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교향악축제>에서 여성파워를 보여준 여자경 지휘자(왼쪽)와 성시연 지휘자.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찬란한 봄이 전개되는 4월 꽃은 피고 산은 푸르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관현악의 향연이 가득하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Hanwha와 함께하는 2014 교향악축제>가 4월 1일부터 18일까지 18개 교향악단의 참가로 많은 클래식팬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 속에 이제 마지막 공연을 남겨두고 있다.

올해로 26회를 맞는 <교향악축제>는 1989년 예술의 전당 음악당 개관 1주년을 맞이해 시작됐다. 그간 국내 교향악단 수준 향상과 클래식 저변 확대에 앞장서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교향악축제>는 올해 특히 여자경, 성시연 두 명의 여성지휘자의 참여와 많은 여성 협연자의 연주로 그 어느 때보다 '여성파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휘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많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정통파의 오케스트라는 여성멤버를 받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듯 서양에서도 교향악단과 특히 지휘의 세계는 남성의 세계라는 인식이 강하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여성 지휘자가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국내 교향악단을 맡은 두 여성지휘자의 연주를 <2014 교향악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12일 공연의 성시연 지휘자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그리고 15일 공연의 여자경 지휘자와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이 두 교향악단과 여성지휘자가 보여준 카리스마는 과연 지휘의 영역이 더 이상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하게 확인시켜주는 멋진 무대였다.

12일 공연의 성시연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전석 매진되며 교향악단과 무엇보다 지휘자에 대한 관객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국제 콩쿨 우승으로 국내 알려지기 시작해, 2007년 미국 보스턴 심포니 제임스 레바인의 부지휘자로 발탁돼 137년 보스턴심포니 역사상 최초의 여성지휘자라는 명성을 얻은 성시연은 국내에서는 2010년부터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 활동하며 국내기반을 쌓아갔다. 올해 1월 경기필하모닉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지난 3월 말러 교향곡의 호연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휘자 성시연의 지휘 스타일은 남성보다도 넘치는 에너지와 박력, 온몸을 던져 지휘하는 열정, 음악의 방향을 청중까지도 느낄 수 있는 디렉션이 특징이었다. 첫 순서인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처음부분 호른주자의 음이탈이 있었으나 이후 별 문제없이 곡에 점차 몰입되는 훌륭한 연주가 이어졌다. 나른한 느낌의 주제선율이 플루트, 현악기로 이어지며 장대한 오케스트라의 산맥을 오르내리는 것 같은 깊은 음색이 지휘자와 한마음 되어 펼쳐졌다. 마지막 부분 주제를 되새기는 호른과 하프의 하강음까지 진한 여운이 남는 연주로 박수를 받았다.

다음으로 피아니스트 김혜진의 협연으로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가 이어졌다. 만17세이던 2005년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 3위에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녀의 연주는 복잡한 기교를 편안하게 소화해내는 스타일의 안정적인 연주였다. 라벨이 미국 여행으로 자신감에 넘쳐있던 당시 작곡했다는 이 작품의 1악장은 강렬한 채찍으로 시작해 곧바로 독주 피아노가 돌입되는데, 그 위에 바로 피콜로가 제1주제를 연주한다.

▲ 올 1월 경기필의 예술감독이 된 성시연 지휘자는 온몸으로 음악을 그려내는 지휘로 호연을 펼쳤다. ⓒ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2악장의 잔잔하고 신비로운 관현악 반주위에서 피아노는 담대히 고요한 선율을 연주한다. 2악장이 끝나자마자 3악장은 속사포 같은 빠른 음 패시지로 시작되는데, 김혜진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고 빠른 리듬감으로 훌륭히 연주하며 앵콜 곡인 라벨 <Mirror> 제2곡까지 박수갈채를 받았다.

후반부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e단조 Op.64>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 이렇게나 멋진 곡이구나라는 느낌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호연이었다. 1악장은 클라리넷의 애조어린 선율 후에 각 악기 간 부점 주제선율이 이어지며 점차로 모든 악기가 하나 되어 포르티시모를 연주한다. 교향곡 전체적으로 팀파니가 강렬하게 많이 사용되는데, 그와 함께 성시연의 온몸으로 모아진 에너지가 장풍처럼 오케스트라에 쏟아지듯 대포알 같은 소리의 파워가 대단하다. 팀파니 부분이 오케스트라보다 너무 센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리더'란 앞서서 이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연주를 보는 내내 성시연이야말로 정말 ‘리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마 지휘자들은 무용도 잘하지 않을까, ‘지휘에 저렇게 다양한 동작이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다양한 높이와, 폭, 깊이의 지휘동작으로 음악의 모양을 그려내고 있었다. 사운드의 질은 웅장하고 깊고도 고귀하고 품격 있었다.

슬픈 호른 선율로 도입해 저 멀리 고요한 석양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의 2악장이 풍부한 선율로 흐른다. 3악장은 무척 편안하고 우아하고 감미로운 왈츠였다. 4악장은 흡사 러시아 본토의 음색을 듣는 듯이 깊고 웅장하고 일사불란한 관현악의 향연에 모든 관객들은 넋을 놓고 보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당당한 교향악 행진이 끝나자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브라보를 외쳤고, 성시연은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중 ‘트레팍’으로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15일 공연의 여자경과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여성지휘자의 파워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호연이었다. 여자경 지휘자는 2008년 프로코피예프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 국내에는 2009년 교향악축제에서 KBS교향악단 지휘를 시작으로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 프라임필하모닉 등 국내 다수의 교향악단과 연주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날 첫 번째 곡인 에네스쿠 <루마니안 랩소디 제1번 A장조>는 민속색채의 밝고 따뜻한 작품이었다. 루마니아의 대표적 민족양식인 "호라"양식으로,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선율로 시작해 점차 여러 악기의 가세로 웅장해지며 변화무쌍한 선율과 리듬이 특징적이었다. 성시연지휘자가 온몸으로 음악을 그려내는 스타일이라면, 여자경 지휘자는 몸은 꼿꼿이 세우고 지휘봉으로 모든 세밀한 디렉션을 다 주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이 작품의 포르티시모 후 갑작스런 피아니시모에서 점차 크레센도 되며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듯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금새 운동 폭이 작아진 지휘봉만으로 온 오케스트라가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작품 <라이네케의 <플루트 협주곡 D장조 Op.283>에서는 플루티스트 손유빈의 훌륭한 연주가 펼쳐졌다. 2012년 11월 한국인 최초로 뉴욕 필하모닉 관악단원으로 정식 입단이라는 쾌거를 이룩했고, 뉴욕 링컨센터 소속의 Mostly Mozart Festival Orchestra의 최연소 단원이자 유일한 한국인으로 플루트 수석을 맡고 있는 손유빈은 짧은 전주 후의 부드러운 플루트 선율 도입으로 안정감 있고 맑고 깨끗한 연주를 시작했다. 플루트의 높은 비르투오조 선율과 반주의 중음역대의 반주가 서로 주고받으며 조화를 이루었다.

▲ 군포 프라임필의 여자경 지휘자는 작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지휘봉으로
음악적 완급을 조절하며 호연을 펼쳤다. ⓒ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2악장은 첼로와 더블베이스, 관악기의 음산한 저음 후 벨칸토 아리아를 연상시키는 플루트의 높은 선율이 들어온다. 2악장과 3악장 사이에 관객들이 박수를 치자 여지휘자는 관객들에게 고개짓으로 살짝 웃는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치면 안 된다고 자연스레 알려주는 모습도 보였다. 3악장 모데라토는 경쾌하고 화려한 플루트와 반주의 교향적 색채가 더욱 짙어졌는데,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갈채에 지휘자까지 관객을 향해 손유빈의 앵콜을 유도해 관객들과 무대가 경직되지 않고 좋은 연주에 자연스레 함께 호흡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후반부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f단조 Op.36>은 차이코프스키적인 교향적 색채가 잘 살려진 호연이었다. 각 작곡가마다 후기 교향곡이 초기 교향곡보다 좋다고 얘기하기 보다는 각 넘버별로 각기 다른 색채가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3일 전 경기필과 성시연 지휘자의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의 연주는 차이코프스키의 우수어린 감성과 비장미를 더욱 극대화시킨, 파워풀하고도 낭만적인 연주였다면, 이날 군포 프라임필과 여자경 지휘자의 4번 교향곡은 금관의 찬란함이 빛나며 셈여림의 강단조절과 음악적 완급조절이 뚜렷해 듣는 재미가 있는 연주였다.

군포 프라임필은 특히 트럼펫, 호른 등 금관이 막힘없이 시원하게 뽑아내 좋았는데, 때문에 1악장에서는 다소 현악기가 묻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여지휘자는 주요선율이 어느 악기군에 있느냐에 따라 음량조절을 세심히 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악기군에 주요선율이 있는 대목에서는 당연히 현악기의 유려한 울림이 관악기보다 전면에 들리게끔 이끌었다. 교향곡 5번보다 다소 덜 정리되어 보일 수도 있고, 5번의 밑그림 같아 보이는 4번이지만 때문에 오히려 변화가 많고 재미있을 수 있는 4번 교향곡을 여지휘자는 어려움 없이 거뜬하게 통솔하고 있었다.

1악장은 찬란한 금관부로 시름에 잠긴 듯한 현악의 제1주제와 선술집에 온 것 같은 달콤한 분위기의 제2주제가 전개되고 이 두 선율이 서로 반복된다. 2악장은 오보에, 플루트, 바순의 목관과 그 사이를 현악이 채워주며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북방풍의 애상어린 전원 무곡을 잘 만들어내고 있었다. 요즈음은 악장사이 박수치는 관객이 별로 없지만, 이날 연주회에서는 협주곡 1악장 후에도, 교향곡 2악장 후에도 몇몇 관객의 박수가 짧게 있었는데, 정말 박수를 치고 싶은 연주였다.

3악장은 현악기가 활을 안 쓰고 피치카토로만 연주하는 익살스런 악장이다. 현악기 피치카토로만 이루어진 앞부분과 금관과 목관의 경쾌한 중간 부분 등이 앞 두 악장의 힘참과 우수어린 애조를 잠시 환기시키는 연주였다. 3악장의 아기자기한 연주가 끝나자마자 바로 찬란한 금관으로 4악장이 이어졌다.

여지휘자는 엄청난 파워의 4악장을 왼손으로 지휘 연단을 잡고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오히려 몸의 에너지를 아끼면서 오른손 지휘봉으로만 담대하고 큰 디렉션을 주었고, 오히려 음량이 작으면서 세부 디렉션을 줘야 하는 부분에서는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성시연 지휘자와는 상반된 스타일이었다. 학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성시연 지휘자는 연주자 스타일로 완벽한 연주와 타이밍, 오케스트라의 하나된 색채 등을 중요시한다면, 작곡을 전공한 여자경 지휘자는 작품과 오케스트라를 전체적으로 보고, 곡의 흐름과 완급 조절, 악기 간 발란스 등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4악장의 일사불란한 마지막이 장렬하게 끝나고 관객들은 브라비, 브라보를 외치며 환호했다. 여지휘자는 금관, 목관부터 악기별로 기립 인사시키는 매너를 발휘한 후, <잠자는 숲속의 미녀 모음곡> 중 ‘왈츠’를 앵콜로 화려하고도 우아한 선율을 선사했다. 앵콜이 끝나고 지휘자 본인이 악단에게도 인사했다.

두 여성지휘자의 활약으로 더욱 즐겁고 뿌듯했던 <2014 교향악축제>가 18일 오늘로 마지막이다. 교향악 축제의 마지막은 지난 25년 동안 교향악축제와 역사를 함께한 임헌정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고별무대로 백병동의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계절그리기”>,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브람스 <교향곡 제3번>을 연주한다. 지휘자와 지역 교향악단의 파트너쉽이 이룬 국내 오케스트라 발전상의 최초이자 진정한 모델이었던 임헌정과 부천필의 마지막 교향악 축제 무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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