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성용원(작곡가)
빙하기 지구에 홀로 남은 눈사람의 독백을 통해 문명의 폐허 위에 서 있는 한 존재의 절망과 고독, 허무를 다룬 최승호 시인의 '마지막 눈사람'에 작곡가 최우정이 곡을 붙인 합창극이 8월30일 화요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립합창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많은 합창곡들이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반면 '마지막 눈사람'은 이야기 구조를 갖춘 극의 형태였다.
최승호 시인의 산문시를 통째로 가지고 와서 합창과 내레이터로 분리했다. 즉 말과 음악이 혼합하였는데 이렇게 나눈 건 원작자인 시인인가? 아님 작곡가인가? 이런 분리가 가사와 메시지 전달 차원에서는 효과적이었을지 모르겠으나 합창 본래의 음악적 유려함과 선율미는 반감시켰다.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 같은 음악극인데 편성만 합창이요 오케스트라다. 만약에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같은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연극적인 요소가 훨씬 빠졌을 테다.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이젠 최우정을 '현대음악' 또는 '클래식'작곡가' 라는 하나의 스펙트럼에 가두지 않는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국악, 가요, 뮤지컬, 영상 등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는 기법과 소통 방식으로 종횡무진한다. 사람마다의 취향의 차이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음악적 예술성과 완성도에 대한 논쟁은 없다. 또한 동년배 또는 그 위아래로 대한민국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자들에게 보이는 철 지난 유럽 현대음악 따라 하기도 없고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겉만 번지르르하게 아카데미인 척 포장하는 사기도 없다. 말 그대로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눈사람'에서는 별의별 음악적 요소와 특징들이 다 나오고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가공되어 있다. Scene 1에서는 세기말, 아포칼립스적인 일본 RPG 게임 '파이널 판타지'의 오프닝이, Scene 2에서는 '겨울 왕국'과 같은 애니메이션적인 요소, Scene 4에서는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와 '룰루'와 같은 오페라적 기법 등 어느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리브레토와 장면 묘사를 위한 그가 결정한 최선의 음악적 선택을 완성도 높은 기술로 선보였다. 7장과 8장 사이는 간주곡(Intermezzo) 같이 곡의 처음과 괴를 같이 하며 청중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9장은 일종의 스케르초로 다분히 해학적이다. 종장인 12의 합창 중간에 지금까지 나온 모든 모티브, 반음 반복, 4연음의 아르페지오, 트럼펫의 장엄한 선율 등이 분산되어 등장하면서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라는 연을 경건하고도 성스럽게 승화시킨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필자는 G-minor의 모티브 선율이 가장 인상적이고 좋다. 그래서 중심음 G가 종장에서 장조로 나와 말들을 따뜻하게 감쌀 때 서술한 영화와 게임에서의 엔딩을 찍고 크레디트 올라가는 걸 감동에 차 천천히 음미하는 여명을 맞는 기분이다. 그래서 좀 더 그런 음악이 더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방탄조끼 아저씨 배우 김희원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이 아닌 무대에서 만난 건 확실히 행운이었다. 그리고 윤의중이 지휘한 국립합창단과 기악 파트의 서울 비르투오지 역시 최우정의 음악적 실현을 이루는데 큰 지분을 차지한 공로자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다른 요소들을 한데 버무려서 내놓는 연극, 오페라 같은 무대극이나 영화는 다채로우면서도 재미있는 작업이다. 최우정은 이제 작곡가라기 보다 극장음악가라 칭하는 게 더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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