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아트오페라의 바그너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피날레 장면.ⓒ 문성식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월드아트오페라(예술총감독 에스더 리)가 한국오페라사 70년 만에 처음 국내제작으로 내놓은 바그너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1부 '라인의 황금'이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월드아트오페라는 이번을 시작으로 2019년 6월 2부 '발퀴레', 12월 '지그프리트', 2020년 5월 '신들의 황혼'을 공연한다는 계획이라 오페라팬, 바그너팬을 설레게 하고 있다. 총 4부작에 120억 원이라니 어마어마하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공연중인데, 연출은 에스더 리 감독의 남편이자 '오페라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거장 아힘 프라이어 연출이 맡았다. 아힘 프라이어는 국내에는 2011년 국립창극단 '수궁가' 그리고 2007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출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개막일인 14일, 공연시작 한 시간 전부터 이미 로비는 일반관객 및 관계자들로 가득찼다. 2층 피로연장에서는 주한독일문화원 관계자, 2011년 수궁가를 함께한 안숙선 명창,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 등 국내 예술계 원로및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 기념식이 진행되었다.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연출은 물론, 무대, 의상, 조명까지 직접 담당한 아힘 프라이어 연출은 미디어시대에 메시지 전달의 원동력과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이번 공연은 오페라에서 '무대의 완성은 음악'이라는 것을 그 피카소같은 무대 색감과 의상으로부터 느끼게 해주었다.
인터미션 없는 바그너와의 2시간 40분은 수직철골 구조물 배경, 반지를 상징하며 바닥에 계속적으로 천천히 그려지는 선명한 원형 선, 그리고 웅장한 서곡으로 시작된다. 호수에서 라인의 3요정의 화음이 아름답다.
▲ 난쟁이 알베리히와 미메는 커다란 탈과 키높이 구두로 난쟁이의 모습과 욕구를 극대화하는 등
아힘 프라이어 연출은 무대, 조명, 의상까지 모두 직접했다.ⓒ 문성식
여기에 키가 커진 보탄, 팔이 확대된 프리카, 팔이 여럿달린 로게, 무지개색 옷의 프로 등 주요 7신들과 거인 파졸트와 파프너, 머리에 거대한 탈을 쓰고 키높이 구두를 신은 난쟁이 알베리히와 미메, 라인 3요정의 특징을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부각시키면서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이는 극에 흥미를 더했고 귀로 음악 듣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힘 프라이어의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오페라로 만들겠다"의 말처럼, 독일어를 모르고 오페라를 모르고, 음악을 모른다 해도 어떤 거대한 신들의 힘과 사건 내용을 알기에 충분했다. 이것에 성악선율을 잘 뒷받침하는 랄프 바이커트 지휘의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관악파트-비올라에 더해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음악은 인물관계와 사건이 성악내용과 오케스트라 반주의 관계로 잘 보이도록 이어졌다.
더 깊게 얘기하자면, 베르디와 바그너가 다르지 않구나를 느끼게 해줬다. 흔히 베르디오페라의 관현악법은 간결하고 가볍게 성악가사와 멜로디를 뒷받침하고, 바그너는 거대한 오케스트레이션에 끊임 없는 성악선율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2층 S석에 앉았는데도 특히 신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3막부터는 집에서 TV를 보는 것처럼 노래대목과 반주의 구분이 선명해졌다.
14일 공연에서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중인 한국 남자 성악가들이 높은 성량과 충실한 전달력을 보여 만족감을 주었다. 바리톤 김동섭(보탄 역)이 탄력과 팽팽한 저음으로 신의 권력을 보여줬다면, 베이스 전승현(파졸트 역)은 중후함을, 베이스 이대범(파프너 역)은 안정감 있는 저음으로 반지에 대한 거인들의 욕심과 결투를 잘 그려냈다.
또한 바그너팬들을 기대하게 했던 세계 최고 권위 바그너 음악 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가수들의 실력과 연기는 보는 내내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극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난쟁이 바리톤 세르게이 레퍼쿠스(알베리히 역)는 윤기 있는 미성으로 반지의 저주를 잘 노래해주었다. 테너 볼프강 그라츠마이어(난쟁이 미메 역)는 고음의 탄력있는 호소력으로 형 알베리히로부터 받는 고통을 잘 표현했다.
▲ 신의 전쟁은 논쟁으로부터 시작된다.보탄(베이스 김동섭)과 반신반인 로게(아놀드 베츠옌)의 대결.ⓒ 문성식
테너 아놀드 베츠옌(로게 역)의 탄력있는 목소리가 카리스마 있었으며, 무지개색 의상, 그리고 로게의 불꽃역(정주희)도 눈길을 끌었다. 바리톤 마르쿠스 아이혜(천둥의 신 도너 역)는 무대 높은 곳에서 팔을 휘두르며 천둥칠 때마다 강렬한 인상을 줬다.
메조소프라노 미셸 브리트(프리카 역)는 부드럽고 깊은 신의 음성을 느끼게 해줬으며, 사과를 앉고 있는 소프라노 에스더 리(프라이아 역) 또한 맑은 고음으로 젊음의 여신을 어필했다. 라인의 3요정 메조소프라노 남정희(플로스힐데 역),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슈타이너(보글린데 역), 소프라노 김샤론(벨군데 역)은 아름다운 3화음의 물결로 극 시작과 마지막의 신비로운 느낌을 잘 형성해주었다.
이번 공연과 출발은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하지만 워낙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라 관객들은 왠만한 문화적 충격을 일생을 뒤흔드는 사건으로는 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특히 깐깐하고 똑똑하고 합리적이고 시크한 한국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마도 월드아트오페라단은 국내공연계 시스템과 제작여건을 잘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바그너 오페라에서 신들의 대항해처럼 말이다. 국내 문화예술계와 오페라발전을 위해 꼭 이뤄내리라 믿는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1월 18일까지 진행된다. 뮤지컬배우 양준모가 15일과 18일 보탄역으로 등장해 기대를 모은다. 한편, 11월 24일 오후2시 청담동 더 스페이스갤러리에서는 화가이기도 한 아힘 프라이어 연출의 미술작품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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