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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소영 크리틱뮤지킹4: 작곡가 초청시리즈 - 김대성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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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미디어 2025. 4. 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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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크리틱뮤지킹4: 작곡가 초청시리즈- 김대성편 대담중인 이소영 평론가(왼쪽), 김대성 작곡가.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3월 25일 화요일 모차르트홀에서 '이소영 크리틱뮤지킹4: 작곡가 초청시리즈 - 김대성'이 진행되었다.

 

크리틱 뮤지킹(critic musicking)은 평론가로서 이소영이 ‘비평적 음악하기(=음악활동)’를 시도하면서 ‘오늘, 여기’의 건강한 음악 생태계를 일구고자 마련한 양악과 국악을 횡단하는 한국음악 현장비평이다.

 

이소영의 초청시리즈는 평론가이자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이론가 故 이강숙(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초청시리즈를 롤모델로 했다. “이강숙 선생님은 바쁘셔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다섯 번 하셨는데, 저는 시간이 많으니 열 번을 채우겠습니다”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소영은 김대성과 스무살부터 40년지기 친구인데, 그를 통해서 김순남, 토루 타케미추와 박흥남을 알게 된 영향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제 뮤지킹에 이제야 초청해 늦은감이 있는데요(웃음). 김대성은 20대 초반에 작곡가로 데뷔해 제3세대 동인으로 90년대부터 제도권에서 활동하며, 특히 머리로 쓰는 작곡가가 아니라 땅을 밟으며 몸으로 하는 작곡가로 많은 이에게 롤모델이 된다”라고 소개했다.

 

첫 곡으로 대금과 피아노를 위한 '청'(2008)이 연주되었다. 정악대금의 명곡 ‘청성곡(淸聲曲)’에서 영감을 얻은 곡으로 무조와 불협화음이 가미되어, 시김새와 주욱 뻗는 선율이 시원한 대금과, 장구반주 역할을 아르페지오로 담대하게 펼쳐내는 피아노가 서로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김대성과의 대담이 ‘땅밟기, 소통, 고구려’를 키워드로 이어졌다.

 

땅밟기란 전국 곳곳을 다니며 민요나 풍물을 채보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전통음악에 관심이 있던 김대성은 1989년부터 선생님들이 민요채집하는 것을 쫓아다녔고, 199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스로 민요채집을 했다.

 

민요채집을 하면서 그는 무한한 행복감과 자유, 그리고 자신은 경험해보지 못한 성음의 신비함을 체험했다. “지금까지도 ‘땅밟기’를 계속해오는데 최근에도 '우륵'이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 경북 고령을 다녀오고는 16분짜리 곡을 3일 만에 완성할 정도로 땅밟기는 제게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이소영은 “현장의 기를 받고 체화시켜 곡을 쓰는 것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에 김대성이 “더 놀라운 것은 현장에 가면 관련된 조상님들이 진짜로 나타난다.

 

김소희(1917~1995) 선생님도 나타나고, 전라도 장흥에 가면 최옥산(1905~1956) 선생님이 나타나셔서 굉장히 귀중한 악보도 주시고 한다. 이런 일들이 많다”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어 박흥남(1920~2006)의 '산유화가' 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소영은 “‘산유화가’는 모내기할 때 부르는 노동요인데 김대성 선생은 몇 곡 정도의 노동요, 민요를 채보하셨는가” 질문했다.

 

이에 김대성은 “수백곡”이라 답했다. “한두곡 정도면 이해해도 수백곡은 굉장하다. 민요학자도 아닌데 이렇게 채보한 것이 김대성 작곡가를 형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의 민요, 풍물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다.

 

이에 김대성은 “제가 민요채집을 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좋아할 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굿음악도 현장에서 들으면 다르고 민요는 더하고요. 또 사람을 만나잖아요.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역사, 그리고 애정, 이런 걸 기를 받으면서 이 음악이 소중해졌고 연구하고 체화시키면서 노력을 하게 된 것 같다. 또한 박홍남 선생님께 장구를 배우고 장단을 배우면서, 전통음악의 장단은 곧 호흡이고 음양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김대성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작곡가로 김순남, 벨라 바르톡, 토루 타케미츠, 이건용 등을 꼽았다. 김순남(1917~1982)은 월북했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다가 1986년 해금이 되고 악보 등이 공개되며 음악계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김대성은 "그 분의 정신과 민족애, 그리고 슬픔, 특히 화성적 선율적인 면이나 윤이상 선생님과 다른 면에서의 한국음악의 가능성을 제게 알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순서로 연주된 김대성 '다랑쉬' (해금 박솔지, 피아노 김명현)

 

다음으로 피아노 솔로곡 '달무리'(1992)를 연주했다. 아르페지오와 트레몰로가 3채가락과 경기도당굿의 당악 장단 속에서 계면조와 불협화음의 섞임으로 밤의 어둠과 달 주변의 어스름한 띠 모양과 그 강렬한 빛의 인상을 화려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작곡가는 “나는 한국전통음악에 접근할 때의 소재주의를 탈피하고 싶다“고 하며 이 곡을 썼다고 했다.

 

‘고구려’를 주제로 후반부 대담이 이어졌다. 김대성은 고구려에 대해 초등학교 때부터 관심이 많았고 도올 김용옥 선생의 고구려 책 등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고구려 땅을 못 밟아본 채 아무리 곡을 쓴 들 고구려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고구려땅을 밟을 방법을 생각을 하다가 김용만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12일 정도 고구려 땅, 천리장성을 밟으면서 열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마치 우리 땅에 가 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안시성에 꽃이 피어있는데 아름다워서 그걸 보고 ‘금잔디’라는 작품을 썼다. 

 

만주벌판에 숨어있는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작품에서 관념적이었던 것이 조금 더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김대성에게 고구려는 “우리민족의 자부심, 기상 그리고 미래(통일과 더불어)” 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교향곡 '고구려'의 1,2,3악장 스케치 끝내고 오케스트레이션 중이다. 

 

게스트 원일과의 순서가 이어졌다. 그는 김대성이 도당굿, 별신굿 장단을 잘 쓰는 작곡가라고 생각한다면서 “제가 대학교 들어갈 때 타악전공이 처음 생겼거든요. 굿장단은 발굴이 아직 안 되었기 때문에 대학에서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제가 유학 안 가게 된 계기도 그 때가 ethnomusicology 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가 이제 막 오갈땐데 어느날 예술진흥원에 시청각실에 가서 70년대의 경기도당굿 자료를 보니 굉장히 충격적인 거예요. '아니, 내가 이것도 모르는데 다른나라 가봤자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원일은 자신의 삶의 중요한 순간들, 그리고 김대성 작곡가가 땅 밟는 순간들에 함께 했었다고 했다. “국립청소년국악관현악단이 한예종을 거점으로 처음 만들어졌을 때 제가 지휘하면서 가장 많이 연주했던 곡이 바로 김대성선생님 곡이었다.

 

장단이 복잡해지면서 고차원적이라 할까. 제가 지휘자로서 청소년 단원들과 함께 희열을 느꼈고, 그 때 '청산'과 '열반'등이 대표적으로 국악관현악의 완성도를 한 단계 높인 작품이었다”라고 말했다.

 

국악관현악에  본격적인 장단이 세밀하게 들어가서 그것이 관현악적 체제로서 완성이 된 것은 김대성의 작품으로부터 당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후반부 두 곡이 연주되었다. 대금 독주를 위한 '대숲소리'(2007)는 2007년 작곡가가 전남 화순을 여행했을 때 느꼈던 자연을 담은 곡으로 시원한 자연과 풍부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웅대하게 품은 곡이었다.

 

그 다음 해금과 피아노를 위한 '다랑쉬'(2002/2025 개작초연) 연주가 이어졌다. 이 곡은 2002년 해금연구회 위촉으로 작곡되고 김대성의 곡 중 가장 다양한 편성으로 편곡되었다.

 

제주 4,3항쟁 때 제주 ‘다랑쉬’ 동굴에서 죽어간 사람들, 특히 10세 어린이 ‘이재수’에 대한 추모가 각별히 담겼다. 해금의 처연한 선율과 피아노의 징과 같은 울림이 시큰한 눈물과 아련함을 주면서도, 역동적이고 불운한 역사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mazlae@daum.net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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