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참으로 오랜만에 공연을 몰입해서 보았다. 눈물까지 흘렸다.

지난 11월 2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된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건용) <달이 물로 걸어오듯>을 본 소감은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새로 작곡된 것 같지 않게 자연스러운 음악과 흥미로운 극적 소재와 대본, 그것의 세련되면서도 소박한 무대화로, 인간의 사는 문제에 대해서 이 극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공연 3주전에 있었던 제작발표회 현장에서나 공연 팜플렛에서도 알 수 있는 바, 이번 공연은 지난 2년간 최우정 작곡가와 고연옥 작가의 끈끈한 협업이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2010년 오페라 <연서>에서도 호흡을 맞추었던 두 사람은 이건용 단장이 2012년부터 이끈 '세종카메라타'라는 작곡가-대본가 모임의 네 팀 중 한 팀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해왔다. 작년 세종 카메라타의 네 팀이 리딩 공연을 했고, 그 중 <달이 물로 걸어오듯>이 채택되어 무대화작업을 거쳐 이번공연에 이르렀다.

남자가 장모와 처제를 살해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고연옥 작가가 10여 년 전에 쓴 희곡이 2010년 일본과 한국에서 연극으로 올려 졌고, 이번에 그 일본 연출이었던 사이토 리에코가 오페라 연출을 맡아 더욱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공연홍보 단계에서는 '핏빛 버전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홍보되어 더욱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수남이 극 중 때때로 부르는 노래인 "나는 화물차 운전수요, 짐칸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모른채,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오"라는 대목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화물차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모른 채, 그저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인 것처럼, 부인 경자도 자신과 하나이고, 또한 자신은 '생각'없이 하루하루 살아갈 뿐, 그 외에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계모와 여동생을 죽이고 그것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부인 경자에 대해 검사가 취조할 때 그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처럼 노래한다.

어두컴컴한 밤길 고속도로에서, 이 길이 밤새 안전하기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그 마음에서 괜시리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의 삶이 그렇고 우리 모두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어수룩하고 아는 것 없는 나이 오십이 넘은 주인공 수남은 밤 운전이 끝나고 들리는 술집에서 스무 살이나 차이나는 경자를 알게 되고, 가진 것도 없고 나이 많은 자신을 웬일인지 좋아하고 아이까지 낳아주겠다는 경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경자의 죄를 뒤집어쓰고 결국 감옥에 갇히지만, 사건에 의심을 품은 검사가 하나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말에, 점차로 경자의 사랑에 대해,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에 대해 눈뜨게 되고 누명을 벗고, 결국 경자가 감옥에 갇히고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인터미션 없이 1시간 40분, 전체 11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는 지루할 틈이 없다. 극의 전개될 상황이 궁금하게끔, 또한 극중 인물의 상황에 공감 혹은 지탄을 하고 싶게끔 몰입할 수 있도록 대본이 치밀하게 제시했고, 그것을 작곡가가 또렷하고 극적인 음높이와 리듬으로 표현했다. 경자가 "내 마음을 알아?"라고 할 때 진짜 여성들이 신경질 낼 때의 음높이처럼 굴곡이 있었고, 주제선율인 '달이 물로 걸어오듯'의 반음계 하강 선율은 전위되기도 하며 곡 전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배했다.

성악가들은 정말로 실제 극중 인물들처럼 보였다. 보통 성악가수들은 노래는 잘 해도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들에 비해 연기가 세밀하지 못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모든 배역이 '심리극'이라는 특성을 아주 잘 살려 각 인물들의 특성과 그들의 생각의 흐름과 변화, 그로인한 사건의 추이를 잘 보여줬다.

23일 공연에서 베이스바리톤 김재섭은 배운 것 없고 여자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지만 '생각'을 통해 점차 변해가는 수남 역과 싱크로율 100%였다. 소프라노 정혜욱 역시 가족에 대한 복수심과 한 남자와 새 생명에 대한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경자로서의 연기를 잘 펼쳤다.

마담 역의 김지선, 미나 역의 윤성회, 검사 역의 엄성화, 국선변호사 역의 최보한, 형사 역의 이 혁, 딸기장수 역의 이두영 모두 노래는 물론 세밀한 눈빛과 호흡템포까지 고심하고 연습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오페라'하면 무엇인가 귀족적이고, 괜한 힘이 들어가 있고, 거기다 우리말의 창작 오페라라고 하면 우리말인데도 '잘 들리지 않는다'는 기존의 여러 가지 문제와 고정관념을 깨트려주는 표본이 되었다.

좋은 대본이 제일 첫 번째 바탕이 되었고, 그것을 똑소리 나게 음악으로 잘 만들어주었고, 마지막으로 연출이 무척 세련되게 무대에 올려주었다. 여기에 지휘자 윤호근이 이끄는 챔버 피니의 탄탄한 반주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윤호근 지휘자는 최우정 작곡가가 완성한 음악을 아주 세심하게 분석해 연주를 이끌었다.

즉, 이번 공연은 '우리말의 장단과 고저, 리듬을 잘 살린 음악 덕분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대본 덕분이다', '창작오페라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등 여러 가지로 얘기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음악, 극작, 연출 간의 균형과 그것을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었던 점이 제일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창작오페라를 기존의 '오페라 음악'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극'이라는 보다 큰 것으로 보고 열린 사고로 접근하고 기다린 최우정 작곡가의 대범함과 노련함, 최고의 대본가의 위치에서 작곡가와의 협업과 긴밀한 작업이 어쩌면 불편했을 텐데도 마찬가지로 열린 사고로 함께 한 고연옥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작품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고 나열할 것이 많다. 너무 칭찬일색인 것 같아 한 마디 덧붙이자면, 좋은 공연 중에서 그것이 특히나 좋은 창작오페라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칭찬을 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작오페라에 대해 너무나도 목말라 있었고 또 항상 목마르기 때문이다. 한국 오페라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창작오페라 역사와 작품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반인이 정확히 제목을 알 수 있는 창작오페라는 없는 것일까.

한국인에게 과연 우리말로 되고 우리가 창작한 '오페라'가 있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너 왜 음악을 하니?"라고 묻는 편이 낫다. 그것 또한 왜냐하면 좋은 예술, 좋은 음악, 좋은 공연은 그것의 필요성 이전에 직관적으로 그것의 존재함을 우리는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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