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6하 원칙으로 풀다
글: 강은수 (단국대학교 작곡과 교수)
사건사물의 인과관계를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왜? 라는 6하원칙으로 살피는데 이는 작곡에 그대로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작품이나 작곡가를 연구하는 음악학자나 평론가가 하는 일 기본 스텝이다. 작곡가 XXX는(누가) 어떤 작품을(무엇을) 어떤기법으로(어떻게) 언제 어디서 작곡했고 그 배경이 되는 작곡 동기는 무엇이다(왜?)라는 것을 살피는 것이다.
2022년 7월 7일 일신홀에서 작곡가 백자영은 십 수년간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한 이후 첫번째 개인작곡발표회를 가졌다. 1983년 생으로 내년이면 만으로 40이 되는 나이로서 첫 발표회를 한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본인의 작곡세계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좋은 기회였다. 어떤 악기를 좋아하는지 피아노에 대한 작곡가의 취향이 어떠한지, 소리의 세계는 어디에서 근거하는지, 총체적으로 작곡가의 소리는 어떤 색깔로 표현되는지, 음악을 만드는 원천은 문학적인 혹은 미술적인 데서 영감을 얻는지, 무엇이 작품을 만드는 직적접인 동기가 되는지, 작곡가가 오래 유학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문화적인 영향은 어떠한지, 어떤 연주자와 작업을 하는지 등등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피아노 독주(뭉쳐짐 버전II 2017)를 비롯해서 바이올린 2중주(기억의 조각 2018), 플룻과 첼로2중주(더블레인보우 2021), 마임(타악기와 3인의 소프라노, 소리없는 움직임, 2022초연), 피아노와 베이스클라리넷, 기타3중주(일체감 2018). 마지막으로 이날의 가장 큰편성으로 피아노와 베이스클라리넷, 플룻과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 6중주(날아다니는 섬 2022초연)가 지휘자와의 합주로 연주되었다. 시대성으로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5년간의 작품을 모아놓은 것이다.
작품해설은 디테일하고 작곡과정을 정확하게 잘 보여준다. 청중을 위한 해설로는 대단히 훌륭하다. 6하 원칙으로 작곡가를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가이드라인이다. 살아있는 작곡가와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되는 청중에게 상당한 흥미를 유발한 것이다.
2022년 백자영의 소리만들기의 영감은 시(일체감)와 소설(날아다니는 섬, 기억의 조각), 자연현상(더블 레인보우), 순수추상(뭉쳐짐II), 마임이라는 타장르와의 접합(소리없는 움직임), 민요(새야새야 파랑새야 인용, 소리없는 움직임) 등 다양하다. 시간적으로는 어린시절 그림책(걸리버 여행기, 날아다니는 섬)부터 어려서부터 몸에 체득하여 그가 어디에 있던지 몸에 흐르는 민요, 3음으로 구성된 이 민요의 구성음은 어떤 음으로 만나던지 중성적이던지 협화로 만나게 되는 성격을 세 명의 소프라노에 입혀 소리의 맥놀이(주파수가 비슷한 두 개의 파동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합성파가 생기는 현상)를 만들었다.
백자영은 입체적이다. 영감의 원천이 그러하고 악기구성이 그러하다. 피아노는 건반 뿐 아니라 현과 공명통을 도구를 사용하며 연주 범위를 넓혔다. 다이나믹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작은소리와 큰 소리의 범위가 넓다. 목관악기의 스펙트럼도 넓게 플룻과 베이스 클라리넷을, 현악기는 바이올린 2중주부터, 플룻과 첼로의 2중주, 피아노와 기타와 베이스 클라리넷 3중주, 세명의 소프라노와 타악기와 마임이라는 작곡가 자신만의 소리색깔을 분명히 했다. 이 날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악기로 최대한의 조합을 만든 피날레는 2022년 현대 백자영을 잘 보여주었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기억의 조각>에서는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를 음악으로 풀어나가면서 동종의 악기가 (두대의 바이올린) 거의 같은 음들을 다른 리듬모방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한다. 지금 기억하는 이것이 과거의 내가 기억하던 바로 그것인가?라는 착각을 아주 잘 실현해 보여준다. 작곡가의 명확한 발상과 그것을 소리로 재현해내는 집요함과 집중력. 작품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리듬, 화성, 선율이라는 삼 요수 중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음악을 구성하는 데 테크닉과 노련함을 보여준다. 수작이다. 연주자로 하여금 몰입하여 그 음향세계로 끌고 가서 본인만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작곡가로서의 큰 능력이다.
네번째 곡인 <소리없는 움직임(2022)>에서 움직임 없는 소리에 움직임을 더해준 것은 평면을 입체화하며 음악회 전반의 하이라이트, 황금분할의 정점을 이루었다.
베이스 클라리넷과 기타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일체감>의 악기 조합을 보라. 참으로 백자영답다. 폭격에 공격받은 듯한 폭발적인 소리로 시작하여 거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의 마무리... 투명하게 무음으로 없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세상은 거의 사라졌다...(시의 마지막 부분 인용). 소리를 언어로 옮긴 시인의 그 싯구절은 작곡가의 눈에 들어와 그것이 소리로 변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시인은 언어가 소리로 살아 공간을 휘집는 이 경험을 어떤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매력적인 상상이다.
서로 다른 악기 편성의 제각각의 다른 스타일로 들었지만 음악회 전체를 듣고 나니 백자영의 소리결은 의외로 뚜렷하고 단조롭게 느껴진다. 다양한 악기의 콤비네이션의 다양한 편성으로 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리스닝을 제공하는 것은 직접적인 선율을 피해나가는 기법이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한다. 선율이나 리듬 화성 음색. 그중에 선호도가 다르고 악기들의 조합의 비율은 각 작고가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선율을 좋아하는 작곡가의 작품이나 리듬을 중요시하는 작곡가의 작품. 제각각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작곡테크닉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까 두려움을 준다. 한 작곡가의 작품만을 한 무대에서 접하게 될 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작곡가의 스타일. 그 스타일을 이미 가졌다는 것은 그의 언어가 생겼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한창 때에 여러 화풍을 섭렵하고 자기의 스타일로 고정되는 많은 화가의 세계처럼.
이제는 왜?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왜 작곡하는가?>라는 문제에 매몰되어 깊은 회의를 하는 백자영을 만났다. 청중의 부재, 즉 소통되지 않는 혼자만이 하는 행위. 작곡이 이대로 의미있는가?라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그녀는 솔직하였다. 아마도 이 문제는 해결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작곡하는 주체. 그의 존재이유. 왜 작곡하는가? 이 또한 계속 바뀌겠지만 계속 가는거 아니겠는가?
작곡가의 작품은 그 작곡가를 닮았다. 백자영의 작품은 그러하다. 숨기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루줄 아는 그녀는 이야기꾼이다. 청중의 호응이 없다해도. 내면의 소리가 아우성치면 그냥 내지르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든든한 청중을 가졌고, 그들은 백자영과 함께 간다.
2022년 7월 7일은 작곡가와 청중이라는 찰떡궁합으로 호호하하 잘 어울려야 마땅한 그 둘이 오작교 다리에서 정해진 그 시간에만 만나는 슬픈사연으로 비를 뿌린다는 택일. 적어도 정해진 그날에는 반드시 만난다는 둘의 필연적인 데이트 날짜. 좋다. 우리는 그걸로도 충분하다. 각자 열심히 살다가 오작교에서 만나자. 작곡가로서 청중으로서. 단단히 엮어진 둘의 관계. 계속될 것이다.
2022년 7월 10일 강은수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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