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페라앙상 블 '나비의 꿈'(왼쪽) 첫 장면과국립오페라단 '1945'(오른쪽) 마지막 장면.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2019년 10월초 작성한 리뷰이니 1년 반 전이다. 간혹 세부내용 언급을 위해 좀 더 작성중에 리뷰를 기사로 못 올린 경우가 있다. 2019년 가을에 본 창작오페라 <1945>와 <나비의 꿈>은 당시 정치상황과 맞물려 내 마음을 더욱 무겁고도 뜨겁게 했는데, 보통 각 오페라 세부장면 언급을 리뷰에 하는 편인데, 이 당시 글에는 아무리 고쳐써도 다짐이나 바램만 자꾸 글로 쏟아져나와서 결국 적당한 시일에 기사로 송고하지 못하여, 오늘 올리게 되었다.

 

** (2019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늦어도 9월 말 주말 본 두편의 오페라 기사를 올리려 아등바등했던 마음과는 달리 휴일 세 어린아이 육아맘이자 작곡가인 기자는 그저 집에서 하루 삼시세끼를 차리고 먹고 치우느라 평화롭고도 노동집약적인 하루를 보냈을 뿐이다. 그래도 창작오페라 기사니까 한글날에 기사가 올라가서 오히려 잘 되었다. (기사로는 결국 못 올렸다)

지난 9월 27일 관람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작인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1945>(기획 윤호근, 작곡 최우정, 연출 고선웅), 28일 관람한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작인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나비의 꿈>(작곡 나실인, 대본연출 장수동)은 저번 주말인 28일과 어제 10월 5일 서초동 법원 일대의 '조국수호집회'와 개천절인 10월 3일 광화문의 '조국사퇴집회'처럼 시대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사회적 움직임과 맞물려 계속적으로 내 마음을 울리고 있다.

위 네 개의 사건이 겹치거나 연이어 있는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공교로운 것은 어제 조국사퇴집회에서는 1980년대의 유명한 가수 정수라가 부른 '아아~대한민국'노래의 '아아~나의 조국'이라는 가사가 집회참가자들 사이에서 아이러니의 상징으로 sns상에서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의 오페라, 10월을 맞이한 오페라 두 편 

그래, 그렇다면 이 나라 '조국'의 노래, 우리나라의 '오페라'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네이버 국어사전에 '조국'을 검색해보았다. 조국(祖國)이란 '1.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2. 자기의 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 3.민족이나 국토의 일부가 떨어져서 다른 나라에 합쳐졌을 때에 그 본디의 나라.'라고 적혀 있었다. 

요 몇 년, 특히 올해들어 나는 어렸을 적에 '한반도 땅에서 유구한 오천년 역사를 지닌' 이라고 배운 것과는 달리, 여러가지로 우리나라 역사는 참 짧구나라고 느끼곤 하였다. 아마도 대한민국이라는 틀과 서구유럽의 선진화를 비교한 생각일 것이다.

서설이 또 길어지는데, 어쨌든 올해 초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수십수백의 축제와 행사 및 공연소식을 보면서, 가끔은 기념을 빙자한 자기만족의 잔치들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과 기념이 올 1년동안 쌓인 힘은 꽤 큰 것 같다.

9월 말 본 위 두 오페라작품은 시대의 사명과 역사의 질서와 운명을 함께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오페라 <1945>는 만주에서 서울오는 기차가 배경인데, 내가 이 기사를 서울에서 부산가는 KTX에서 적고 있는 것 또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너무 감상적인가, 아니면 나의 착각인가, 혹은 과대 망상인가. 하지만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며, 바로 거기에 예술의 힘이 있다. 한순간에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으며 강한 전율을 느끼게 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 여기에 예술의 힘이 있다. 

 

국립오페라단 '1945'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1945>, 서울오페라앙상블 <나비의 꿈>

국립오페라단 '1945'는 한일 화해,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나비의 꿈'에서는 남북화합의 바램을 느꼈다. 둘 다 창작오페라이고, 어려운 주제를 잘 표현해 큰 감동들 줬다. 나 또한 오페라 작곡가가 되리라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두세시간 동안 시대를 겪는 인간의 감정을 담은 함축적 시어, 그것을 가사로 노래로 단순간에 몰입과 집중을 주는 예술장르는 단연 오페라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국어이면 오죽 와닿겠는가.

지난 27일 국립오페라단의 <1945> 초연을 보면서는, 13일 기자간담회 때 제작진 설명 그대로 충실히 잘 조직되었음을 느꼈다. 특히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을 중심으로 배삼식의 대본이 살아나고, 정치용 지휘의 코리안심포니까지 극저음으로 시작해 의도적으로 중음역대를 공허하게 비우고, 소프라노의 최고음까지로 인생의 깊은 절망과 끝없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낭만이후 현대오페라를 겨냥한 것은 분명했지만, 동요 '엄마야 누나야'부터 1930-40년대 창가와 트로트, 군가 등을 짧은 순간씩 녹여내며 익숙함을 주었다.

이번 작품의 고선웅 연출이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파트가 이미 잘하니)"저는 간판 한 것 밖에 없어요"라고 말한 것은 오페라에서 음악이 중심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준 겸손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201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구자범 지휘, 고선웅 연출의 서울시오페라단 <맥베드>를 봤을 때도 더 오페라가수들이 여타 다른작품에서보다 더욱 세밀한 연기를 하며 감정선을 보여주었던 것을 기억해보면, 이번 <1945>에서도 여러명의 등장인물 각각의 상황에 고르게 몰입될 수 있는 적절한 동작과 타이밍, 동선, 표정연기 등의 세부사항이 극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기자가 궁금했지만 시간관계상 질문하지 않았던 내용이 왜 미즈코의 대사나 아리아가 일본어인지였다. 당시에는 이질적인 것의 결합을 추구하는 의미일거라 생각했지만, 본공연에서 비로소 그 큰 뜻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어느날엔가 일본에서도 공연되어 양국의 화해를 도모하고, 이 작품 오페라 <1945>는 우리나라 최근의 역사를 조명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오페라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9월 27일과 28일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이 공연한 나실인 창작오페라 <나비의 꿈>은 한마디로 ‘아름답다’, ‘정말 공연답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오페라였다. 2017년 초연이후 재연이어서 음악도 장면별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아리아로 더욱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공연장상주단체로서 잘 파악할 수 있기에 아트밸리 소극장 무대를 더욱 잘 살린 무대와 영상으로 극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었다.

윤이상 작곡가가 남산에서 고문관들에게 고문받는 첫 장면은 일종의 블랙코미디처럼 이 극 전체를 경쾌하게 비튼다.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는 반주가 사건의 긴박성을 알리지만, 고문관들은 어떻게 하면 자백을 잘 받아낼 수 있을까 노래하는 동시에 기껏 “담배맛이 왜 이래?”, “아냐, 담배는 해로워”라며 노래한다. 이런 아이러니의 시대, 나라의 대작곡가를 그 대접하는 시대였음을 극은 알린다.

 

오페라 '나비의 꿈' 마지막 장면

공연예술, 그 중 오페라, 창작오페라의 존재이유

우리는 왜 공연을 볼까? 왜 예술이 필요한지를 놓고 보자.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시간이 하루하루 잘도 흘러간다는 것을 알 것이다. 흐르고 또 흐르는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 그 속에서 내 감정을, 개인의 감정을 충분히 짚고 들여다 보기는 참으로 어렵다. 사실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역사 속의 사건들은 어떠하랴. 그것 또한 하루하루 안에 똑같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9월말 주말 나는 오페라에 빠져있을 당시에 서초동에서는 아마도 역사의 한 장면에 기록될 첫 번째 조국수호 집회가 열렸듯이, 그 역사속의 사건을 짚어내고 충분히 풀어내고 남기는 것에는 인간감정과 직결되는 예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은 한 개인 안에 있는 것 중에 감정과 정신에 대한 통찰을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예술가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여러 사람들의 그 느낌과 견해에 대한 대변자라면, 위안부 문제나 동백림 사건이라는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사건을 통해 국가 간, 국가에 의한 폭력과 인간 존재의 발견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에는 오페라라는 장르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나는 단언하겠다. 

지금 이 시국상황은 새로운 질서의 재편을 원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질서는 언제나 음이라는 질서이다. 드라마와 다르게 음악이라는 질서있는 체계가 감정에 가져다주는 깊은 울림, 그리고 우리말 로 된 노랫말 가사로 그것을 듣는다면 그 감동은 제일 직접적이고 깊을 것이다. 

16세기 유럽에서 대중음악이었던 오페라가 21세기 한국에서 왜 필요한지를 물어본다면, 나는 오페라의 매력은 단연 그 성악 발성과 함축된 시어로 표현되는 은유에 있다고 답하겠다.

성악발성을 보자. 인간이 자신의 얼굴과 몸 전체를 큰 울림통으로 하고 몸 주변의 공기를 사용해 높은 배음을 내는 성악발성이기 때문에 그 어떤 악기보다도 예술적 몸과 마음자세가 준비된다. 그리고 몸으로부터의 큰 흐름에서 노래가 나오기 때문에 재빠르거나 잔꾀를 부리거나 하는 '일상'의 방법으로는 좋은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고운 노래가 나온다. 음이 높아도 날카롭게 찌르지 않으며, 성량이 커도 무겁지 않다. 나는 그 점이 좋고, 점점 더 좋아진다. 

함축된 시어와 은유를 살펴보자. 발성방법에 걸맞는 간결하게 함축된 시어를 음에 얹어서 노래부른다. <나비의 꿈>에서는 억울하게 옥중에 갇힌 천상병 시인, 윤이상 작곡가, 이응노 화백에 대해 "느닷없이, 어처구니없이, 영문도 모르고"라는 노랫말에 단어마다 조를 변화시켜 터무니없는 국가권력과 이를 당한 심정에 몇 초만에 공감시킨다. 오페라 <1945>에서 윤경감이 "한글강습회~?"를 반복하면서 노래부르는 대목은 1945년 해방이 되었어도 만주벌판에서 어찌 한글을 가르치려하냐는 윽박지름을 솔과 시의 단지 두음의 상하행만으로 잘 표현했다. 

발산보다는 승화의 느낌이랄까. 펼쳐없어지기보다는 잘 응축해서 날려버리는 느낌이다. 이런 오페라의 특징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고 관객은 오페라의 웅장함 속에 있는 맑은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이유가 있는데, 오페라는 더이상 서양의 옛 귀족음악이 아니다. 클래식 종사자가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 많고, 성악인구도 많고, 노래 좋아하는 한국인의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는 창작오페라가 없다고 말할까? 무수히 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더 잘되고 좋은오페라, 외국에도 소개하고 싶은 '자랑스런' 오페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일 것이다. 무슨말인지 모를 이 엉켜있는 말이 지금까지 10여일의 내마음을 가장 잘 알리는 말인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볼까? 그냥 세상이 오페라였으면 좋겠다고 외치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대한민국의 현 시국을 나는 그저 9월말 본 두 창작오페라를 어떻게 알리고, 나는 무엇을 느끼고 변화하였는지를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오페라처럼 지내왔다.

애써서 대작이 될 수도 있는 오페라를 만들었지만 잘 관리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창작오페라 하나 만든 것 밖에 안되는 것이다. 한국오페라의 위기일 수가 있다. 오페라 쪽에도 많은 논의와 움직임들이 있다. 10월은 기념일이 많다. 10월 9일 한글날엔 플래시몹이 열린다. (2019년 10월 9일 예술의전당 잔디마당에서 오페라 플래시몹 행사가 잘 열렸다.) 언젠가는 오페라가 한국것이라고 될 날이 있지 않을까. 세계오페라사 한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한국이 위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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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스 한혜열과 피아노 윤호근이 앵콜로 'An Die Music(음악에)'을 연주하고 있다.  ⓒ 박순영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지난 423일 저녁 730,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한혜열-윤호근 듀오 콘서트로 열린 슈베르트 연가곡시리즈 I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가곡의 매력과 운치를 한껏 느끼게 해준 좋은 공연이었다.

오페라처럼 무대장치나 여러 출연진 없이 오직 피아노 한 대, 성악가 한 명 이렇게 두 사람이 한 청년의 짝사랑을 전해준다. 그리고 제목은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인데, 워낙에는 테너 성부의 곡을 이 날은 베이스가 불러 음역도 낮아진데다, 피아노도 남자피아니스트가 치니 더욱 물레방앗간 아가씨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각각이 독립적인 짧은 가곡 20곡이 이어져 큰 줄거리가 있는 연가곡(Liederzyklus)이다. 방랑하던 젊은이가 물레방앗간에 정착해 그 집 딸을 사모하지만 그녀는 사냥꾼을 좋아한다. 결국 젊은이는 강물에 투신한다는 내용인데, 이 시는 독일 시인 뷜헬름 뮐러의 <방랑자의 유고시>이고, 여기에 음을 붙여 슈베르트가 1823년 작곡했다.

1곡 '방랑'에서 피아노 윤호근의 힘차게 도는 물레방아의 모습을, 2곡 '어디로?‘에서는 부드러운 페달링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들려준다. 이 위에서 방랑하는 젊은이가 되어 노래하던 베이스 한혜열의 감성이 3, 4곡을 지나 5곡 ’하루 일이 끝나고‘까지 더욱 진지하고 깊어진다. 한혜열과 윤호근의 조화가 참 좋았는데, 특히 피아노에서 성악으로 선율이 이동할 때는 한 악기에서 다른 악기로 선율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악기의 한 선율처럼 느껴졌다. 공연 전 해설의 음악

학자 강지영이 나이차이가 나는 두 연주자의 우정을 느낄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  한혜열-윤호근 듀오콘서트 팜플렛 표지. 초록빛 자연의 물방앗간과 시냇물이 아늑하고 아름답다. 


6곡 ‘궁금한 마음’에서는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지, 'Ja(예)‘, 'Nein(아니오)'으로 온 세상이 두 개로 나뉜다는 진지함이 묻어나는 성악과 잔잔한 반주였다. 7곡 ‘초조한 마음‘에서는 사랑을 확인하고픈 청년의 초조한 느낌이 격렬한 물레방아와 노래에서 잘 다가온다. 윤호근의 피아노 터치보다 톤이 참 좋다고 느꼈는데, 연주를 들으면서 점점 한혜열과 음색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곡 ’아침인사‘의 첫 피아노 점음표 리듬이 정답고 잔잔하게 울린다. 곡 마지막에 하늘 높이 종달새가 지저귀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13곡 ‘라우테의 녹색 리본을’에서는 피아노 점음표, 꾸밈음 리듬이 매우 멋지다. 14곡 ‘사냥꾼’은 피아노 전주의 격렬한 도입이 사냥꾼에 대한 청년의 질투를 잘 표현해준다. 15곡 '질투와 자존심'에서는 'Sag ihr's'(그녀에게 말하렴)하는 가사와 노래가 격정적이다. 또한 가곡은 어떻게 네 마디 전주만으로도 분위기를 확 잡으며 장면으로 인도하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오페라와는 또 다른 성악곡의 묘미 아니겠는가.

 

또한 16곡과 17곡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16좋아하는 색은 사냥꾼을 사모하는 여인이 좋아하는 색깔이 초록색이라는 것인데, 음악이 작아질 때는(p) 자막의 글자크기가 작아지고, 음량이 커지면(f) 글자크기가 조금 더 커져 역동성을 주고 있었다. 18세기 독일의 예술사조인 질풍노도(Strum und Drang)’ 감정의 극대적 표현을 추구했는데, 이를 음악분야는 같은 음악부분을 피아노와 포르테로 극단적으로 대조시켜 표현했다. 물레방앗간 아가씨가 좋아하는 사냥꾼의 모습이 노래와 피아노로 표현되는 가운데, 자막에서도 슈베르트 하면 빼놓을 수없는 이 질풍노도 기법을 강조해주어 작은 재미를 주었다

 

더 진짜 재미는 그 다음 곡 17. ‘싫어하는 색의 가사를 보면서였다. 같은 초록색을 두고, 그녀가 사냥꾼을 좋아하기 때문에 청년은 싫다는 것이다. '! 초록색, 너 못돼먹은 색깔아'라고 노래부르는 이 대목에서 나 혼자 웃음이 피식 났다. 또한 이 때 유명한 가곡 슈베르트 <마왕> 시작과 비슷한 오른손 빠른 3연음부 연타에 왼손은 호른 6화음을 동시에 연주하는데 기가 막혔다. 연주자들에게 감탄을 함과 동시에 평생 600여곡의 가곡을 작곡했다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천재성이 느껴졌다.

18곡 ‘시들어버린 꽃’에서는 잔잔한 음에서 측은한 사랑의 상실감이 잘 느껴진다. 한 편의 드라마를 다 본 것 같은 이 몰입감과 아련함을 무엇이라 말해야할까. 이윽고 19곡 ‘물방앗간 젊은이와 시냇물’ 시작의 장송곡 같은 나직한 음과 리듬에 숙연해진다. 사랑의 아픔에 자살한 청년의 마음을 참으로 아름답게도 표현했다. 이쯤오니 ‘발음’이 뜻 같고, ‘뜻’이 ‘선율’ 같았다. 한혜열이 시고, 윤호근이 시냇물 같은 혼연일체의 경지랄까. 곡 처음에 내게 외국어이던 독일어가 마지막 20곡 '시냇물의 자장가'에서는 마음을 다독이는 자장가 소리가 되었다.

21세기 한국에서 18세기 독일시와 노래를 듣는데, 한편 우리전통 18세기 유산인 판소리를 들을 때의 구수하고 시원한 느낌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 또한 받았다. 여하튼 이번 공연 후 리뷰 글이 공연만큼 매력적이게 잘 안 나와 책상 앞에서 한숨만 북북 쉬며 일주일이 지났다. 아마도 내가 물레방앗간 아가씨처럼 아름답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런 사랑을 못해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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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참으로 오랜만에 공연을 몰입해서 보았다. 눈물까지 흘렸다.

지난 11월 2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된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건용) <달이 물로 걸어오듯>을 본 소감은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새로 작곡된 것 같지 않게 자연스러운 음악과 흥미로운 극적 소재와 대본, 그것의 세련되면서도 소박한 무대화로, 인간의 사는 문제에 대해서 이 극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공연 3주전에 있었던 제작발표회 현장에서나 공연 팜플렛에서도 알 수 있는 바, 이번 공연은 지난 2년간 최우정 작곡가와 고연옥 작가의 끈끈한 협업이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2010년 오페라 <연서>에서도 호흡을 맞추었던 두 사람은 이건용 단장이 2012년부터 이끈 '세종카메라타'라는 작곡가-대본가 모임의 네 팀 중 한 팀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해왔다. 작년 세종 카메라타의 네 팀이 리딩 공연을 했고, 그 중 <달이 물로 걸어오듯>이 채택되어 무대화작업을 거쳐 이번공연에 이르렀다.

남자가 장모와 처제를 살해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고연옥 작가가 10여 년 전에 쓴 희곡이 2010년 일본과 한국에서 연극으로 올려 졌고, 이번에 그 일본 연출이었던 사이토 리에코가 오페라 연출을 맡아 더욱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공연홍보 단계에서는 '핏빛 버전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홍보되어 더욱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수남이 극 중 때때로 부르는 노래인 "나는 화물차 운전수요, 짐칸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모른채,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오"라는 대목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화물차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모른 채, 그저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인 것처럼, 부인 경자도 자신과 하나이고, 또한 자신은 '생각'없이 하루하루 살아갈 뿐, 그 외에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계모와 여동생을 죽이고 그것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부인 경자에 대해 검사가 취조할 때 그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처럼 노래한다.

어두컴컴한 밤길 고속도로에서, 이 길이 밤새 안전하기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그 마음에서 괜시리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의 삶이 그렇고 우리 모두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어수룩하고 아는 것 없는 나이 오십이 넘은 주인공 수남은 밤 운전이 끝나고 들리는 술집에서 스무 살이나 차이나는 경자를 알게 되고, 가진 것도 없고 나이 많은 자신을 웬일인지 좋아하고 아이까지 낳아주겠다는 경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경자의 죄를 뒤집어쓰고 결국 감옥에 갇히지만, 사건에 의심을 품은 검사가 하나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말에, 점차로 경자의 사랑에 대해,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에 대해 눈뜨게 되고 누명을 벗고, 결국 경자가 감옥에 갇히고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인터미션 없이 1시간 40분, 전체 11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는 지루할 틈이 없다. 극의 전개될 상황이 궁금하게끔, 또한 극중 인물의 상황에 공감 혹은 지탄을 하고 싶게끔 몰입할 수 있도록 대본이 치밀하게 제시했고, 그것을 작곡가가 또렷하고 극적인 음높이와 리듬으로 표현했다. 경자가 "내 마음을 알아?"라고 할 때 진짜 여성들이 신경질 낼 때의 음높이처럼 굴곡이 있었고, 주제선율인 '달이 물로 걸어오듯'의 반음계 하강 선율은 전위되기도 하며 곡 전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배했다.

성악가들은 정말로 실제 극중 인물들처럼 보였다. 보통 성악가수들은 노래는 잘 해도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들에 비해 연기가 세밀하지 못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모든 배역이 '심리극'이라는 특성을 아주 잘 살려 각 인물들의 특성과 그들의 생각의 흐름과 변화, 그로인한 사건의 추이를 잘 보여줬다.

23일 공연에서 베이스바리톤 김재섭은 배운 것 없고 여자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지만 '생각'을 통해 점차 변해가는 수남 역과 싱크로율 100%였다. 소프라노 정혜욱 역시 가족에 대한 복수심과 한 남자와 새 생명에 대한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경자로서의 연기를 잘 펼쳤다.

마담 역의 김지선, 미나 역의 윤성회, 검사 역의 엄성화, 국선변호사 역의 최보한, 형사 역의 이 혁, 딸기장수 역의 이두영 모두 노래는 물론 세밀한 눈빛과 호흡템포까지 고심하고 연습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오페라'하면 무엇인가 귀족적이고, 괜한 힘이 들어가 있고, 거기다 우리말의 창작 오페라라고 하면 우리말인데도 '잘 들리지 않는다'는 기존의 여러 가지 문제와 고정관념을 깨트려주는 표본이 되었다.

좋은 대본이 제일 첫 번째 바탕이 되었고, 그것을 똑소리 나게 음악으로 잘 만들어주었고, 마지막으로 연출이 무척 세련되게 무대에 올려주었다. 여기에 지휘자 윤호근이 이끄는 챔버 피니의 탄탄한 반주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윤호근 지휘자는 최우정 작곡가가 완성한 음악을 아주 세심하게 분석해 연주를 이끌었다.

즉, 이번 공연은 '우리말의 장단과 고저, 리듬을 잘 살린 음악 덕분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대본 덕분이다', '창작오페라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등 여러 가지로 얘기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음악, 극작, 연출 간의 균형과 그것을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었던 점이 제일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창작오페라를 기존의 '오페라 음악'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극'이라는 보다 큰 것으로 보고 열린 사고로 접근하고 기다린 최우정 작곡가의 대범함과 노련함, 최고의 대본가의 위치에서 작곡가와의 협업과 긴밀한 작업이 어쩌면 불편했을 텐데도 마찬가지로 열린 사고로 함께 한 고연옥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작품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고 나열할 것이 많다. 너무 칭찬일색인 것 같아 한 마디 덧붙이자면, 좋은 공연 중에서 그것이 특히나 좋은 창작오페라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칭찬을 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작오페라에 대해 너무나도 목말라 있었고 또 항상 목마르기 때문이다. 한국 오페라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창작오페라 역사와 작품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반인이 정확히 제목을 알 수 있는 창작오페라는 없는 것일까.

한국인에게 과연 우리말로 되고 우리가 창작한 '오페라'가 있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너 왜 음악을 하니?"라고 묻는 편이 낫다. 그것 또한 왜냐하면 좋은 예술, 좋은 음악, 좋은 공연은 그것의 필요성 이전에 직관적으로 그것의 존재함을 우리는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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