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오페라단 '레드슈즈'. 카렌(소프라노 이윤경)이 빨간구드를 신고 춤출 꿈에 부풀어 있다.
ⓒ 국립오페라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우리 마을에 섞여든 저 여자
우리와 다른 말을 하고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자유로운 저 여자
빨간 구두를 신고
악마와 춤을 추는 저 여자
국립오페라단의 <레드 슈즈> 2막 시작 합창장면 노래의 가사다. 코로나와 태풍 하이선이 예고되는 9월 5일 오후3시에 네이버TV 생중계된 작곡가 전예은의 창작오페라 <레드 슈즈>는 안데르센의 잔혹동화 '빨간 구두'를 토대로 했다. 이 오페라 1막부터 장면 간간히 노래되었던 마담슈즈의 절망이 저 마을사람들의 대사와 전예은의 음율을 통해 네이버관객인 나의 뱃속으로 꿈틀꿈틀 전해진다. 너무나 큰 좌절과 절망에 내 눈시울도 뜨겁다.
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래동화에 여자는 나쁘거나 불쌍하고, 남자는 정의롭거나 그저 착한가?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빨간 구두>, <헨젤과 그레텔>, <선녀와 나뭇꾼>, <흥부와 놀부> 몇 개만 떠올려봐도 내가 여자라서 좀 기분 나쁘다.
여하간에 내가 그 이야깃거리가 되고 대상이 되는,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자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요사이의 미투 얘기를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는 가운데, 코로나로 인해 막심한 타격을 받고있는 공연예술계에게 비대면 온라인 공연이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특히나 국립오페라단의 네이버 TV 생중계를 통해 <마농>, <빨간 바지>, <레드 슈즈> 이렇게 세 편을 보며 내린 결론은 '병행책'이 될 수 있고, 2020년 이후 삶의 모든곳에 적용될 세부적인 '언택트' 기술발전에 분명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레드 슈즈' 1막 교회장면. 왼쪽 메조소프라노 백재은(마담슈즈 역), 오른쪽 테너 윤병길 (목사 역). ⓒ 국립오페라단
이번 작품의 대본작업까지 한 전예은 작곡가는 오페라 <레드슈즈>의 음악에서 간결하고도 효과적인 집중력을 보였다. 증음정의 사용으로 극에 계속되는 불안감과 의혹의 느낌을 주었고, 상행음계로 피어오르는 욕망, 하행음계로 욕망의 추락을 표현한다. 또한 비브라폰의 부드러움과 글로켄슈필의 별빛같은 음색으로 신비감을, 베이스 드럼과 팀파니 등 대형 타악기를 많이 사용해 공포감을 극대화하여 극 전반의 음악적 톤을 일관되게 맞추어 청자가 이 신비극에 대한 몰입이 쉽도록 했다. 이는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따라 오케스트라 없이 타악기 앙상블과 피아노 연주로 공연이 진행된 때문이기도 하다.
무대는 고급스러움과 허영의 황금빛, 춤추고픈 욕망의 붉은빛, 성스러움의 흰색이 극의 3원색으로 중간 춤추는 카렌의 영상과 의상까지 세련되고 귀티가 났다. 서곡의 실로폰소리와 소년이 든 빨간구두에 이 잔혹 음악동화에 홀려들면서, 합창단이 칵테일바에서 노래하는 인간의 욕망에 왠지모를 상처감과 슬픔을 느낀다.
마담슈즈가 빨간구두로 카렌을 유혹하는 부분은 뮤지컬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과 '나'를 떠올리게 했고, 1막 2장에서 목사가 딸 카렌에게 빨간 구두는 안됀다고 노래하는 장면은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과 '코제트', 또는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과 크리스틴을 떠올리게 했다. '마담슈즈가 극을 끌고 가네요'라는 네이버TV 실시간 댓글처럼 메조소프라노 백재은(마담슈즈 역)은 카리스마있는 연기와 목소리로 카렌을 유혹하고 옛 연인인 목사에게 절규했다. 순백의 주인공 소프라노 이윤경(카렌 역)은 순백의 주인공답게 맑고 우아한 목소리의 열창에 마지막 2막에서는 빨간구두에 이끌린 멋진 춤까지 선보였다.
1막 카렌이 빨간 구두에 이끌리는 장면은 붉은 조명에 발레로 긴장감과 매혹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또한 이런 조명과 춤, 무대미술이 자아내는 분위기의 출발은 오페라에서는 단연 음악인데, 작곡가는 1막 2장 목사의 등장과 합창의 성스러운 분위기에서는 팔레스트리나의 '높으신 왕이신 예수'를, 1막 3장에서 빨간 구두의 추억이 딸 카렌에게서 아빠목사와 연인이던 젊은 마담슈즈로 이어질 때 드뷔시의 '달빛'에 새로 선율과 가사를 붙여 기존 곡의 차용으로, 창작오페라에 힘과 균형감을 준 기법이 좋았다.
▲1막 마지막은 구두로 세대를 초월한 카렌과 목사, 마담슈즈의 사랑이 노래와 무대미술로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무대오른쪽 소프라노 이윤경(카렌 역)과 테너 나건용(청년 역), 왼쪽 소프라노 조한나
(어린 마담슈즈)와 테너 김승직(어린 목사). ⓒ 아리랑TV
이 1막 3장은 특히 주인공들에게 빨간 구두로 연결된 사랑이 드뷔시 '달빛' 분위기의 우아함과 너무도 잘 어울리면서 새로붙인 노래선율과 가사로 딸에게서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두사랑이 잘 연결되었다. 게다가 이 때 무대가 오른쪽은 카렌과 연인 청년의 방이, 가운데 적막한 공간 옆 왼쪽 무대에는 20년 전 목사와 젊은 마담슈즈의 방이 대비되게 표현되면서 노래까지 감미롭게 표현하는 무대와 음악이 무척 신선했다.
온라인 공연 역시 20분 인터미션 후 2막은 바에서 마담슈즈가 혼자 술을 마시는 독백으로 시작된다. 독백은 목사에게의 처절한 절규로 상승되고, 마담슈즈 뒤로 젊은 시절 마담이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돌팔매질에 피로 물든 모습이 오버랩될 때는 타악기와 웅장한 음악으로 깊은 전율감도 느껴졌다. 이런 장면에서 두 여인, 사실은 동일인을 한 앵글에 측면에서 잡는 카메라 기법은 의미있었다.
목사의 만류에도 카렌은 구두를 택했고, 초록드레스를 입은 카렌은 미친듯이 춤춘다. 결국 목사도 마지막에 함께 춤추게 된다. 이 때의 음악은 공연전체를 통해 가장 긴박하고 웅장하며 증음정과 상행 하행음계의 복합으로 환희와 전율, 공포를 총집합한다. 단, 이것이 실제 공연이었다면,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나 <카르멘> 등 주인공 1인이나 2인간의 심리만으로도 꽉채우며 대단원의 막으로 비장하게 골인하는 오페라도 있기에 <레드 슈즈> 또한 주인공이 빨간구두를 신고 신들린듯이 춤추는 이 장면이 좀더 어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의도는 비장한 음악자체에 무게를 두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합창은 음산하고 힘 있는데, 카렌 혼자 미친 듯이 춤추는 그 '미친' 느낌은 온라인 관중으로서는 덜 들었다. 이것을 차라리 1막중간에 빨간 구두에 대한 욕망장면에서 배경영상으로 크게 카렌이 구두를 신었을 때의 상상모습이 보이는 멋진 장면처럼 연출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같은 상태에서, 즉 긴박한 합창음악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카렌의 발동작과 표정을 번갈아 제법 오랜시간 줌인해 보여줬다면 온라인 관객에게 무대전체가 텅비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온라인 공연이기에 실제공연의 성격에 더해 온라인 청중에게 음악을 위한 시각적인 도움은 어때야 할지 앞으로의 고민과 보완이 필요하겠다.
▲ 국립오페라단 마지막 커튼콜. 온라인 관객과 출연진에게 박수소리 음향효과로 센스를 발휘했다.
ⓒ 국립오페라단
이번 국립오페라단 <레드 슈즈>는 매해 5월인데 코로나로 인해 8월로 연기된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폐막작이기도 했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연포맷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창작오페라 탄생의 기회를 살렸다. 댓글을 달며, 읽으며 다른 관객과 교감하는 재미도 있었다. 무수히 많은 예술가, 창작자들에게 이 코로나 시대를 뚫고 갈 방안은 무엇인지 우리함께 지속적인 관심과 고민을 하고, 빠르게 실천하고 시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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