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페라앙상 블 '나비의 꿈'(왼쪽) 첫 장면과국립오페라단 '1945'(오른쪽) 마지막 장면.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2019년 10월초 작성한 리뷰이니 1년 반 전이다. 간혹 세부내용 언급을 위해 좀 더 작성중에 리뷰를 기사로 못 올린 경우가 있다. 2019년 가을에 본 창작오페라 <1945>와 <나비의 꿈>은 당시 정치상황과 맞물려 내 마음을 더욱 무겁고도 뜨겁게 했는데, 보통 각 오페라 세부장면 언급을 리뷰에 하는 편인데, 이 당시 글에는 아무리 고쳐써도 다짐이나 바램만 자꾸 글로 쏟아져나와서 결국 적당한 시일에 기사로 송고하지 못하여, 오늘 올리게 되었다.

 

** (2019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늦어도 9월 말 주말 본 두편의 오페라 기사를 올리려 아등바등했던 마음과는 달리 휴일 세 어린아이 육아맘이자 작곡가인 기자는 그저 집에서 하루 삼시세끼를 차리고 먹고 치우느라 평화롭고도 노동집약적인 하루를 보냈을 뿐이다. 그래도 창작오페라 기사니까 한글날에 기사가 올라가서 오히려 잘 되었다. (기사로는 결국 못 올렸다)

지난 9월 27일 관람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작인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1945>(기획 윤호근, 작곡 최우정, 연출 고선웅), 28일 관람한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작인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나비의 꿈>(작곡 나실인, 대본연출 장수동)은 저번 주말인 28일과 어제 10월 5일 서초동 법원 일대의 '조국수호집회'와 개천절인 10월 3일 광화문의 '조국사퇴집회'처럼 시대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사회적 움직임과 맞물려 계속적으로 내 마음을 울리고 있다.

위 네 개의 사건이 겹치거나 연이어 있는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공교로운 것은 어제 조국사퇴집회에서는 1980년대의 유명한 가수 정수라가 부른 '아아~대한민국'노래의 '아아~나의 조국'이라는 가사가 집회참가자들 사이에서 아이러니의 상징으로 sns상에서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의 오페라, 10월을 맞이한 오페라 두 편 

그래, 그렇다면 이 나라 '조국'의 노래, 우리나라의 '오페라'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네이버 국어사전에 '조국'을 검색해보았다. 조국(祖國)이란 '1.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2. 자기의 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 3.민족이나 국토의 일부가 떨어져서 다른 나라에 합쳐졌을 때에 그 본디의 나라.'라고 적혀 있었다. 

요 몇 년, 특히 올해들어 나는 어렸을 적에 '한반도 땅에서 유구한 오천년 역사를 지닌' 이라고 배운 것과는 달리, 여러가지로 우리나라 역사는 참 짧구나라고 느끼곤 하였다. 아마도 대한민국이라는 틀과 서구유럽의 선진화를 비교한 생각일 것이다.

서설이 또 길어지는데, 어쨌든 올해 초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수십수백의 축제와 행사 및 공연소식을 보면서, 가끔은 기념을 빙자한 자기만족의 잔치들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과 기념이 올 1년동안 쌓인 힘은 꽤 큰 것 같다.

9월 말 본 위 두 오페라작품은 시대의 사명과 역사의 질서와 운명을 함께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오페라 <1945>는 만주에서 서울오는 기차가 배경인데, 내가 이 기사를 서울에서 부산가는 KTX에서 적고 있는 것 또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너무 감상적인가, 아니면 나의 착각인가, 혹은 과대 망상인가. 하지만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며, 바로 거기에 예술의 힘이 있다. 한순간에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으며 강한 전율을 느끼게 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 여기에 예술의 힘이 있다. 

 

국립오페라단 '1945'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1945>, 서울오페라앙상블 <나비의 꿈>

국립오페라단 '1945'는 한일 화해,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나비의 꿈'에서는 남북화합의 바램을 느꼈다. 둘 다 창작오페라이고, 어려운 주제를 잘 표현해 큰 감동들 줬다. 나 또한 오페라 작곡가가 되리라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두세시간 동안 시대를 겪는 인간의 감정을 담은 함축적 시어, 그것을 가사로 노래로 단순간에 몰입과 집중을 주는 예술장르는 단연 오페라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국어이면 오죽 와닿겠는가.

지난 27일 국립오페라단의 <1945> 초연을 보면서는, 13일 기자간담회 때 제작진 설명 그대로 충실히 잘 조직되었음을 느꼈다. 특히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을 중심으로 배삼식의 대본이 살아나고, 정치용 지휘의 코리안심포니까지 극저음으로 시작해 의도적으로 중음역대를 공허하게 비우고, 소프라노의 최고음까지로 인생의 깊은 절망과 끝없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낭만이후 현대오페라를 겨냥한 것은 분명했지만, 동요 '엄마야 누나야'부터 1930-40년대 창가와 트로트, 군가 등을 짧은 순간씩 녹여내며 익숙함을 주었다.

이번 작품의 고선웅 연출이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파트가 이미 잘하니)"저는 간판 한 것 밖에 없어요"라고 말한 것은 오페라에서 음악이 중심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준 겸손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201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구자범 지휘, 고선웅 연출의 서울시오페라단 <맥베드>를 봤을 때도 더 오페라가수들이 여타 다른작품에서보다 더욱 세밀한 연기를 하며 감정선을 보여주었던 것을 기억해보면, 이번 <1945>에서도 여러명의 등장인물 각각의 상황에 고르게 몰입될 수 있는 적절한 동작과 타이밍, 동선, 표정연기 등의 세부사항이 극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기자가 궁금했지만 시간관계상 질문하지 않았던 내용이 왜 미즈코의 대사나 아리아가 일본어인지였다. 당시에는 이질적인 것의 결합을 추구하는 의미일거라 생각했지만, 본공연에서 비로소 그 큰 뜻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어느날엔가 일본에서도 공연되어 양국의 화해를 도모하고, 이 작품 오페라 <1945>는 우리나라 최근의 역사를 조명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오페라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9월 27일과 28일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이 공연한 나실인 창작오페라 <나비의 꿈>은 한마디로 ‘아름답다’, ‘정말 공연답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오페라였다. 2017년 초연이후 재연이어서 음악도 장면별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아리아로 더욱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공연장상주단체로서 잘 파악할 수 있기에 아트밸리 소극장 무대를 더욱 잘 살린 무대와 영상으로 극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었다.

윤이상 작곡가가 남산에서 고문관들에게 고문받는 첫 장면은 일종의 블랙코미디처럼 이 극 전체를 경쾌하게 비튼다.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는 반주가 사건의 긴박성을 알리지만, 고문관들은 어떻게 하면 자백을 잘 받아낼 수 있을까 노래하는 동시에 기껏 “담배맛이 왜 이래?”, “아냐, 담배는 해로워”라며 노래한다. 이런 아이러니의 시대, 나라의 대작곡가를 그 대접하는 시대였음을 극은 알린다.

 

오페라 '나비의 꿈' 마지막 장면

공연예술, 그 중 오페라, 창작오페라의 존재이유

우리는 왜 공연을 볼까? 왜 예술이 필요한지를 놓고 보자.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시간이 하루하루 잘도 흘러간다는 것을 알 것이다. 흐르고 또 흐르는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 그 속에서 내 감정을, 개인의 감정을 충분히 짚고 들여다 보기는 참으로 어렵다. 사실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역사 속의 사건들은 어떠하랴. 그것 또한 하루하루 안에 똑같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9월말 주말 나는 오페라에 빠져있을 당시에 서초동에서는 아마도 역사의 한 장면에 기록될 첫 번째 조국수호 집회가 열렸듯이, 그 역사속의 사건을 짚어내고 충분히 풀어내고 남기는 것에는 인간감정과 직결되는 예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은 한 개인 안에 있는 것 중에 감정과 정신에 대한 통찰을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예술가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여러 사람들의 그 느낌과 견해에 대한 대변자라면, 위안부 문제나 동백림 사건이라는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사건을 통해 국가 간, 국가에 의한 폭력과 인간 존재의 발견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에는 오페라라는 장르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나는 단언하겠다. 

지금 이 시국상황은 새로운 질서의 재편을 원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질서는 언제나 음이라는 질서이다. 드라마와 다르게 음악이라는 질서있는 체계가 감정에 가져다주는 깊은 울림, 그리고 우리말 로 된 노랫말 가사로 그것을 듣는다면 그 감동은 제일 직접적이고 깊을 것이다. 

16세기 유럽에서 대중음악이었던 오페라가 21세기 한국에서 왜 필요한지를 물어본다면, 나는 오페라의 매력은 단연 그 성악 발성과 함축된 시어로 표현되는 은유에 있다고 답하겠다.

성악발성을 보자. 인간이 자신의 얼굴과 몸 전체를 큰 울림통으로 하고 몸 주변의 공기를 사용해 높은 배음을 내는 성악발성이기 때문에 그 어떤 악기보다도 예술적 몸과 마음자세가 준비된다. 그리고 몸으로부터의 큰 흐름에서 노래가 나오기 때문에 재빠르거나 잔꾀를 부리거나 하는 '일상'의 방법으로는 좋은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고운 노래가 나온다. 음이 높아도 날카롭게 찌르지 않으며, 성량이 커도 무겁지 않다. 나는 그 점이 좋고, 점점 더 좋아진다. 

함축된 시어와 은유를 살펴보자. 발성방법에 걸맞는 간결하게 함축된 시어를 음에 얹어서 노래부른다. <나비의 꿈>에서는 억울하게 옥중에 갇힌 천상병 시인, 윤이상 작곡가, 이응노 화백에 대해 "느닷없이, 어처구니없이, 영문도 모르고"라는 노랫말에 단어마다 조를 변화시켜 터무니없는 국가권력과 이를 당한 심정에 몇 초만에 공감시킨다. 오페라 <1945>에서 윤경감이 "한글강습회~?"를 반복하면서 노래부르는 대목은 1945년 해방이 되었어도 만주벌판에서 어찌 한글을 가르치려하냐는 윽박지름을 솔과 시의 단지 두음의 상하행만으로 잘 표현했다. 

발산보다는 승화의 느낌이랄까. 펼쳐없어지기보다는 잘 응축해서 날려버리는 느낌이다. 이런 오페라의 특징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고 관객은 오페라의 웅장함 속에 있는 맑은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이유가 있는데, 오페라는 더이상 서양의 옛 귀족음악이 아니다. 클래식 종사자가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 많고, 성악인구도 많고, 노래 좋아하는 한국인의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는 창작오페라가 없다고 말할까? 무수히 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더 잘되고 좋은오페라, 외국에도 소개하고 싶은 '자랑스런' 오페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일 것이다. 무슨말인지 모를 이 엉켜있는 말이 지금까지 10여일의 내마음을 가장 잘 알리는 말인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볼까? 그냥 세상이 오페라였으면 좋겠다고 외치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대한민국의 현 시국을 나는 그저 9월말 본 두 창작오페라를 어떻게 알리고, 나는 무엇을 느끼고 변화하였는지를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오페라처럼 지내왔다.

애써서 대작이 될 수도 있는 오페라를 만들었지만 잘 관리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창작오페라 하나 만든 것 밖에 안되는 것이다. 한국오페라의 위기일 수가 있다. 오페라 쪽에도 많은 논의와 움직임들이 있다. 10월은 기념일이 많다. 10월 9일 한글날엔 플래시몹이 열린다. (2019년 10월 9일 예술의전당 잔디마당에서 오페라 플래시몹 행사가 잘 열렸다.) 언젠가는 오페라가 한국것이라고 될 날이 있지 않을까. 세계오페라사 한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한국이 위치하게 될 것이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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