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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광화문이라는 삶과 지옥의 현장, 오페라로 태어나다!

오페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5. 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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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오페라앙상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광화문 지하철을
배경으로 바로크오페라의 우아함을 우리땅의 현재로 표현했다.ⓒ 문성식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2018 제9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두 번째 작품으로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5월 4일부터 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2010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이후 2015년 밀라노세계엑스포 초청공연까지 소극장오페라 운동차원에서 공연되었다. '극과 음악의 일치'라는 당대 바로크오페라 개혁을 이뤄냈던 글룩(C.W.Gluck)의 이 대표작에서 그리스 신화의 공간을,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서울의 광화문 지하철이라는 현재 삶의 공간으로 옮겼다.
 

왜 광화문일까. 서곡에서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지휘 구모영)의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영상에는 터널 속 지하철로 광화문에 도착하는 여정과 서울 지하철 밖 어둔 밤 풍경이 상세히 서술되며 음악 흐름과 잘 어울린다. 지하철역 무대 왼편 앞쪽엔 크게 한글로 '나가는 곳', 뒷편 오른쪽에는 Exit라고 표시된 간판이 천국과 지옥을 드나드는 문처럼 의미심장해 보인다.

1막 1장, 합창(그란데오페라합창단)이 고귀하고 차분하게 에우리디체의 죽음과 오르페오의 슬픔에 대해 극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무용단이 천천히 걸어들어와 긴 흰천을 들고 퇴장할때까지 합창과 무용, 오르페오는 반주음악의 느린 템포와 어우러져 삶과 죽음에 대한 슬픔이 잘 느껴졌다. 이쯤부터 2016년 광화문광장의 현장이 머릿속에 교차되며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오르페오(5월 4일 공연,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 김정미는 선이 분명하고도 부드러운 음색으로 에우리디체를 잃은 슬픔과 바로크 음악의 우아함을 잘 표현했다. 1막 2장, 아모르 역 바리톤 장진권은 힘과 부드러움을 모두 갖춘 음색과 자연스러운 연기톤으로 죽은 에우리디체를 살릴 방법과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을 잘 노래했다. 특히 같은 악구가 반복될 때, 한번은 세게 한번은 약하게 연주하는 바로크음악 기법을 뚜렷하게 살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막 1장 '지옥'. 붉은 무대 속 지옥 정령들의 합창과 오르페오(메조 소프라노 김정미)의 노래가 인상적이다.ⓒ 문성식


2막 1장 '지옥'의 무대디자인은 희뿌연 연기와 붉은 조명 속에 지하철 하부 구조물들로 인간세계의 저 밑바닥을 보여주는 듯하다. 흰 가면 빨간 손의 흐느적거리는 지옥 정령들의 죄여오며 엄습해오는 합창과 사랑을 갈구하는 오르페오 노래의 대조미가 아름답다. 

2막 2장의 '천국'에 도달한 오르페오, 영상 속 파란 하늘에 구름 그림, 큰 백열전구를 들고 앉은 천국 사람들, 발레의 움직임과 합창이 그야말로 천국의 모습이다. 오르페오가 계속해서 합창단 사이를 헤매며 에우리디체를 찾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회전 무대 위 배에 탄 에우리디체와 아모르가 다가오고 있다.
 

3막 1장, 지하철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영상으로 막이 오르고, 무대는 안쪽으로 둥그런 철길 동굴이다. 소프라노 이효진은 사랑하는 오르페오가 자신을 쳐다봐주지 않는 것에 불안해하는 내용을 맑고 가녀리게 호소하는 음색으로 와닿게 부르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에우리디체의 간청에 오르페오는 결국 자신의 눈을 가린 흰 천을 벗어던지며 에우리디체를 쳐다보게 되고, 그 즉시 에우리디체는 쓰러진다. 그 앞에서 무릎 꿇고 부르는 '에우리디체 없이 나는 어떡할까?(Che Faro Senza Euridice)'는 어두컴컴한 무대 위에서의 슬픔과 고독이 묻어나며 고귀함을 더욱 가중시킨다.

3막 1장, 에우리디체(왼쪽, 소프라노 이효진)는 오르페오(맨 오른쪽, 소프라노 김정미)가 쳐다보지
않는 것은 사랑이 식은 것이라 생각한다. 세로로 깊숙한 철길 동굴 끝에 아모르(바리톤 장신권)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 문성식


오르페오의 지극정성인 사랑에 아모르가 약간의 손짓만으로 에우리디체를 거짓말같이 살려낸다. 그 기쁨을 노래하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아모르의 3중창은 반주음악 위에 세 파트 각자의 가사가 아주 잘 들렸는데, 음악을 투명하고 명료하게 지은 작곡가 글룩의 뛰어난 실력에 감탄하게 되는 장면이다. 피날레인 3막 2장, 다시 광화문 지하철역 배경으로 발레와 합창 가운데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아모르의 3중창이 사랑과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며 웅장하게 울려퍼진다. 

작품 전체에 오르페오의 솔로 노래가 많은데도 지루하거나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가사가 우리말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과연 오페라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작곡가 글룩이 '극과 음악의 일치'를 통해 추구한 이유와 그 천재성이 느껴진다. 또한 이 일치에는 사건의 공간을 우리땅으로 연출한 점, 즉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이번 작품 외에도 지금껏 선보인 다른 오페라 무대배경에서도 우리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모습으로 그려왔던 이유와 의미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mazlae@daum.net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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