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싯그룹의 'tacit.perform[3]' 중 'Space'. 관객들은 연주자의 손을 보며
소리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게임과정을 지켜본다. ⓒ 태싯그룹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태싯그룹이 <tacit.perform[3] In The Distortion Field> 공연을 지난 2월 8일 저녁 7시 이대 ECC 삼성홀에서 펼쳤다.
2008년 결성된 태싯그룹(Tacit Group)은 미디어아티스트 장재호(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테크놀로지과 교수)와 테크노뮤지션 가재발(본명 이진원)로 구성된 미디어 아트 공연 그룹으로, 2013년부터 미디어 아티스트 그레이코드(조태복)가 객원으로 합류했다.
그동안 그룹 단독공연인 tacit.perform[0], tacit.perform[1], tacit.perform[2] 외에 쌈지스페이스 10주년 기념 공연, 백남준 아트센터 오버뮤직페스티벌, 덴마크 오르후스 페스티벌(2011),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MCA)과 뉴욕 링컨센터(2013)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국내 미디어 아트 공연그룹으로는 독보적인 활동을 펼쳐 왔다.
이날 공연의 첫 번째 작품인 <Intro.훈민정악>은 각 멤버들이 채팅하는 내용이 스크린에 보여지며 음악을 구성하는 것이 재밌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각각 조합하여 만드는 미니멀한 음악이 계속된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새로한 여성멤버, 음악회 진행을 염려하는 장재호, 여자 친구를 구한다는 그레이코드(조태복)의 대화 등에서 각 멤버의 개성과 일상적인 이들의 쾌활한 모습이 상상되며 우리일상의 대화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각 작품 시작 전, 스크린에 작품 제목과 특징을 정리해 보여주어 생소한 tacit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 작품 <LOSS>는 사운드를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로 설정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LOSS는 Life of Sounds의 약자로, 소리의 일생이라는 뜻이다. tacit 멤버들은 스크린에 마우스포인터로 남자 셋, 여자 셋의 개체 여섯 개를 탄생시키지만, 그들이 성장, 번식, 소멸해가면서 만드는 소리와 일생의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단지 지켜볼 뿐이다.
▲ 각 음악 시작 전 스크린에 작품설명을 보여주어, 일반인에게 생소한
알고리듬 아트 형태의 태싯그룹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 태싯그룹
행성, 별 등으로 채워진 우주 공간에 작은 벌레모양, 혹은 유전자 염기사슬처럼 생긴 개체들은 남녀끼리 서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커졌다가 위급해지면 죽고를 반복하면서 강한 하나만이 크게 노란 띠모양으로 빛나며 살아남는다. 그 마지막 한 개체가 죽어야 끝나는 이 음악이 진행되는 동안 태싯 멤버들은 무대 위에 없다. 음악의 처음에 개체들을 만들어 준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런 음악 유전자 시스템을 생각하고 만들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이날은 끝까지 살아남은 개체가 죽지 않고 계속 존재해 시간관계상 결국 멤버들이 강제로 컴퓨터를 닫아 음악을 끌 수 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Six Pacmen>이었다.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 <Six Pianos>(1973)를 배경으로 여섯 멤버가 각자의 팩맨으로 게임을 하면서 화면상의 아이템을 모두 먹으면 음악이 그 다음 마디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체 21마디로 화면의 게임 위에는 각 팩맨이 만드는 한마디짜리 악보가 표시되어 있고, 하나의 팩맨이 죽으면 해당 음악도 꺼진다. 마치 제각각의 신호음을 발생하는 꿀벌들이 함께 양봉을 하듯, 아니면 개미들이 함께 땅굴을 파듯이 작은 팩맨들이 함께 일을 해서 미니멀한 음악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과정이 재밌었다.
<Space>는 이날 작품 중 가장 오디오와 이미지의 관련성이 가장 잘 보이는 작품이었다. 스크린에는 연주자 네 명이 각자의 컴퓨터 키보드 위에 손을 얹은 모습이 각각 빨강, 초록, 파랑, 노란색으로 보인다. 빨간색 손이 “Sound a 220 low"라는 형태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타이핑하는 모습이 보이고, 곧 220Hz의 소리를 내는 빨간 색 테두리의 원이 등장한다. ”Shake"라고 하면 원이 떨면서 음도 진동하고, "kill"이라 명령하면 원과 그 소리는 사라진다.
▲ 공연중인 태싯그룹 멤버 장재호, 가재발(이진원), 그레이코드(조태복). ⓒ 태싯그룹
이런 방식으로 여러 색의 원이 크게 작게, 높은 음, 낮은 음을 내고 “Shaaaaaake"라고 명령하면 ”부르르르“ 떨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소리가 어떤 높이로 얼마나 큰 소리로 날지 예측가능하게 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원이 아니라 돌기모양으로 표현되어 소리끼리 결투를 벌이며 더욱 박진감이 넘친다. 사운드들은 서로를 공격하며 소리끼리 충돌했을 때 격렬한 소리를 내며 소리와 이미지가 일치된다. tacit 그룹 공연의 전반적 컨셉이 마찬가지겠지만, 소리를 작은 입자, 생명체를 가진 입자로 생각하고 그것 자신이 소리를 진행시킨다는 면모가 돋보였다.
마지막은 <Drumming>이었다. 스티브 라이히의 <Drumming>(1970) 음악을 재해석해 연주자들은 즉흥적으로 각자 음악파트의 리듬과 음색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십수년전에 유행했던 “DJBeat”라는 게임처럼 스크린에 막대기 모양으로 위에서 아래로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음량이 커지고 작아질 때 막대기의 가로폭이 점점 넓어지고 좁아지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으며, 여섯 멤버가 타악기의 여러 음색으로 각자의 음악파트를 조절하는 것이 눈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음악으로 들린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음악과 영상이 컴퓨터 게임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며, 그것도 알고리듬 작곡이라는 형식으로 음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태싯그룹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이들은 음악의 전방위 중에서 아마도 “최전방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이 아닌 클래식으로, 그 중에서도 순수음악 혹은 실험음악분야, 그 안에서 또 전자음악, 또 오디오-비주얼 음악. 이렇게 좁아지는 장르의 세부지점에서 이들은 일반인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형식으로 다시 대중성을 획득하면서, 동시에 음악적 전개방식으로 “알고리듬 작곡”을 택함으로써 음악적 전문성과 희귀성을 뽐낸다.
▲ 'DRUMMING'. 스티브 라이히 음악을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리듬과 음색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스크린에 막대기 모양으로 보여진다. ⓒ 태싯그룹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객원멤버인 그레이코드(조태복)는 “작품을 위해 무수한 착상과 실험을 한다. 사실 버려진 이미지와 사운드가 더 많다. <LOSS>의 경우 유전학 책도 많이 보면서 개체들의 움직임속도, 다리 갯수까지도 음악의 배음, 음정, 리듬을 변화시키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태싯의 음악이 대중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관객의 질문에 가재발(이진원)은 “관점은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새로운 음식도 먹어봐야 맛을 알듯이 여러 음악을 들어보고 관점을 넓혀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장재호 교수는 “우리가 추구하는 알고리듬 아트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완성이라는 개념이 약해서 버전 업(version up)되어야 하는 면도 있다. 우리가 관객들의 보편적인 취향을 고려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즐기는 것을 관객들도 함께 즐겨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공연은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이화여대 ECC일대에서 열린 ‘DF14: The Distortion Field Conference 2014’행사 내의 퍼포먼스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DF14는 ‘Distortion Field’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파형의 중심에 서있는 국내외 작가 및 평론가들이 모여 토론하면서 새로운 ‘왜곡장’을 형성해내는 것을 목표로 열렸으며, 심포지엄과 워크샵, 전시 및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지난 12월 21일과 22일에도 태싯그룹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기념 주제전 중 하나인 ‘알레프 프로젝트’의 연계행사로 ‘LOSS(Life of Sounds), tacit.perform[3]’라는 타이틀로 알고리즘 아트와 인터랙티브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공연은 ‘알레프 프로젝트’의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진행,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하는 신미술 프로젝트라는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어 관객들은 태싯그룹의 신개념 퍼포먼스에 열광하며 큰 관심과 호응을 보였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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