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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페라 '장총',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6.25와 일제강점기 관통한 나무장총의 이야기

오페라

by 이화미디어 2022. 1. 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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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장총' 초반 길남(바리톤 최병혁, 가운데)와 장총(테너 김주완, 왼쪽), 나무(소프라노 장지민) 의 노래가 625와 일제강점기 우리역사로 관객을 신비롭게 인도한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메타버스가 오페라 <장총>에 있다니!
 
실로 굉장했고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겨울방학에 식구들 덕에 <고요의 바다>, <갯마을 차차차>, <호텔 델루나> 등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 했는데, 주말에 본 오페라 <장총>의 재미는 넷플릭스 그 이상이었다.
 
지난 22일과 23일 서울 혜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안효영 창작오페라 <장총>(대본 김은성, 작곡 안효영, 연출 이경재)이 성황리에 초연되었다. 굉장한 오페라 공연이었다는 느낌으로, 이는 지난 28년간 신작오페라로 시대정신을 알려온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무대화 작업으로써 관객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주었다. 

오페라 <장총>은 한국 근대사의 뼈아픈 기억인 일제강점기와 6.25를 다룬다. 그런데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두 기간의 여러 전쟁에서 총으로 대활약한 백두산 나무 태생인 ‘장총’(테너 김주완)이 노래부르는 주인공이다. 최근 넷플릭스 한류에 각종 좀비물과 판타지류가 인기인데, 이는 18세기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나 19세기 바그너 <니벨룽겐의 반지>, 베르디 <사랑의 묘약> 등에서도 신비로운 마법이 주요소재가 되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위의 세 오페라들에서 성악가가 마술피리와 반지, 묘약이 되어 노래부르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 한국의 창작오페라 <장총>에서는 그게 이뤄졌다. 또한 극 도입에 '장총'과 '나무'라는 아바타를 통해, 그리고 극 중간 현대판 생계형 예술가인 유랑악극단 단원 남매 선녀와 봉석을 통해 우리 역사와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음산한 음악 어둑한 나무 숲, 가운데 나무가 장총 모양처럼 서 있다. 장총을 든 길남(바리톤 최병혁)이 "멸공툉일 북진툉일..다 갈겨불랑께 죽여불랑께"라고 입을 삐뚤이며 노래한다. 나무(소프라노 장지민)의 풍성한 허밍이 신비로움을 주고, 장총(테너 김주완)의 노래는 1945년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만들어져서, 일본군, 독립군, 학도병, 빨치산의 총으로, 그리고 지금 우익청년단 18세 길남의 총이 되었음을 전설 가득한 분위기로 들려준다. 

이 초반부만 봐도 오페라다운 다채로운 음향과 진지함, 몰입감, 선명한 가사가 있었기에 혹시나 이후는 재미가 적어지나 싶었는데 괜한 기우였다. 분위기가 바뀌어 본격적인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여느 공연을 보듯 주인공 선녀(소프라노 정시영)와 봉석(테너 석승권)이 유랑악극 연습중이다. 음악도 아코디언에 1950년대 흑백영화 풍이다. 

작년 4월 군포예술회관 쇼케이스만 해도 악극남매는 이수일과 심순애같은 복장이고, 장총과 나무는 좀 더 사람같은 의상이라서, 1952년 이 극의 한복판으로 이끄는 아바타가 오히려 선녀와 봉석 남매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남매의 옷은 평상스타일의 한복풍으로 하고, 반면 장총과 나무는 흰 색에 나뭇결과 가지로 약간은 로봇이나 무생물처럼 의상에 텍스처를 주어, 나무가 의인화된 이들 극 중 아바타의 역할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해 몰입감을 주었다. (Design 제작진: 무대 최진규, 의상 신동임, 조명 김민재, 분장 구유진) 

선녀(소프라노 정시영, 하이라이트 오른쪽)와 봉석(테너 석승권, 왼쪽) 악극남매는 전쟁통에 예술로 많은이의 시름을 달래고 또 땜질로 돈을 열심히 버는, 그야말로 현대판 생계형 예술가였다.


마침 코로나 한칸 띄어앉기가 1월 17일자로 풀려서 아르코대극장 객석 전석 오픈이 꽉 찬 가운데, 유랑극단 수레에서 펼쳐지는 선녀와 봉석의 공연과 연습을 관람하는 묘미가 일품이었다. 이게 안효영 작곡가 곡인가, 20세기 중반 악극을 보는가 헷갈리게 구모영 지휘의 코리아쿱오케스트라와 노이오페라코러스의 합창까지 부드럽고도 박력있는 음악이 멋졌다.

악극 남매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번안극을 할 때 극 중 관람객들이 마치 TV보듯이 맞장구 치며 재밌게 보구선 표값으로 냄비를 주고 가는 모습이 정겹다. 고달픈 전쟁통에 왠 악극이냐 싶지만, 악극으로 시름을 달래며 고철 땜장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에서 무릎이 탁 쳐졌다. 그야말로 현대판 생계형 예술가의 모습인데 대본을 정말 잘 썼다 싶었다. 
 
이 <장총>의 중요한 아리아가 있다. 소프라노 정시영이 맡은 선녀가 선녀바위 전설을 노래하는 아리아인데, 저 미지를 향한 아득한 그리움과 선한 세상에의 의지가 가득 느껴지는 아리아였다. 큼지막한 바위에 일 년에 한 번 선녀들이 내려와 날이 샐 때까지 바위를 밟는데, 바위가 다 닳아 없어져야 좋은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텃밭킬러>에서도 적재적소의 음악으로 오페라를 이끈 안효영 작곡가의 의지와 기술이,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신화, 설화 저 너머의 미지의 이야기를 아득하게 오페라 무대로 펼쳐보이는 공연노하우와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창작산실, 세종카메라타, 소극장오페라운동 등 여러 작품과 무대의 결실이 이렇게 또 쌓이고 있다. 
 
감미로운 하모니카 소리(아코디언, 하모니카 이자원)에 나무(소프라노 장지민)가 지금은 총을 들고 있지만 길남의 꿈이 음악선생님이었다고 노래부르는 대목부터는 한동안 그냥 막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휴 지금 생각해도 괜히 또 눈물이 나온다. 선녀는 길남의 총에 붙은 방아쇠가 사실은 악기 호른의 밸브를 녹여 만든 것이라고 길남에게 알려준다.

참으로 정답다. 그리고 참으로 정교하다. 이 오페라를 만들기까지 작곡은 작곡으로, 공연은 공연을 통해, 각 요소별로 수많은 노하우가 쌓였고 시대를 함께 살며, 미디어의 발달과 집단 지성을 통해 그렇게 발전했다. 
 
물론, 21세기 소셜 SNS에 유튜브, 넷플릭스까지 볼 것이 넘쳐나는 지금의 21세기에 오페라의 영향력은 16세기 18세기 서양에서 오페라가 가졌던 영향력과 파급력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페라 <장총>이 가진 문제의식과 시대정신, 그리고 판타지는 오페라라는 예술장르가 얼마나 집중된 순간에 큰 에너지로, 극에 동참하는 관객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역사에 6.25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를 다루지 않아도 되는 날이, 선녀바위처럼 계속 밟아 없어져 우리가 다뤄야 할 소재가 아닐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한국이 오페라 강국으로 우뚝 서 있겠지. 아니, 이제 2022년부터는 명실상부 한국이 오페라 강국임을 우리 함께 외쳐보자.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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