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혜성이 Beat Furrer의 'Phasma for Piano'를 연주하고 있다. 손이 아니라 팔을 눕혀 클러스터 음을 내는 방식이 신기하다.  ⓒ 윤혜성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88개의 피아노 건반 위에서 손이 춤춘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윤혜성의 피아노 위에서는 춤추는 것이 손만이 아니다. 팔목도 춤추고, 타자기도 춤추고, 고무도 춤춘다.

<윤혜성 피아노 독주회>가 지난 1월 26일 저녁 7시 30분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열렸다. 윤혜성은 서울예고 졸업, 삼익콩쿨, 한국일보콩쿨, 음연콩쿨에서 모두 1위를 하였으며, 독일 쾰른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 현대음악 석사과정, 세계적인 현대 음악 전문단체인 독일 앙상블 모데른의 아카데미(IEMA) 장학생, 칼스루헤 현대음악 국제콩쿨 연주부문 1위 등 국내외 정통클래식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피아노 세계의 확장된 모습을 선보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독주회에서 윤혜성은 박정은, Witold Lutoslawski, 박명훈, Beat Furrer의 작품을 연주하며 피아노 본연의 연주법이나 음색 뿐 아니라 사물들과의 관계로부터 획득한 음색과 다양한 연주방법을 보여주었다.

첫 순서는 박정은의 <"몸짓들"을 위한 피아노>(2021, 세계초연)은 세 개의 곡으로 구성되었다. 곡 전체적으로 타자기의 딸깍딸깍 움직임과 쉼, 박자, 재질, 리듬, 사유, 들숨, 한숨, 그런 것이 1곡의 첫 피아노 음형과 잔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전체 곡의 원동력이 되었다. 1곡은 '글쓰기의 몸짓'이었다. 타자기로 글 쓸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쓴 후 아랫칸으로 이동하는 것을 빠른 음형과 쉼, 그리고 이것의 점층적인 반복으로 표현했다.

강렬한 클러스터 음형으로부터 소용돌이치는 아르페지오가 매력적이다. 또한 프리페어드 피아노(피아노 현에 고무, 금속 등 일상물건을 끼워 색다른 음색을 얻는 기법)의 저음에서 고무 낀 음색이 좋았다. 중간부에는 피아노 위에 타자기를 아예 올려놓고 치는데 이것이 첫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일깨워준다. 나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주변 사람들이 "피아노 치는 것 같아요"하는 말을 듣는데, 이 곡에서도 피아노와 타자기가 동질화되는 과정이 재밌었다.

2곡은 '음악을 듣는 몸짓에 대하여'였고, 3곡 '탐구의 몸짓'은 풍선 바람넣는 도구 등 일상물건을 현에 대고 실험하는 모습 등으로 표현했다. 박정은이 빌렘 플루서의 <몸짓들: 현상학 시론>에서 이 곡의 영감을 얻었다면, 나는 그녀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 곡의 기법도 좋았지만 이러한 접근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들었고, 현대음악, 새로운 음향에 대한 감상의 이유가 이 곡으로부터 비로소 느껴졌다. 박정은은 참 대단하다.

두 번째 순서로 Witold Lutoslawski의 <Variation on a Theme by Paganini for 2 Pianos>(1941)는 Jared Redmond가 제2피아노를 연주하며 제1피아노의 윤혜성과 함께 기교와 서정이 충만한 연주를 선보였다. 첫 주제가 이내 한두개씩 불협화음과 3연음부, 32분음표, 꾸밈음 등으로 음폭을 넓히며 매력을 더해갔다. 주제로부터 1, 2 변주가 멋지게 연주되자, 내 앞자리에 앉은 아마도 피아니스트 윤혜성의 제자로 보이는 두 명의 어린이가 "우리 선생님 대단하다!"는 듯한 황홀한 눈길을 서로 주고 받고 있었다.

특히 전환점이 되는 6변주는 제2피아노가 고음 주제음으로 순차 하행하고, 제1피아노는 저음부터 상행하는데 이 느린 잔잔한 화음은, 마치 남녀가 이제야 서로를 알아보는 듯한 뭉클한 감정을 일으켰다. 거울처럼 투명한 7변주, 속주하는 기차 같은 8변주를 지나, 9변주에서 제2피아노는 고음의 강렬한 선율을 연주하고, 10변주는 클러스터와 아르페지오의 익살이 경쾌하다. 대망의 11변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화려한 마천루 같은 위용과 웅장함이 두 피아니스트의 열정과 파워의 연주로 시원하게 마무리 되었다.

 

▲ '윤혜성 피아노 독주회' 포스터. 박정은, Beat Furrer, 박명훈, Witold Lutoslawski의 작품으로 다채로운 현대음악 피아노 음향의 세계를 선보였다.  ⓒ 윤혜성

전반부 마지막은 박명훈의 <雪夜(눈오는 밤) for Piano and Live-electronics>(2021, 세계초연)였다. 프로그램지에 작곡가가 전라북도 완주의 어느 고택에 머물렀을 때의 밤 풍경을 표현한 곡이라고 적혀 있었다. 첫 눈 알갱이 같은 고음 피아노 소리로 시작해 그 뒤 곡선의 '띠용'거리는 전자음향 소리가 뒤따라간다. 저음으로 눈이 겹겹이 쌓이고, 흰 눈은 쌓여 서로를 비추고, 그 속에서 중음역대로 물길이 이동하고 서로 부딪히고 녹는다. 알알이 부서지는 눈의 입자들, 좁은 공간의 울림과 정처없는 헤매임, 이로부터 점점 커지는 공포감과 한편의 경이감이 피아노와 전자음향에서 느껴졌다.

이 곡의 두번째 부분은 쌓인 눈이 쓸려지는 소리를 표현했는데, 이 사포 같은 소리가 특히 청량감을 주며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피아노의 저음과 고음이 대비되며 빠른 속도로 무너져내린다. 소리 자체의 물리적인 속성이 잘 분석되어 논리적으로 구조화되니 그리려던 형상과 잘 맞아떨어져 감성적인 정취가 있었다. 이게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술 먹고 해장한 느낌이랄까? 현대음악이 연구하는 음악이지만 소리 자체만을 위한 음악, 골방에 갇힌 음악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들 작곡가들의 연구와 그로부터의 해소는 그 어느 해갈보다도 크다. 

인터미션 후 Beat Furrer의 작품이라 기대를 하며 2부 시작을 기다렸다. 곧 윤혜성이 다시 무대에 등장해 인사를 했다. 불현듯 의상컨셉이 뭘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 검은 시스루 블라우스의 양쪽 팔을 가로로 길게 눕혀 건반을 팔 안쪽으로 살며시 누르면서 악보를 올려다 본다. Beat Furrer의 <Phasma for Piano>(2002, 한국초연)가 시작된 것이다.

팔을 눕혀 건반을 치기 위해 허리를 숙인 자세가 흡사 윗사람에게 조아리거나 절하는 자세 비슷했는데 이렇게 피아노를 우러러 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런 자세가 그 클러스터음을 치는 동안 계속되는데, 피아노를 이렇게 계속 치나 궁금해졌다. 그 자세는, 즉 팔로 치는 클러스터 음은 앞 2분여 정도 계속되었다.

Phasma는 '유령, 귀신'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그 클러스터음이 유령이었을까. 작곡가는 고속열차 주행 중에 창밖을 내다볼 때 먼 물체는 고정되고, 가까운 물체는 빠르게 지나가는 그 대비를 표현했다고 한다. 피아노 현에는 고무를 댄 것 같은 음색도 나고, 피아노 현을 연주하기도 한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빠른 스케일로 상행, 마지막엔 계속 피아노의 제일 높은 C 음을 "도,도,도..." 하고 치고 갑자기 양손 팔로 '쾅' 하고 격렬하게 친 후 다시 앞부분처럼 반복한다.

내가 쉼표와 간헐적인 음표의 앙상블 연주 때에 쉼표와 음표 사이에 악기 주자간 느낌 연결이 잘 안되더라는 글을 일전에 쓴 적이 있다. 곡 후반부에는 이런 간헐적인 음의 연주가 있었다. 윤혜성의 음표와 쉼표는 안 지루하고 오히려 사유감이 느껴졌다. 스포르찬도의 고음 후 중음역대의 음이 페달로 지속되고, 마무리로 동시에 저음과 고음 스타카토를 하는 형태의 연결이 점점 반음씩 올라간다. 어디를 향해 달려갈까, 어느 음까지 올라가나 궁금하며 이제야 권태롭고 위태롭다고 느끼는 그 순간, 왼손과 오른손이 고음부에서 강렬히 겹치며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다. 

당신은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현대음악 연주회는 이렇게나 다채롭게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 이 날도 우리 빼놓을 수 없는 코로나 중 두 자리 띄어앉기의 현실이 슬펐다. 하지만 이 날 <윤혜성 피아노 독주회>에는 새해가 되어 한 살 더 먹어서도 두 자리 건너의 서로를 듣고, 현대음악 전문 연주자 윤혜성이 각별히 마련한 새로운 현대음악에 준비된 사람들이 모였다. 이렇게 2021년에도 모든 움직임과 음의 이동은 계속된다. 모든 것에 음이 있고, 어떤 것도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 당신만 열려 있다면 말이다. 

 

mazlae@daum.net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세상을 플레이하라! 오락, 엔터테인먼트 전문 뉴스 - 플레이뉴스 http://ewha.com

댓글을 달아 주세요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제48회 범음악제(2020 The 48th PAN Music Festival, 집행위원장 임종우)이 지난 115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한남동 일신홀 등지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한국 최초의 현대음악 페스티벌인 범음악제는 올해 임수연 피아니스트, 앙상블 EINS, Ensemble 거리, TIMF 앙상블 등 국내 최고 현대음악 연주단체를 초청하여 위촉 및 공모선정 작품과 해외 창작품을 소개하며 코로나 기간 현대음악 청취와 배움에 목말랐던 애호가 및 전문가 그룹의 환호 속에 공연되었다. 또한 올해 타계한 한국 현대음악 전자음악의 거장이자 범음악제의 설립자인 고 강석희의 <부루>, <석사자>등이 연주되며, 고인을 기념하는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

 

9일 올해 범음악제의 두번째 콘서트로 일신홀에서 열린 앙상블 EINS<Sound Texture & Composition>는 앙상블 아인스(예술감독 박명훈)의 숙련된 기교와 전문성으로 클래식 악기의 현대주법과 일곱 작품의 특색 있는 텍스처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김유신의 <보이는/보이지 않는 흐름들에서>(2020/세계초연, 위촉작품)공기흐름이라는 자연현상을 술 폰티첼로의 현악기, 아르페지오, 목관의 플라터 텅잉 등으로 밀도감 있게 잘 표현했다. 다리우스 프시빌스키의 <오닉스>(2010/국내초연)는 플루티스트 손소이와 오병철의 투명하고도 때론 세찬 바람소리의 연주에서 모래, 흙이 풍화되어 결이 만들어지고 변성되어 투명하게 암석화 되는 과정이 느껴졌다.

 

이윤석의 <->(2012/2015)은 피아노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피아니스트 윤혜성이 팔을 극저음과 극고음으로 벌려서 클러스터의 트레몰로로 순식간에 타격하는 강렬함과 빠른 아르페지오, 여기에 페달을 통한 피아노 잔향은 전자음향의 소용돌이처럼 새로운 음색을 선사했다. 김예지의 <충돌들>(2020)은 바이올린, 첼로의 주테, 술 폰티첼로, 클라리넷()의 입술소리, 키클릭 등 현대주법의 소리와 충돌, 그리고 이 충돌이 바이올리니스트 강민정이 몸으로 지휘자처럼 박자를 세면서 서로 조합되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며 작곡의도를 잘 살렸다.

 

베른트 리하리트 도이치의 <현악사중주 2>(2012)는 격렬한 저음 혹은 극고음 글리산도, 비올라의 더블스탑 피치카토 등에서 어떠한 동물의 울부짖음이 느껴졌다. 불협화음 반주 속에 비올라(이상민))가 길게 한 활로 하행 글리산도를 하고, 글리산도가 악기 간 이어져 하나의 큰 선율이 들린다. 신기한 것은 이 곡에서의 불협화음이 더 이상 그것이 아니라 더없이 아름다운 내 속에 내재된 욕구나 그것들의 형상인 듯이 느껴졌다. 중간부에 현악 연주자들이 발을 구르며 목소리로 외칠 때의 그 의외성이 주는 통쾌함이란! 마지막에 불협화음이 주는 불균형한 진동음 지속 위에 첼로(주윤아)의 우아한 선율이 피어오르니 더없이 우아했다.

 

10일 범음악제의 세 번째 콘서트는 앙상블 거리(음악감독 제러드 레드몬드)’<Tradition in the Present> 공연으로 국악기의 현대적 적용이 돋보였다. 첫 곡 황동찬의 <몰아>(2020/세계초연)는 생황(백다솜)이 몰아의 주체로 보였고, 그 신비롭고 미묘한 음색으로 시작해, 거문고를 해머로 두드리고 현을 술대로 문지르는 특수한 주법으로 몰입부터 몰아까지의 과정을 표현했다. 장은총의 <뒤틀림>(2020/세계초연)은 거문고(박정민) 독주의 기본주법을 더욱 부각시켜 현을 술대로 뜯는 기본방식을 응용하는 과정과 여백의 미가 좋았다. 남인성의 <메아리>(2020/세계초연)는 한 음의 끝에서 다른 악기가 맺거나 시작하는 방식으로 메아리를 표현했는데, 대금의 바람소리, 현악기의 콜레뇨, 그리고 점묘적이기 때문에 소리를 기대하는 순간의 느낌이 곡을 잘 진행시켰다.

 

박정은의 <사랑>(2020/세계초연)은 감정의 견줌과 어긋남을 아방가르드하게 잘 나타냈다. 피아노 현에 모터를 대고, 거문고를 빨래판처럼 활로 가로로 문지르고, 봉지를 현에 비비기도 한다. 이 주법들이 절정으로 격렬해지면서, 마지막에 악기주자 세 명이 양철통에 모터를 넣어 진동소리를 만들면서, 이 곡의 모든 진동들은 화합을 위한 과정이었음을 표현한다. 김정길의 <추초문>(1979)은 피리와 대금, 피아노와 첼로, 징이 한 음씩 천천히 고요하게 등장한다. 단아한 움직임이 허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를 위해 피어나는 집중력과 서로 간 화합을 위한 과정으로 느껴졌다. 들으면서 작곡의 목적과 시간진행이 탁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이 왔다.

 

 

마지막 순서 전에 고 강석희 작곡가의 추모영상이 상영되었다. 생전 활동모습과 함께 작곡은 발명이다. 음악의 시대정신은 다 같지 않은가. 첨단에 서서 갈고 닦아야 한다등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강석희의 <부루>(1976/국악기 편성 포함 세계초연)가 시작되었다. 작곡가는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정가처럼 인성으로 시작하는데, 이 노래가 녹음되고 전자음향(임종우)의 저음과 리버브로 증폭되어 스피커를 통해 공연장을 휘돈다. 무에서 무로, 유에서 유로 그 어둔 암흑 속에 빠질 때쯤 두 대 대금이 단아한 선율을 보탠다. 마지막 탐탐의 쇳소리가 귓가 뿐 아니라 몸 속 오장육부를 파고드는 듯 하며 강한 각성을 주었다.

 

12일 일원동 세라믹팔레스홀에서 열린 다섯번째 콘서트는 앙상블 TIMF<Expanding Tonality>공연으로, 조성을 확장시키거나 스펙트럴 음악 위주의 작품들이었다. 첫 곡 강석희의 <>(1970)은 작곡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플루트 작품이다. 한국 전통음악의 농현과 장식음을, 북처럼 역할하는 피아노 반주 위에서 플루트의 트릴, 플라터텅잉 등으로 연주하는데, 굉장히 기교적이면서도 색채감이 풍부했다. 마지막에 플루트의 마우스피스를 빼고 퉁소처럼 세워불며 고즈넉한 느낌을 주었다. 카이야 사리아호의 <빛과 물질>(2014)은 피아노의 Ab 중심음이 물질의 역할을 하며 배경을 제공하고, 바이올린의 술 폰티첼로와 직선적인 보잉이 빛을 쏘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이성현의 <옹드I>(2020/세계초연)에서 'Onde'는 프랑스어로 파도, 파동이라는 뜻으로, 이 표현을 위해 곡의 에너지가 상당했다. 1악장은 피아노와 비브라폰의 신비로운 울림으로 시작해 그 잔향 위에 클라리넷과 첼로가 연주한다. 현악기 하모닉스와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시종일관 트레몰로와 빠른 음표로 움직인다. 마지막 바이올린의 트레몰로와 베이스 드럼 등 타악기가 엄청 큰 소리로 연주한다. 2악장은 1악장보다 훨씬 그로테스크하고 소리가 크다. 긴 상행글리산도와 호루라기 소리도 들리고, 클러스터의 연속에 베이스 드럼과 탐탐이 호쾌하게 두들겨댄다. 이 곡 뿐 아니라 이날 작품들에서는 우리가 평소 생각했던 시끄러움이나 고요함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무질서해 보이는데, 각자의 방향성이 있고, 그것이 전체의 형상을 만드는 통쾌함이 있었다.

 

정세훈 <블루 속으로>(2020/세계초연) 역시 팀프 앙상블 15인 주자의 큰 편성이었다. 작곡가가 말하는 블루는 바다, 하늘, 마음 속 어디일 수 있다고 프로그램지에 씌여 있었다. 베이스 저음부터 중간음역대를 뚫고 나오는 금관, 고음의 플루트와 피콜로, 바이올린 고음 현의 메마른 음색까지 스펙트럴 음악의 미를 살린 큰 폭의 오케스트라 음 진동이 시작된다. 특정 멜로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단순한 선들을 각자의 음역에서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이 섞여 빛이 굴절되듯 혹은 파장이 서로 섞이듯 오케스트라 전체가 요동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곡 한스 아브라함센의 <그림동화>(1984) 또한 14인주자의 대편성이었다. 1악장에서 강한 트레몰로, 현악기가 이따금의 피치카토를 연주하는 등 각 개별악기의 움직임이 만드는 복잡 다단한 스펙트럴 뮤직의 헤테로포니적 성격이 동화적 색채를 준다. 2악장은 글로켄슈필의 활력이 경쾌하다. 현악기가 스피카토, 피아노, 플루트의 빠른 패시지로 오밀조밀한 이야기를 재잘거리는데, D조의 말러적 오케스트라 색채도 풍긴다. 3악장 스케르초는 5-7 악기씩 짝을 지어서 트럼펫이 주선율을 하며 두 개의 트리오가 각각 세번씩 나타나며 현악기가 고음으로 치달으며 신비로운 이야기를 끝맺는다.

 

1112일 일신홀에서의 범음악제 여섯 번째 피날레 콘서트는 앙상블 거리<Experimental & New Media>으로 비디오와 조명, 그리고 즉흥 실험의 작품들이었다. 첫 번째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의 <그림자극>(2004)은 흰 조명이 벽에 만든 거대한 피아노의 그림자, 그리고 피아노(제러드 레드몬드 연주) 피아노의 4도음정의 하행스케일을 24초후에 전자음향이 1/4음 위로 녹음재생되는 것이 시간차를 좁히며 끝없이 반복된다. 마치 골목에서 누군가가 쫓아오듯이. 조바심이 날 즈음 확 덮치며 강렬한 트레몰로에 붉은 조명으로 끝나며 여운과 강렬함을 남긴다.

 

강석희의 비디오를 위한 <석사자>(1990)80년대 초 송광사에서 수행하던 외국 미술가인 로버트 대롤과 강석희의 <>(1986), <봉황>(1988), <석사자>(1990) 중 한 곡이다. 테라 바이트, 기가바이트의 스마트폰 시대에 보는 30년 전 8비트 픽셀 그래픽이 단순하지만 불교의 윤회와 수행을 음악과 함게 드러내는 방식이 한편 운치가 있었다. 플룻의 키클릭, 호흡, 하행 아르페지오 등을 녹음하고 샘플링해 다채로운 음형을 만들고, 그 몽환적인 음악 속에 중간에 영상에 마음 심자가 한문으로 딱 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마지막 순서는 앙상블 거리의 자연을 소재로 한 실험즉흥음악인 <풍경>(2020, 세계초연)이었다. 세로로 기다란 푸른 조명이 무대에 비추이고, 스피커의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맞추어 대금, 바이올린의 트레몰로, 거문고는 술대로 현을 뜯어 연주하며 점차로 격렬해진다. 중간부에 시원한 자연의 느낌이 한참 이어져 좋았는데, 마지막 절정에서는 조명이 빨간 파란 흰 빛을 오가고, 각 악기가 전체 음역대를 오가며 C음 위주로 연주한다. 한참을 들으니 밤부터 아침이 되는 듯 했는데, 이윽고 흰 조명으로 새벽이 밝아오며 ppp에 하모닉스 등의 온음표 등을 연주하며 곡이 끝난다.

 

한편, 지난 5일의 범음악제 첫번째 콘서트는 임수연 전자음향 <Color Explosion>공연으로 양민석의 피아노와 전자음향을 위한 <기이한 느낌>(2020), 조너선 하비 <메시앙의 무덤>(2011) 등 여섯작품이 연주되었다. 11일 서초 라율아트홀에서의 네번째 콘서트는 신예 작곡가인 주시열, 신예훈, 이본의 작품을 앙상블 TIMF가 연주하며 워크샵 형태로 진행되었다. 9<부루>가 공연된 날 객석에는 원로작곡가 이만방, 이영자 및 고 강석희 작곡가의 유족이 참석해 팬뮤직페스티벌과 현대음악 창작에 대한 뜻에 동참하고 있었다.

mazlae@daum.net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세상을 플레이하라! 오락, 엔터테인먼트 전문 뉴스 - 플레이뉴스 http://ewha.com


댓글을 달아 주세요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제48회 범음악제(2020 The 48th PAN Music Festival, 집행위원장 임종우)이 지난 11월 5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한남동 일신홀 등지에서 공연중이다.

한국 최초의 현대음악 페스티벌인 범음악제는 올해 임수연 피아니스트, 
앙상블 EINS, Ensemble 거리, TIMF 앙상블 등 국내 최고 현대음악 연주단체를 초청하여 위촉 및 공모선정 작품과 해외 창작품을 소개하며 코로나 기간 현대음악 청취에 목말랐던 애호가 및 전문가 그룹의 환호 속에 공연중이다.

9일 공연은 앙상블 앙상블 
EINS의 <Sound Texture & Composition>이었다. 공연 제목 그대로 전체 일곱 작품의 서로 다른 텍스처가 앙상블 아인스(예술감독 박명훈)의 엄청난 기교와 숙련된 전문성으로 연주되어 ‘어떻게 저 악기에서 저런 소리를 저렇게 재밌게 만들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시아리노, 도이치 등 해외작곡가 뿐 아니라, 중견작곡가 이윤석(위촉곡), 젊은 작곡가인 김유신(공모), 김예지(공모)의 작품까지 국내외 현대음악 창작 트렌드를 확인하고 기법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다. 

첫 번째 살바토레 샤리노의 <바다의 켄타우로스>(1984)는 그리스 신화속 반인반마의 신의 기괴함과 그 속의 신비감을 잘 표현했다. 현악기 하모닉스와 트레몰로, 클라리넷의 트릴로 신비감을 주는 가운데, 피아노가 팔꿈치로 클러스터음을 강렬하게 때리며 야수같다.

두 번째 김유신의 <보이는/보이지 않는 흐름들에서>(2020/세계초연)는 작곡가가 스웨덴 북극권의 산장에 머물며 천혜의 자연경관에 스쳐가는 기류들의 ‘작은 흐름들’로부터 착상했다. 피아노와 플루트가 가온 C음과 E음의 3도 화음으로 아름답고 푸른 경관의 온화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해, 때때로의 스포르찬도와 크레센도가 몰려오며 술 폰티첼로 기법의 현악기, 아르페지오, 플라터 텅잉의 목관이 날아와 부딪힌다. 그 끊임없는 움직임에서 작곡가가 ‘공기’라는 자연현상을 이렇게도 잘 포착해 음으로 표현했다는 것에 놀라웠다.

다리우스 프시빌스키의 <오닉스>(2010/국내초연)는 손소이, 오병철 두 명의 연주자가 
피콜로 플루트, 플루트, 알토 플루트, 베이스 플루트 이렇게 플루트 네 대로 연주하는, 같은 음에서 겹치는 서로 다른 결의 텍스처의 도움과 방해가 인상적이다. 작곡가는 모래가 Onyx 즉 투명한 원석이 되는 풍화나 변성과정의 다양함, 모래와 섞이는 바람소리의 표현을 위해 악기 중에 공기처럼 가벼운 플루트를 택했을 것이고, 같은 악기의 폭넓은 음폭을 위해 음역대 다른 플루트 네 대를 선택했을 것이다. 속도감 있는 플루트 선율과 플라터텅잉 등의 특수주법 등으로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화강암의 줄무늬 한 층이 형성되고, 다져져 투명해지는 과정이 느껴졌다. 


네 번째 이윤석의 <타-음>(2012/2015)은 피아노 잔향의 다채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윤혜성이 등장하자마자 팔을 극저음과 극고음으로 벌려서 강한 클러스터의 트레몰로로 순식간에 용수철처럼 치는데, 이후에 남는 음의 잔향과 함께 슬로우 모션처럼 강렬했다. 클러스터음과 빠른 아르페지오 음형, 거기에 페달로 형성되는 피아노 잔향은 전자음향의 소용돌이처럼 새로운 음색을 선사했다.

김예지의 <충돌들>(2020)은 인간관계의 충돌과 그 유의미한 결과를 베이스클라리넷과 바이올린, 첼로로 표현했다. 세 명의 앙상블을 위해 바이올린의 강민정이 몸으로 지휘자처럼 박자를 세면서도 자신은 주테, 술 폰티첼로 등의 현대주법을, 클라리넷의 입술소리, 키클릭 등과 함께 '충돌'의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기욤 코네송의 <테크노 퍼레이드>(2002) 또한 리드미컬한 플루트와 싱크를 맞춘 피아노 동음반주와 클라리넷의 싱코페이션 리듬이 윤기있게 테크노 느낌을 잘 살렸다. 중간부에 클라리넷의 김민욱은 고음의 싱코페이션과 크레센도, 익살스런 리듬을 잘 살렸다. 피아노의 반주 위에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3도화음으로 서로 엇박으로 안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테크노의 본질을 살린 곡이었다.
 
마지막은 베른트 리하리트 도이치의 <현악사중주 2번>(2012)이었다. 오늘 사회를 보며 곡설명을 한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가 "도이치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는 것도 관람의 묘미가 될것"이라 했는데, 처음부터 격렬한 저음 혹은 극고음 글리산도, 비올라(이상민)의 더블스탑 피치카토 등에서 어떠한 동물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2악장은 조용한 템포지만 1악장과 결은 같았는데, 불협화음 반주 속에 비올라가 길게 한 활로 하행 글리산도를 하고, 글리산도가 악기 간 이어져 하나의 큰 선율이 들린다.


이러한 기존의 불협화음, 그런데 이 곡을 듣는 동안 그것이 더 이상 불협화음이 아니라 더없이 아름다운 내 속에 내재된 욕구나 그것들의 형상인 듯이 느껴졌다. 작곡 전공자인 나에겐 그 악보들도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하였으며, 중간부에 현악 연주자들이 발을 구르며 목소리로 외칠 때의 그 의외성이 주는 통쾌함이란! 마지막 부분에 불협화음이 주는 불균형한 진동음 지속 위에 첼로(주윤아)의 우아한 선율이 피어오르니 더없이 우아했다. 

mazlae@daum.net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세상을 플레이하라! 오락, 엔터테인먼트 전문 뉴스 - 플레이뉴스 http://ewha.com


댓글을 달아 주세요


▲ '2015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II' 공연 후 정명훈 상임지휘자가 관객들의 기립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 서울시립교향악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 주최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곡가 진은숙이 2006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로 위촉되면서부터 시작된 <아르스 노바>는 그동안 유럽의 21세기 현존 작곡가들의 작품들과 현대음악을 대중에게 알리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명성과 함께 현대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어 왔다.

이번 <2015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I, II>는 미국 작곡가의 앙상블 작품과 프랑스 작곡가의 오케스트라 작품들로 구성되어 대비를 이루며 귀한 음악을 선사했다.

또한, <아르스 노바>의 관현악 공연을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일은 드문데, 이번 프랑스 작곡가 프로그램은 파리 바스티유,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역임한 정명훈이 직접 지휘해 프랑스 작품에 대한 친숙함과 애정을 드러내는 한편, 지난 연말의 사건을 대신해 대중 앞에서 몸소 음악으로 인사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4월 1일 세종 체임버홀에서 열린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I>에서는 존 케이지와 엘리엇 카터, 찰스 아이브즈, 테리 라일리의 미국 작곡가들과 한국의 신진 작곡가 박명훈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첫 번째 존 케이지(1912-1992)의 <거실음악>(1940)은 네 명 타악 연주자가 일반적인 타악기가 아니라 식탁과 그 위 접시와 유리컵을 두드리거나, 신문지를 찢는 소리, 반복하며 읊조리는 소리, 허밍하는 소리 등이 자유롭게 음악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엘리엇 카터(1908-2012)의 <목관 오중주>(1948)는 두 개 악장의 작품으로, 오보에, 호른 등 목관의 다양한 개별 움직임이 합해져 만드는 전체적인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찰스 아이브즈(1874-1954)의 <‘톤 로즈’와 다른 앙상블 작품들>(1911-1915)은 복잡한 도시를 그린 ‘Tone Roads'라는 작품 두 개와 느린 노래를 연상시키는 두 개의 작품, 그리고 ’The See‘r'(보는 자)‘라는 제목의 서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 형식으로 복잡한 리듬과 불협화음, 각 악기군의 대위적인 움직임이 전체적인 특징이었다.

박명훈(1980-)의 콘트라베이스 독주와 앙상블을 위한 <MONTA>(2015)는 몽타주 기법을 응용해 다양한 분위기와 기법의 여러층의 소리가 한 부분에서 혹은 전체 흐름을 통해 엮이고 제시되면서 다채로운 음향을 선사했다. 서울시향 베이스주자인 안동혁이 연주한 저음 더블베이스의 글리산도와 피치카토, 트레몰로 등의 현대주법 음향이 바순, 타악기, 트럼본 등의 비슷한 질감 악기로 이어져 복잡다단하고 파워있게 엮이며, 밀도 있는 조직을 펼쳐내었다.

마지막으로 테리 라일리(1935-)의 <in C>(1964)는 여러 악기들이 C라는 중심음을 반복하고 서로를 모방하고 이탈하지만,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첼레스타를 치던 서울시향 부지휘자 최수열이 타악주자와 익살스런 눈짓을 주고받더니 갸우뚱하면서 마지막까지 남아서 ‘도’음을 지는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4월 7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아르스 노바II>에서 연주된 앙리 뒤티외, 파스칼 뒤사팽, 메시앙 세 프랑스 거장 작곡가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색채적인 음향’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로 앙리 뒤티외 <메타볼>(1964)은 일관된 목관악기의 긴 호흡의 고음 주제선율이 전체를 관통하며(1악장), 그것을 뒷받침하면서 <La Mer>를 연상시키는 현악기의 바다와 같은 음향(2악장), 그리고 금관악기, 타악기와 함께(3,4악장) 고음에서 저음으로 저음에서 고음으로 빠르게 휘몰아치는 패시지들(5악장)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목의 ‘메타볼(Metaboles)'은 프랑스어로 어떤 한 사물의 특징이 다른 것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에서 ’반복‘과 ’변화‘라는 것은 제일 기본적인 예술개념이고, 음악에서는 특히 이 두 요소 없이는 시간을 이끌면서 음악을 인지시킬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특히 ’반복‘보다는 ’변화‘가 더 어렵고, 어떻게 첫 주제에서 변화시키며 전체를 하나로 통일성을 줄 수 있을지가 음악가들에게는 항상 관건인데, 뒤티외의 작품에서는 강한 주제와, 그것과 대비되는 측면의 요소들이 서서히 만나며 결국 합쳐지는 면이 인상적이었다.

▲ 강혜선이 파스칼 뒤사팽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상승>의 초난이도 기교를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 서울시립교향악단


세계적인 현대음악 연주가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이 연주한 파스칼 뒤사팽(1955~)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상승>(2013)은 이날 아시아 초연으로, 다이내믹한 바이올린의 질주와 광란의 오케스트라가 뒤섞여 대자연의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듯한 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느린 저음의 현악기위에 초고음역 바이올린의 느린 선율로 시작해, 하프와 다른 악기들이 천천히 물밀듯이 흘러 들어오고, 이내 서로의 섞임으로 복잡한 형상을 이뤄나갔다.

강혜선은 명성에 걸맞게 집중어리고 파워넘치는 연주를 펼쳐 관객들에게 새로운 레파토리 하나를 또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언제든 재공연할 수 있는 베토벤, 브람스의 소나타, 협주곡이 아니라 늘 새로이 연구해야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기교의 현대음악 레파토리를 늘 짧은 시간에 소화해야 하는데, 저렇게 멋진 연주를 들려주는구나하고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곡 후반부에 바이올린의 파워가 오케스트라에 비해 다소 묻혔던 점이 약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후반부 순서의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그리스도의 승천>(1932-33)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그림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가슴 깊은 감동을 주며 영적으로까지 충만해지는 연주였다. 역시 프랑스 작곡가에 조예 깊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연주인데다, 작품의 주제가 주제인만큼 음악의 숭고함과 예수의 위대함이 찬란하게 느껴졌다.

1악장 금관의 찬란하고도 장중하게 빛나는 음향으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준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느껴졌으며, 2악장에서는 현악기의 비단 같은 움직임과 플루트의 목관악기로 천국의 분위기를, 오보에의 주선율로 그 하늘에서 내려오는 ‘알렐루야’의 말씀을 묘사하는데, 처음에는 유니즌으로 두 번째는 좀 더 복잡한 화음으로, 세 번째는 격앙된 트레몰로가 가세해 더욱 풍성하게 말씀을 전한다.

3악장은 트럼펫과 심벌즈의 ‘알렐루야’인데, 트렘펫 3대의 찬란한 상행리듬으로 시작해 전개를 통해 마지막 부분 현악기의 민속춤 리듬처럼 점점 빠르게 반복되는 선율로 무속적인 느낌도 주는 곡이었다. 4악장은 모든 내적 고통과 숙명을 받아들이고 아버지 주에게 승천하는 예수의 기도를 그리고 있어서인지, 1악장과 비슷한 분위기면서도 더욱 애절하고 투명했으며, 숭고하고 위대함이 느껴졌다. 음악이 끝나고 관객들은 작곡가 진은숙을 비롯해 기립해 열화와 같은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마에스트로는 3악장을 다시 앵콜로 연주하며 화답했다.

한편, 서울시향이 지난해 6월 발매한 음반 ‘진은숙: 3개의 협주곡’(도이치 그라모폰)이 2015년 국제클래식음악상 현대음악 부문 수상작으로 최근 결정되었다. 또한 전 세계 오케스트라와 페스티벌 등으로부터 상주 작곡가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진은숙은 지난해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 이어 올해 노르웨이 스타방게르 심포니의 상주 작곡가로 위촉됐다.

지휘자 정명훈, 작곡가 진은숙과 함께 서울시향이 2006년부터 지난 10년간 ‘아르스노바’로 현대음악을 소개하고, 세계적인 음반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에 아시아 최초로 2011년부터 5년 전속계약을 맺어 매해 2장씩의 음반을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보통의 업적과 쾌거 훨씬 그 이상이다. 예술가 개인이 서울시향을 만나기 이전 수십년 쏟아부었을 노력과 시간과 성과가 드디어 서울에, 서울시향에 와서 우리들의 바램과 함께 서울에서 꽃을 피웠으며 그러한 결과이다.

‘예술 행정’이란 말처럼 답답한 말이 없다. 심지어 ‘예술 정치’라는 말까지 있던데, 차라리 ‘예술 비즈니스’, ‘예술 경영’이라는 말이 이해가 쉽고, 속 편하다. 요사이에는 ‘서울연극제’ 대관취소 사건 등 늘 문제 많고, 사건 많은 예술 행정이지만, 예술가들 예술에만 집중 좀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예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행정이어야 하지 않겠나. 절차라는 것은 내용을 드러내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행정이든 대상의 특성에 맞는 행정이어야 한다. 예술 행정은 예술의 특성에 맞는 행정이어야겠다. 새로운 예술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행정의 편의와 관행, 관료주의를 답습하는 예술 행정, 편 가르기의 예술 정치, 예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시간을 되돌리는 앙갚음 식의 처사는 제발 버리길 바란다.  


mazlae@daum.net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세상을 플레이하라! 오락, 엔터테인먼트 전문 뉴스 - 플레이뉴스 http://ewha.com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도움말 Daum 지도

댓글을 달아 주세요

 

▲ 국립현대무용단 '개와 그림자'. 무대뒤쪽 2,200개의 상자들로
기억과 허상의 공간을 표현한다. ⓒ 국립현대무용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기억’과 ‘허상’은 사실 예술에서 많이 다루는 주제이다. 모두 인간의 사고과정과 관련이 있으며, 표현방법도 여러 가지다.

국립현대무용단이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 ‘개와 그림자’는 기억과 허상이라는 주제를 동명의 이솝우화 내용에서 착안하여 과감한 현대무용으로 펼쳐내었다.

뼈다귀를 물고 있던 개가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물 안의 뼈다귀까지 얻으려고 입을 벌리자 물고 있던 뼈다귀마저 떨어뜨린다는 내용의 이솝우화를 바탕으로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몸짓으로 표현했다.

국립현대무용단 3년의 임기동안 ‘수상한 파라다이스’(2011), ‘호시탐탐’(2012)의 신작들과 '말들의 눈에는 피가', '아Q', '벽오금학' 등의 자신의 이전작품들을 선보였던 홍승엽 예술감독은 이번 ‘개와 그림자’(2013)를 마지막 신작으로 내놓으며 임기를 마친다.

▲ 흐트러진 기억상자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그속을 미친듯이 돌아다니며,
기억을 나부끼며 제각각의 모습들이다. ⓒ 국립현대무용단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쪽으로 2,200개의 박스가 가득하다. 그 안에는 흰 솜뭉치, 깃털, 빨간 털실 등이 들어있다. 각각의 박스는 기억 공간을, 안에 담긴 재료들은 갖가지 기억들을 의미한다. 첩첩이 쌓여있던 거대한 기억들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사람의 상체 모양으로 가운데가 뻥 뚫린 형태가 된다. 마치 뼈다귀를 물고 있던 개가 뼈다귀를 떨어뜨려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 허망한 상태를, 공허한 자아의 모습으로 표현한 듯하다.

그 앞에서 13명의 무용수들은 자아의 허상에 대해 탐구하는 몸짓을 한다. 바닥에 누워 하얀 깃털을 부는 동작을 반복하는 여성도 있고, 빨간 구두를 발에 신지 않고 손에 들고 우왕좌왕하는 이도 있다.

느릿느릿 무너진 박스들 사이로 바닥에서 유유자적 기억의 공간을 유영하던 무용수들은 어느새 흰 남방의 상체를 풀어헤친 남자무용수들의 등장으로 서로 남녀커플로 짝을 맞춰 격렬한 안무를 한다. 그 사이로 깃털을 부는 여성은 여전히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고, 한편에선 키가 커진 채 풍성한 검정드레스를 입은 무용수가 유유자적이 걸어나온다.

홍승엽의 안무스타일은 소설이나 우화, 연극 등 기존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이것을 나타낼 수 있는 소도구를 활용하여 무대에 접목시킨다. 그에 따라 추상적인 춤동작은 전체적인 군무와 그 사이사이의 독무의 표현이 적절히 배합된 간결하고 힘 있는 동작이 특징이다.   

▲ 가벼운 소재의 검정판넬은 기억과 허상의 공간을 재구성한다. 그 공간안에서
무용수들의 강렬한 군무가 자아에 대한 탐구인 듯 강렬하다. ⓒ 국립현대무용단


이번작품에서도 기억을 표현하기 위한 박스와 함께 거대한 검정 판넬이 눈에 띈다. 판넬들이 세워져서 기억의 공간 혹은 허상의 공간을 만들며 무용수들을 가리고 가두기고 하고, 바닥에 개별적으로 깔려서 무용수 옆에서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무거운 판넬이 아니라 무용수들이 들기에도 가벼운 판넬이 만드는 다채로운 공간은 우리 손에 의해 여러 형태로 우리 자신을 가두고 속박하는 ‘껍데기’, 혹은 ‘허상’과 같이 우리 인생을 버겁게 만드는 것들을 표현한다.

한편, 국립현대무용단은 제 2 대 예술감독으로 안무가 안애순(현 안애순 무용단 대표)이 취임한다. 취임일은 오는 7월 28일이며 임기는 3년이다.  



mazlae@daum.net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세상을 플레이하라! 오락, 엔터테인먼트 전문 뉴스 - 플레이뉴스
http://ewha.com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도움말 Daum 지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