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채씨가 우산 사십개를 직접 펼친다. 그가 '목선'을 타고 이북에 간다하니 목씨가 자꾸만 작별인사를 한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80년생이니 내 나이가 사십둘이다. 우리 어릴 적 초등학교 한 반에 60명, 한 학년이 10여개 반, 6학년까지 전교생이 사천명이 넘었다. 월요일이면 좁은 운동장에 꽉 채워 전교생이 조회를 하며 애국가도 부르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도 했다. 반공사상을 배우면서 동시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학교에서 배웠다.

내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제 시대가 그런가. 나라도, 조국도, 동포도 서서히 멀어지는 시대인 것 같아서다. 정치도 이익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하는데, 죽는 날까지 내 하루 살고 내 품은 뜻 이루는데 이제는 조국 통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연극 <목선>이 지난 19일 개막해 2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중이다. 윤미현 작가의 제9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이며, 이번에 극단 그린피그의 윤한솔이 연출했다. 공연과 관계자들에게 고마웠다. 그래도 6월 25일을 알려줬으니까 말이다. 어제 아이가 하굣길을 걸으며 재잘거린다. "엄마 오늘 6.25에 대해 하루종일 배웠어". 다행이다, 그래도 학교에서 배운단다. 나는 설명도 못해줬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지금과 우리애가 살고 있는 지금은 또 다른가보다. 

연극 <목선>에서는 널찍한 공연장 바닥을 사등분하여 주인공 채씨, 마씨, 목씨, 추리닝청년 각 인물 삶의 영역을 구분했고, 마지막에 나머지 셋은 이북이 고향인 채씨에게 사기를 치려 의기투합한다.

금을 캐고 소련이 망하자 나라에 들어가던 탱크마저도 고철로 팔아먹던 채씨는 늙어 이제 남은 여생 오로지 북에 가는 것이 소원이다. 목씨는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날렸고, 추리닝청년은 유학까지 다녀왔어도 자격증만 수십개인 취준생이고, 마씨는 부동산업자이면서 사기전과가 무수히 많다.|

이들의 직업만으로도 대한민국 현실이 금방 보인다. 취준생 가족은 마치 영화 <기생충> 가족 느낌인데, 엄마는 학원 두 곳 운전기사인데, 영어 능통자라야 영어학원 버스운전이 가능하다 해서 유학파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쳐달라 한다.
 

공연장 바닥에 왼쪽앞이 취준생 가족, 오른쪽앞이 목씨 부부, 왼쪽 파라솔은 구경꾼 취준고시생들, 왼쪽뒤끝이 마씨 부동산 자리이다. 주인공 채씨는 가운데 자리. 구경꾼 취준생 세명은 대사 한마디 없이 우산을 접고, 의자를 나르는 등 쿠팡맨의 역할을 한다.


가족의 이런저런 대화 중에 엄마가 "그런데, 친구엄마들 중에 XX엄마만 몇 년사이 얼굴이 폈어. XX이만 대학교를 안 갔대" 라고 수도 업이 외치니, 아들이 고함을 치며 미쳐버린다.

고학력 실업자의 고통은 이제 북한 실향민을 골탕먹이는 것에 가담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한다. 열심히 배우고 살아온 과거를 책임질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북에 닿지 못하면 노인은 원혼이 될 텐데, 나무배 '목선'을 타고 이북땅에 갈 수 있다고 꾀여 그의 돈을 빼돌려 공모한 3인이 나누려 한다. 그 중심에 이 땅을 일구고 있는 부동산업자 마씨가 있고, 착해서 사기당한 목씨도 잃은 돈을 메꿔야하니까 함께했다.

화해, 협력, 상생, 도약...이런 구태의연한 말보다는, 현실적 소재에다 이영석, 이동영, 김문식, 김용희, 권태건, 황미영, 박지아, 정양아, 이승훈, 이주형, 김원태 배우들의 실감나고 맛깔스런 연기까지 연극 <목선>을 보고서야 6.25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겨우 했다.

예술도, 성 역할도, 집의 소유도 골고루 평준화 평등화를 추구하고 있으니, 이러다 정말 곧 통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고른 분배만이 다일까? 중심을 이루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설 수 없다. 차라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던 내 어릴 적 80년대가 더 낭만스럽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이제 우리는 너무 많이 이뤄, 더 원하는 것이 없다.

이번 연극처럼 지금 이 분단 상황도 한 편의 연극이면 얼마나 좋을까. 공연이 끝나고 전 세계를 향해 멋지게 커튼콜 한 후 서로 어깨동무 하고 뒷풀이 하러 가고 말이다. 먼 훗날 되돌아볼 때 남북으로 갈라졌던 때는 대한민국 역사 한 때의 해프닝이었기를, 나도 모를 마음 한 구석에서 바라는지도 모르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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