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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리뷰] 오페라 순이삼촌, 제주4·3 아픔 공감의 기립박수 받다

 

▲ 제주 북촌국민학교 등지의 학살장면은 당시의 영문모를 분주함과 공포 그 자체였다. ⓒ 강희갑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2022년 새해는 2021년 연말보다는 제법 덜 춥다. 강추위 바람을 뚫고 경기도에 출장가듯이 관람한 오페라 <순이삼촌>(연출 예술총감독 강혜명)의 까마귀들이 눈에 선하다.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2021년 12월 30일 오후 7시 30분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공연이었다.

제주도 돌담, 허연 다리를 내놓은 해녀들, 선명한 핏빛 공포와 슬픔. 그 해녀들은 순이삼촌을 두고 말했다. “참으로 독한 사람이야.”

1948년 제주4·3사건을 다루고, 국제법에서도 엄격히 금하고 있는 Genocide(집단학살)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는 오페라 <순이삼촌>은 현기영 원작 <순이삼촌>(1978년 작)을 바탕으로 한 4막 오페라다. 있어서는 안 될 역사를 조명하며 제사집, 학살 장면, 비명과 고통, 순이삼촌의 자살, 넋을 기리는 합창으로 굵직하고 깊게 사건에 들어간다. 제주출신 소프라노 강혜명이 김수열과 함께 대본 및 각색작업을 했다.

1막 제사집에 문중의 남자들이 모여앉아 문득 순이삼촌의 죽음을 노래한다. 프롤로그 테너(윤병길)와 상수(황병남), 고모부(장성일), 큰아버지(함석헌)와 길수(양신국) 등 남성 성악가들의 활약이 크다. 2막 만삭의 순이삼촌이 아들딸과 정다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곧 무장군인들이 들이닥치고 무대는 분주하다.

군인들이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은 도망가고 잡히고, 왜 이렇게 분주할까. 우리는 모르는 그 때의 상황 그대로다. 곧 아기 안은 한 여인의 등으로 총탄이 날아들었다.

아기안은 채로 그 여인이 총을 맞자마자 나는 울컥했다. 장면이 곧 바뀌어 모두 가둬놓은 공터에서 무차별 사격이 시작된다. 이 당시 사건으로 실제 제주에서 2만5천에서 3만여명이 죽었다고 한다. 순이삼촌은 살았는지 깨어서 아이 둘을 찾지만 없다. '광란의 아리아'가 시작된다. 핏빛조명과 "아~아~"하는 고통의 처절함이 호른소리와 뒤섞여 오장육부를 뒤트는 슬픔을 관객에게 던져준다.

2022년 1월1일자 BRUNCH에 실린 소프라노 강혜명 인터뷰는 오페라 <순이삼촌>을 꼭 닮았다. ‘힘들 때 웃어야 진짜 강자’, ‘깊어지는 과정’이라는 표현이나, 멕시코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을 때 멕시코 한국대사가 “우리가 3년 동안 했던 일을 강혜명 씨는 단 하루만에 했다”고 한 부분들이 그렇다.  

 

▲ 오페라 '순이삼촌' 2막. 모두 죽고 두 아이 잃은 순이삼촌(강혜명 분)이 오열하고 있다. ⓒ 강희갑

   
제주4·3사건이 현기영 소설 <순이삼촌> 전후로 나뉜다면, 오페라 <순이삼촌>으로 분명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기자를 비롯한 수많은 관객과 출연진 제작진이 그 아픈역사에 오페라 공연을 통해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삭이던 순이삼촌은 3막에서 이제 갓난아기를 광주리에 들고 고구마 캐러 자신의 옴팡밭에 간다. 양민학살로 동네사람 다 죽었던, 자신의 아들딸도 다 죽었던 그 밭이다. 동네 해녀 아낙들이 서로 안부인사를 하고, 해실해실 웃으며 광주리에 아기 안고 가는 그녀를 향해 말한다. “정말 독한 사람이야”

그 말이 맞다. 오페라 <순이삼촌>으로 나에게 4·3사건을 이 춥디추운 연말에 경기아트센서에서 알려준 강혜명이 독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슬픔을 감추려 얼굴 가득 웃은 그 눈엔 슬픔이 가득하다. 그래서 브런치 인터뷰를 읽으며 두 번째 문단에서부터 다시 눈물이, 공연에서 아낙이 총에 맞을 때 시작된 내 슬픔처럼, 눈물이 난 것이다.

핏빛 선연한 조명과 영상에 소프라노 강혜명(순이삼촌 역)이 높은 E음으로 "아~아~"하고 한참을 헤매이며 아이 잃은 고통과 혼자남은 순이삼촌의 슬픔을 표현한 '광란의 아리아'는 정말 압권이었다. 보통 오페라 아리아처럼 가사를 담지 않고 흐느낌 그대로 높은 E음은 플루트로 연결되며 감정표현을 극대화해 이 사건에 대한 관객의 분노와 슬픔을 자극한다. 다음장면으로 바로 연결하지 않고 관객 내면 깊숙이 느낄 게 더 있을 때까지 느끼게 했다.

"똑똑한 사람 다 죽고 나처럼 쓸모없는 사람만 남았다. 여기서 식구가 죽거나 집이 불타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할머니(메조소프라노 최승현)의 노래가 "살아신다. 살아신다. 살아서 살아신다"는 산 사람의 아픔으로 다 같이 합창으로 연결되며, 슬프고 묵직한 단조합창으로 노래된다.

 

▲ 순이삼촌 커튼콜. 이 공연은 제주예술인과 단체가 대부분이고, 국내외 정상급 제작진 출연진 등 총 210명이 함께했다. ⓒ 박순영

 
몇몇 아이와 노인만 남은 마을, 3막에서 어린상수(강온유)와 어린길수(이강우)가 소고기 산적 먹고 싶다고 낭랑하게 노래하는 장면은 너무도 눈부셔 단번에 브라보를 받았다. 4막, 할머니가 된 순이삼촌이 옴팡밭에서 가루약을 먹고 죽자 테너 황병남이 "순이삼촌이 죽은 것은 한 달 전이 아니라 삼십년 전이었다"고 노래하는 장면이 절절하다.

천장에서 피범벅된 얼굴그림이 내려온다. 제주도 영귀의식 훠어퍼포먼스의 문석범과 제주무용가 박연술의 춤이 아련히 넋을 기린다. 죽은 사람들을 "3세 XXX(이름)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군에게 총살당함“ 자막으로 이름마다 일일이 거명되며 무대를 채운다. 슬프고도 씩씩한 군가풍으로 ”이름없는 이들의 이름이 있다", “봄이 오면, 그날이 오면 꽃은 핀다. 그 이름 다시 핀다 말하리라”라고 합창하고 무대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오페라 <순이삼촌>은 영상에 삽화와 낭송, 자막으로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도 차용했으며, 대사의 사용과 작곡가 최정훈의 웅장하고 섬세한 음악으로 오페라다우면서 뮤지컬의 세련미를 더했다. 2020년 제주아트센터서 초연됐으며, 2022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예정이다.  

한편, 이번 오페라 <순이삼촌>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 경기아트센터(사장 이우종), 제주시(시장 안동우)가 공동 기획·제작했다. 이날 공연에는 도립제주예술단과 제주4·3평화합창단, 어린이합창단 등 제주의 예술인들과 국내정상급 성악가 무용가 총 210명이 무대에 올랐다.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1541석 중 객석 한칸 띄어앉기의 750석 만석으로 4‧3과 오페라 <순이삼촌>에 대한 높은 관심이 확인됐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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