론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곡의 투명함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잘 살려 표현한 연주였으며, 1악장과 4악장으로 연결된 주제음형에서 왠지 모르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봄의 설레는 기분이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훌륭한 연주와 초연의 작품에 박수갈채와 함께 브라보를 외쳤다.
   

▲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연주는 단단한 밀도 속에 부드럽고 따스함이 살아 있었다.   ⓒ 오푸스

인터미션 후 프리데릭 쇼팽의 <마주르카 작품번호 24> 연주는 그야말로 서정미가 가득했고 청중에게 우아한 휴식이 되었다. 이 춤곡 마주르카에서는 작곡가 슈만의 피아노 작품 '다비드 동맹 무곡’이나 ‘어린이 정경’ 같은 색채도 있는데, 특히 4곡은 슈만 곡에서 격렬한 ‘플로레스탄’과 조용한 ‘에우제비우스’가 겨루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반주할 때 여유롭고 곡의 그림을 잘 그려줬는데, 이 순서에서 비로소 그것이 돌아와서 반가웠다.

대미로는 쇼팽의 <소나타 3번 나단조 작품번호 58>에서 호연을 펼쳐 브라보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각 부분 다 아름다운 선율로 워낙 유명곡인데다, 베토벤으로 치자면 소나타 32번 '함머 클라비어'와도 같은 대곡이다. 전체적으로 밀도 있고 부드러운 음색과 굉장히 빠른 리듬구간도 안 빠르게 보이도록 편하게 치고 있었다. 또한 음향용어로 말하면 ‘리미터(Limiter)'로 볼륨이 아주 센 부분을 깎는, 그런 느낌도 들었다. 그가 종종 왼발을 끌어당겨 소프트 페달을 밟으며 진중한 음색을 만드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1악장 첫 하행하는 16분음표에 연결되는 4분음표 화음 연결 주제부터 4악장까지 전체적으로 테누토가 많이 들어간 연주스타일로, 이로 인한 템포 루바토로 강박이나 중요박에 여유를 주기도 하며 치는 스타일이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반주 때나 이 날 독주회 때나 동일하게 느낀 그 ‘여유’나 ‘부드러움’, 손가락으로 건반을 강타하여 해머로 현의 쇳소리를 내지 않고 모두 동일하게 지그시 눌러내는 그 음색의 효과와 이유는 뭘까 연주회를 보면서, 또한 리뷰글을 쓰면서까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앵콜은 더 감정이나 다이내믹의 격한 표현이 훨씬 있었다. 첫곡 슈만-리스트 <헌정>은 왼손 아르페지오와 오른쪽 옥타브 선율이 함께 웅장하고 영롱하여 관객들이 환호했고, 스크리아빈 <에튜드 작품번호 42, 제5번>로는 깊은 바다의 몰아치는 심연에 온 것 같은 왼손반주와 오른손 파워풀한 선율에 매료되면서 나는 “어? 이 폭풍 휘몰아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아까 쇼팽 때는 왜 좀 더 안 그랬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내면의 물결 같은 왼손과 오른손 선율의 쇼팽 <왈츠 작품번호 64, 제2번>까지 앵콜 3곡으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모든 면을 남김없이 청중에게 어필했다. 그나저나 쇼팽다운 음색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데. 어쩌면 이날의 쇼팽 연주를 무언가 다른 기준과 비교하고 있는 것은, 내가 2015년 쇼팽 콩쿨 우승자 조성진의 음색 등에 길들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며 쇼팽 피아노 악보 몇 개를 보니 pp는 종종 있어도 ff는 자주 있지는 않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반주할 때 좋아하게 된 점이 마일드하고 해머 때리지 않는 음색 때문이었고, 그 여유와 테누토 때문이었다. 여하튼 점점 내 식견은 짧고 알아야 할 것은 많음을 느낀다.

한편, 2021 오푸스 다음 공연으로는 제17회 앙상블오푸스 정기연주회 '봄이 오는 소리'가 4월 9일 저녁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mazlae@daum.net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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