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YAF2014 음악부문 작곡가 남상봉의 <밤:인시> 중 'mPoi Ensemble'. 엠포이
세 대의 화려한 불빛과 잔잔한 전자음향의 결합이 맑은 정신을 느끼게 한다. ⓒ 옥상훈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지난 1월 28일 문화역서울284 RTO공연장에서 작곡가 남상봉의 <밤:인시>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rko Young Art Frontier, AYAF 2014) 음악부문 당선작으로 바이올린, 첼로 등의 악기와 컴퓨터, 조명, 그리고 남상봉이 지난 5년간에 걸쳐 직접 개발한 악기인 mPoi 각각의 독특한 개성과 그것이 모여 전체 하나의 음악극을 이루는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우선, 공연 2-3주 전부터 누구나 그렇듯, 소셜 SNS를 통해 공연 프로그램을 올리며 작곡가 본인이 공연준비과정의 노고와 고충 등을 털어놓음으로써, 공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한국 전통 쥐불놀이에서 착안하고 뉴질랜드의 전통 퍼포먼스의 아이디어를 더해 더욱 다채로워진 mPoi가 이번공연에서는 어떤 신기한 소리와 모습을 보여줄지에 대해 기대와 관심이 모아졌다.
이러한 관객들의 기대와 호응은 RTO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 수에서도 드러났다. 객석은 마치 패션쇼장처럼 공연장 한 가운데를 세로로 길게 무대로 하고, 그 양옆을 서로 객석이 마주보게 배치한 형태였는데, 공연 30분 전부터 객석은 이미 거의 꽉 채워져 있어서, 관객들의 이번 공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은 ‘밤’의 고요와 고독에 대한 단상을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문학작품 'La Nuit'을 중심으로 작곡가 남상봉의 이전 음악 작품들과 mPoi 퍼포먼스로 9개 부분의 음악극으로 풀어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첫 곡'Night-Calm'이 뒤쪽무대 높은 단 위에서 작곡가 신지수의 토이피아노로 시작된다. 고요함을 깨트리는 ‘웅~’하는 전자음향의 진동 속에 토이피아노의 금속성 맑은 음색과 아르페지오 움직임이 신비롭다. 천장에서 공연장 전체를 비추며 천천히 회전하는 은색 조명으로 마치 관객들은 별빛 우주 속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 첫 곡'Night-Calm'에서는 토이피아노(신지수)의 반짝거리는 음향과
조명이 어우러져 우주속에 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 옥상훈
‘mPoi Solo’는 남상봉이 유학시절부터 개발을 거듭해 온 전자악기 엠포이의 현란한 포물선 움직임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다채롭고 싸이키한 전자음향이 무척 신기했다. 움직일 때마다 빨강 파랑 초록으로 갖가지 색깔을 내는 불빛도 멋있지만, 어두컴컴한 가운데 오직 엠포이의 불빛만이 그려내는 원형의 궤적이 그토록 다양할 수 있다는 것에 또한 놀랐다. 원형, 누운 팔자형, S자형, S자형의 연속 등 실로 빠르고 다양한 움직임이 쉼 없이 계속될 때마다 그 움직임에 맞춰 소리 또한 움직임이 재미있다.
‘Awaken’은 이번 공연의 제목 <밤:인시>의 ‘인시(새벽 3시-5시)’에 절에서 잠들어있는 세상의 사물들을 깨우기 위해 사중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두드리는 것에서 작곡가가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 절에서 사용하는 주발에서 녹음된 음원이 전자음향으로 몽롱하고 고요하게 울리는 가운데, 작가 올리버 그림이 고안한 무대 천장에 달린 거울이 내는 작은 반사빛이 계속적으로 천천히 무대 앞에서 뒤로 회전하고, 큰 원형의 흰색 조명은 그와 반대로 무대뒤쪽에서 앞쪽으로 회전해 서로 교차한다. 절에서 108배를 반복해 드리는 것처럼 간절한 염원과 어둠속의 맑은 정신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이어서 뒤쪽 무대 통로에서 시작된 바이올린 솔로곡 ‘Invisible Movement’는 빠른 패시지와 느린 패시지의 대조, 격렬한 부분과 조용하면서도 빠른 부분의 대조가 좋았다. 작곡당시 바이올리니스트 남카라의 세심한 움직임까지 관찰해 작곡해서인지, 음계의 복잡한 패시지나 선율구조보다는 바이올린 현 사이의 이동이나, 한번 크게 연주한 음형이 곧바로 이어 작게 연주되는 움직임의 ‘확정’ 등 오른팔의 활과 왼손가락의 움직임에 집중해 곡을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자음향과 함께였어도 좋았겠다 싶은 반면, 바로 뒤의 전자음향 더블베이스 곡과 대비되고 또한 전체공연 구성에서 유일한 기악 바이올린 솔로만의 느낌으로도 신선한 감이 있었다.
▲ 마지막 작품 'Unbearable'. 여러 악기와 엠포이, 전자음향의 결합으로
밤의 절정을 최대의 에너지와 희열로 표현했다. ⓒ 옥상훈
‘Shift No.2’는 컴퓨터의 ‘Shift(변화시키다)’ 키처럼 컴퓨터음악으로 기존의 예술을 변화, 확장시키려는 의도로 재즈 베이시스트 Ken Bruce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더블베이스 특유의 메마르고 묵직한 저음의 보잉이 컴퓨터를 통해 전자음향으로 변화되어 스피커 사이를 회전한다. 악기의 특성을 잘 살린 현대음악, 전자음악다운 음향의 변조와 무게감, 진행감이 좋았다. 이어서 토이피아노의 ‘Night-Lonely’가 다시 무대 뒤쪽 원형조명 안에서 들려왔다. 점묘적인 토이피아노의 음형이 딜레이, 리버브로 변조되어 고독감을 드러낸다.
‘mPoi Ensemble’은 같은 mPoi인데도 공연 앞 부분 mPoi Solo의 격렬함과는 다르게 차분함과 고요함을 보여주었다. 엠포이 원운동의 주기성과 무한함에서 ‘패턴의 반복’이라는 착상을 얻고, 이것을 명상적인 소리로 연결시켰다. 엠포이 솔로에서 보여졌던 원운동과 소리사이의 인터랙션이 없는 대신, 엠포이 세대가 함께 그리는 원운동의 다양한 모습과 그 조화, 그리고 잔잔한 전자음향의 진동을 느끼며 보는 엠포이 세대의 다채로운 빛깔이 만드는 원운동의 모습에서 ‘무아’의 상태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음으로 ‘Night-Nervous’는 밤의 고독을 벗어나기를 원하는 이면의 두려움을 바이올린과 첼로로 하모닉스 등의 현대주법과 전자음향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Unbearable’은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플루트, 클라리넷, 타악기, 세대의 엠포이, 그리고 전자음향이 함께 어우러진 그야말로 이색적인 장면이었다. 어슴프레한 고요가 끝나가는 동트는 새벽의 기운이 타악기 우드블럭의 미묘한 움직임, 현악기의 하모닉스와 하행음계, 목관악기의 지속음으로 표현된다. 점차로 동음 반복 트레몰로를 악기 간 번갈아 하고, 격렬한 전자음향의 회오리도 함께 휘몰아치더니 타악기의 격렬한 비트, 현악기의 글리산도 등이 포르티시모로 계속된다. 악기와 전자음향이 최고조일 때, 3명의 엠포이 앙상블의 현란한 불빛의 움직임도 함께 등장해, 듣는 것과 보는 것의 혼연일체가 밤에 대한 황홀감을 안겨주며 대단원의 막을 장식한다.
▲ 남상봉은 “음악극의 특색을 가지면서도 개별 작품들을 독립적으로
선보이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고 공연취지를 설명했다. ⓒ 남상봉
공연 마지막의 대담하고 거침없는 조합이 인상적이어서 한 5분 이상 지속했어야 맛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7개월간의 준비로 공연을 올린 작곡가이자 전자음악가인 남상봉은 “음악극의 특색을 가지면서, 작곡가 남상봉의 이전 작품들을 독립적으로 선보이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서 “지난 몇 년간의 제 작품 경향이 우연하게 ‘밤’에 대한 것이었어요. 전자음향의 극대화보다는 악기와 전자음향, 그리고 엠포이 솔로와 엠포이 앙상블 각 요소간 균형에 역점을 두고 준비했습니다”라고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 전자음악의 세대교체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문화예술의 흐름과 변화는 어느 날, 어느 시점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공연예술은 지난 기간 동안의 축적되었던 에너지를 공연시간 안에 응축해 표현해내야 하는 장르의 특성상, 세월의 흐름과 문화예술과 기술의 변화량을 고스란히 한 작품 안에서 느낄 수 있게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YAF 2014 공연예술 창작자부문은 한마디로 이러한 공연예술의 특성을 잘 알고, 연구조사, 해외리서치 지원, 공연 창작 지원 등을 통해 앞으로의 우리 문화예술의 미래를 선도할 젊은 예술가들에게 지속적인 창작 작업에 대한 토대를 마련해 주는 사업이다.
AYAF 2014의 체계적인 지원 덕분에 이번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는 작곡가 남상봉. 물론 그 지원 덕이기도 하겠지만, 지난 5년간 유학시절의 대표 작품들인 해외 작곡 콩쿨 수상작과 개발악기를 한 자리에서 한 번에 선사하는 종합선물세트 음악극이자 자신의 작곡 리사이틀로서 훌륭하게 연출하는 능력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다. 작곡 리사이틀과 음악극의 경계 사이를 사뿐히 넘으면서 자신의 의도와 면면을 욕심껏 펼쳐내어 보일 수 있는, 수수한 외모와는 다르게 베짱이 두둑한 남상봉의 앞으로의 행보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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