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오페라 "까마귀"(왼쪽, 테너 서필)"와 "김부장의 죽음"(오른쪽, 바리톤 허철).
ⓒ 라벨라오페라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이번 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 시상식 4개부문 석권도 참으로 기쁘고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막상 나의 겨울나그네 여정을 흔들어 깨운 것은 지난 주말 본 창작오페라 <까마귀>(27일 관람)<김부장의 죽음>(28일 관람)이었다.

 

두 오페라 모두 가족을 소재로 했기에, 내 가족을 생각하며 보았다. 그리고 내가 유유자적하게 마음 속 겨울여행을 지내는 동안 많은 분들이 이렇게 공연 한편을, 오페라를 올리려 날마다 노력하셨구나를 느끼니 감동도 되고 반성도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27-8일 공연된 라벨라오페라단(예술총감독 이강호)<까마귀>(공혜린 작곡, 고연옥 대본, 구모영 지휘, 이회수 연출)6일 극장 리허설의 전반부를 10열에 앉아서 봤다. 두 달 만에 모처럼 보는 공연관람이라 그런건지, 내가 세 아이 엄마라 그런지, 막내를 잃을 뻔 했다는 극의 내용에 나도 아이 셋을 한강수영장에서 못 찾을 뻔 한 적이 있기에 울컥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말 창작오페라 이렇게 잘 발전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7일 저녁 공연때는 5열에 앉았는데, 전날 한번 봤기에 익숙하기도 하고 앞자리라서 자막을 안 봐도 성악가들의 우리말 노래가사가 극 내용에 따라 잘 들렸다. 공혜린 작곡가의 음악은 박진감 넘치고 시원하게 전개되었다. 현대음악기법부터 정통 클래식, 가요까지를 적재적소에 막힘없이 배치하고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서 "이 작곡가가 어디서 나타났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오페라창작계의 세대교체도 느꼈다. 작곡가가 젊은 20대후반의 나이라 여러 장르 음악을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음악으로 흡수하는구나, 역시 젊은 세대는 보고듣는게 우리랑(?) 다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극은 빨간 셔츠에 검은가죽장화, 체인벨트를 찬 반항아가 되어 13년만에 돌아온 막내(테너 서필)와 가족간의 충돌과 화해를 그렸다. 1막에서 아빠 역 바리톤 양석진이 울고 떼쓰는 6살 막내를 손에서 놓친 순간을 노래부를 땐 아빠의 큰 가슴의 사랑이 잘 느껴졌다. 2막에서 엄마 역 소프라노 강혜명은 아들을 향한 모성이 가득 느껴지도록 애틋한 표정, 한 음절 한 음절 성실히 전달하는 우리말 발음과 풍부한 발성으로 배역을 살려서, 우리말 성악도 소프라노 음역에서 충분히 가사전달이 잘 되고 안정적일 수 있구나하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 오페라 "까마귀"는 IMF 금융위기에 극단적 선택을 한 가족의 삶과 화해를 그렸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베이스바리톤 양석진(아빠 역), 소프라노 강혜명(엄마 역), 베이스 장성일(형 역),
테너 서필(막내 역), 소프라노 한은혜(누나 역). ⓒ 라벨라오페라단

 

   

깔끔한 연출로 정평이 나 있는 이회수 연출은 이번 <까마귀>에서도 극중 인물들의 심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바닥에 사각 LED 조명으로만 중극장 무대를 채웠다. 재회의 즐거움과 그간의 슬픔을 노래한 남매들의 3중창에서 무대가 회색빛으로 되고 천장의 둥근 등이 켜지자, 이 무대가 비로소 범인을 취조하는 '취조실' 느낌으로 연출한 것인 줄을 알게 되었다. 마치 인생이라는 심판대에 오른 느낌이랄까. LED 무대는 2막에서 엄마가 아들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을 노래할 때는 보라색으로 빛나는 등 다양한 색으로 각 장면의 느낌을 잘 살려주었다

 

서울대 법대생이기에 평온하게 잘 자랐을 거라 생각했던 큰 누나(소프라노 한은혜)의 입을 통해 나오는 노래에서 동생을 잃은 절절한 심정이 느껴진다. 둘째 형(테너 장성일)의 노래는 남자 특유의 단순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자들보다 따스한 깊은 정의 느낌이 잘 묻어나왔다. 누나의 노래에 막내 역 테너 서필이 "최고에게 핑계가 필요하듯 그 반대도 비슷하지"라며 그간의 휘몰아치는 심정을 표현할 때는 13년의 버림받은 삶과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공연을 보기 전 IMF의 금전위기로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가족의 상황, 그리고 아예 다함께 죽는 것이 아니라 어린 막내만큼은 살리려고 버리게 된 그 판단은 어떻게 하게 되는지 차마 가늠조차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사실 그 답을 공연에서 찾고 싶었고 2막을 기대했었다

 

1막이 13년 만에 막내를 찾은 14의 가족구성원의 마음을 꽤 자세하게 표현했다면, 2막은 막내의 좌절을 어루만지는 엄마의 힘으로 공연이 구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엄마의 노래비중이 컸다. 하지만 왜 자살을 선택했고 막내를 버렸는지를 표면적으로 드러내거나 심정을 깊고 길게 서술하지는 않았다. 가족의 선택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혼자 여행하며 다잡은 막내의 의상이 빨간 셔츠에서 흰색 스웨터로 바뀌었고, 마지막 장면은 엄마와 아들의 화해로 앞으로의 가족의 여정을 암시하지만, 오페라적 대단원의 팡파르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왠지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 13년간 "까마귀" 막내를 보호했던 건 정말로 길거리 그들일지 모른다. 왼쪽부터
베이스 전태화(남자 역), 테너 서필(막내 역), 소프라노 홍선진(여자 역) ⓒ 라벨라오페라단

 

 

아마도 삶이 그렇겠지만 오페라 형식이나 트렌드도 그렇게 변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이 지대하게 큼을 알기에 그것을 표현했을수도 있겠다 싶다. 그날 그런 아쉬움이 있었는데도 아빠가 가족들에게 막내가 헤어져 사는 동안의 별명이 "먹을 것만 보면 까마귀처럼 달려들어서 별명이 까마귀였대"라고 노래가 아니라 대사로 딱 한번 설명할 때의 섬뜩함과 주역테너의 선율 중 '까마귀' 가사에서 '#-(한옥타브 위)-#' 음의 음산하고 숙명적인 느낌은 아직까지도 전율하리만치 잊을 수 없다. 이 둘을 대사와 극단적 선율로 극명하게 대비시킨 것이다. 결국 '#'라는 제자리로 되돌아오기 위해 높이 치솟아 한단계 위 제자리로 안착하는 그 삶의 계단처럼 무섭고도 애달프다

 

이번 <까마귀> 공연에서는 나날이 큰 포부로 도약하고 있는 라벨라오페라단 프로덕션의 힘을 느꼈다. 또한 그간 한국오페라계 성악가들의 탄탄한 성장과 공연노하우가 축적됨과 동시에 여러 작곡가들의 창작오페라 경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오페라 창작아카데미나 오페라 창작산실의 지원까지 서로간의 좋은 영향력으로 쌓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프로그램지에 고연옥 작가의 글에 '오페라 <까마귀>가 만들어지는 동안은 진심으로 후회했지만 다시 작품과 화해했다'는 표현에서 나도 극작가인 동료 최작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공연되면서 제 대본에 연출, 배우 모두 손을 대면서 극이 산으로 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작품이 제일 히트쳤어요". 

 


▲ 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초반, 진짜로 자신의 죽음을 계산하는 가족과 지인을
김부장처럼 보게되면 어떤 느낌일까?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25일부터 8일까지 공연된 오페라뱅크(총감독 허철)<김부장의 죽음>(작곡 오예승, 대본 신영선, 연출 홍민정, 지휘 정주현)은 인터미션 없이 70분 동안 압축적으로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2020년 한국사회의 모습으로 잘 표현해주었다

 

서곡에서 기타선율이 고대 그리스 세이킬로스 비문의 선율을 연주하며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어둑한 잿빛 도시와 세이킬로스 비문의 글자들을 보여주는 영상, 소극장을 입체적으로 변화시키는 무대미술, 자막이 없는데도 잘 들리는 우리말 발음의 성악과 지휘자 정주현과 함께한 10인조 네오필리아 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이 좋았다. 특히 우리말 가사가 잘 들렸던 것은 기자가 3열로 무대가까이 앉은 이유도 있겠지만, 여러 소극장오페라에서 관객을 가까이 만났던 오페라뱅크와 작곡가 오예승의 다양한 극음악 경험의 조화 덕분이라 생각된다

 

극 초반 갑작스런 김부장(8일 공연, 바리톤 임희성)의 죽음에 직장동료 세 명이 "5만원이면 되겠지? 거 참 한심하네. 직장생활 3년에 부조금액도 모르고"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아직도 어째 살고있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인 세상사가 생각나서 공감이 간다. 영정 사진에서 죽은 김부장이 직접 내려다보는 장면, 조문객에게 돈만 밝히는 아내(메조소프라노 김보혜), 김부장과 아내의 첫 만남부터 결혼사진, 돌 사진, 20년 지난 현재의 가족사진과 고마움은 모르고 철없는 아들(테너 석인모), (소프라노 김은혜)의 노래까지 각 장면의 가사와 노래가 위트있게 진행된다.

 

회사 상무에게 청탁을 하여 지방근무에서 서울발령이 난 김부장. 서울의 50평형 아파트에 예쁜 커텐을 달다 그만 허리를 삐끗하여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 부인이나 윤부장(테너 최성수)"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죽음을 지켜보는 산 자의 두려움이다. 높다란 무대 벽 네모난 창문에서 "동의서에 싸인하세요", "임상실험 중이지만 도움은 될 겁니다"라며 의사 네 명이 불협화음으로 합창하며 환자를 괴롭힐 때는 정말 김부장의 괴로움이 느껴져 불쌍했다.

 

▲ 불협화음을 위한 것일까, 협진을 위한 것일까. 극 중 의사 네 명, 왼쪽부터 테너 이규철,
소프라노 정시영, 메조소프라노 권수빈, 베이스 황상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대 한켠에서 노숙자(베이스 김남수)가 인생에 대해 노래하는 잔잔한 G단조 화음이 심금을 울린다. 아내와 간병인(소프라노 이지혜)의 듀엣도 우애롭다. 김부장이 병상세례를 받고 가족과 목사님, 지인들이 불러주는 애니로리 합창이 뭉클하다. 세례 후 김부장은 "어쩌면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살고싶다"고 한다. 무대 벽에서 하얀 빛이 관객석을 길게 비춘다. 주인공은 "바로 이거야"라고 하며 모두들 "죽음이 끝났다. 죽음은 이제 있어"라고 노래한다.  

 

두 편의 창작오페라 관람에서 우리말 가사 전달력 부분에 대해 느낀점이 있다. 첫째, 가사의 첫 음절이 확실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첫음절이 ,처럼  혀뒤에서 나는 소리는 안 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작곡이나 성악표현의 리듬이나 셈여림, 음역의 강조나 오케스트라 반주와의 음역 구분으로 잘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선율이 진행되면서 앞뒤 음절과 단어의 결합으로 안들렸던 부분이 유추되면서 가사가 파악되기도 했지만, 다 잘 들리면 그게 제일 편안할 것이다.

 

두 번째는 오페라 공연에는 극장 전문가, 음향 전문가, 편곡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자가 두 오페라를 비교적 앞쪽 자리에서 관람하기도 했거니와 현대음악작곡 전공이라 소리를 신중히 듣는 편이라서 이번 두 편의 오페라에서 우리말 가사를 잘 들었다. 하지만, 뒷쪽 자리에 앉은 보통의 클래식음악 관객만 하더라도 우리말가사 듣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소리의 전달력은 극장별로 다르고 한 극장의 위치별로 다르다. 반듯한 우리말을 서양클래식에 담아내는 것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작곡가에게만 이 모든 결정을 맡기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이번 두 편의 오페라에서 다시금 한국오페라의 희망을 보았다. 그간 방방곡곡 사업, 소외계층 문화순회사업 등으로 오페라는 국내 곳곳에서 많은 관객들이 접할 수 있게 된 만큼, 더이상 어려운 공연예술이 아니다. 오페라 창작분야 역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오페라창작아카데미와 공연예술 창작산실, 세종 카메라타, 국립오페라단과 각 민간오페라단의 자체 제작 등 여러 단체의 창작과 공연들이 차곡차곡 쌓여 경험치에 의해 수준이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오페라는 혼자하는 일이 아니다. 영화 <기생충>이 어디 봉준호 감독 혼자만의 것이겠는가. 서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 우리가 함께 연대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에 가치를 두자또박또박 한걸음씩 각자의 몫을 하면 될 것이다. 계속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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