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 James Harkins의 “Affectations/Torso”. 손 동작 인식만으로 테레민(Theremin)악기 같은
무지갯빛 소리가 아름답게 펼쳐지며 구성되고 있었다. ⓒ 한국전자음악협회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2013의 공연 셋째날인 10월 31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 또 다녀왔다.
앞 이틀공연에 이어 총 5일 공연의 중반부를 달리는 이날은 네 개의 테잎 작품, 세 개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특히 라이브퍼포먼스는 관객의 핸드폰으로 음원을 받아 가야금을 연주하는 작품, 작곡가의 손의 움직임으로 소리와 이미지를 만드는 작품 등 신기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이탈리아 작곡가 Antonio Scarcia의 “BARCAROLA” for 2ch tape였다. 바르카롤라는 스페인의 뱃사공이 부르는 뱃노래인데, 이 작품은 그 양식을 비유해 작곡했다. C Sound로 만들어진 소리들은 바람소리, 파다닥거리는 소리 등 전형적인 테잎음향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 고요하면서도 추진력 있는 움직임이 깔끔 듣는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소리재료 합성과 리듬과 배치, 작곡진행 모두에 C Sound가 사용되었다는데 수학적 연산으로만 음악적 진행을 했으니 상당히 애를 많이 썼을 것으로 보였다.
전자음악, 컴퓨터음악이 기본적으로 수학적 연산에 기본을 둔 것이니만큼 첫 번째 작품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최영준의 “AURA-TELECOM” for three 25-stringed gayageums and live video는 관객의 핸드폰을 통한 설문조사를 활용해 음원을 채택하는 방식의 재밌는 작품이었다. “보통의 음악회는 ‘핸드폰을 꺼주세요’ 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켜주셔야 합니다”라며 작곡가 최영준은 무대에 나와 안내했다.
▲ 최영준의 “AURA-TELECOM” .핸드폰으로 입력된 관객들의 정보를, 미묘한 음향의 가야금 삼중주와
텍스트영상으로 보여주며 새로운 심리치유서비스형 음악을 탄생시켰다. ⓒ 한국전자음악협회
작품을 위한 웹페이지에 접속해 성별, 나이, 직업 등의 개인정보 입력 후 나열된 이미지 중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선택 후 ‘제출’ 버튼을 누르면, 웹 서버는 관객들의 성향을 종합 분석해 관객심리 분석 데이터를 악보화하고 동시에 긴 장문의 텍스트로 보여준다. 가야금 삼중주는 이 악보화 된 음악의 미니멀하고 조성을 오묘히 넘나드는 뉴에이지 스타일을 들려주었다. 스크린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일상의 작은 고민 등의 글이 일기처럼 길게 펼쳐졌는데, 이것이 가야금의 몽환적인 선율과 함께하니 마치 작은 단편영화를 한편 보는 것 같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세 번째는 영국작곡가 Adam Stansbie의 “Escapade” for 2ch tape였다. 작곡가의 프로그램노트대로 처음에는 소리조각들이 모여 희뿌연한 큰 구성체를 이루다가 점차로 개별 소리조각들로 분리되어 들리는 형태였다. 다음으로 홍콩 작곡가 Chin Ting Chan의 “time, forward” for piano and 2ch live electronics였다. 시작부에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등 셋팅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작품이 시작되자 피아노 음형 자체도 좋았고, 이것이 피드백, 딜레이, 하모나이저, 그래뉼러 합성, 소리의 공간이동 등 라이브 전자음향으로 잘 변형되어 피아노와 전자음향이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후반부 세 작품 중에는 손의 움직임으로 소리를 만드는 작품이 두 개 있어 대조되며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미국작곡가 H. James Harkins의 “Affectations/Torso” for 2ch live performance였다. 무대 위 작곡가의 손의 움직임으로 소리의 생성과 진행이 제어되는데, 컴퓨터 위에 손이 상하 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옛 시절 테레민(Theremin)악기 같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무지갯빛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악보 없이 전체 곡이 동작만으로 완결되게 잘 구성되는 점에서 작곡가가 곡 구성을 위해 프로그래밍 뿐 아니라 동작연습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었다.
▲ Chin Ting Chan의 “time, forward”. 피아노와 피드백, 딜레이, 그래뉼러
합성 등의 라이브 전자음향이 잘 어우러져 좋았다. ⓒ 한국전자음악협회
이어진 독일 작곡가 Clarence Barlow의 “Songbird's Hour Octasected” for 8ch tape은 새소리를 고음의 삐삐빅 거리는 전화버튼음 같은 소리로 모방하고 있었다. 이것이 8개의 스피커를 이동하며 마치 숲속 여기저기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표현하는 듯했다. 작곡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2011년에는 1시간길이 작품을 만들었다는데 대단한 열정이 느껴졌다.
마지막은 오디오-비주얼 작품이었다. 박시수(Si-soo Park)의 “White Spectrum(Etude for F')” for live performance인데, 국내 대학생 컴퓨터음악 경연대회인 fest-m 2013 최우수 작품으로 그는 추계예대 학생으로 대학생이 이렇게 수준높은 작품을 만들었다니 놀라웠다.
작곡가가 직접 Max/MSP로 이미지와 영상을 프로그래밍 했는데, 영상에는 커다란 패널에서 인식되는 여러 가지 손동작이 강렬한 흑백의 대조로 다채롭고 세련되게 보여지고 있었으며, 또한 웅웅거리면서 미묘하게 변화하는 사운드의 조합도 좋았다. 작곡과 학생이 직접 이러한 시스템을 고안해내고 이미지나 사운드 양면에서 잘 다듬어지고 전개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무척 멋졌으며, 후반부 첫순서 Harkins의 작품과 대비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날 작품들에서 다시 한번 전자음악의 세계는 무척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자음악은 기계를 다루므로, 연주세팅에 시간이 많이 들어 순서 전환시간이 다소 길어서 지루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고충은 작품이 시작되어 좋은 음향이 들리는 순간 말끔히 사라진다. 이러한 경험을 이날 연주에서는 많이 하게 되었다. 매체의 다양성과 기술의 발전이 과연 음악적 발전에도 도움을 주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한 듯 하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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