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어떤 소리보다도 감동이었다. 강한 것은 더 강했고, 약한 것은 더 약했다. 그들은 장애인이기보다 전문가였다.
빠른 것은 더 빨랐고, 느린 것은 더 느렸다. 그 만큼 강조되었고, 각 소리단락의 만들어짐이나 연결이 굉장히 특징적이었다. 지난 8월 29일 저녁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예술단인 한빛예술단의 'Joyful Fantasty' 공연에서의 인상이다.
이번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시각장애 연주인 양성 D&LU(Discover and Level Up) 프로젝트'의 발표공연으로 진행되었다.
관악합주, 오케스트라, 타악합주, 성악, 바이올린 독주 등 다양한 편성으로 공연이 구성되었다. 시각장애인 연주자 한명씩 보조인의 동선안내를 통해 입퇴장하는 모습부터 코끝이 시큰했다.
하지만 첫 곡인 수자토의 '르네상스 춤곡'이 시작되자 단순한 뭉클거림 그 이상의 것이 되었다. '소나타 G단조', 그리고 '종들의 캐럴'까지 정확한 박자와 화음, 곡의 해석이 더해져 찬란한 금빛으로 울려퍼지면서 이 첫 순서 한빛브라스 앙상블의 연주와 이승기의 독주는 충만감을 주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이 연주한 '카르멘환타지'는 자유자재로 4도 하모닉스와 여섯잇단음표, 쥬테 등 특수기교를 넘나드는데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 어려운 곡을 어쩌면 저렇게 힘 안들이고 연주하는 듯이 빠른음표들을 정확히 짚을까, 또 빠른 부분에서 활의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눈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오로지 들리는 소리와 손 끝의 감각에만 의존해 소리를 수만번 다듬었음이 예상되었다.
주한 체코대사 미샤 에마노브스키가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대목도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소프라노 강유경은 진분홍 드레스를 입고 '오 이 영혼의 빛이여'를 맑고 고운 목소리로 선사해 관객들의 브라보를 받았다. 윤석현 또한 정확하고 아름다운 트럼펫 연주를 펼쳐 감동을 주었다. 2부는 알타 퍼쿠션 앙상블과 엘렉톤 양한규의 연주로 경쾌하고 파워풀하게 시작을 열어주었다.
특별출연한 소프라노 최정원이 김효근의 곡 '첫사랑'을 멋지게 부를 때는 무대 위 영상에 두 남녀의 만남과 언덕길, 애타는 옆모습, 벤치에 함께 앉은 뒷모습과 결혼식까지 가사내용에 딱 맞춰 샌드아트로 표현되니 정말 운치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정원이 입은 흰 옷이 신부드레스처럼 입은 것인데 아름다운 반주를 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이재혁과 무대 퇴장을 할 때 그 모습이 신랑신부 같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한빛오케스트라의 순서였다. 이들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세상에 연주자 앞에 보면대가 없다. 브라스앙상블에서도 물론 보면대가 없었지만 교향곡이고 보니 이걸 어떻게 다 외웠나 싶었다. 한빛예술단 음악감독인 김종훈이 지휘자 위치가 아니라 악장자리에서 활로 박자를 젓지만, 이들에겐 보이지가 않을텐데 싶었다.
박자가 틀린적 한 번 없이, 미지의 신세계로 향하는 광활한 울림이 일사불란하게 펼쳐졌다. 첼로단원(김민주)이 혼자라도 얼마나 풍성한 소리를 내던지! 특히 4악장 마지막 부분 빠른 3연부에서는 신세계를 향한 발돋움과 기대감이 이들 오케스트라의 강한 억양과 예민함, 특별함에서 느껴졌는데, 이는 다른 그어느 일류 오케스트라에서도 받지 못한 인상이었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에서는 음악감독 김종훈과 오케스트라와 서로 주고받는 선율이 마치 성대한 대관식처럼 화려했다. 독주자의 기량도 펼치면서 제자인 오케스트라단과 주고받기에 선곡이 좋았다는 느낌에 이 날 전체 연주회의 악기편성이나 순서, 선곡까지 참 잘 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페르귄트 모음곡의 박진감과 각 악기군 역할이 잘 드러나게 예쁘고 충만하게 편곡된 앵콜곡까지에서 '악기는 연주법에 따라 소리와 역할이 정말 달라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악파트는 활에 절도가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예민했고, 특히 팀파니 박동민의 활약은 맺고끊고가 확실한 소리를 만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신세계 4악장 마지막 3연음부가 그렇게 도전적이고 새로운 곳으로 펼쳐지는 느낌은 이 날 제대로 느낀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단원들 모두 어둠과 빛 밖에 못 느끼는 장애기 때문에 음악감독이 "하낫 둘 셋 넷" 세면서 연습하고 외우고 자신의 파트와 다른 파트를 모조리 외워 서로 맞춘다는 것이다.
D&LU 프로젝트에서는 올해 2월 오디션을 시작으로 7월에는 명사 및 교수님 음악특강을, 또한 영화와 뮤지컬 문화프로그램을 포함한 아카데미 프로그램도 진행하였다. 시각장애라는 한계로 이들은 오히려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번 프로젝트는 그들의 재능이 전문가로 사회에 발돋움하기 위한 직업인으로서의 길을 열어주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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