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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자, 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 공연 '네 개의 벽'

무용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25.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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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있었던 홍신자의 네개의 벽 공연 하이라이트
ⓒ 문성식기자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참 무겁고 느리다. 그리고 젊고 예쁜 여자무용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홍신자의 '네 개의 벽(Four Walls)' 앵콜 공연 시작의 첫 소감이다.

지난 11월 20일과 2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열린 세계적인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 홍신자의 '네 개의 벽(Four Walls)' 공연은 인생이라는 굴레를 걸친 자의 끝없는 고뇌와 방황, 그리고 깨달음을 온몸으로 표현한 멋진 공연이었다.

천천히 삶을 곱씹을 수 있는 나이 72세. 아무리 '인생 60부터'라지만, 칠십이 넘은 나이에 관객 앞에서 영원한 춤꾼임을 증명하며 살아온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무대에 올리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여자라면 더 예뻐 보이고 싶고, 최고의 기량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시절에 현역에서 은퇴해서 지도자로의 길을 걷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무용의 특성상 몸을 사용하지만 그 표현영역이 넓은 탓에 아직까지 무대에 서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토록 홍신자처럼 진솔되게 서기는 힘들다.

▲ 홍신자의 '네 개의 벽(Four Walls)' 중. 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 삶의 굴레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느리고 정적인 호흡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 웃는돌무용단


네 개의 벽'은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John Cage, 1912~92)가 방황하던 시기인 1944년 일본으로 가 수도사가 되겠다고 마지막 작품이라며 쓴 것이다. 홍신자는 무용수로는 늦은 나이인 27세에 춤을 시작해 미국에서 활동하다 40세가 되던 1985년 뉴욕에서 당시 70세이던 존 케이지를 만나 뉴욕의 아시아소사이어티 극장에서 '네 개의 벽'을 선보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샌디에고, 일본 도쿄, 1996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국내 초연하였다. 올해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공연'으로, 지난 10월 중국 추모공연과 지난달 18일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열린 '2012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 초청되었고, 관객들의 뜨거운 요청 아래 이번에 앵콜 공연된 것이다.

삶의 짓누름, 힘듦, 허망함 등이 피아노 곡의 10개 악장에 녹아나 있다. 저음과 느린 리듬, 그러면서도 격렬한 다이내믹, 반복되는 울림이 20세기 초중반 아방가르드 음악의 최고주자였던 작곡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네 개의 벽' 안에서 동양의 '선'사상에 심취하였던 서양의 음악가 존 케이지와 젊은 시절을 현대예술의 중심부 뉴욕에서 존 케이지, 백남준 등 당대 최고의 전위예술가들과 교류하였던 동양의, 한국의 무용가 홍신자는 그렇게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 홍신자의 '네개의 벽' 중에서. 의자에 앉아 웅크리기도 하고, 이내 천천히 원형으로 걸으면서 꽃잎을 바닥에 흩뿌리기도 한다. ⓒ 웃는돌무용단


별다른 장식 없이 원형의 무대 위에 작은 꽃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음악이 시작되고 홍신자는 느리게, 더 느리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생각한 만큼 움직이고, 느낀 대로 몸으로 뱉어낸다. 더 이상의 과한, 과장된 몸짓들은 필요치 않다. 이미 존 케이지의 음악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이 어느 무용수에게든 크나큰 영감을 준다. 거기에 젊은 시절 뉴욕과 세계를 평정하고 20년 전 고향으로 영구 귀국하여 꾸준히 예술작업을 펼치고 있는 영원히 젊을 무용가의 삶에 대한 성찰이 표현된 것이다.

천천히 팔을 휘두르고, 한 곳을 응시하다 다른 곳을 응시하고, 멈췄다가 걷고,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부여잡다가 놓고...느리지만 한 시간 동안 일상의 동작임을 느낄 수 있는 과장 없는 몸짓으로 13개 장면의 음악과 인생을 표현해 낸다. 의자에 앉아 웅크리기도 하고, 이내 천천히 원형으로 걸으면서 꽃잎을 바닥에 흩뿌리기도 한다.

▲ 마사미 타다가 연주한 때론 부술 듯한 기세의 피아노와 공연 중간 소프라노 이혜정이 연주한
존 케이지의 'Sweet Love'가 작품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 웃는돌무용단


무용이라기보다는 한편의 말없는 모노드라마 같기도 하고, 마임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언극이나 마임과는 다르게 '춤'이라는 영역만이 보일 수 있는 다양한 표현과 몸짓으로 가득차 있었다. 또한 홍신자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마사미 타다가 연주한 피아노는 아름답기를 거부하는 '때려 부술듯한' 주법이 오히려 불협화음조차도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중간부에 소프라노 이혜정이 부르는 존 케이지의 'Sweet Love' 역시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주었다.

1993년 영구 귀국해 경기도 안성에 '웃는돌'이라는 명상센터와 무용단을 설립한 홍신자는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테마로 한 '죽산국제예술제'를 매년 개최하여 지금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젊을 때 '네 개의 벽' 공연을 했을 때보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연륜이 생긴 지금 더 편하게 이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인생길의 각 장마다 느끼는 고통과 불안, 근심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홍신자가 존 케이지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이였던 70세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 바라본 '벽'이라는 공간은 그녀에게도 또 우리 관객에게도 가슴 뜨겁게 다가오고 있었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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