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3월 22일과 23일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예술총감독 이강호)의 창작오페라 <검은 리코더>를 보았다. ‘검다’는 느낌에 리코더, 그리고 좀비 오페라라고 하니 사뭇 궁금해졌다.
나실인 작곡, 윤미현 대본, 안주은 연출이다. 전체적으로, 공연은 신비로운 저승세계를 표현한 무대와 우리말 가사를 살린 노래와 충실한 오케스트레이션, 짜임새 있는 연출로 오페라가 갖춰야 할 3박자의 균형면에서 탄탄했다. 이것은 2007년 창단했고, 내가 본 라벨라오페라단의 2015년 <안나 볼레나>, 2016년 <안드레아 셰니에>, 2017년 <돈 지오반니>, 2018년 <가면무도회> 공연들에서의 느낌과 기대 그대로였다.
여기에, 한국사회의 고령화 문제를 이슈로 한 윤미현 작가(제55회 동아연극상 희곡상 수상)의 대본에 요사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유행하는 ‘좀비’ 컨셉과 분장으로 흥미를 더한것도 이번 오페라를 특색있게 하는 요소였다.
또한 우리말 가사의 딕션을 살리기 위해 트로트부터 클래식, 그리고 현대음악기법까지 다채로운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하고 지휘까지 한 나실인 작곡가(오페라 <나비의 꿈>, 발레 <처용> 등)의 음악은 노인 영혼의 세계를 어두운 한의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동심의 발랄하고 꿈꾸는 듯한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처럼 표현함으로써, 노인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근처에 함께있는 문제임을 꼬집었다.
성악가들의 활약 또한 멋졌다. 22일 공연에서 태풍 때 부엌찬장이 무너져 눌려죽어서 일명 '찬장할머니'인 할머니역의 소프라노 박현진은 특히 극 마지막에 "어미는 나무 속을 긁어내 파낸 리코더처럼 늘 예쁜 소리내며 웃고 있어야 하는거야" 라며 노랫말의 '어미는 나무 속을 긁어내' 아리아로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극 초반부터 끝까지 가장 많은 양의 노래를 소화하며 맑고 풍성한 음색으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와 노래를 펼쳤다.
2막에서 이목련 역 소프라노 김은미는 수지침 놓는 것을 타박하던 며느리와 아들을 흉내내는 레치타티보로부터 이어지는 '아침에 소파에 앉아'의 고음의 아리아에서 경쾌하고 맑은 음색으로 공감을 얻었다. 현대판 고려장처럼 가족여행으로 간 인도네시아에 공항에서 버려진 '보자기할머니' 장을분 역 메조소프라노 김순희가 부르는 '날마다 살아도 모든 게 신기하던데' 아리아는 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리아인데, 안정되고 풍성한 목소리로 고향의 모습과 소중한 삶에 대한 미련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남성 성악가들의 노래는 가사가 훨씬 더 귀에 잘 들어왔다. 2막에서 테너 김중일은 좀비 분장이 아니라서 더욱 뚜렷한 눈빛과 명징한 음색과 가사전달과 '딩동' 아리아로 다섯노인을 나룻배에 태우는 남슬기 역을 돋보이게 했다. 베이스 양석진은 1막에서 힘찬 저음에서도 서정성을 갖춘 노래로 목에 깁스를 하고 자살한 목기남 역에 집중하게 했다. 바리톤 고병준 또한 저음에서도 재치와 익살이 느껴지는 모습과 노래로 치매 걸린 변소호 할아버지를 잘 선보여주었다.
음역과 신체구조상 여성 성악가 노래는 호흡공명으로 모음이 더 잘 울리고, 남성성악가 노래는 자음에서 오는 텐션이 호흡으로 잘 유지되기 때문에, 우리말 성악노래는 남자가수들의 가사가 더 잘 들리는 측면이 있다. 음절의 시작이 자음이기 때문에 자음이 잘 안 들리면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말 오페라에서 이 부분은 작곡가나 성악가 모두의 노력으로 계속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1막에서 노인좀비 대장 유인자 할머니의 나룻배에 서로 타겠다고 ‘날 데려가’라고 나머지 노인들이 부르는 절절한 4중창,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노인들의 피튀끼는 전쟁을 유인자가 검은리코더를 불며 제지하는 것, 1막 마지막에 저음 콘트라베이스가 형성하는 음산한 분위기 위에 어린 동자가 소금을 불며 극에 긴장감을 넣는 장면, 2막 시작에 노인 좀비들이 타야하는 나룻배의 넘실대는 느낌을 음악동기로 살린 점 등 이번 <검은 리코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많다.
노인들의 사연을 모두 들은 남슬기에 의해 이들은 그냥 나룻배가 아니라 모두 페리를 타고 저승길로 안전하게 출발하게 되었다. 정성복J발레단이 천국가는길을 우아한 발레로 수놓고, 소리얼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팡파르와 메트오페라합창단의 힘찬 합창이 가세한다.
외로운 좀비들인데 씩씩하고 경쾌한 합창이라 의아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외로운 좀비'들의 씩씩한 합창 선율이 들리는 것 같다. 기존오페라답지 않은 요소들 덕분에 이번 <검은 리코더>는 현장에서 오페라 관계자보다 일반 관객의 반응이 더 후했다.
이강호 단장은 "한국오페라 시장에서 대중오페라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르코 창작산실의 제작비가 두 오페라단에게 지원되어야 했기에, 예상의 반만큼 지원받은 1억 2천5백만원에 단장의 사비를 그만큼 털어넣어 이번공연을 올렸다고 한다.
이번 <검은리코더>를 계속 공연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바라는 것이 있다. 지금은 너무 꽉 차 있는 느낌인데, 어떤 장면에는 무대장치나 합창, 무용 없이 솔로만 있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정부 지원이 아니라도 우리 시민이 모금하고, 작은 소극장에도 오히려 적합할 수 있다. <검은 리코더>가 전 국민이 사랑하는 창작오페라가 되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편, 라벨라오페라단은 차기작으로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올 11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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