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이 바그너 <탄호이저>를 17일부터 2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중이다.
이번 공연은 바그너 음악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트려 주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바그너 <탄호이저>가 1979년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한국초연 된 지 45년만에 이제야 공연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나 푸치니 <라 보엠>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문학과 음악에 심취했었고 때문에 '총체극'의 창시자이기도 한 바그너(1823-1883)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를 이번 오페라를 통해 잘 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이 여덟번째 바그너 연출이라는 요나킴 연출은 실시간 카메라 영상이 음악을 잘 해석하도록 이끌었다. 무대위에 주인공이 뒷모습인 순간, 영상에서는 극대적으로 크게 주인공의 얼굴과 눈동자 심지어 주름까지도 자세하게 보인다.
이렇게 관객은 영상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읽게 되어 영상 속이 오히려 21세기 현실처럼 느껴지게 된다. 마치 흑백무성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이는 독일어를 몰라도, 한글자막을 읽지 않아도 그 표정을 통해 음악을, 서사를 이해하게끔 하는 대단한 장치였다.
지금은 넷플릭스로 '흑백요리사'를 정주행하고,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e-book으로 편하게 다운로드 받아서 하루에도 두 세권 책을 읽을 수 있는 버튼의 시대다.
그 시대에 우리가 바그너를 보아야,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을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탄호이저>, 장장 3시간이 넘는 오페라, 원래는 그 넘치는 선율때문에 압도당해서 때로는 흐름을 놓치고 잠을 자게 만드는, 그 오페라를, 이번에는 전혀 지루할 틈 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인생전체를 성찰하고, 기도하듯이 간구하는 느낌이 스며들도록 요나김 연출은 잘 연출한 것이다.
바그너를 보는데, 마치 한강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육체를 상징하는 베누스와 정신을 상징하는 엘리자베트가 하나의 면사포를 쓰고 있는 장면, 무대 뒤에서의 여성 합창, 국립합창단과 노이오페라코러스가 객석에서 들어오는 장면들로 단순히 다채로움을 준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해당장면을 최적으로 알리는 관건이었기 때문이 사용한 장치임을 알게 해주었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연출이 잘 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오페라를 보는 과정을 통해 결국은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그너 오페라에서 긴 여정을 알리는 찬란한 금관의 선율, 인생 한복판처럼 옥타브를 넘나들며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현악기 선율.
음유시인 탄호이저의 여정이 결국 우리인생이라는 것을 영상기법과 무대위의 십자가, 흑과 백의 대조, 1막 침실과 2막 재판정 무대의 대조, 그리고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의 붉은색으로 상징을 통해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최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오페라 반주에서도 대활약 중이다. 이번에 지휘를 맡은 필립 오갱은 지난 15일 드레스리허설에서 금관의 Bb 지속음을 위해 오보에에게 튜닝음인 A음을 연주해 달라고 한 뒤, 여기에 맞춰 바로 윗 음인 Bb음을 금관에게 다시 연주하도록 하는 등 세부까지도 다듬고 있었다. 그 효과는 바로 이틀 뒤 17일 개막공연에서 음악이 이틀사이 더욱 웅장하고 기품이 있어지면서 관객에게 안정적인 바그너를 들려주어 증명되었다.
당연히 성악가들의 노래와 연기는 일등공신이다. 테너 하이코 뵈르너는 집중어린 표정과 힘찬 음색으로 방황하고 고뇌하는 탄호이저를 잘 표현해주었다. 엘리자베스 역 소프라노 레나 쿠츠너는 압도적인 성량과 순수한 연기를 선보였으며, 베누스 역 메조 소프라노 쥘리 로바르-장드르는 1막과 3막에서는 훌륭한 노래를, 2막에서는 코끝과 눈동자로도 연기하는 풍부한 표정연기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바리톤 톰 에릭 리 또한 중후한 목소리로 신사적인 볼프람 역을 선보였다.
인터미션 때 잘 생긴 남자관객이 다른 여자 관객에게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고, 2막 후 옆 좌석 관객은 무대커튼 가득 보이는 정면의 바그너 얼굴을 보며 “못 쳐다보겠지. 우리 쳐다보는 것 같지?”라고 동행에게 얘기했다.
진짜 그랬다. 너무나 황송해 그 무대커튼에 있는 바그너 얼굴을 못 보겠었다. 우리를 꿰뚫는 것 같은 시선, 그런데 재밌었던 장면은 연출가 자신이 그런 시선으로 이 오페라 안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바그너의 나르시즘처럼 연출가 요나 김의 나르시즘을 느꼈는데, 어디인가 하면 2막 재판정 장면에서 무대 양 끝에 타자를 치는 여성 서기관 장면에서였다. 짙은 뿔테 안경을 쓰고 무대 속 주인공들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겠다는 듯이 열띤 타이핑을 한다. 보자마자, “앗! 김연출 본인이구나" 싶었다. 마치 영화에서 작가나 감독이 단역으로 한 구석에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그너 음악의 나르시즘에 빠져보자. 어렵지 않다. 공연은 예술의 전당에서 20일까지. 19일은 NAVER TV로도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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