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新음악회 제38회 작품발표회에서 NFA 앙상블의 유연주(바이올린), 권재희(클라리넷, NFA 뮤직
리더), 홍진호(첼로)가 박순영 작곡의 'Ripple of Notes'를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박순영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쌀쌀해진 날씨에 단풍조차 즐기기 어려운 가을이다. 하지만 이 계절은 지난 1년의 노력의 결실을 공연으로 풀어내야 하는 예술인들에게는 가장 바쁜 계절이다.
지난 1일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新음악회(회장 이상인, 이하 신음악회) 제38회 작품발표회가 신음악회 주최, 현대문화기획 주관으로 열렸다. 기존에는 창작 음악 작품발표와 논문발표를 진행해 '신음악학회'였지만, 올해부터는 작곡가들의 창작곡 발표와 연주에 중점을 두고자 '신음악회'로 이름을 바꿨다.
작곡 단체의 정기공연은 작곡가들이 1~2년을 두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처음 연주하는, 초연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작곡가들에게나 관객에게나 의미 있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
작곡가로서는 악보 위에 몇 달, 1년 넘게 걸려 머릿속에 있던 하나의 작품을 오선지에 옮길 때까지 최선의 소임을 다하면 이후는 연주자의 몫이다. 연주자와의 연습과정에서 고난도의 기교, 빠른 리듬, 어려운 운지, 충돌되는 화음 등 현대음악 특유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작곡가와 연주자가 소통하는 것이 우선적인 1차 관문이다.
이날 연주는 NFA뮤직앙상블의 연주로 진행됐다. 첫 순서는 정유식 작곡가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불꽃(flame)'였다. 고음의 신비한 톤 클러스터로 천천히 시작해 점차로 빨라진다. 2도와 7도의 충돌은 때로는 3도 6도 협화로 안착하기도 한다. 점차 톤 클러스터는 빠른 16분음표 아르페지오를 동반해 불꽃처럼 격렬하게 진행한다. 피아노의 김해리는 어려운 곡인데도 전혀 힘든 기운 없이 대담한 호흡과 안정성, 민첩함으로 연주했다.
김지현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망각'은 기억을 찾는 과정의 느낌이 잘 드러났다. 바이올린의 유연주는 시작부터 하이포지션의 고음들과 술 폰티첼로, 하모닉스의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기억의 음향을 충실하고도 격정적으로 잘 표현해주었다. 작곡가는 짧은 순간에도 바이올린의 중저음과 고음을 트레몰로, 트릴, 아르페지오 등으로 쉼 없이 오르내리도록 독주의 기교를 극대화하며, 피아노 반주도 바이올린과의 대등한 앙상블을 이루도록 안배한 점이 느껴졌다.
다음으로 박순영의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Ripple of Notes'가 이어졌다. 1악장은 C#음에서 출발해 인접음과의 짧은 단편을 악기 간 빠르게 주고받는 긴장감이 좋았다. 2악장은 16분음표와 트레몰로의 연속으로 흐르는 물처럼 선율이 이어진다. 클라리넷 솔로로 시작하는 3악장은 글리산도, 5도 트레몰로 등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움직임이 물결치듯 소용돌이쳤다. 연주의 최재희(클라리넷), 유연주(바이올린), 첼로(홍진호)는 서로의 에너지를 느끼면서 충분한 앙상블을 멋지게 선보였다.
▲참여 작곡가들. 왼쪽부터 정유식(NFA뮤직 상임작곡가), 이상인(성결대 교수), 김자현
(군포문화재단 강사), 이남림(작곡동인 델로스 회장), 김지현(숙대,가천대 강사),
박순영(창작집합소 물오름 작곡가). ⓒ 박순영
김자현의 'Piano Trio No.1'은 이날 곡 중 유일하게 조성곡이라 눈에 띄었다. 재즈풍의 앞 꾸밈음과 싱코페이션 연속으로 쉬지 않고 달리는 조급함이 바이올린과 첼로의 옥타브 중복으로 강렬하게 표현된다. 중간부에는 쌓이는 불안감을 A조의 느린템포로, 마지막은 결국 다시 달려야 하는 상황을 익살스러운 제스처로 그렸다. 연주자들 또한 불협화음과 복잡한 리듬이 아닌 경쾌한 선율선을 무척 즐기며 풍부한 표현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남림의 클라리넷 솔로를 위한 'Sanjo'는 고독한 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한국적 정취로 표현했다. 차분한 저음으로 시작해 트릴, 아르페지오, 글리산도, 꺾는 음을 표현한 앞 꾸밈음 등 고음까지 올라갔다가 한 호흡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한 호흡이 시작되는 윤곽선이 특징이었다. NFA앙상블 리더인 권재희는 트릴, 아르페지오, 글리산도, 꺾는 음을 표현한 앞 꾸밈음 등 다양한 운지와 기법의 이 솔로곡을 차분하고도 관조적으로 다양한 표정을 실으며 훌륭하게 연주했다.
마지막은 이상인의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바람의 노래'였다. 편성도 제일 컸지만, '바람'의 속성을 현악기의 꼴레뇨, 관악기의 오버블로잉, 플라터 텅잉, 클라리넷의 키클릭 등 현대기법을 살려 표현한 시도가 새로웠다. 잔잔한 바람의 소리와 잔 나뭇가지가 떨고 낙엽이 나부끼는 모습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음향을 통해 눈앞에 그려졌다. 중간부 이후에는 움직임이 고조되어 충만한 리듬선율이 되는데, 박진감 넘치는 다이내믹과 리듬감으로 연주자들은 열정을 다하였다.
▲이상인의 '바람의 노래' 리허설 모습의 NFA뮤직앙상블. 곡의 잔잔함부터 격렬함까지 서로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호흡하는 모습에서 집중력이 느껴졌다. 뒤왼쪽부터 김해리(피아노), 이영기(플루트),
유연주(바이올린), 홍진호(첼로), 권재희(클라리넷, NFA뮤직 리더) ⓒ 박순영
여섯 작품이 솔로부터 5인 앙상블까지 다양한 편성에, 주제와 각 작곡가의 기법이 서로 다른 개성의 잘 조직된 작품들로 무척 작곡에 심혈을 기울인 모습이 보였다. NFA앙상블의 연주 또한 어려운 현대음악의 기교를 잘 살리며 각 작품의 특징을 충분히 부각해 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참여 작곡가들과 협회 회원들, 초대 관객들은 "작품이 모두 수준 있고 편성도 이번 공연만으로 한 번만 듣기엔 아깝다"고 입을 모으며, 음반, 공연실황 공개 등 다양한 방법을 의논했다. 다양한 표현과 아름다운 음악이 충만했던 곳에 많은 분이 함께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공연에 대한 충분한 사전홍보와 본 단체의 활동을 좀 더 알리려는 노력, 더 나아가서 현대음악, 창작 음악, 순수음악 분야를 대중에게 더 어필할 방법은 끊임없이 모색해야겠다.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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