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 커튼콜 모습.  20세기 초 미서부 개척시대 탄광촌에서 여인이 사랑을 위해 포커한판 벌이는 통쾌한 내용이다.  ⓒ 박순영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국립오페라단(단장 및 예술감독 박형식)의 국내 초연작 <서부의 아가씨>가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는 이태리 거장 작곡가 푸치니의 작품이다. 그의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의 음악과 줄거리를 전개하는 방식이 묻어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음악에는 미국 재즈와 폭스 트로트 느낌이 가미되었다. 또, 다른 오페라처럼 여성이 희생되어 죽지 않고, 연인의 사랑을 쟁취하고 삶을 개척해 떠나는 면에서 달랐다.

또한 오페라 장면은 흡사 20세기 초중반 미국 서부 영화나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포커 결투를 벌이는 '한 판'이 있었다. 프로그램지에서 연출가 니콜라 베를로파도 소개했는데,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도 4~5년 전에 공연될 만큼 <서부의 아가씨>는 대편성 관현악과 어려운 음악으로 잘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1910년 초연 당시 비평가들에게는 큰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라는데, 이번 공연을 보고 나니 과연 그랬다.

1막 서곡은 피에트로 리초 지휘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압도적인 음향이 정말 멋져서 놀랐다. 반면, 지금이 코로나의 2021년 한복판이라 그런가 20세기 초 미서부 탄광촌 광부 남자들의 애환과 무용담이 여주인공인 미니가 운영하는 술집 '폴카'에서 벌어지는 빠른 스피드는 관객이 따라잡기에는 다소 난해했다.

이때 잠시 든 생각이 역시 한국 사람에게는 그라데이션으로 섞이는 것보다는 옛 전통건축의 단청색깔이나 한복 색동저고리의 선명한 빨강, 노랑색처럼 맺고 끊음과 제시, 전개, 발전이 분명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요사이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인 연출가가 1막을 했으면, 아무리 복잡한 선율과 화성의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라 해도 사내들의 각종 이야기와 제스처는 지금처럼 그라데이션 되어 겹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서에 맞게 좀 더 위트있고 의미있게 표현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서부의 아가씨 1막 음악흐름은 바그너 오페라 반지 시리즈처럼 거대한 음악이 계속 물결친다. 사건 구조까지 맺음없이 넘실대는 것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기에는, 지금의 5G 인터넷 시대는 너무나 빠르고 스마트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오페라가 탈바꿈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윽고 폴카의 주인이자 광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정신적 지주인 극의 유일한 여주인공인 미니(소프라노 카린 바바잔얀 분)가 총성을 울리며 등장하고 그의 연인이 될 딕 존슨(테너 마르코 베르티)의 노래가 시작되자 내 생각은 바뀌었다. 서로를 소개하고 알아가는 노래의 과정에서 소프라노 카린 바바잔얀은 부드럽고 풍성한 음성과 자연스럽고 편안한 제스처, 테너 마르코 베르티의 여유있고 팽팽한 고음에서 이윽고 내가 오페라를 보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1막 후반을 계속 듣다보니 남주인공은 선율과 역할면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의 핑커톤 느낌이고, 두 남녀의 사랑구조는 <라보엠>의 세기말의 사랑 느낌을 받았다. 1부 마지막에 여주인공의 뒷모습에서 천천히 암전되고 끝나는 것은 박력있게 끝나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 정서에는 흡족치 못하지만, 그래도 잔잔하니 좋았다. 

2막 무대가 시작되자 결정적 한방은 여기에 있었구나 싶었다. 2막 침실과 주방, 2층 다락방의 오두막집은 무대미술 자체만해도 눈에 띄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무대에 실제로 눈발이 살살 흩날리고, 푸치니가 작곡 당시에 직접 발명했다는 휘슬소리로 산중의 눈바람 소리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1막 여주인공 노래 때부터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뮤지컬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이 계속 생각났는데, 여기 2막은 무대높이 세운 나무와 무대배경 등에서 더욱 그러했다.

또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멜로디가 2막 멜로디 동기에서 왔음이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남녀주인공 둘의 첫 키스 장면에서 음악의 낭만적인 요동치는 선율이, 나를 처음으로 오페라 관람을 하면서 사랑 장면에 설레게 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 어슴프레하면서도 밝은 새벽의 조명 속에 인생 처음의 키스라는 것과 그것을 특별히도 강조한 극의 내용, 그리고 이것을 굉장히 과장적인 다이내믹과 음의 겹침과 불협화의 섞임으로 표현한 점이 장면을 통한 감정연출을 한 것 같다. 

둘의 사랑에 잭과 일당들이 라메레즈를 잡으로 오고, 라메레즈가 총을 맞고 잭과 미니는 일생일대 한판 포커를 벌인다. 이 장면과 이 대본 자체가 참 멋지다. 어떻게 남자를 두고 여자가 상대 남자와 포커를 벌이지? 그리고 음악이 기가 막히다. 다른 오페라에서는 이런 배경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완전히 영화 음악의 기법인데, 잔잔하고 어둑한 밑 배경 고동음만 있고, 둘이 포커를 한다. 포커 용어들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긴박감은 그 음악과 상황에서 매우 잘 느낄 수 있었다.

포커판 처음부터 미니가 카드를 속여 나눠주고, 마지막에 잭이 자신이 이겼음을 자부할 때 그에게 미니가 술 좀 달라고 따돌려 놓고 또 마무리 사기카드를 써서 이기는데, 신기한 점은 잭이 착한건지 역시 극은 극인건지 잭은 두말않고 신사답게 졌음을 시인하고 모자를 쓰고 오두막을 나간다. 미니가 "이제 내꺼다(연인은)"라고 고음으로 포효하는데 2막 또한 서부영화답게 뒷 모습으로 멋지게 마무리된다. 
 

 

 

▲  이번 공연에서 또 하나의 재미는 공연장 로비에 총과 서부모자 등이 마련되어 있어 마치 서부의 총잡이가 된 듯한 장면으로 사진촬영이 가능해 관객들이 즐거워했다. 사진 속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왼와 문성식기자.  ⓒ 박순영

 

2막은 뮤지컬이나 20세기 중반 미국영화를 보는 느낌인데, 특히 포커 장면은 관객이 영화 앵글 보듯이 만들었다. 푸치니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 존 윌리암스 등 영화 음악 작곡가에게 영향을 끼친 이유를 알겠다.

3막 광부들의 캠프 장면은 뭉클한 감동과 교훈을 주었다. 산골짜기 광산에 모여 자신들의 우상인 미니를 빼앗으려는(?) 딕을 죽이라는 광부들의 합창에서는 영화 <벤허>의 음향이 느껴진다. 광부 일당들이 미니가 왜 범죄자인 딕을 좋아하는지 불평하지만, 결국 마음착한 소노라는 딕을 노래하게 허락해준다. 딕이 맑은 고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호소한다. 여기 3막에서는 푸치니 <나비부인> 3막 음향이 굉장히 많이 들리고, 오페라 유령 부분도 들린다.

광부들은 미니도 이제 자신의 삶을 살 때가 되었지라고 얘기한다. 처음에 반대하던 광부들이 미니의 노래를 듣고 자신들의 적인 딕이자 라메레즈(원래 서부의 총잡이 라메레즈인데 술집 폴카에 '딕 존슨'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를 풀어주고 미니에게 잘 돌아가라고 한다. 

그 광부 모두의 엄마이자 연인이었을 미니, 그녀가 정신적으로 길렀을 아들 같은 광부들이 인정해주는 그 장면에서는 정말로 눈물이 났다. 왠지 영혼의 교류를 보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가 영화 <시스터액트>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미니와 딕은 '아디오 캘리포니아'라고 또 예의 뒷모습으로 떠나고 극은 잔잔히 끝난다. 

3막에서 든 생각이 푸치니는 어떻게 <라보엠>(프랑스 배경), <나비부인>(일본), <서부의 아가씨>(미국) 이렇게 외국 이국에 대한 오페라 관심 많이 썼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프로그램지에 유윤종 칼럼니스트의 설명으로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는데, 19세기 20세기초 이탈리아 오페라계 중심이 베르디에서 푸치니로, 그리고 세계사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과 세계로, 그리고 세계 대전으로 펼쳐지며 이탈리아 오페라 소재가 베리스모(사실주의), 그리고 더 넓은 이국소재를 찾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립오페라단의 <서부의 아가씨>도 원래 지난해 공연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확산세로 인해 올리지 못하고 이번 해에 올리게 되었다. 이탈리아 제작진과 출연진, 국윤종, 이윤정, 양준모, 최기돈, 안대성, 손철호, 이규봉, 박상욱, 김재일 등 한국 출연진과 메트 오페라 합창단, 진아트 컴퍼니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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