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페라앙상블 '광대들' 한장면.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뒷골목 서커스단의 모습을 배경으로 살렸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연출 장수동)의 <광대들>(원작 Pagliacci) 1막 마지막 장면에서 유명아리아 ‘Vesti la giubba’가 “의상을 입고”라는 우리말 가사로 울려퍼진다. 이 아리아의 기존 원어 공연에서는 이탈리아어 공명의 팽팽한 호흡으로부터 처절함과 한편의 복수심마저 느껴졌다면, 이 공연의 우리말로 발음하는 재석(원작의 ‘카니오’)의 노래에서는 초성·중성·종성으로 완결되는 한글 음절의 단단한 리듬과 글자 구조때문인지 인생에 대한 체념과 정직한 한 인간이 느껴졌다.
이번 <광대들>의 원작은 레온카발로 작곡의 <팔리아치>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번안오페라 <광대들>은 2003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된 후 여러 번 공연되며 오페라에 대한 선입견을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6년 <광대들>은 이 2003년 버전에 더해 1970년대 청계천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2막 극중극 장면은 신라시대 처용설화로 바꿔 무대에도 처용의 그림으로 분위기를 잡는 등 우리 문화 속 장면을 오페라에 녹여냈다.
1994년 “창작오페라 발굴”과 “오페라 전문화”를 목표로 창단된 서울오페라앙상블은 1994년 댄스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레장드>를 창단 공연으로 하여 같은 해에 이미 창작오페라 <오따아 줄리아의 순교>를 공연했다. 번안 오페라는 1997년 초연한 <서울 라보엠>이 2002년에는 전국 순회공연을 했으며, 이번에 공연한 <광대들>은 야외오페라 <팔리아치>로서 2003년 국립극장과 남양주 세계야외축제에서 공연되면서 아마도 이번 번안오페라 <광대들>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30년 넘게 서울오페라앙상블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작게는 3회, 많게는 9회의 공연을 해 왔으니 민간오페라단으로서는 대단한 집념과 기록이다.
20일 공연의 태석(원작의 카니오) 역 테너 김중일, 애란(넷다) 소프라노 이소연.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지난 10년 동안 2017년 <붉은 자화상>(고태암 작곡), <나비의 꿈>(나실인 작곡), 2021년 <빛 아이 어둠아이>(신동일 작곡), 2022년 <장총>(안효영 작곡)과 <취화선>(이근형 작곡), 2024년 <사막 위 디아스포라>(오예승 작곡) 등 창작오페라 초연과 재공연에 집중해 오다가 2025년부터 다시 번안오페라 작업을 하고 있다. <섬진강 나루>(2025.5)는 브리튼의 오페라 <도요새의 강>을 우리말로 번안하면서 8.15광복, 6.25전쟁, 세월호 사건 등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위한 레퀴엠으로 만들었고, <서울 에우리디체>(2025.12)에서는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광화문 지하철 배경으로 하고 진도 씻김굿도 접목하여 우리화 된 오페라로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번안 오페라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원작의 작곡가는 가사의 운율에 따라 곡을 지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를 우리말로 바꿔서 기존선율에 불렀을 때는 음악의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원어의 자음으로부터 오는 힘과 모음으로부터 오는 공명의 전달이 우리말 번안 노래에서는 어쩔 수 없이 확연히 달라져서 이를 노래하는 성악가들은 이전과는 다른 성악법을 구사해야 한다.
또한, 원곡에서 원어 선율과 리듬에 맞춰진 오케스트라 리듬과 음의 힘이, 번안 오페라 경우에는 번안 성악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균형이 맞지 않게 된다. 예를 들자면, 오케스트라는 소용돌이 치는데 우리말은 한 음절씩 끊어지기 때문에 원어에 비해 음의 추진력과 지속력이 약하다.
이런 문제를 서울오페라앙상블에서는 마포아트센터 공연장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케스트라 규모를 줄여 음압을 낮추어서 관객이 성악가의 우리말 가사를 듣고 극을 파악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았다. 원작인 레온카발로의 유려한 선율 그대로에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니 자막을 때마다 안 봐도 극의 흐름을 관객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글링, 곡예 등으로 막간극을 펼쳐 주의를 환기하며 2막 광대극 내용에 몰입하게 도왔다. 서커스아트컴퍼니모빌.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한국 오페라 찾기와 직결된다. 서양예술인 오페라인데, 번안 작품을 하나도 해보지 않고 한국어 창작오페라만 무수히 만든다고 해서 우리가 오페라 종주국이 되지는 않는다. 서양 예술가들이 공연하는 한국어 오페라가 만들어지려면, 그 반대로 기존 서양 오페라를 우리 입장에서 다각도로 분석하여 그 구조와 요소를 이해하고 우리 문화에서 적용하는 기초의 단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의 얼굴을 한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가 모토인 서울오페라앙상블이 번안 오페라 공연에 힘을 쏟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한국 대중문화예술계는 한류바람을 일으키며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영화에서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에서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대중가요에서는 BTS가 2021년에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아시아 최초 수상,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다수 수상했다. 2024년에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의 쾌거를 이루었으며, 2025년 한국 창작 뮤지컬 <Maybe Happy Ending>은 브로드웨이 최고 권위인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 등 6관왕을 차지했다. <KPop Demon Hunters>는 2026년 아카데미상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으로 2관왕을 했다.
이 분야들은 영화에서는 우리말 더빙, 문학에서는 한글 번역서, 그리고 번안가요, 번안 뮤지컬 등 우리화 하여 이해하고 무엇보다 전파하는 노력이 컸던 장르들이다. 보존과 보급은 다른 바, 누군가는 필요성을 알고 좋은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향유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보급을 한 결과가 지금의 한류문화를 만든 것이다.
19, 21일 공연. 왼쪽부터 테너 조철희(모모=페페), 바리톤 장철(용만=토니오), 소프라노 강효진(애란=넷다).
이제는 우리 한국 오페라 차례다. 해방 이후 1948년 <라 트라비아타>가 첫 공연되었고, 1950년 현제명의 <춘향전>이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이래 오페라 역사 80년이 다 되어가는 한국 오페라는 앞으로 세계 오페라사에서 어떤 일을 해 나가야 할지 크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건설강국이라서 지난 10년간은 특히 각 지역별 문예회관도 많아졌으며, 또한 2026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부산 오페라하우스를 건설 중인 이 시점에서, 오페라를 단지 서양 예술로 계속해서 수입만 할 것인지, 아니면 성악가, 연출가, 창작 등에서 우리 손의 예술이 되도록 일굴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오페라는 클래식의 범주이니 위에 열거한 대중문화예술과 다르지 않느냐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립오페라단부터 많은 민간오페라단의 목표에 ‘오페라 대중화’가 늘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장르는 클래식 기악 음악과는 다르게 인간 삶의 이야기를 말이 음악으로 표현된 노래로 다루어왔으며, 합창과 오케스트라, 무용단과 연기자까지 최소 수십명부터 백명 넘게 수개월 작품을 해야 하는 장르다. 대본가와 작곡가의 품 안에 있을 때는 뜬구름처럼 여겨지거나 외로울 수 있어도, 연출가를 만나고 무대 위 성악가와 합창단,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무대미술과 무용과 조명, 영상과 만나면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활발히 살아 움직이며 여러 사람이 연구하며 시간을 쓸 수 있는 일거리를 제공한다는 말이다.
비극적 결말의 광대들. 19, 21일 공연 테너 이규철(태석=카니오), 소프라노 강효진(애란=넷다)
지난 시절 한국 클래식계에서 유수의 세계 콩쿨 석권에는 성악 부문의 쾌거도 있고, 세계 유수 오페라극장에 한국 성악가들이 주역으로 일하고 있으니 충분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AI로 작곡과 노래가 가능한 지금 2026년, 왜 한국 땅에서 서양예술인 오페라를, 굳이 한국 창작오페라로 만들고, 번안 오페라를 해야만 하는지는 지난 30년간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이 대한민국의 무수한 공연장을 수없이 누비며 오로지 오페라를 위해, 오페라에게 물어보며, 오페라 현장에서 수많은 공연자들과 몸으로 부딪치고 느끼며 체득한 결과값이라는 것을 이 글에서는 말하고 싶다.
결국 우리 것을, 내 것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노래 부를 수 있는 우리에게 오페라는 남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음악답게 오페라답게 조화롭게 무대를 만드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이번 <광대들>에게도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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