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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국립국악관현악단 작곡가시리즈3 - 강준일

클래식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2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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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강준일의 동도서기(東道西器-동양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수용)론적 작품세계는 서양의 음악기법안에 동양철학의 정신을 잘 녹여내는 특징을 가진다. ⓒ 국립극장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기나긴 겨울을 지나 어느덧 봄이다. 봄에 대한 설레임과 함께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도 3월 새로운 작품들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가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열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작곡가시리즈 3' 공연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원일)의 '작곡가시리즈'는 국악관현악 음악의 역사를 위해 노력해온 작곡가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시리즈로, 이번에는 이해식, 강준일, 김영동 세 작곡가들의 국악을 기초로 한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둘째날인 21일에는 한국창작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곡가 강준일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작곡가 강준일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출신으로, 그의 음악작품을 들여다보면 물리학자가 한 이론을 완성해 가듯이 하나의 음악적 주제가 집요하게 문장과 문장사이에 수학적으로 연산되며 치밀한 조직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한 강준일은 한국전통음악을 세밀하게 분석해 작품에 적용한 독특한 음악스타일을 보인다.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한국적 정서와 이것을 서양음악양식 속에 절묘하게 녹여내는 그의 작품기법은 그래서 특별하다.

이날 연주된 강준일의 다섯 작품들은 1983년 작부터 이번 공연을 위해 위촉된 작품까지 지난 30년간의 그의 작품스타일이 얼마나 일관되면서도 또한 변해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첫 번째 작품인 국악관현악 <하나되어>(초연 2007)는 모든 단원이 독주자이자 합주자로서 강준일 작품의 주요 특징인 주제 선율이 악기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연결되어 흘러가면서 각 악기의 음색과 특징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잘 노래하고 있었다.

두 번째 순서인 국악관현악과 소리를 위한 가곡 <송가(頌歌)89>(초연 1989)는 지금 듣기에도 무척 신선한데, 당시 상황이라면 정말 큰 공감과 논란이 되었을 듯하다. 김명수 시인의 '피뢰침', '피뢰침2', '방짜유기', '강물' 총 네 편의 작품이 노래가사로 등장하는데, 당시의 시대상황을 치열하게 표현한 가사에 걸맞게 작곡가는 심장을 때리는 절절하고 역동적인 울림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피뢰침'과 '피뢰침2'과 '강물'에서는 꽹과리, 탐탐 등의 금속성 악기를 사용해 번개가 치듯 모든 악기가 휘몰아치고 격렬하게 움직인다. '강물'의 "매질꾼아 두들겨라..이 땅에 남아있는 탄피껍질 포탄껍질 산천에 이쇠 저쇠 다 함께 녹여야하리"라는 가사에서는 가슴이 저며온다. '방짜유기'에서 "강물아 강물아..고향을 다시금 고향이게 해주렴.."이라는 가사에서는 바리톤 최정훈의 구슬픈 음성과 진중한 표정이 더해져 잊고 있었던 이 땅의 갈라진 슬픔을 잠시나마 되새길 수 있었다.

다음으로 국악관현악과 해금,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협주곡 <소리그림자 No.2>(초연 2004)였다. 현악오케스트라 반주로 작은홀에서 예전에 들었을 때보다 국악관현악 반주에 국립극장의 큰 홀에서 들으니 훨씬 더 어렵고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강준일의 작품을 연주해 온 두 연주자인 바이올린의 이보연(아리앙상블 대표)과 해금의 정수년(한국해금앙상블 대표)은 이날 연주에서 특히 서로 누가 서양악기고 국악기인지 모를 정도로 구슬픈 음색이 닮아 있었는데, 제목 그대로 서로의 빛과 그림자가 되면서 붉은 황혼 같은 오케스트라의 반주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 작곡가 강준일(오른쪽)과 지휘자 조장훈(왼쪽)이 관객들의 박수세례에 답례하고 있다. ⓒ 박순영

사물놀이와 피아노를 위한 <열두거리>(초연 1983)는 사물놀이 그룹 ‘푸리(PURI)’의 원년멤버와 젊은 피아니스트 이기준(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의 열정에 빛나는 호연이 돋보인 수작이었다. 경기도당굿 가락을 기초로 천지의 순환을 뜻하는 십간십이지를 따라서 열두가지의 각각 다른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만든 모음곡이다. 국악관현악단의 반주 없이 사물놀이와 피아노의 이중협주 만으로 서로를 위한 반주자가 되었다가 또 협연자가 되는 형식이 재미있었다.

피아노는 저음의 강렬함으로 시작해 고음의 우수어린 아르페지오와 부점 리듬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이기준은 때론 강렬하게 때론 부드러운 페달링으로 어떻게 젊은 피아니스트가 강준일 특유의 리듬과 피아니즘을 저렇게 잘 표현하나 싶을 정도로 집중어린 연주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을 위해 모인 푸리의 원년멤버들(원일(꽹과리), 김웅식(북), 민영치(장구), 장재효(징)) 역시 신명나는 연주를 펼쳤는데, 한편 피아노 부분에서는 피아노를 소리를 경청하며 엄숙하게 앉아 있는 모습 또한 재미있었다.

각 장단별로 피아노와 사물놀이는 처음에는 서로 번갈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점차 본격적으로 협주하기 시작하는데 피아노는 음량이 큰 사물 네 개의 악기와 함께 하는데도 구별되는 화음과 선율을 노래하고 있었다. 마지막 카덴차에서 사물놀이의 신나는 두드림이 아주 격렬하더니 피아노도 망치로 두드리듯 피아노의 전 음역대를 오르내리며 주먹으로 힘껏 두드리는데 그 에너지가 엄청났다.

국악관현악을 위한 관현악 소묘 <내 나라, 금수강산>(위촉초연) 작곡가 말년의 감정과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깊고 크고 위풍당당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세심하고 선율이 잘 흘러간다. 태평성대 중에도 백성을 위해 늘 고심하는 왕의 모습이랄까. 국악관현악단에 콘트라베이스 두 대의 깊은 저음을 더해주니 어떠한 음들간의 충돌도 다 잡아줄 듯하다.

국악기들간의 화합과 소통이 서양현악기인 콘트라베이스 두 대로 질서가 잡힌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서양악기와 국악기의 구분보다는 각각의 특질을 잘 이해하고 사용하는 작곡가 강준일의 동도서기(東道西器-동양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수용)론적 작품세계, 즉 서양음악의 장점을 수용하고 동아시아 철학을 음악 속에 녹여내어 하나의 큰 뜻을 향하는 자연스러운 화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작품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커튼콜과 앵콜 세례에 따라 작곡가 강준일이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과 국악관현악단, 지휘자에게 인사했다. 지휘자 조장훈은 “관현악단 연주회에 참 보기 드문 광경이죠. 그런데 저희가 3일 공연에 15곡을 연습해야 했어요. 앵콜은 아쉽게도 준비 못했습니다(웃음)”라며 연주회를 마무리 지었다.

강준일 역시 객석에 돌아와서도 앉지 않고 무대를 향해 계속 박수치고 있었다. 그래도 국악이, 아니 우리의 음악이 이 만큼이나 풍성하게 발전해왔다는 기쁨과 고마움의 마음이리라.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14 상반기 공연으로 대만 국립차이나오케스트라 첫 내한공연 <대만의 소리>가 4월 25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전통음악을 보는 새로운 시선 <리컴포즈>는 6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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