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공연이 종착지이겠지만, 공연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연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공연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 그 공연 어땠냐고. 네 느낌은 어땠니, 난 이랬는데. 응,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부분은 나도 똑같이 생각해. 그런데 그건 좀 달라.
지난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초연되었고 국립합창단(예술감독 윤의중) 2022 써머코랄페스티벌 K-합창클래식시리즈 II 일환으로 공연된 <마지막 눈사람>(최우정 작곡, 최승호 원작)은 그런 관점에서 이것이 합창이냐, 극이냐 할 수도 있었고 합창의 가사 전달이 잘 되었냐 가사를 자막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 등 여러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우선, 악역으로 유명한 배우 김희원이 주제인 눈사람을 표현하려는 듯 흰색 의상을 입고 무대 중앙 지휘자 옆 소파에 앉아 나래이션을 하며 공연을 '이끌어가는' 형태이다. 우리가 알던 악역의 다채로운 연기가 아닌 순수하고 담담한 어조로 6장까지 극을 설명하고 오케스트라는 영화음악처럼, 국립합창단과 서울비르투오지앙상블의 합창은 간간히 합창의 느낌을 유지시킨다.
영상도 없고 자막도 없기 때문에, 그 의도 덕분에 음악과 배우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분위기로 관객은 대략 과거의 역사, 빙하기, 추움, 외로움, 고독, 존재, 쓸쓸함, 황량함, 아름다움을 동시에 감지하게 된다.
최우정의 음악은 투명하다. 튜바 콘트라바순 등 금관악기의 극저음부터 현악기, 글로켄슈필 등 건반타악기까지 분명 폭넓은 음역을 쓰는데, 귀에 들리기는 무척 투명하다. 그 결을 가지고 음악과 사건은 진행된다.
6장은 금관과 저음 현악기에서 거대 빙하가 옆으로 스치며 이동하는 느낌이 들고, 9장 존재의 이유에서 그 와중의 렌틀러 같은 잠깐의 휴식이 무척 의미있었다. 이렇게 듣다 보니 학창시절 보았던 영화 <얼라이브>도 생각이 나고, 우리영화 <김씨표류기>도 떠오른다. 독백, 외로움.
아주 짧꼬 임팩트있게 간혹 영상(하석준)이 나오며 빙하기 눈사람을 관객의 머리에 뿌려준다. 그런데 이렇게 주욱 듣다 보니 작곡가가 극음악으로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국립합창단의 공연작품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합창에 대한 어떤 기대, 즉 합창이 극을 이끌어갈 기대를 관객은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처음에는 나래이션이 전경이고 합창이 후경인가 싶었지만 6-7장을 지나며 이러한 형태를 계속 듣다보니, 나래이션 연사가 설명하는 내용을 합창음악이 담고 있었다. 나래이션에서 나왔던 중요 단어를 시적으로 합창에서 음으로 반복하며 강조하고, 또 합창과 나래이션이 주고 받기 때문에 합창의 가사가 잘 안 들리거나 하지 않고 아주 함축된 단어와 합창다운 공명과 투명함으로 잘 들릴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최승호 시인의 시 <눈사람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특히 12장은 <눈사람 자살사건>의 시를 그대로 가사와 대사로 표현했다. 4음의 천천히 상행하는 주제가 고요하고 잔잔한 허밍으로 느린 장송곡이나 아니면 우리민요 아리랑처럼 고즈넉하게 들린다.
"욕조에선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눈사람은 자살을 했다. 빙하기의 고독을 눈사람은 견디지 못하고 따뜻한 물로 죽을까 찬물로 죽을까 결국 평생 차갑게 살아온 자신에게 내어줄 최대의 선물로 따뜻한 물에 빨리 죽었다.
이 대목에서 배우 김희윤이 수건으로 눈가와 코를 닦았다. 이 시를 나는 잘 몰랐기에 공연 후 50대 나이 넘은 관객들, 자신의 삶과 눈사람을 견주며 힘들었던 일생을 되돌아봤다는 이들, 그리고 이 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는 분들의 말을 통해 더욱더 이 음악극 <마지막 눈사람>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공연은 시작이다. 나는 시집을 사서 읽어야겠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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