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스 한혜열과 피아노 윤호근이 앵콜로 'An Die Music(음악에)'을 연주하고 있다.  ⓒ 박순영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지난 423일 저녁 730,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한혜열-윤호근 듀오 콘서트로 열린 슈베르트 연가곡시리즈 I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가곡의 매력과 운치를 한껏 느끼게 해준 좋은 공연이었다.

오페라처럼 무대장치나 여러 출연진 없이 오직 피아노 한 대, 성악가 한 명 이렇게 두 사람이 한 청년의 짝사랑을 전해준다. 그리고 제목은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인데, 워낙에는 테너 성부의 곡을 이 날은 베이스가 불러 음역도 낮아진데다, 피아노도 남자피아니스트가 치니 더욱 물레방앗간 아가씨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각각이 독립적인 짧은 가곡 20곡이 이어져 큰 줄거리가 있는 연가곡(Liederzyklus)이다. 방랑하던 젊은이가 물레방앗간에 정착해 그 집 딸을 사모하지만 그녀는 사냥꾼을 좋아한다. 결국 젊은이는 강물에 투신한다는 내용인데, 이 시는 독일 시인 뷜헬름 뮐러의 <방랑자의 유고시>이고, 여기에 음을 붙여 슈베르트가 1823년 작곡했다.

1곡 '방랑'에서 피아노 윤호근의 힘차게 도는 물레방아의 모습을, 2곡 '어디로?‘에서는 부드러운 페달링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들려준다. 이 위에서 방랑하는 젊은이가 되어 노래하던 베이스 한혜열의 감성이 3, 4곡을 지나 5곡 ’하루 일이 끝나고‘까지 더욱 진지하고 깊어진다. 한혜열과 윤호근의 조화가 참 좋았는데, 특히 피아노에서 성악으로 선율이 이동할 때는 한 악기에서 다른 악기로 선율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악기의 한 선율처럼 느껴졌다. 공연 전 해설의 음악

학자 강지영이 나이차이가 나는 두 연주자의 우정을 느낄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  한혜열-윤호근 듀오콘서트 팜플렛 표지. 초록빛 자연의 물방앗간과 시냇물이 아늑하고 아름답다. 


6곡 ‘궁금한 마음’에서는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지, 'Ja(예)‘, 'Nein(아니오)'으로 온 세상이 두 개로 나뉜다는 진지함이 묻어나는 성악과 잔잔한 반주였다. 7곡 ‘초조한 마음‘에서는 사랑을 확인하고픈 청년의 초조한 느낌이 격렬한 물레방아와 노래에서 잘 다가온다. 윤호근의 피아노 터치보다 톤이 참 좋다고 느꼈는데, 연주를 들으면서 점점 한혜열과 음색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곡 ’아침인사‘의 첫 피아노 점음표 리듬이 정답고 잔잔하게 울린다. 곡 마지막에 하늘 높이 종달새가 지저귀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13곡 ‘라우테의 녹색 리본을’에서는 피아노 점음표, 꾸밈음 리듬이 매우 멋지다. 14곡 ‘사냥꾼’은 피아노 전주의 격렬한 도입이 사냥꾼에 대한 청년의 질투를 잘 표현해준다. 15곡 '질투와 자존심'에서는 'Sag ihr's'(그녀에게 말하렴)하는 가사와 노래가 격정적이다. 또한 가곡은 어떻게 네 마디 전주만으로도 분위기를 확 잡으며 장면으로 인도하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오페라와는 또 다른 성악곡의 묘미 아니겠는가.

 

또한 16곡과 17곡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16좋아하는 색은 사냥꾼을 사모하는 여인이 좋아하는 색깔이 초록색이라는 것인데, 음악이 작아질 때는(p) 자막의 글자크기가 작아지고, 음량이 커지면(f) 글자크기가 조금 더 커져 역동성을 주고 있었다. 18세기 독일의 예술사조인 질풍노도(Strum und Drang)’ 감정의 극대적 표현을 추구했는데, 이를 음악분야는 같은 음악부분을 피아노와 포르테로 극단적으로 대조시켜 표현했다. 물레방앗간 아가씨가 좋아하는 사냥꾼의 모습이 노래와 피아노로 표현되는 가운데, 자막에서도 슈베르트 하면 빼놓을 수없는 이 질풍노도 기법을 강조해주어 작은 재미를 주었다

 

더 진짜 재미는 그 다음 곡 17. ‘싫어하는 색의 가사를 보면서였다. 같은 초록색을 두고, 그녀가 사냥꾼을 좋아하기 때문에 청년은 싫다는 것이다. '! 초록색, 너 못돼먹은 색깔아'라고 노래부르는 이 대목에서 나 혼자 웃음이 피식 났다. 또한 이 때 유명한 가곡 슈베르트 <마왕> 시작과 비슷한 오른손 빠른 3연음부 연타에 왼손은 호른 6화음을 동시에 연주하는데 기가 막혔다. 연주자들에게 감탄을 함과 동시에 평생 600여곡의 가곡을 작곡했다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천재성이 느껴졌다.

18곡 ‘시들어버린 꽃’에서는 잔잔한 음에서 측은한 사랑의 상실감이 잘 느껴진다. 한 편의 드라마를 다 본 것 같은 이 몰입감과 아련함을 무엇이라 말해야할까. 이윽고 19곡 ‘물방앗간 젊은이와 시냇물’ 시작의 장송곡 같은 나직한 음과 리듬에 숙연해진다. 사랑의 아픔에 자살한 청년의 마음을 참으로 아름답게도 표현했다. 이쯤오니 ‘발음’이 뜻 같고, ‘뜻’이 ‘선율’ 같았다. 한혜열이 시고, 윤호근이 시냇물 같은 혼연일체의 경지랄까. 곡 처음에 내게 외국어이던 독일어가 마지막 20곡 '시냇물의 자장가'에서는 마음을 다독이는 자장가 소리가 되었다.

21세기 한국에서 18세기 독일시와 노래를 듣는데, 한편 우리전통 18세기 유산인 판소리를 들을 때의 구수하고 시원한 느낌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 또한 받았다. 여하튼 이번 공연 후 리뷰 글이 공연만큼 매력적이게 잘 안 나와 책상 앞에서 한숨만 북북 쉬며 일주일이 지났다. 아마도 내가 물레방앗간 아가씨처럼 아름답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런 사랑을 못해봤나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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