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 1막에서는 주인공들 외의 인물들은
정지한 동작으로 주인공의 움직임에 집중하도록 연출했다. ⓒ 문성식기자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국립오페라단이 2014시즌 두번째 공연으로 <라트라비아타>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공연중이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베르디의 오페라 중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로, 19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린 역작이다. ‘축배의 노래’,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 등 익숙한 선율이 극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는 현대적 무대와 성악가들의 열연으로 좋은 무대를 보여줬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무대였다. 흔히 오페라무대의 화려함과는 달리 강조와 생략으로 모던한 무대를 만들었다. 연출의 아흐노 베르나르는 작품의 배경을 19세기 파리에서 1950년대로 옮기고, 특히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가 바라본 세계와 남녀관계로 극을 표현해냈다.
▲ 2막은 붉은 장미꽃잎이 가득깔린 바닥이 비올레타의 사랑을 표현한다.
비올레타(조이스 엘 코리)와 제르몽(한명원). ⓒ 문성식기자
무대디자이너 알렉산드로 카메라는 세계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던 1950년대에 창녀라는 직업을 가졌던 한 여성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적합하도록 극중 내내 검정배경으로 하고, 별다른 장식 없이 2막 전원장면은 장미꽃잎이 가득한 바닥, 2막 피날레는 천장에 아주 큰 샹젤리제, 3막은 병든 비올레타의 상태처럼 그녀의 방도 흰 가구들이 서로 겹쳐있거나 정돈 안 된 상태로 놓여져 있게 배치해 극한상황을 잘 드러냈다.
무대가 시작되면 1막엔 연회장이다. 일반적인 금색 은색의 화려한 치장이 가득한 연회장이 아니라, 검정색 배경에 사선으로 흰 테이블이 길게 놓인 곳을 파티에 모인 사람들(그란데오페라합창단)로 가득하다. 그 사람들은 정지한 동작이다. 3분여간을 정지동작으로 채우는 가운데, 주역가수들이 노래를 시작한다.
1막 내내 이처럼, 주인공들끼리의 대화와 내면상태를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주변배경인물들은 멈춘 채 주역들만 노래하고 움직이는 방법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상황에 몰입하도록 했다. 움직이기는 쉬워도 오히려 한번에 3분 정도씩 때마다 정지한 채 있는 것이 꽤 힘들 텐데, 주역가수들과 그란데오페라합창단 단원들 모두 움직이던 채 특정 지점이 되면, 하던 동작 그대로 미동도 없이 구두끈을 묶는 사람, 바텐더는 술을 붓고 있는 동작 등 여러 사람이 저마다 다 다른 동작으로 정지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2막 피날레의 무도회장면은 커다란샹들리에와 커다란 술병의 바텐더 등
세기말의 쾌락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 문성식기자
두드러진 모던한 무대와 연출로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더욱 세밀해졌다. 주역배우들은 뛰어난 성악 성량과 함께 표정과 몸짓에서 자연스럽고 몰입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24일 공연에서 주인공 알프레도 역의 이반 마그리는 긴 머리의 미소년 같은 외모가 우선 눈에 띄지만 그에 걸맞게 힘차면서도 감미로운 음색으로, 특히 1막 ‘축배의 노래’ 등에서 사랑에 목숨을 건 청년 알프레도를 잘 소화해냈다.
비올레타 역의 리우바 페트로바의 연기와 성악 역시 훌륭했다. 1막의 방탕한 생활, 2막의 사랑에의 갈등과 포기, 3막의 병중에 다시 알프레도를 만나게 된 기쁨도 잠시 결국 피를 한 움큼 토하고 죽게되는 장면까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열정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제르몽 역의 유동직은 아버지다운 중후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근엄한 연기로 부성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특히 2막에서는 붉은 장미꽃잎이 가득바닥에 깔려 있고, 무대 오른편에서 비추는 조명에 의해 표정의 명암이 극명히 표현되며 비올레타와 제르몽의 연기가 돋보인다. 나풀거리는 장미꽃잎을 맞으며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제르몽은 아들을 위해 비올레타에게 알프레도를 포기하게 하고 그녀는 아픈 사랑을 접는다. 이 대목에서 제르몽과 비올레타가 격렬히 대립하기보다는 시대와 사랑에 대해 체념한 채 받아들이는 것이 연출의 의도가 엿보인다.
2막 피날레는 다시 연회장이다. 무용수들의 과감한 노출의상, 2m이상의 막대구두를 신어 키가 커진 바텐더까지 더욱 화려해진 2장에서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의 배신에 분노하며 카드게임에서 승승장구한다. 때마침 초대된 비올레타는 새 애인 듀폴 남작과 함께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게임에서 번 돈을 비올레타에게 거칠게 뿌리며 자신이 받은 모욕을 앙갚음하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더욱 비판을 받게 된다. 2막에서는 세 주역 외에 파티를 주선한 플로라 역의 백재은도 부드러운 목소리와 세련된 매너의 플로라 역을 잘 연기했다.
▲ 3막에서 비올레타는 폐결핵에 걸린 비올레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비올레타(조이스 엘 코리, 왼쪽)와 알프레도(강요셉). ⓒ 문성식기자
3막은 지금까지의 화려함은 온데간데없이 잿빛의 무대와 아무렇게나 쌓여있고 방치된 흰색 가구들, 머리는 풀어헤친 해 남루한 의상으로 초췌한 모습의 비올레타의 모습에서 세기말적인 음울함이 표현된다. 제르몽도 그녀를 용서하고, 곧 알프레도가 올 것이라는 편지에 비올레타는 무대 왼쪽 끝에서 기둥을 부여잡고 “너무 늦었어”라며 결핵에 걸려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을 연기할 때는 정말로 병색이 짙고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두 부자가 도착하고 비올레타는 왼쪽 창문을 열고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던 그 기쁨도 잠시, 피를 한움큼 토하고 죽는다. 순식간에 맞이하는 죽음에 보는 이도 아쉽고 안타깝지만 작품에서 비극의 미는 짧고 강렬할수록 인상적이다.
이날 무대는 한마디로, 복잡하고 화려함보다는 주인공들의 갈등과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노톤으로 일관된 무대와 표정과 몸짓이 극대화된 연기, 안정된 성악성량과 파트릭 랑에 지휘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안정된 반주까지 훌륭했던 공연이었다.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공연된다. 또 한 그룹의 주역군단인 알프레도에 강요셉, 비올레타에 조이스 엘 코리, 제르몽에 한명원의 공연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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