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제48회 범음악제(2020 The 48th PAN Music Festival)가 지난 11 5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한남동 일신홀과 라율아트홀, 세라믹팔레스 홀에서 공연되었다.

11월 9일 일신홀에서의 범음악제 세 번째 콘서트는 ‘앙상블 거리(음악감독 제러드 레드몬드)’의 <Tradition in the Present> 공연으로, 신진 작곡가인 황동찬, 남인성 및 박정은, 원로작곡가인 김정길, 그리고 올해 타계한 한국 현대음악 전자음악의 거장이자 범음악제의 설립자인 고 강석희의 <부루>가 국악기와 전자음향이 가미되어 연주되었다.

첫 곡 황동찬의 <몰아>(2020/세계초연)는 생황(백다솜)의 신비롭고 미묘한 음색이 몰아의 ‘주체’로 곡의 도입과 끝을 이끈다. 피아노(제러드 레드몬드)도 건반음 연주가 아닌, 현을 뜯는 방법, 거문고를 농현 없이 악기의 오른쪽 끝을 해머로 두드리고, 현을 술대로 문지르는 방식으로 특수한 음색을 얻으며 몰입부터 몰아까지의 인식의 융합, 망각, 통제감 등을 표현했다.

장은총의 <뒤틀림>(2020/세계초연)은 작곡가가 ‘옛 악기 거문고를 볼 때마다 과거에서 현대로 넘어온 시간여행자를 보는 느낌이다. 고유의 주법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옷을 입혀보고 싶었다’는 프로그램지 설명이 눈에 띄었다. 소리는 전체적으로 여백의 미가 있는데, 제목처럼 거문고를 비틀었지만, 패셔너블했고, 친숙했다. 사유적이기보다는 익살스럽고 거문고 연주자 박정민이 독주로 몸통을 지니고 그 위 명주실을 술대로 뜯는 이 악기의 기본방식을 응용하는 과정의 재미가 있었다.

남인성의 <메아리>(2020/세계초연)는 처음에는 대사, 즉 소리움직임이 많은 것으로 소리변화와 왜곡을 주어 메아리를 표현한 듯 했다. 중간부에 점묘적인 부분은 한 음의 지속음 끝에서 다른 악기가 맺거나 시작하는 방식으로 음들이 연결되어 메아리친다. 대금의 바람소리와 플루트같은 플라터텅잉, 바이올린(박재린) 첼로(김 솔 다니엘)의 콜레뇨, 피치카토, 피아노의 짧은 음들. 마지막 첼로를 활대 끝으로 현을 친 것이나, 점묘적이기 때문에 소리를 기대하는 순간의 조마조마한 느낌 또한 특징을 준다.

박정은의 <사랑>(2020/세계초연)은 펠릭스 곤잘레즈-토레즈의 ‘무제(완벽한 연인들 1988)’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감정의 견줌과 어긋남을 같은 음이라는 지향점을 두면서 악기별 아방가르드한 특수 주법으로 도망갈 듯 다시 어울림으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었다. 피아노 주자는 건반이 아닌 현 위를 두드리고, 멜로디온을 건반 위에 두고 연주하기도 한다. 거문고는 술대로 뜯기가 아니라 현 문지르기, 대금은 센 바람소리 타격음 등이다. 급기야 피아노 현에 모터를 대고, 거문고를 빨래판처럼 활로 가로로 문지르고, 봉지를 현에 비비기도 하면서 이 주법들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마지막에 악기주자 세 명이 자신의 악기들에서 떠나 양철통에 모터를 넣어 진동소리를 만들면서 끝나는 것으로, 지금껏 이 곡의 모든 진동들은 화합을 위한 과정이었음을 밝힌다.


후반부는 원로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팬뮤직, 범음악제의 정신을 가다듬었다. 김정길의 <추초문>(1979)은 피리와 대금, 피아노와 첼로, 징이 한 음씩 천천히 고요하게 등장한다. 이 단아한 움직임이 음의 수나 움직임이 적다고 하여 허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를 위해 피어나는 집중력으로 느껴졌다. 79년 작품이 2020년에 연주되는 것에서 옛 작곡가의 뜻이 오늘에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무수히 많은 여타 곡들이 형상을 그려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운데, 악기가 저마다의 존재와 서로 간 화합을 위해 조용히 하나씩 등장해 웅장하고 격렬하게 합쳐지고 다시 하나씩 사라져 공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과정에서, 이 작품은 시간을 허투루 쓰거나 빨리 서두르지 않고, 작곡의 목적과 시간진행이 탁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이 날의 피날레인 고 강석희 작곡가의 <부루>를 기다리고 있으니, 무대 위 스크린에서 작곡가에 대한 추모영상이 상영되었다. 영상에는 강석희의 제자들, 강석희의 스승인 작곡가 윤이상과 보리스 블라허와의 모습, 공연과 집필 모습 등과 함께 “작곡은 발명이다. 음악의 시대정신은 다 같지 않은가. 첨단에 서서 갈고 닦아야 한다” 등의 인터뷰 내용, 그리고 이날 공연에 관객으로도 참석한 원로작곡가 이만방의 인터뷰도 짤막하게 담겨 있었다.

강석희의 <부루>(1976/국악기 편성 포함 세계초연)는 원래 플루트, 클라리넷, 인성, 타악기 두 명을 위한 작품인데 이번에는 플루트, 클라리넷 대신에 두 대의 대금(백다솜, 유홍), 그리고 전자음향(임종우)이 가미되었다. 작곡가는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정가처럼 인성이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이 노래가 녹음되고 전자음향의 저음과 리버브로 증폭되어 스피커를 통해 공연장을 휘돈다. 무에서 무로, 유에서 유로 그 어둔 암흑 속에 빠질 때쯤 두 대 대금이 단아한 선율을 보태고, 중간부에 3연음부 저음의 피아노가 깨달음을 위한 메시지를 종용하는 듯 바쁘게 움직인다. 마지막 톰톰의 쇳소리가 귓가 뿐 아니라 몸 속 오장육부를 파고드는 듯 하며 강한 각성을 주었다.

이날 객석에는 원로작곡가 이만방, 이영자를 비롯해 고 강석희 작곡가의 유족이 관객으로 참석했고, 많은 현대음악 관계자, 애호가들이 객석을 채우며 ‘부루’를 포함한 팬뮤직페스티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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