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오페라단 ‘돈 카를로’중 3막 왕의 서재. 두 베이스 양희준(종교재판관 역)과 강병운
(필립포 2세 역)은 왕권과 종교의 대립구도를 중후한 저음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표현했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공연이 잘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많은 이들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관객은 그것을 보러 간다. 어떤 공연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어떤 공연은 교훈을 준다. 또 어떤 공연은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있다. 공연의 평가에 있어서 그 성과와 성공은 아마도 서로 다른 의미일 것이다.

지난 달 25일부터 28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오페라단의 <돈 카를로>는 18년 만에 국립오페라단이 국내무대에 올린 기대작이었다. 이 작품은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올 상반기 대형작으로 불렸다. 오랜만에 종교와 정치를 다룬 대형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는 측면에서는 그 성과가 크지만, 출연진과 연출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장장 240분 간 진행된 이 대형 오페라는 대체적으로는 좋았으나, 공연을 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충족감'이 다소 떨어졌다. 그 요인은 무엇일까?

크든 작든 공연에서는 한 가지라도 '뚜렷하게' 만족스러우면 다른 것은 충분히 덮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스타가 나온다든지, 무대가 아주 멋지다든지, 작곡가의 노래선율이 기억에 남는다든지, 연기자들이 충심으로 노래하고 연기한다든지, 스토리 자체가 기이하거나 멋지다든지, 형태가 새롭다든지 등등.

거기에 한 가지 더, 작품 안 요소 간에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 이야기 구조, 노래, 연기, 무대, 의상 등이 서로를 살려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비등한 수준이 돼야 하고, 또 한 가지를 부각시키고자 할 땐 한 가지의 채도를 약간 낮추어야 한다.  

▲ 카를로 역 나승서의 감미로운 테너와 엘리자베타 역 박현주의
맑은 소프라노가 4막의 듀엣에서 사랑의 애절함을 보여주며 좋았다.


이번 공연은 16세기 스페인 궁정을 '감옥'으로 상징하여 4막 내내 감옥의 외벽 창문 형태로 하나로 통일돼 보여줬지만, 산 쥬스토 수도원, 아토차 대성당, 왕의 서재 등으로 쓰임이 다양하게 변했던 무대미술은 돋보였다. 그리고 피에트로 리초 지휘의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의 연주도 성악선율을 편안하게 받쳐줘 전반적으로 훌륭한 편이었다.

그리고 나승서, 박현주, 강병운, 양희준, 공병우, 전준한, 나타샤 페트린스키 등 국내외 실력급의 중견 성악가들이 모였고 여기에 베르디 오페라 연출의 거장 엘라이저 모신스키가 연출을 해 누구 하나 크게 빠지거나 할 것 없이 풍성한 성량과 연기를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주역 두 팀 중 25일, 27일 공연에서 필립포 2세 역을 맡은 강병운(베이스)은 특히 극의 전환점이 되는 3막 왕의 서재장면부터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바이로이트 무대에서 활약한 그의 명성답게 연륜 있는 연기와 중후한 음색으로 극을 이끌어갔다.

3막과 4막 수도원 장면에서 중요한 종교재판관 역을 맡은 양희준(베이스) 역시 나무랄 데 없는 노래와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필립포 2세와 종교재판관 두 베이스가 3막 1장 왕의 서재에서 벌이는 왕권과 종교의 미묘한 대결구도를 그리는 부분에선 두 베이스의 묵직한 음성과 스토리에서 오는 팽팽한 긴장감이 극의 재미를 한층 높였다.

카를로 역 나승서의 감미로운 테너와 엘리자베타 역 박현주(소프라노)의 부드러운 소프라노도 좋았으며 연기 또한 무난했다. 4막에서 두 사람의 듀엣 역시 사랑의 애절함을 보여줘서 좋았다. 특히 4막 도입 엘리자베타의 무척 길고 비중 있는 아리아에서 박현주는 차분한 호흡선으로 막힘 없이 노래를 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카를로의 우정 어린 친구 로드리고 역의 공병우(바리톤) 역시 3막 1장 등에서 주역 못지 않은 집중감을 보여줬다. 또한 에볼리 역 나타샤 페트린스키(메조 소프라노)는 3막 1장에서 부드러우면서도 별 힘들이지 않고 무대와 객석을 풍성히 울릴 정도의 성량을 보여줬다.

▲ 에볼리 역 나타샤 페트린스키(메조 소프라노)는 3막 1장에서
부드럽고 풍성한 성량으로 관객을 빨아들였다.


이렇듯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은 '아주 좋았다, 과연 기다린 보람이 있다' 등의 관객 반응을 얻어내긴 힘들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연출의 문제, 둘째 관객의 '기대치' 때문이었다.

첫째로, 연출의 문제를 보자면 우선 이 오페라는 상당히 어렵다. 16세기 스페인 절대 권력의 필립포 2세는 그 아들 돈 카를로와 왕비(엘리자베타)를 두고 연적의 관계이고, 정치에서도 왕이 플랑드르를 지배하는 문제를 아들은 반대한다. 1, 2막은 이를 둘러싸고 왕비와 왕의 내연녀 에볼리 공녀, 왕자의 친구 로드리고 후작 등이 얽혀 있다.

3막부터는 내용상 재밌어지지만, 복잡하다. 국면이 갑자기 심각해지면서 왕 필립포의 내면의 아픔이 심도 있게 그려지는데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오해와 아픔이 깊어지고, 16세기 당시 상황인 왕권과 종교권의 대립까지 그려진다. 그런데, 갑자기 4막에선 종교가 승리하며 모두가 '주님 만세!'를 외치는 가운데 선왕 카를로 5세가 필립포로부터 손자 카를로를 구해 내세로 인도해가며 막을 내린다.

이번 공연은 무대나 배우의 연기 등 각 요소마다 대체로 훌륭했지만, 등장인물 간 사랑과 정치의 모든 이야기가 왜 마지막 4막에서 '주님 만세!'로 귀결되고, 또 왜 카를로 5세의 망령이 돈 카를로를 무덤으로 데려가며 끝나는지, 다소 황당했다. 차라리 복잡한 치정의 심리드라마가 공감갈 수 있도록 좀 더 설득력 있게 몰아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16세기 당시 유럽정치와 종교의 상황, 왕권의 역할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또 필립포를 비롯한 각 성악가들이 좀 더 긴박하고 고뇌어린 내면 연기를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종교재판관 등장의 당위성 등에서 3막부터 좀 더 심도 있는 연출이 필요했다.

또 다른 공연에서는 훌륭하게 활약해 왔던 가수들이 이번 공연에서는 80% 역량정도만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 연출을 뛰어넘는 아주 훌륭한 배우의 명연기나 명노래가 있었다거나, 아니면 주역가수의 외모가 출중했다면 관객들은 다른 측면으로 이번 공연에 만족했을 것이다.

당초 연출이었던 카롤리네 그루버가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면서 모신스키가 공연에 임박해 작품을 맡게 됐다. 그러면서 일정상 작품에 대한 몰입이나 배우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그런 일들을 알지 못한다. 어찌됐든 연출과 배우 등 모든 구성원이 합심하고 마지막 '뒷심'을 발휘하여 좀 더 열정적으로, 공연을 펼쳤다면 관객들은 '좋았다', '아주 좋았다'란 평가를 했을 것이다.

두 번째, 관객의 '기대치'를 얼마만큼 '충족'시켜주느냐 하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스케줄이 바쁘더라도 보통 다른 공연은 그래도 90% 이상은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배우나 가수, 감독의 역량이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명성'이라는 이름값을 줄 수 있고 관객이 만족할 수 있는 적정선이 있는 것이다.

분명, 우리가 기대하고 최고라 여기는 국립 오페라단의 공연이었고, 거기에 정치와 사랑이 미묘하게 얽히고 심리묘사가 두드러진 베르디의 대작오페라 '돈 카를로'였다. 어떠한 큰 공연을 하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차라리 늘 하던 '카르멘'이나 '라 보엠'을 잘 정돈하여 공연했다면 이번처럼 '약간 싱거웠다'는 평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립오페라단의 이번 '돈 카를로'는 성과는 있었지만,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좀 아쉽다. 괜히 국립오페라단이겠는가? 하반기에 국립오페라단은 또 하나의 대작 오페라를 공연한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이 그것이다. 대작 오페라하면 베르디와 바그너를 놓고 그 대결양상을 논하게 되는데, 그 두 작곡가의 작품을 올 한해에 다루는 국립오페라단의 역량이 대단하다. 이번 공연의 평가를 발판으로 좀 더 밀도 있는 공연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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