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GPO의 이번 "음악, 문학을 마주하다"는 공연은 시와 소설에서의 세계관이 음악으로 웅장하게 펼쳐진 연주회였다. ⓒ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SGPO, 음악감독 상임지휘자 서훈)의 제95회 정기연주회 <음악, 문학을 마주하다>가 어제 1118일 양천문화회관에서 공연되었다.

학구열의 도시 목동 한복판에 있는 양천문화회관은 처음 가보았는데, 양천구청 및 양천보건소 바로 옆 정류장이었고, 부천필하모닉의 도시 부천, 내 어릴 적 살던 부천의 시민회관과 모습이 비슷하여, 이 곳이 양천구와 목동의 문화예술을 이끄는 곳이구나를 직감할 수 있었다.

첫 곡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의 파워와 낭만적인 감수성으로 문학을 마주하는 연주회 포문을 힘차게 열었다. 창작 관현악 순서엔 서훈 지휘자가 마이크를 들고 오작교 프로젝트(*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산실 프로젝트, 2년간 오케스트라와 전속작곡가를 맺어줌) 매칭 작곡가인 고병량, 임재경 작곡가를 무대로 모셔 작곡가가 작품 설명을 해주었다. 고병량의 <그들의 노래>는 소설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받은 인상과 광주 아시아문화의 전당 건축현장과 완공 이후의 평화로움에 대한 인상으로부터 착상한 곡이라 설명했다.

곡은 과거 광주의 수 십 년 전의 잔혹사를 애국가와, 아리랑 선율의 겹침으로 펼쳐내었다. 반복되며 불협화와 협화를 오가며 차마 다 부르지 못하고 1-2마디씩 아리랑과 애국가 선율이 악기간 겹치는데, 십리도 못 가 발병 나는 것처럼, 그리고 차마 아직도 마주할 수 없는 그 광주의 역사를 감싸 안기 힘든 것처럼, 현대음악 창작음악인데도 감상하며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D단조나 D음이 들리는 곳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느낌도 났다. 마지막에 스네어 드럼과 베이스드럼, 탐탐의 롤이 수 십 초 가량 지속되는데, 이 끝에 관파트 주자들의 발구름이 푸닥거리처럼 느껴지며 현악기의 하모닉스가 마무리하고 지휘자는 마지막 여운까지 기다린 후 지휘봉을 멈추는 모습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숙연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 서훈 지휘자의 안내로 고병량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 '그들의 노래'를 설명하며 관객의 작품이해를 도왔다. ⓒ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임재경의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영감을 받아,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고 감정이 배제된 통제된 세상에서 결국 인간이 몰입해가는 순수한 쾌락과 폭력성을 그렸다. 처음에 E단조로 팀파니와 베이스드럼, 탐탐이 4분음표로 천천히 쿵쾅거리는 가운데, 금관이 음산하고 압제된 느낌을 연출하며 거대한 세계를 표현한다.

중간부는 몽환적인 하프음색과 현악기 선율이 올라가는데 거대한 세상, 통제된 세상의 높다란 벼랑 밖에서 그 절벽을 초록 꽃들이 마구마구 피어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즉 이 통제된 사람들이 치달을 수밖에 없는 쾌락의 세계랄까. 첫번째 부분과 대조를 이루는 야릇하고 얇은 선율의 가닥에서 감각이 통제되면 오히려 도달할 그 말초적인 '끝 세계의 끝' 같았다. 음악 마지막 부분은 다시 처음의 그 거대한 세계로 돌아오는데, 곡을 다 듣고 나니, 이 곡을 통해 내가 사는 '이 정상적인 다양성'의 세상에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며 한편의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후반부는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였다. 지휘자가 전반부 임재경 작곡가의 작품으로부터 후반부 프로그램 선택의 영감을 받았다고 앞 순서에서 설명했는데,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던 올해 코로나 기간 SGPO의 피땀 어린 연습과 노력을 연주를 통해 알 수 있었다. 1악장 첼로도입의 서정적 선율에 이어 채찍을 때리는 듯한 오케스트라 전체의 응답, 그리고 미지의 영토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주제음의 끝없는 향연이 펼쳐졌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SGPO는 관악파트가 참 멋지구나 하는 점이었다. "관악기가 꼭 남성의 악기는 아니야~" 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호른, 트럼본 등에 여성 단원이 많았다. 이 날 작품들에 금관 역할이 많았는데, 중요부분의 인상을 각인시키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악장 도입에는 먼 곳에서 우리 인류를 부르는 듯한 2분음표 금관의 고동음 후 잉글리시 호른의 주제선율이, 그리고 후반부에 제1바이올린 악장과 첼로수석의 짧은 듀오부분까지 애상적이고도 모든 대지를 품을 듯한 그 선율이 SGPO의 연주로 3, 4악장까지 이어졌다.

 ▲ SGPO의 이번공연 연습장면 ⓒ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말을 타고 대지를 누비고서 즐거운 페스티벌을 여는 것 같은 3악장, 그리고 대중에게 유명한 4악장의 박진감 넘치는, 승부욕 넘치는 상행 3화음의 연속에서 미국의 민요정신과 광활한 대자연, 대도시의 활기참을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이 음악을 미국인이 아니라 보헤미아 사람 드보르작이 썼다는 것에 감탄하고, 또 내 눈 앞 양천문화회관에서 서훈 지휘자의 활기참과 순수함, 집념과 고뇌를 그대로 반영하며 또 한 편의 인생드라마를 연주하는 SGPO에 감탄하며 이번 공연에 나는 브라보를 외쳤다.

올해 모든 공연단체가 그러하듯, 급변하는 코로나 상황과 방역지침 때문에 이날 SGPO 공연도 당초 10월 예정이 11월로 겨우 연기되어 공연되었고, 지휘자는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인사말로 전했다. 왜냐하면, SGPO의 18일 공연은 무사히 되었지만, 방역지침이 19일 0시부로 1.5단계로 격상되었고, 100인 이상은 한 공간에 모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케스트라는 연습을 할 수가 없거나 여타 필요한 대규모 행사는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코로나가 좋아한다는 추운 날씨로 점점 접어들고 있다. 우리가 이날 음악에서 들었던 세계들, 신세계로부터 우리가 앞으로 걸어야 할 신세계는 또 어떻게 펼쳐질지, 어떻게 헤쳐나가야할지. 긍정적인 지혜로 헤쳐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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