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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015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10주년 꽃피는 '아르스 노바'와 정명훈의 메시앙 호연

클래식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4. 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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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II' 공연 후 정명훈 상임지휘자가 관객들의 기립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 서울시립교향악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 주최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곡가 진은숙이 2006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로 위촉되면서부터 시작된 <아르스 노바>는 그동안 유럽의 21세기 현존 작곡가들의 작품들과 현대음악을 대중에게 알리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명성과 함께 현대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어 왔다.

이번 <2015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I, II>는 미국 작곡가의 앙상블 작품과 프랑스 작곡가의 오케스트라 작품들로 구성되어 대비를 이루며 귀한 음악을 선사했다.

또한, <아르스 노바>의 관현악 공연을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일은 드문데, 이번 프랑스 작곡가 프로그램은 파리 바스티유,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역임한 정명훈이 직접 지휘해 프랑스 작품에 대한 친숙함과 애정을 드러내는 한편, 지난 연말의 사건을 대신해 대중 앞에서 몸소 음악으로 인사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4월 1일 세종 체임버홀에서 열린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I>에서는 존 케이지와 엘리엇 카터, 찰스 아이브즈, 테리 라일리의 미국 작곡가들과 한국의 신진 작곡가 박명훈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첫 번째 존 케이지(1912-1992)의 <거실음악>(1940)은 네 명 타악 연주자가 일반적인 타악기가 아니라 식탁과 그 위 접시와 유리컵을 두드리거나, 신문지를 찢는 소리, 반복하며 읊조리는 소리, 허밍하는 소리 등이 자유롭게 음악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엘리엇 카터(1908-2012)의 <목관 오중주>(1948)는 두 개 악장의 작품으로, 오보에, 호른 등 목관의 다양한 개별 움직임이 합해져 만드는 전체적인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찰스 아이브즈(1874-1954)의 <‘톤 로즈’와 다른 앙상블 작품들>(1911-1915)은 복잡한 도시를 그린 ‘Tone Roads'라는 작품 두 개와 느린 노래를 연상시키는 두 개의 작품, 그리고 ’The See‘r'(보는 자)‘라는 제목의 서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 형식으로 복잡한 리듬과 불협화음, 각 악기군의 대위적인 움직임이 전체적인 특징이었다.

박명훈(1980-)의 콘트라베이스 독주와 앙상블을 위한 <MONTA>(2015)는 몽타주 기법을 응용해 다양한 분위기와 기법의 여러층의 소리가 한 부분에서 혹은 전체 흐름을 통해 엮이고 제시되면서 다채로운 음향을 선사했다. 서울시향 베이스주자인 안동혁이 연주한 저음 더블베이스의 글리산도와 피치카토, 트레몰로 등의 현대주법 음향이 바순, 타악기, 트럼본 등의 비슷한 질감 악기로 이어져 복잡다단하고 파워있게 엮이며, 밀도 있는 조직을 펼쳐내었다.

마지막으로 테리 라일리(1935-)의 <in C>(1964)는 여러 악기들이 C라는 중심음을 반복하고 서로를 모방하고 이탈하지만,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첼레스타를 치던 서울시향 부지휘자 최수열이 타악주자와 익살스런 눈짓을 주고받더니 갸우뚱하면서 마지막까지 남아서 ‘도’음을 지는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4월 7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아르스 노바II>에서 연주된 앙리 뒤티외, 파스칼 뒤사팽, 메시앙 세 프랑스 거장 작곡가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색채적인 음향’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로 앙리 뒤티외 <메타볼>(1964)은 일관된 목관악기의 긴 호흡의 고음 주제선율이 전체를 관통하며(1악장), 그것을 뒷받침하면서 <La Mer>를 연상시키는 현악기의 바다와 같은 음향(2악장), 그리고 금관악기, 타악기와 함께(3,4악장) 고음에서 저음으로 저음에서 고음으로 빠르게 휘몰아치는 패시지들(5악장)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목의 ‘메타볼(Metaboles)'은 프랑스어로 어떤 한 사물의 특징이 다른 것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에서 ’반복‘과 ’변화‘라는 것은 제일 기본적인 예술개념이고, 음악에서는 특히 이 두 요소 없이는 시간을 이끌면서 음악을 인지시킬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특히 ’반복‘보다는 ’변화‘가 더 어렵고, 어떻게 첫 주제에서 변화시키며 전체를 하나로 통일성을 줄 수 있을지가 음악가들에게는 항상 관건인데, 뒤티외의 작품에서는 강한 주제와, 그것과 대비되는 측면의 요소들이 서서히 만나며 결국 합쳐지는 면이 인상적이었다.

▲ 강혜선이 파스칼 뒤사팽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상승>의 초난이도 기교를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 서울시립교향악단


세계적인 현대음악 연주가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이 연주한 파스칼 뒤사팽(1955~)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상승>(2013)은 이날 아시아 초연으로, 다이내믹한 바이올린의 질주와 광란의 오케스트라가 뒤섞여 대자연의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듯한 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느린 저음의 현악기위에 초고음역 바이올린의 느린 선율로 시작해, 하프와 다른 악기들이 천천히 물밀듯이 흘러 들어오고, 이내 서로의 섞임으로 복잡한 형상을 이뤄나갔다.

강혜선은 명성에 걸맞게 집중어리고 파워넘치는 연주를 펼쳐 관객들에게 새로운 레파토리 하나를 또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언제든 재공연할 수 있는 베토벤, 브람스의 소나타, 협주곡이 아니라 늘 새로이 연구해야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기교의 현대음악 레파토리를 늘 짧은 시간에 소화해야 하는데, 저렇게 멋진 연주를 들려주는구나하고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곡 후반부에 바이올린의 파워가 오케스트라에 비해 다소 묻혔던 점이 약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후반부 순서의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그리스도의 승천>(1932-33)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그림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가슴 깊은 감동을 주며 영적으로까지 충만해지는 연주였다. 역시 프랑스 작곡가에 조예 깊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연주인데다, 작품의 주제가 주제인만큼 음악의 숭고함과 예수의 위대함이 찬란하게 느껴졌다.

1악장 금관의 찬란하고도 장중하게 빛나는 음향으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준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느껴졌으며, 2악장에서는 현악기의 비단 같은 움직임과 플루트의 목관악기로 천국의 분위기를, 오보에의 주선율로 그 하늘에서 내려오는 ‘알렐루야’의 말씀을 묘사하는데, 처음에는 유니즌으로 두 번째는 좀 더 복잡한 화음으로, 세 번째는 격앙된 트레몰로가 가세해 더욱 풍성하게 말씀을 전한다.

3악장은 트럼펫과 심벌즈의 ‘알렐루야’인데, 트렘펫 3대의 찬란한 상행리듬으로 시작해 전개를 통해 마지막 부분 현악기의 민속춤 리듬처럼 점점 빠르게 반복되는 선율로 무속적인 느낌도 주는 곡이었다. 4악장은 모든 내적 고통과 숙명을 받아들이고 아버지 주에게 승천하는 예수의 기도를 그리고 있어서인지, 1악장과 비슷한 분위기면서도 더욱 애절하고 투명했으며, 숭고하고 위대함이 느껴졌다. 음악이 끝나고 관객들은 작곡가 진은숙을 비롯해 기립해 열화와 같은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마에스트로는 3악장을 다시 앵콜로 연주하며 화답했다.

한편, 서울시향이 지난해 6월 발매한 음반 ‘진은숙: 3개의 협주곡’(도이치 그라모폰)이 2015년 국제클래식음악상 현대음악 부문 수상작으로 최근 결정되었다. 또한 전 세계 오케스트라와 페스티벌 등으로부터 상주 작곡가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진은숙은 지난해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 이어 올해 노르웨이 스타방게르 심포니의 상주 작곡가로 위촉됐다.

지휘자 정명훈, 작곡가 진은숙과 함께 서울시향이 2006년부터 지난 10년간 ‘아르스노바’로 현대음악을 소개하고, 세계적인 음반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에 아시아 최초로 2011년부터 5년 전속계약을 맺어 매해 2장씩의 음반을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보통의 업적과 쾌거 훨씬 그 이상이다. 예술가 개인이 서울시향을 만나기 이전 수십년 쏟아부었을 노력과 시간과 성과가 드디어 서울에, 서울시향에 와서 우리들의 바램과 함께 서울에서 꽃을 피웠으며 그러한 결과이다.

‘예술 행정’이란 말처럼 답답한 말이 없다. 심지어 ‘예술 정치’라는 말까지 있던데, 차라리 ‘예술 비즈니스’, ‘예술 경영’이라는 말이 이해가 쉽고, 속 편하다. 요사이에는 ‘서울연극제’ 대관취소 사건 등 늘 문제 많고, 사건 많은 예술 행정이지만, 예술가들 예술에만 집중 좀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예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행정이어야 하지 않겠나. 절차라는 것은 내용을 드러내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행정이든 대상의 특성에 맞는 행정이어야 한다. 예술 행정은 예술의 특성에 맞는 행정이어야겠다. 새로운 예술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행정의 편의와 관행, 관료주의를 답습하는 예술 행정, 편 가르기의 예술 정치, 예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시간을 되돌리는 앙갚음 식의 처사는 제발 버리길 바란다.  


mazlae@daum.net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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